- 지난 1997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김대중 후보의 권위에 도전했던 정대철 민주당 상임고문이 이번에는 민주당 당대표 경선에 도전장을 던졌다. 정고문이 말하는 정당민주화론과 당대표 출마 이유, 그리고 지방선거후 정계개편에 대한 전망을 들어본다.
이번에 선출되는 당대표는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직에서 물러난 뒤 밑에서부터 뽑는 첫 대표이기 때문에 명실상부한 당의 구심점으로 자리잡게 된다. 현재까지 여러 명의 의원들이 최고위원 경선 출마의사를 밝혔다. 지난 1997년 대선 후보 경선 때 출마했다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고배를 마신 적이 있는 정대철(鄭大哲·58) 민주당 상임고문도 이번에 출마선언을 했다. 그런데 당시 경선에서 정대철 의원을 도왔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눈밖에 난 김상현 전의원이 최근 민주당에 재입당함으로써 민주당내 비주류가 ‘당권’을 쥘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광주지역에서 열린 민주당 경선에 정가의 관심이 쏠린 3월16일 오전, 서울시 중구 신당동 남산타운아파트 자택에서 정대철 민주당 상임고문을 만나보았다.
-지난번 새정치국민회의 대선후보 경선 때 ‘김대중 선생님’에게 도전장을 냈다가 고배를 마신 적이 있죠. 이번에 당권 도전을 선언했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우리 정치가 급하거나 바람직한 행보를 한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조금씩 발전하는 것 아닙니까. 군인 대통령의 장기독재에서 단임으로, 또 민간인으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정권교체가 된 것은 발전한다는 증거지요. 당시에는 김대중 후보로는 정권교체가 힘들 것이기 때문에 비호남출신이 대선 후보가 돼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경선에 출마했던 것이고 여론조사에서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보다는 지지도가 앞섰던 것이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승리했으니 다행이지요. 아무튼 그때 정대철, 김상현, 김근태가 만든 것이 바로 국민경선추진위원회였고 지금의 경선으로 이어진 겁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처럼, 이번에 민주당에 재입당한 후농 김상현 전의원이 정대철 상임고문과 함께 어떤 ‘작품’을 만들어내지 않나 예의주시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것은 아닙니다. 후농은 그냥 백의종군할 뿐입니다. 저는 오히려 입당을 말렸어요. 앞으로 지방선거후에 우리 정계가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데…. 그런데 고생해도 같이 하겠다며 후농이 고집해서 들어온 겁니다. 다만 우리는 모든 사람이 ‘예’ 할 때 ‘아니오’라고 바른말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DJ와 YS의 분열 때 DJ에게 양보하라고 직언도 했고 YS가 3당통합으로 여당으로 가버리자 ‘꼬마민주당’과 민주당이 통합해야 한다는 건의도 했습니다. 대선후보 경선도 이미 주장했고…. 우리 이익은 못 챙겼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이 바로 가도록 하기 위해서 고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후농의 폭넓은 인간관계를 보나, 정고문과의 인연을 보나 이번 당권 경선에서 정고문을 도울 것은 자명한 일 아닙니까. 상대편에서는 후농이 다시 입당해 정고문을 당대표로 앉히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경계하는 눈치인데….
“후농은 대선후보 경선이나 당권 경선에서 중립을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는 후농이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내가 정대철을 돕는 것을 시비 걸 사람도 없고, 또 돕지 않으면 인간적으로 나쁜 사람이 된다’고는 말합니다만….”
-후농도 어떻게 보면 흘러간 물인데 새로운 정치의 물레방아를 돌리겠습니까.
“위기 관리 능력과 상생의 정치를 하는 데는 특출한 능력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3대 마당발이 있는데 이수성 전총리, 김재기 한국관광협회장 그리고 후농 아닙니까. 그런 후농이 이제 당대표가 되려고 들어왔겠습니까. 후배들을 도우려고 들어온 거죠.”
-한때 대권에 도전하려던 정고문이 당권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권재창출을 도와주는 데 제가 적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민주당이 개혁하고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는 데 적합한 인물이 바로 저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개혁의 핵심은 정당개혁입니다. 1인 보스 정당에서 민주 정당으로, 지역 편중 정당에서 전국 정당으로, 청와대나 행정부 중심의 정치에서 의회 중심의 정치로 바꾸기 위해 그동안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노력할 겁니다. 당원들도 제가 정당민주화를 위해 애써왔고 당을 호남정당이라는 지역색에서 탈피시키고 정통성과 정체성을 이어가는 데 적합한 인물이라고 믿을 겁니다.”
