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미국은 전두환 정권의 F15구매요청을 거절했다. 노태우 정권은 쌍발기인 F18을 차기전투기 우선협상 대상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기종은 단발기인 성능이 떨어지는 F16으로 바뀐다. 그후 12년. 미국은 이제 고물이 된 F15를 한국에 팔지 못해 안달이다.
3월12일 오전 10시. 참여연대는 구속되기 직전 조대령의 육성 양심선언 녹음테이프를 공개하면서 차기전투기사업(F-X)과 관련해 국방부 고위층의 미국 전투기(F-15K) 밀어주기 및 외압의혹을 본격 제기했다. 이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같은 날 오후에는 조대령의 후임인 공군평가단 김아무개 대령이 기밀누설 혐의로 기무사에 의해 연행되고 닷소사 에이전트의 김아무개 고문이 같은 혐의로 소환되는 등 공군과 닷소 에이전트에 대한 수사는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외압’인지 ‘뇌물’인지는 논쟁중이다. 조대령 변호인단과 기무사 간에는 이 문제를 두고 한동안 지루한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는 이 사건의 본질이 외압에 의한 불공정한 기종선정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기무사와 국방부는 불법로비와 관련된 뇌물사건으로 몰고 가며 공군과 유럽회사를 압박하고 있다. 특히 조대령이 외압의 당사자로 지목한 조영길 전 합참의장과 최동진 국방부 획득실장은 “조대령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국방부 대변인을 통해 주장했다. 기무사는 뇌물, 기밀누설 등 공군 관계자들의 개인적 약점을 찾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는 듯싶다. 하지만 조대령이 제기한 외압의혹을 수사한다는 얘기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첫날, 조대령의 비망록과 일기장, 개인 컴퓨터를 기무사가 전격 압수하면서 이 사건의 진실이 파묻힐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더욱이 뇌물 부분이 불거지면서 기무사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 형국이다. 이를 의식한 듯 조대령 변호인단은 조대령의 육성 녹음테이프에 담긴 내용 중 일부만 공개했다. 상황을 봐가며 추가 폭로하겠다는 방침이다.
수사와 관련해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기무사가 조대령 주변을 오랫동안 내사해왔다는 점이다. 상당 기간 조대령과 주변사람들의 통화를 감청한 기록이 수사의 근간이 됐다. F-X사업이 시작된 이래 공군의 핵심 실무자들에 대한 기관의 상시적 감시 및 내사가 꽤 오랫동안 진행돼 왔으리라는 심증을 굳혀주는 대목이다.
이런 의혹의 소용돌이 속에 3월12일 저녁, 필자가 출연한 한 방송사 시사토론 프로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공군 조종사들의 전화가 쇄도했다. 기무사 수사 탓에 전투기 기종결정이 왜곡될지 모른다는 공군 조종사들의 위기의식이 어느새 집단화, 세력화된 것이다. 이들은 군 내부에서 정상적인 절차로는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12년 전 한국형전투기사업(KFP사업) 당시와 유사하게 공군과 국방부의 정면 충돌이 예견되는 징후다.
국방부의 전투기 기종평가는 2단계로 진행되는데, 그 중 정량적 평가라고 할 수 있는 1단계 평가결과는 3월9일 발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기무사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사업일정은 연기됐다. 그에 따라 예정대로 4월에 기종이 결정될지도 불투명해졌다. 이렇게 사업관리에 파행이 빚어지자 이 문제는 미국과 프랑스간의 외교전쟁으로 비화됐다. 닷소사는 조대령 뇌물사건이 조작이며 음해라고 격렬히 반발했다. 프랑스는 3월11일 정부 특사 자격으로 장 베르나르 우부리외 국방장관 특별보좌관(차관보급)을 급파했다. 우부리외 특사는 김동신 국방부장관을 만나 공정한 기종선정을 부탁했다. 특히 그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내는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첩보를 입수한 한미연합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프랑스 특사가 김장관을 만난 직후 토마스 슈워츠 한미연합사령관도 김장관 집무실을 찾았다. 비슷한 시각 스미스 미7공군사령관(중장)은 “한국의 차기전투기 사업자 선정에 상호 운용성이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을 확신한다”고 언론을 향해 F-15K 도입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국방부를 압박하는 일에 주한미군 고위관계자가 총동원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초 F-15 생산공장이 있는 미국 미주리주의 거물 정치인인 크리스토퍼 본드 상원의원은 ‘아시아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만약 한국이 F-15를 구입하지 않는다면 매우 불행한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작년에 김대통령을 면담하면서 F-15 구매를 졸라댔던 본드 의원의 연이은 협박성 발언은 한편으로 지역구에서 그의 인기를 높여 재선의 가능성을 높여줄지는 모르나 우리 국민과 국방부에는 ‘압력의 문법’이다.
조대령의 양심선언 녹음테이프가 공개된 3월12일, 국내 한 일간지에는 프랑스 특사와 슈워츠 한미연합사령관이 전날 국방부를 다녀간 사진을 나란히 실었다. 한국 국방부가 미국과 프랑스가 벌이는 고강도 정치·외교전쟁의 한복판으로 걷잡을 수 없이 빨려 들어가는 상황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이렇듯 구매자가 판매자에게 휘둘리는 F-X사업의 희한한 풍경은 한국군에게 숙명처럼 피할 수 없는 ‘두 개의 전쟁’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첫째 전쟁은 공군을 중심으로 한 ‘자주국방’ 세력과 국방부를 중심으로 한 ‘연합방위’ 세력간의 전쟁이다. 단순히 조대령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정책결정자인 국방부 최고위층과 전투기 최종수요자인 공군의 세력충돌 양상이다. ‘미래 안보’로 전환하는 데 핵심이 될 F-X사업에 대한 이 두 세력의 상이한 해법은 미래 한국군의 진로와 국방정책의 방향을 둘러싸고 치열한 사상전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자주적인 기종결정을 통한 전략공군 육성으로 장차 자력안보의 기반을 다지는 데 충실해야 하는가. 아니면 미국과의 ‘동맹관리’에 치중해 20세기식의 대외의존적 안보개념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이것이 무기의 ‘세대교체’를 앞둔 한국군이 당면한 선택이다. 창군 이래 한국군 정신사의 두 축을 이뤄온 자주국방 사상과 연합방위 사상은 각각 라팔 전투기와 F-15K 전투기로 상징돼 있다.
둘째 전쟁은 21세기 세계 전투기 시장에서 치열한 패권쟁탈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 세력과 유럽 세력의 대격돌이다. 1970년 중반에 이르러 전투기 대량주문의 시대는 소멸됐다. 그후 20여 년의 공백기를 거쳐 전세계 2만6000대의 전투기 중 약 6000대가 교체될 시점에 이르렀다. 각종 군사연감과 항공산업 자료를 종합하면, 향후 5년간 약 2500대, 향후 10년간 6000대 규모의 전투기 대량주문 순환주기로 진입했음을 알 수 있다. 바야흐로 이 새로운 시장을 둘러싸고 국제 군산복합세력 간의 대회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 시작이 바로 한국 공군의 F-X사업으로서 21세기 시장쟁탈, 패권쟁탈의 서막을 열었다. 여기에 제3의 세력으로 러시아가 끼어들어 ‘2강1중’의 형국이다. 이들의 고공전에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20세기 초 제국의 식민전쟁에 비견되는 격렬한 분할전쟁의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두 개의 갈등이 십자형 충돌을 빚어내는 이 전쟁은 그 의미와는 별개로 ‘더러운 전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정권 말기 대형 국방스캔들로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는 가운데 조대령의 구속은 이 사업의 향배를 좌우할 중요한 변곡점을 형성하며 전국민적 관심사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작년에 각 기종을 평가하면서 국방부 산하기관인 국방품질관리소는 중요한 평가결과를 내놓았다. F-15K 도입 후 유지관리의 적정기간을 17∼20년으로 평가한 것이다. 전투기 수명을 30년으로 봤을 때 마지막 10년 동안엔 군수지원 대책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경우 한국 공군은 극단적인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바로 ‘동류전환’이라는 방식이다. 이는 전투기 부품을 구하기 위해 동일한 기종의 다른 전투기를 해체하는 것이다.
이 점을 감안하면 2010∼2015년 이후 착수될 것으로 예상되는 공군의 F-X 2차사업의 경우 F-15 외에 다른 기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차세대 전투기로 2개 이상의 기종을 보유하면 공군의 전력체계는 그야말로 비효율적인 세계 전투기 전시장, 전투기 백화점이 되고 만다. 전투기로는 F-4, F-5, F-16, F-15 외에도 T-50 양산기가 있다. 그런데 거기에 또다른 기종의 차세대 전투기를 추가도입해야 하는 것이다. 전세계에서 이렇게 복잡한 전력구조를 가진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한국이 유일하다. 일본의 경우만 해도 이제 F-15 도태일정을 앞당기며 다목적 국산전투기 F-2의 생산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짜임새 있는 전력운용으로 효율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도모하는 것이다. 이와 비교할 때 한국의 전투기사업정책은 한마디로 미친 짓이다.