-그동안 민주당이 여당으로서 역할도 하지 못하고 더구나 김대중 대통령이 당총재를 그만둔 뒤엔 당의 구심점도 없고 당원들의 관심도 대선후보 경선에 쏠려 집권당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런 점이 있었음을 자인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 이후 국민참여 경선제 도입 등 자생력이 있는 정당이 되려고 실험중입니다. 그런 실험조차 못하는 정당도 있습니다.”
-경선 등을 통해 새로운 당의 구심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번에 대선후보와 당대표가 동시에 뽑히면 아무래도 당의 무게중심은 대선후보로 쏠리게 마련입니다. 구심력이 약한 당대표를 맡을 필요가 있습니까.
“지금 매스컴이 대선후보 경선에만 쏠려 있습니다만, 당론을 이끌고 가는 당대표도 중요합니다. 당헌에도 선거는 대선후보가 이끌고 가지만 당무나 당정협의는 당대표가 맡아서 하는 거죠. 올해 대통령 선거에 이기든 지든 자생적이고 독립적인 정당이 되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물론 앞으로 대선까지 7~8개월 동안은 당대표가 대선후보를 도와주는 모습이 되어야겠죠.”
-그러면 대선후보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서 콤비플레이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당대표가 되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렇죠. 정치개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거죠. 제가 몇몇 사람들과 함께 쇄신연대를 할 때만 해도 잘될까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점점 정치개혁쪽으로 변화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음속에 정한 후보는 있지만 누가 대선후보가 되든 모두 훌륭한 분이고 특장이 있으므로 제가 당대표가 되면 도와드릴 생각입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이번에 대선후보 경선에 나온 분들이 대부분 정치개혁에 앞장섰던 분이죠. 초재선의원들이 당쇄신을 부르짖을 때 이인제 후보가 중간 입장에 서긴 했어도 정치개혁에는 공감할 것이고... .”
-대선후보는 비호남 출신 중에서 전국적인 지명도가 있는 사람이 되고 당권은 대주주인 호남 출신이 맡아야 한다는 논리도 있는 것 같은데….
“민주당은 호남당이라는 이미지를 탈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호남출신이 당권을 잡지 않는다고 호남사람들이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영호남 대립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중부권 출신의 인물이 당권을 잡는 것이 대선후보에게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선후보로 나온 사람 중에는 영호남 충청권은 있어도 중부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한표라도 더 얻기 위해서는 서울 경기 인천 등을 아우르는 중부권 출신이 당대표를 맡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제 닭 잡아먹기 식보다는 유권자의 절반이 있는 신천지를 개척할 수 있는 기회를 방기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정권재창출과 1인에 의존하지 않는 자생적인 전국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대선후보나 당대표가 모두 비호남출신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입니까.
“지금 대선후보 중에 호남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권재창출 여부와 상관없이 민주당이 자생적인 전국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 당대표가 돼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굳이 콤비플레이를 염두에 둔다면 개혁적인 대선후보와 전국정당을 만들 수 있는 당대표여야겠지요.”
-그러면 대선후보 경선에서 개혁후보 단일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인위적인 것은 안되고, 앞으로 지역 경선을 거쳐 나가면 자연스럽게 이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김근태 후보가 누가 나가라고 나간 겁니까. 경선 후보 중 3위권에도 못들면 언론의 조명을 못 받으니까 계속 버티기가 힘들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미국의 예비선거처럼 나중에는 2명으로 압축될 수도 있습니다. 어제 우리 지역구에서는 구청장 후보와 구의원 후보를 경선을 통해 뽑았습니다. 당원이 2만2000명인데, 컴퓨터로 임의로 1000여 명을 뽑고 통책 450명을 뽑아 선거를 치렀어요. 그러니까 지구당 위원장인 제가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어요. 경선 치르려면 돈이야 좀 들지만 재미있잖아요. 이런 과정을 거쳐 국민의 신뢰를 쌓아가는거죠. 우리 당 대선후보 경선 결과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만 한나라당이야 이회창 후보 추인대회가 될 거니까 재미가 없죠.”
-대선후보 경선은 서울에서 대미를 장식하는데 서울 경선의 결과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알 수 없죠. 어제도 우리 당 의원 8명을 만났는데 이인제다, 노무현이다 논쟁을 벌이는데 끝이 나지 않아요. 경선 전에는 노무현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는데….”
-현재 민주당 경선으로 당지지도가 올라가는 등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오지만 지방선거 결과와 월드컵의 열기에 묻혀 경선효과가 반감하지 않을까요.