작년 3월 면전에서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F-15K 구매권유를 받은 김대중 대통령은 지금껏 전투기 도입에 대해 뚜렷한 방향을 제시한 바 없다. 한때 김대중 대통령은 F-15 도입문제를 미국 압박을 위한 지렛대로 삼으려 했다. 이것으로 북미관계, 한미관계의 산적한 문제들을 해소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기종결정을 미루고 질질 끌어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사업이 계속 연기되면서 F-15K의 불합리한 점이 국민들 앞에 낱낱이 공개돼 버렸다. 이제는 F-15K를 선택하려 해도 국민여론 때문에 쉽지 않다. F-15K 구매는 작년 10∼12월이 마지막 기회였다. 이제 이 기종을 도입한다고 해서 미국이 햇볕정책을 지지할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지난 1월29일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으로 이미 미국의 정책은 루비콘강을 건넜다.
지금까지 필자는 미국제 F-15K 도입이 10년에 걸쳐 진행돼온 한미 군사무역의 파행성과 깊이 관련된 것임을 증거를 들어 설명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미국제가 아니라면 유럽제, 특히 그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는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는 문제가 없는가 하는 의문이 남아 있다.
우선 프랑스 닷소사의 라팔 전투기는 최신 개념으로 설계된 전투기임에도 마케팅 면에서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이와 관련해 영국에서 발간되는 ‘INTRAVIA’ 2001년 10월호, ‘아시안 디펜스 저널’ 2001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보자.
라팔 전투기의 중대결함 보도
관련기사에 따르면 라팔은 첫째, 생산물량이 적다. 라팔의 총 생산대수는 300대 미만이다. 그로 인해 전투기 생산의 경제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추후 성능개량에 따른 재원을 마련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둘째, 그런 이유로 아직도 한국 외에 유력한 구매희망국가를 찾지 못했다. 셋째, 과거 고속열차 테제베(TGV)를 한국에 판매할 때 부도덕한 로비를 자행했다. 또한 미테랑 대통령은 TGV를 사주면 구한말 프랑스가 약탈해간 고문서를 돌려주기로 약속하고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테제베 판매 당시 협상팀으로 일했던 사람들이 닷소사의 전투기 마케팅에 뛰어들었다. 이러한 정치적 이유 외에도 라팔과 관련해선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많다.
프랑스에는 라팔 이후 더 이상의 전투기 개발계획이 없어 향후 항공 발전 잠재력에도 의문이 가는 실정이다. 필자가 받은 제보에 의하면 프랑스에서 발간되는 ‘Air & Cosmos’사는 작년 8월에 라팔 전투기의 중대한 결함을 보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 직후 이 잡지의 편집장은 라팔 전투기 생산업체인 닷소사의 경영진으로부터 심한 위협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된 정보는 프랑스 당국에 의해 철저히 차단돼 있다고 한다.
그러면 유럽컨소시엄의 유로파이터는 어떠한가. 이 기종은 아직도 공대공기는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다. 지난해 열린 서울 에어쇼에서도 모형만 전시됐다. 따라서 평가하는 데 어려움이 많으며 검증도 곤란하다. 다만 맨 나중에 개발된 전투기이기 때문에 개념은 가장 앞선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도입은 시기상조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의 수호이다. 러시아 전투기의 장점은 일단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F-15K 전투기 가격의 70%에도 못미치며 기술이전 조건도 양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러시아 무기에 대한 우리 공군의 깊은 불신이다. 이 전투기가 ROC를 충족한 것도 조건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수호이에 접근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아무래도 미국의 집요한 견제와 방해일 것이다.
모든 의혹이 드러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국민이 F-X사업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기종 선정과정을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할 때다.
마지막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을 모색해보자. 이제 전투기 도입계획은 국방부의 그릇된 방향 설정으로 그 타당성을 의심받을 지경에 이르렀다. 말로는 차세대 전투기라고 표현하지만 실상은 구세대 전투기 도입이다. 앞으로 2∼3년만 기다리면 미국의 JSF를 비롯한 더 많은 종류의 차세대 기종을 선택할 기회가 온다.
차기전투기에 대한 국방부 방침은 최소물량을 최단기간 내에 도입한다는 것이다. 40대의 비행기를 4년 동안 준비해서 4년에 걸쳐 들여옴으로써 2010년까지 인수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처음 이 계획을 수립할 때는 국가경제가 호황을 이어갈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을 근거로 환율을 예상했다. 그러나 계획수립 후 2년여가 경과하면서 환율과 물가상승으로 인한 사업비 증가분만 해도 1조원에 이르러 책정된 예산으로는 추진이 불가능한 상태다.
차기전투기사업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도 그 자체로 부실사업이다.
첫째, 기술도입에 필요한 충분한 준비기간과 마스터플랜, 전략목표가 존재하지 않는다. 기술과 경험을 축적한다는 슬로건만 있지 구체적인 계획이 미흡하다. 국가 항공산업 육성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지렛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공허하기만 하다. 국가 항공산업과 밀접히 연계된 제대로 된 전투기도입 사업을 성안하지 않고 문제 많은 전투기를 도입하면 엄청난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다.
둘째, 사업환경에 대한 잘못된 예측을 근거로 작성된 계획이기 때문에 앞으로 사업비가 얼마나 추가될지 알 길이 없다. 당연히 경부고속철도사업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전망이다. 여기서 비용문제는 꼭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 F-15전투기를 도입한다면 전투기 구입비용으로 4조2000억원이 든다. 또 도입 후 활주로 보강, 격납고 건설, 30년간 연료비, 부대 창설비, 교육비, 정비비로 지출될 예산은 도입비의 최소 2배, 최대 3배다. 결국 30년간 F-15에 쏟을 총예산은 적게는 8조4000억원, 많게는 12조6000억원이 된다. 첨단무기는 유지비가 많이 든다. 따라서 앞으로 국방예산의 팽창이 불가피하다.
지난 2월14일, 국방부는 향후 5년간 35조원을 무기도입에 투자하는 중기국방계획을 발표했다. 35조원의 무기시장은 국제 군산복합세력에게는 ‘극동의 진주’라 불릴 만큼 매력적인 시장이다. 이렇게 값비싼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달게 되는 한국군은 과연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라는 선물을 국민에게 선사할 수 있을까. 과연 투입된 만큼 국가안보라는 공공재를 산출할 수 있을까. 과연 한국군은 프랑스나 영국군에 비견되는 현대화된 강군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필자의 대답은 ‘아니오’다.
이런 무기들은 근육과 뼈의 힘을 증강시키는 효과는 있다. 그러나 여전히 눈과 귀가 어둡고 신경과 혈관이 약한 한국군은 아무리 좋은 무기를 가져도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 초현대식 무기체계는 풍부한 정보·과학의 인프라가 구축되고 자동화된 전쟁 시스템에서만 효과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초현대식 무기를 들여와도 재래식으로 운용하게 된다. 한국군은 지금 이러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하루속히 국방경영의 패러다임을 ‘관리형 국방’ ‘기본에 충실한 국방’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다음 정부로 넘겨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업연기에 따른 부작용이 있다 하더라도 두고두고 애물단지가 될 잘못된 기종 선택에 따른 부작용보다는 나을 것이다. 정권 말기에 정부의 신뢰도와 관리능력이 문제가 되고 있는 지금은 사업을 둘러싼 국론분열과 혼란을 감당하기 어렵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미국에 대해서는 보다 자주적으로 당당하게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고 정책의 중심을 잘 지키면서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국방부와 군을 국민은 원한다. 이런 자세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제 우리 군도 ‘세대교체’를 해야 하지 않을까.
F-15K로 가기 위한 외압의 당사자로 지목되는 국방부 최고위층과 기종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고위장성, 평가기관의 수장은 12년 전 한국형전투기사업 시행 당시 도입기종을 애초 우선협상 대상으로 선정됐던 F18에서 단발기 F16으로 바꾸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통적으로 한국 군부의 주류를 형성해온 친미 군맥이 지금도 국방부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출신인 김동신 국방부장관은 미 공화당에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9년 육군참모총장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석연치 않은 이유로 경질된 김동신씨는 그후 민주당 안보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새로 출범한 부시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과의 교분을 토대로 김대중 정부의 대미안보정책을 도왔다.
동교동계의 수장인 권노갑씨는 사석에서 김동신씨의 국방부장관 발탁은 부시 정부와의 외교관계 복원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장관은 1996년 10월까지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F-X사업의 소요창출에 영향을 끼치는 새로운 방위정책의 골격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연구원(KIDA)이 차세대 전투기사업에 관한 연구에 착수한 것이 이 무렵이다.
김동신 장관을 측근에서 보좌하며 김대중 대통령과 이정빈 외교통상부장관 방미시 수행했던 A 장군은 국방부 정책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손꼽히는 미국통이다. 그는 F-18에서 F-16으로 기종이 바뀔 당시 국방연구원에 재직하고 있었다. 올 3월 국방연구원장에 임명된 B씨와 함께 1991년 기종 변경 당시 국방연구원 무기체계센터에서 기종 평가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문민정부가 율곡비리에 손을 댄 1993년 초, F-16 도입과정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면서 기종변경 당시의 국방연구원 무기체계센터 요원들은 기무사로부터 압수수색과 계좌추적 등 강도 높은 내사를 받았다.