“맞아요. 그래서 저는 6월13일 지방선거후에 대선후보 경선을 치르자고 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잊어버리니까 월드컵 끝나고 나면 민주당이 무엇을 했는지 잊혀질 수 있어요. 만약 경선을 8, 9, 10월에 한다면 그 열기가 대선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았겠어요? 제가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러나 성급하게 주장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후회할 겁니다. 지금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한 사람들 중 누가 되든지 지방선거와 월드컵 끝난 후 다시 지지도를 올리려면 쉽지 않을 겁니다.”
-정고문이 지방선거와 월드컵을 치른 후에 대선후보 경선을 치러야 된다는 배경에는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우리나라 정치 지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예감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정계개편이 있으리라고 예상합니까.
“지방선거의 핵심은 서울 인천 경기 지역의 시장 도지사 선거 결과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냐에 따라 정계개편이 맞물릴 것으로 봅니다. 여야가 적당히 분할한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여당이 참패한다면, 당이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내부적 동인이 발생할 겁니다. 현재로서는 이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그러나 우리 민주당이 선전해서 좋은 결과를 얻으면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분들 등 민주당 바깥에 있는 정치인들이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혹시 신당이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민주당이 통합할 수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서울 경기 인천에서 참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는데, 만약 참패하게 되면 이번에 선출되는 당대표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 아닙니까.
“당대표도 공동책임을 져야죠. 그러나 대선후보가 정해지면 대선후보 깃발 아래 지방선거를 치르니까 당대표의 책임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죠.”
-만약 정고문이 당대표가 된다면 지방선거 참패를 면할 비법이 있습니까.
“지금 공개할 수는 없지만 서울과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정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대통령을 포함한 당원들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정고문이 가지고 있다는 ‘비장의 카드’가 무엇일까. 당대표가 지방선거 후보를 지명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사전 여론조사 등을 통해 가장 경쟁력 있는 사람을 지명하면 되지만 지자체 선거 후보도 경선으로 뽑는 만큼 당대표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크지 않을 것이다. 가능한 방법은 현재 출마선언을 한 사람 중에 경쟁력 있는 사람을 물밑에서 밀어주거나 당내외 인사 중 아직 출마를 선언하지 않았으나 당선 가능한 인사를 설득해 경선에 출마케 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미 불출마선언한 고건 시장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인사들을 영입하는 것도 간단치는 않을 것이다. 이미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해 저조한 성적을 내고 있는 정동영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로 돌아서는 것도 너무 늦었는지 모른다.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박근혜 의원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결단력이 있는 여성입니다. 정치적 선택을 하거나 결단하는 데 박정희 전대통령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박근혜 의원 본인은 개혁을 말하는데 그 실체를 알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 박정희 전대통령의 이미지와 겹쳐서 정말 정치개혁을 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종필 자민련총재와 거리를 두려는 것 같은데 더 두고 봐야겠습니다. 지난번 부시 미국대통령 취임식 때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갔는데 마침 김종필 자민련총재도 같이 탔어요. 그런데 7시간의 탑승 시간동안 박근혜 의원은 한번도 JP에게 말을 건네거나 눈길을 주지 않아요. 그것을 보고 속으로 놀랐습니다. 아무튼 이제는 고난의 길에 들어섰는데 이런 길을 걸어봐야 정치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게 경종을 울리면서 자기 길을 개척해나가야죠. 그러나 정치는 결단과 함께 운도 있어야 합니다.”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해서 언론의 조명을 받고 신당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는데 민주당 경선이 각광을 받으면서 박근혜씨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런 면도 있죠. 그러나 남성 정치인들도 하기 힘든 결단을 내렸다는 것은 평가할 만합니다.”
민주당 경선이 시작되기 전만 하더라도 정가에서는 기발한 정계개편 구상이 나돌았다. 민주당 경선에서 비호남 출신 후보 중 한 사람이 당선되고 난 뒤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면 대선후보 책임이다, 대통령의 실정 책임이다 등으로 책임론이 제기되고 이 과정에서 호남출신의 한 정치인이 호남신당을 만들고 박근혜 의원이 중심이 되어 영남신당이 만들어지면 이 두 신당이 연대하든 아니면 영호남 화합당을 만들든 이원집정부제를 고리로 새로운 후보를 낼 것이라는 것. 여야 중진의원 중에는 이런 구상에 대해 논의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는데 신당내에서 박근혜 의원의 위상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주당 경선의 결과가 예측 불허이므로 어떤 가능성이 새로 생길지 알 수가 없다.