조사의 초점은 F-16과 관련된 금품수수였다. A 장군과 B 국방연구원장은 주요 조사대상자였다. 당시 드러난 혐의를 이 글에서는 밝히지 않기로 한다. 훗날 역사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하자. 이런 점에서 B씨가 최근 국방연구원장에 임명된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율곡비리사건에 연루돼 문민정부 출범 직후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1996년 사면복권된 김종휘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그는 1991년 F-16으로 기종이 변경되기 전에 국방연구원의 기종평가에 관여하기 위해 당시 청와대 국방비서관 C 장군을 국방연구원의 기종평가에 개입시켰다. C 장군은 현 정부에서도 계속 합참의 요직에 근무하다가 지난해 군복을 벗고 미국의 랜드연구소로 건너가 미국의 대(對)한반도 안보정책에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관계자 증언에 의하면 C 장군은 당시 F-16 주계약업체인 삼성항공 관계자와 합동캠프를 국방연구원 외곽에 설치하고 상시적인 지휘·감독을 했다고 한다.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 중 하나는 이상훈 재향군인회장이다. 1993년 F-16 기종변경 관련혐의로 구속된 이회장은 당시 서울구치소에서 진행된 국회 국방위 주관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바 있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는 재향군인회장을 역임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는 작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 동행한 군 3인방 중 한 명이다. 이 때문에 친 DJ인맥으로 분류된다.
최근 조대령을 구속한 기무사령부의 D 사령관은 1991년 기종변경 당시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무관 보좌관으로 근무하면서 역시 대미(對美)라인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그는 1980년대 말부터 1991년까지 기종평가를 위해 미국에 출장간 공군장교와 국방연구원 담당자들이 주로 접촉한 대미 외교통로다. 기무사 참모장을 역임한 D 장군은 외부 인사가 기무사령관으로 부임하던 인사관행을 깬 최초의 기무 출신 사령관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렇게 보면 1991년 F-16으로의 기종변경 당시 국내외 관계 요직에 포진했던 인사들의 대약진이 지금 국방부 세력판도의 특징이다. 12년 전 KFP사업 당시 F-16 기종변경에 한몫한 사람들이 국방부를 ‘재점령’한 셈이다. 국방부가 이번 전투기사업에서 ‘미국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앞으로 있을 기종결정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현재 국방부 준장급 이상 장군 직위자의 93%가 육군 소속이며 해·공군 직위자가 거의 없다는 현실도 의사결정의 균형을 파괴하는 요인이다. 국방부가 아닌 ‘육방부’라는 비난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 KFP사업 당시 공군이 소외된 아픈 경험에 비춰 기종결정의 권한을 또다시 육군이 독식하려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1993년 율곡비리 특감과 국회 국정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은 F-16 로비 비자금의 실체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1998년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박상규 의원은 국방연구원에 은닉된 괴자금의 실체를 폭로하면서 이 자금이 다름 아닌 KFP사업 당시 조성된 비자금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국방부 검찰부에서 수사에 착수했는데 자금 관리자는 권영해 전국방장관이고, 자금규모는 50억원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후속 수사결과는 발표되지 않았다.
F-16 주도세력이 재점령한 국방부는 F-X사업으로 F-18 제작회사 맥도널 더글라스와 12년 만에 재회했다. 1989년 노태우 정부는 KFP사업 기종으로 맥도널 더글라스사의 F-18을 선택했다. 그런데 ‘석연치 않게’ 가격을 부풀린 이 회사의 횡포로 2년 후인 1991년 3월, 지금은 록히드 마틴사에 합병된 제너럴 다이내믹스사의 F-16으로 기종이 변경된다. 이렇게 52억달러의 이권을 날려버린 맥도널 더글라스사는 클린턴 정부 초기 보잉사에 합병된다. 이때 맥도널 더글라스사의 전투기 담당자들이 보잉사의 전투기 담당 이사들로 고스란히 수평이동했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 F-15K 전투기를 앞세워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이들은 1989년 한국으로부터 약속받은 ‘이권’에 대해 채권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여기에서 F-X사업의 최대 의혹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스라엘, 캐나다, 영국, 싱가포르,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미국의 동맹국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며 21세기 전투기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록히드 마틴사의 합동전투기사업(JSF: Joint Strike Fighter)에서 한국이 이상할 정도로 소외돼 있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다. JSF 전투기는 값도 싸고 스텔스 기술 등 첨단 개념이 적용돼 있다. 어째서 한국이 JSF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보잉사의 안마당이 됐는지, 록히드 마틴사가 들어올 수 없는 어떤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한국의 F-X사업이 차세대 기종이 아닌 구세대 기종인 F-15K쪽으로 기울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현재 록히드 마틴사의 전투기 담당 이사들은 과거 한국에 F-16을 판매함으로써 지금의 보잉사 전투기 담당 이사들을 몹시 화나게 한 장본인들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한국 시장을 보잉사에 양보해야 한다는 채무감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시장분할에 대한 일종의 신디케이트가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12년 전 시행된 KFP사업의 후속편으로 전개되고 있는 공군의 F-X사업에서 ‘어제의 용사’들은 또다시 뭉쳤다. 전투기 도입을 둘러싼 나라 안팎의 동맹관계는 한층 강화됐다. 1990년 9월 정용후 공군참모총장은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에 의해 국군서울지구병원에 25일 동안 감금돼 조사를 받은 후 강제전역당했다. 인사비리가 빌미였다. 정씨는 국회청문회에 나와 자신의 강제전역이 F-18 선호와 관련된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와 비슷하게 이번에도 조종사들에 대한 철저한 내사로 또다른 ‘희생자’를 만들어내는 건 아닌지, 공군은 불안해하고 있다. 조대령 구속사건은 그 신호탄인지 모른다. 이 사건은 과거 KFP사업으로 공군 조종사들의 가슴 깊숙이 자리잡은 피해의식을 자극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전두환 정권은 당시 F-X로 불리던 차기전투기도입을 추진하며 세 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첫째 소수물량의 F-15 전투기를 도입하는 것이다. 전두환 정권은 당시 일본, 이스라엘 등 미국의 동맹국들이 대부분 F-15를 갖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그 대열에 합류하기를 강력히 희망했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미국이 한마디로 거절하는 바람에 실현되지 못했다. 당시 미국은 일본이 면허생산한 F-15J가 원조인 F-15보다 기능이 좋다는 사실에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었다.
동맹국의 전투기 기술이 종주국을 앞선다는 것은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일본의 과학기술은 이미 세계를 제패하고 있었으며 미국 보수층 사이에서는 ‘일본 위협론’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 여파로 한국에 차세대 전투기를 판매한다는 것은 극동에서 또 하나의 일본(one another Japan)을 만드는 것이라는 논리가 탄생했다. 그래서 한국엔 F-15 도입이 허용되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엔 F-16이 인기였다. 박대통령은 미국이 동맹국 중 유독 한국에만 F-16을 팔지 않는 것에 화가 나 집무실에서 재떨이를 집어던졌다. 그 사건의 연장선에서 F-15 판매 불허라는 벽에 부닥친 전두환 정권은 황급히 사업명칭을 F-X에서 KFP사업으로 변경한다. F-X라는 명칭이 미 보수층을 자극해 전투기도입사업에 불리한 환경을 조성한다는 판단에서였다.
뒤이어 출범한 노태우 정부는 총 52억달러가 소요되는 한국형 전투기사업의 우선협상 대상으로 F-18을 발표했다. 이것이 바로 한국형 전투기사업의 둘째 시나리오다. 이것은 일견 올바른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 노태우 정부는 두고두고 미국에 발목을 잡히는 중대한 실수를 범한다. 1988년의 국방부 훈령에는 해외에서 무기를 도입할 때 반드시 대응구매, 기술이전 등의 혜택이 있는 절충교역(off-set)을 하고 그 규모는 총 무기도입비의 50% 이상으로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러나 88올림픽을 앞두고 대미 무역흑자가 지나쳐 관리가 안된다는 주장을 펴던 당시 상공부는 국방부에 공문을 보내 미국과 무기거래시 절충교역 규모를 하향 조정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국방부는 절충교역 규모를 무기도입비의 30% 이상으로 하향조정하는 훈령을 새로 만들었다. 절충교역은 부품 역수출은 물론 핵심기술 이전 등의 혜택을 받는 제도로서 개발도상국에서는 항공산업 육성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다.
이렇게 미국에 유리하게 정책을 조정했지만, 놀랍게도 이 조치와 무역흑자 관리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이미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해외무기도입은 철저한 비밀이었다. 해외무기 수출입현황은 무역수지 통계에서도 누락됐다. 이 비밀스런 절차는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그대로 유지돼 오직 권력 핵심부와 관세청 전산실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어쨌든 유독 미국에 대해서만 절충교역 규모를 30%로 낮추니까 유럽 국가들이 항의해왔다. 이 압력에 밀려 국방부는 1989년 또다시 훈령을 개정, 모든 국가와 무기거래시 절충교역 규모를 30%로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한다.
같은 시기 미국에서도 중요한 일이 벌어졌다. F-16 공급업체인 제너럴 다이내믹스사와 F-18 공급업체인 맥도널 더글러스사 간에 한국 전투기사업 수주를 위한 경쟁이 격화되자 의회보수주의자들이 한국에 과도한 첨단기술을 유출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하고 이들의 압력에 밀려 미 국방부가 이 경쟁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펜타곤은 원래 자국업체간의 경쟁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고수해왔음에도 유독 한국의 전투기사업에서만 두 개 공급업체의 경쟁을 제한하고 ‘상호 담합’시켜 절충교역 30%의 조건을 제시한다. 결국 한국의 전투기사업은 펜타곤이 직접 개입해 기술이전을 제한하게 된 최초이자 마지막 사례가 됐다. 같은 시기 미국은 그리스, 캐나다 등에 F-16을 판매하면서 절충교역 최하 70%, 최대 120%의 조건으로 넘겨주었다.