-박근혜 의원의 한나라당 탈당을 계기로 정가에서는 여러가지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특히 이원집정부제 등 권력구조 변화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습니다. 정고문은 내각제 등 권력구조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내각제에 대해서는 예전에 비판적이었어요.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국민들은 대통령제를 원한다고 생각했어요. 1987년 민주화대항쟁 때 국민들과 대통령직선제를 하겠다고 약속해서 실행하는 것인데 자주 바꾸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문화상 내각제를 위한 토양이 아직 부족하다, 토론을 하고 이를 수용하는 자세가 아직은 덜 돼있다고 생각했어요. 통일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도 대통령제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DJP연합을 하기 전에 내각제를 주장하는 JP와 손잡지 말아야 할 이유를 9가지로 설명하기도 했어요. 결국 손잡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제왕적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지적이 많지 않습니까.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니까 그런 것인데 넬슨 만델라 남아공 전 대통령 수준이 되지 않고는 현재의 대통령직은 권력을 주체할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영국의 사학자 액튼경의 말대로 ‘나는 부패하지 않겠다’고 늘 다짐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한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어요. 내각제도 권력을 한곳으로 몰고갈 수 있지만 언제든지 문제가 있으면 교체 가능성이 있잖아요. 그래서 내각제도 한번 검토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민주화 이후 여소야대 등으로 인한 분점정부 때문에 그것을 타파하려다 보니까 정치가 늘 불안했어요. 그러나 내각제는 다수당이 정권을 쥐니까 그런 문제는 해결할 수 있죠.”
-그러나 자민련의 내각제 홍보 투어에 대한 국민의 냉담한 반응에서 보듯이 내각제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이나 지식인들은 과거 장면정부의 실패 탓인지 내각제에 대해 약한 정부, 실효성 없는 정부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어 내각제의 장점에 대해서는 간과한 면이 있습니다.”
-이원집정부제는 고려해봤습니까.
“현재 우리 헌법이 이원집정부제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하면 되는데 총리에게 권력이양을 안 하려는 것이 문제죠. 그래서 이원집정부제 실행 여부는 대통령의 개인적인 속성에 달려 있는 겁니다. 사실 총리가 부통령보다 더 큰 권한을 행사할 수 있거든요. 대통령은 국정 방향을 제시하고 통일 외교 국방만 맡고 나머지는 총리를 믿고 맡기면 되지요. 총리와 여러가지 역할을 분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원집정부제를 실행하겠다는 대통령이 나오면 총리에게 권한을 분산하는 민주적인 국정 운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종필 자민련총재도 내각제뿐 아니라 이원집정부제에 대해 관심을 표명했고 김윤환 민국당대표도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평소 물밑 대화를 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총재와 김대표 그리고 후농 김상현 전의원이 이원집정부제를 고리로 정계개편을 시도하려는 것은 아닙니까.
“평소 가까운 사이들이지만 후농이 민주당에 들어온 것은 생각이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압니다. 민국당과 자민련이 합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때 후농이 그런 상황까지 전개된다면 내가 합류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했어요. 그래도 민주당은 옛동지가 많으니까 돌아온 겁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제는 1인 지배의 카리스마 시대는 끝나고 있다고 봅니다. 국가나 당의 지도자는 어떤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까.
“선량하고 정직한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지도자를 국민들이 원하는 것 아닙니까. 민주적이고 소양있는 사람, 국제감각도 있고 통일지향적인 사람, 그렇게 불우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 입지전적인 사람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이 우리 사회 여러 곳에서 지도자로 활동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입지전적인 인물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핏대를 세우는 그런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고문이 말하는 바람직한 지도자상은 어떻게 보면 8선 의원 출신인 정일형 전민주당 총재권한대행과 한국 여성변호사 1호인 이태영 여사의 사이에서 유복하게 자란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듯하다. 그리고 정고문이 말한 입지전적인 인물은 하의도 섬에서 불우하게 태어난 김대중 대통령의 과거 모습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과연 그런 생각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까.
김대중 대통령과 정대철 민주당 상임고문은 정고문의 부친인 고 정일형 의원 때부터 집안의 세교가 있기 때문에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난 1997년 대선후보 경선 때 DJ의 권위에 도전했고, 그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초기에 정고문은 ‘정치자금’ 문제로 구속됐다가 풀려나기도 했다. 그래서 아직까지 김대중 대통령과의 사이에 앙금이 남아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정고문은 “많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지요”라고 말했다.