펜타곤의 간섭 및 한국 상공부와 국방부 합작에 의한 어이없는 정책변경은 시기적으로 기가 막히게 일치한다. 당시 정해진 절충교역 비율은 국방부가 F-X사업을 추진하면서 처음 제시한 절충교역 비율과 일치한다. 국방부는 재작년 12월 F-X사업관리 지침을 발표하면서 차기전투기 40대 도입은 절충교역 30% 수준으로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핵심기술을 이전해주겠다는 유럽업체의 제안을 고려하지 않고 기술이전에 인색한 미국측, 특히 보잉사를 고려한 사업계획이다. 이것이 바로 F-15K로 가려 했다는 첫째 ‘혐의’다. 이 지침은 이듬해인 2001년 4월 유럽업체들의 기술이전 경쟁이 격화되면서 70%로 상향조정된다. 국방부 의지가 아니라 시장논리에 의해 바뀐 것이다.
그러면 미국은 왜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절충교역 규모를 줄이는 등의 방법으로 기술이전에 인색했는가. 왜 한국의 공군력 증강에 그처럼 예민했는가. 여기에서 바로 한미 군사동맹의 ‘빛’과 ‘그림자’가 드러난다. 한미 군사공조를 통한 대북 전쟁억제력 확보라는 ‘빛’의 이면에 자주국방의 기반을 제한하고 한국군의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유는 크리스토퍼 본드 의원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아시아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한국이 비록 경제적, 정치적으로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은 미국의 주니어 파트너다”고 말했다. 미국이 구형 전투기를 유독 한국에만 판매하려는 이유가 이런 논리로 합리화돼 있다. 이는 과거 KFP사업에서도 나타난 바 있는 미국 주류 보수층의 사고방식이다. 이런 논리가 한국의 국방부에는 ‘뱁새가 황새를 따라갈 수 있냐’는 패배의식으로 연결돼 연년세세 의존과 종속이라는 악순환으로 나타나고 있다.
둘째 이유는 미국의 대 한반도 안보정책에 중심기조로 자리잡았던 ‘역할분담론’이다. 이 논리에 의해 한국은 오로지 육군, 즉 지상전력 증강에 국방재원을 집중했다. 반면 자주국방력 확보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 해·공군의 증강은 미국의 견제를 받았다. 1991년 한미군사위원회(MCM)에서 게리 럭 한미연합 사령관이 한국이 독일로부터 잠수함을 도입하는 데 반대의견을 피력한 배경엔 이 같은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1991년 한국국방연구원과 미국의 랜드연구소가 함께 펴낸 ‘한미관계 발전방향 공동연구보고서’에 ‘연합방위력증강에서 한국의 비교우위는 지상군, 미국의 비교우위는 해·공군에 있다’(제6항)는 합의문이 포함된 것도 ‘역할분담론’에 따른 것이다. 이것은 3년 뒤인 1994년 미 공화당 카쉭 의원의 주도로 미 의회에서 통과된 ‘카쉭 수정안’으로 연결된다. 미 의회는 ‘카쉭 수정안’에 ‘한국은 지상방위에 투자할 재원을 전용해 해·공군 전력증강에 투자하고 있다. 미 국방장관은 한국군 전력증강 실태를 조사해 의회에 보고하라’는 후안무치한 문구를 집어넣었다.
그러나 최근 F-15K를 한국에 판매하려는 미국은 이 ‘역할분담론’을 슬그머니 거둬들였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논리가 F-15K 한국판매에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아파치 롱보우 헬기, 패트리어트 지대공 미사일, 이지스급 구축함 등 초현대식 무기가 국방계획에 반영되기 시작한 1996년경부터 이 논리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온갖 제한과 차별 속에 들여온 F-16은 F-15나 F-18과 달리 단발기였다. F-16 도입이야말로 국방연구원이 가장 못마땅하게 여긴 셋째 시나리오였다. 게다가 미국은 이 전투기를 한국에 판매하면서 핵무기 탑재가 불가능하고 작전반경도 제한되도록 많은 부분을 뜯어고쳤다. 기능의 변경은 값비싼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이 전투기의 전략적 효과를 미미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F-16에 내장형의 전자전장비(ASPJ)를 개발해 장착하겠다던 미 공군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F-16이 국내 조립기술로 양산되는 단계에 이르러서도 약속한 장치가 개발되지 않아 장비가 들어올 공간을 비워놓고 생산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졌다. 이 때문에 처음 생산된 F-16은 눈먼 불구자였다는 비난도 있다. 미국의 엄연한 계약위반임에도 한국은 개발비 투자금 700만달러마저 돌려받지 못하고 고스란히 바가지를 쓴 것이다. 이는 개발중인 품목에 대해서는 구매할 수 없다는 국방부 획득관리규정을 위반한 불법계약이었다.