-최근에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지난해 10월, 보궐선거에 참패한 뒤 청와대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독대한 자리에서 첫째 인적 쇄신을 주장했어요. ‘청와대, 내각, 당 이 세 가지가 쇄신의 기본입니다. 청와대는 심부름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략과 전술 마인드가 있는 사람이 들어가 집권 후반기를 끌고 가야 합니다. 내각은 총리부터 교체하고 우리 정권과 운명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 즉 정치인을 그대로 두거나 써야 합니다. 당은 민주당의 정체성과 개혁성과 민주성이 있는 사람이 맡아야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있던 사람이 바로 와서는 안됩니다’는 것이었어요.
둘째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정치개혁은 정치민주화고 정치민주화는 정당민주화입니다, 죄송하지만 1인 보스정당을 민주화된 정당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까지 하지 못한 것인데 이제라도 민주당을 민주화된 정당으로 바꾸십시오, 여론에 몰려서 하는 것보다 자발적으로 빨리 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야 합니다, 시장경제를 하겠다고 하셨으니 경제는 시장으로, 정치는 당원에게 맡겨야 합니다’라고 말입니다.
셋째 ‘많은 사람들과 만나 다양하게 의논하십시오’라고 주장했어요.
넷째 그리고 정 안되면 ‘혼자라도 결단하십시오, 총재직을 그만두십시오’라고 말씀드렸는데 곧 당총재직을 내놓으시더라구요.”
당시 언론에서는 정대철 의원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건의서’를 가져간 것으로 보도했다. 정고문은 그 내용의 요지를 말한 것이다.
-건의서를 대통령께 드렸습니까.
“건의서는 아니고 메모 형식으로 가져갔는데 대통령께서 달라고 해요. 전해드리고 왔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인사정책에 대해서 비판들이 많은데 정고문이 김대중 대통령께 이 문제에 대해 고언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앞에서 말한대로 인적 쇄신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인사의 호남편중문제도 있습니다. 역대정권에서 호남인과 호남지역이 인사나 개발에서 차별을 받았으니까 이해는 됩니다. 그러나 백인을 끌어안았던 넬슨 만델라를 생각하면 김대중 대통령의 포용력이 좁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 김대통령이 취임할 때 저는 남북, 동서, 여야 이 세가지 분야에 햇볕정책을 비춰야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의료개혁 등 정책보다도 비호남을 끌어안고 야당을 끌어안았으면 평가가 달라졌을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어보았다.
“어쨌든 그동안 한나라당을 이끌고 왔고 앞으로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될 것 같은 만큼 리더십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제가 할말은 아니지만 좀더 포용력이 있었으면 합니다. 당내뿐 아니라 당외 사람들도 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총재는 오랫동안 판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혼자서 고독하게 판단하는 것에 익숙해 있습니다. 판사는 다른 사람과 의논하면 안되죠. 그런데 정치는 이런저런 사람과 부대끼면서 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몸에 배어 있지 않아요. 아직까지 한국정치는 함께 더불어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회창 총재가 노력한다고 갑자기 그런 포용력이 생기겠습니까.
“남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포용력이 생깁니다.”
-가령 빌라게이트 사건만 하더라도 초기에 이회창 총재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 아닙니까.
“법대로 했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고 생각한 거죠. 100여 평의 빌라에 살면 국민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생각해 봤어야죠. 앞으로 아들들의 병역문제 못지않게 이 문제가 계속 거론될 겁니다.”
-어떻게 보면 포용력이 없는 대통령과 야당총재 때문에 4~5년 동안 국민들만 피곤했던 셈 아닙니까.
“두 분 모두 너무 똑똑해서 그렇습니다. 조금 모자라야 포용력도 생기는데….”
똑똑하기로 따지면 정고문의 이력도 남부럽지 않다. 경기중고교와 서울대 법대와 동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미국 미주리주립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런데 정고문에게는 묘한 면이 있다. 말을 빠르게 할 때 번뜩이는 재치와 기지가 있는가 하면 어떨 때는 영 어리숙해 보일 때가 있다. 그런 빈 공간 때문에 정고문은 정치인뿐 아니라 음악 예술 문화 분야에도 지인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정고문은 이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평소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권노갑 전 고문과는 왜 그렇게 멀어졌습니까. 권고문은 당내 영향력이 작지 않은데 잘 보여야 당대표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글쎄, 절 싫어한대요. 내가 직접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저번에 쇄신운동 때 자기 이름이 거론되니까 심기가 상했던 모양입니다. 어쨌든 권고문이 미는 사람과 대결구도로 가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