지금 이 F-16의 전자전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일체 비밀인 탓에 알 수 없다. 이에 대한 공군의 불만을 무마하고자 미국은 F-16에 첨단 공대공미사일 ‘암람(AMRAAM)’을 제공한다. 일본의 F-15J도 장착하지 못한 첨단 미사일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그러나 1996년 일본 방위청은 한국 공군의 ‘암람’ 미사일 장착 첩보를 입수하고 긴급히 예산을 전용해 F-15J에도 ‘암람’을 장착할 수 있도록 계획을 변경했다. 이 첩보는 당시 일본의 첨단 위성이 한국 공군을 촬영해 얻은 것이다(그러나 일본은 아직 암람을 도입하지는 못했다).
그뿐인가. F-16의 엔진은 P&W사의 제품이다. F-16이 공군에 인도되고 난 이후 1998년부터 지금까지 네 대의 F-16이 추락했다. 추락원인은 모두 엔진 결함. 처음 사고 원인이 엔진 노즐의 결함으로 밝혀져 국방부가 P&W사에 거액의 배상금을 제기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그러나 국방부는 아무런 배상도 받지 못했다. 공급업체의 귀책사유가 명백한 이 분쟁에서 국방부가 요구한 배상은 무시됐으며 다만 P&W사가 ‘법적 책임’이 아닌 ‘도의적 책임’을 지는 선에서 해결됐다. 즉 추락한 비행기 값은 지불하지 않고 엔진 값만 지불한 것이다.
이로 인해 국방부는 4대 전투기 값과 비행훈련 손실 등을 고려할 때 최소 2000억원, 최대 3000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그러면 4개국(미국, 프랑스, 유럽컨소시엄, 러시아)이 참여해 수주경쟁을 하는 F-X사업에서 국방부는 과연 공정한가. 한마디로, 이 사업은 태생적으로 공정한 게임이 될 수 없다. 1990년대 초 공군은 차기전투기에 대한 공군의 작전요구성능(ROC)을 결정하면서 미국제 F-15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 기준에 맞춰 F-15K, 라팔, 유로파이터, SU-35 4개 후보기종의 성능을 평가했다. 이 ROC에 대해서는 공군 내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1980년대부터 사업을 주관했던 금기현 장군은 이러한 문제점을 언론을 통해 밝힌 바 있다. 이후 ROC는 하향평준화, 즉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다운그레이드됨으로써 2000년 7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된 공군의 해외 시험평가에서 4개 기종 모두 ROC를 충족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마치 수능시험에 쉬운 문제를 출제해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의 변별력을 없애버린 것과 같다. 반 전체 학생들의 시험성적을 1등으로 만드는 무모한 짓이다. 하이테크 기술을 적용한 각종 전자식 레이더, 스텔스 기술, 음성인식 시스템을 갖춘 유럽제 전투기가 높은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장치가 실종된 것이다. 2003년부터 60대의 차기 전투기를 들여올 예정인 싱가포르의 경우 최신 전자전 개념을 적용한 ROC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F-15의 경우 싱가포르 공군에는 명함도 내밀 형편이 못된다. 이를 두고 공군 일각에서는 어째서 우리 공군의 수준이 싱가포르만 못하냐는 탄식이 나온다.
공군은 ROC 이외의 ‘선택 조건’을 기종결정의 중요한 요인으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공군과 공급업체가 1년 반 동안 벌인 힘겨운 줄다리기는 이 ‘선택 조건’에 대한 협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모든 언론이 보도한 바와 같이 국방부는 작년말 각 평가기관에 하달한 새로운 지침을 통해 이 ‘선택 조건’에 의한 기종간 평가점수 차이가 최소화되도록 했다. 즉 ‘선택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는 평가항목에 0점이 아닌 60점을 주도록 조치한 것이다(물론 이것은 공청회를 거쳐 결정됨으로 필요한 요식 절차는 갖추었다). 그 결과 낡은 전투기라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 셈이 돼 ‘반집 승부’의 경쟁이 되고 말았다.
차기전투기 기종은 2단계 방식을 거쳐 결정된다. 1단계는 전투기의 ▲수명주기비용(35.33%) ▲임무수행능력(34.55%) ▲군 운용적합성(18.13%) ▲기술이전·계약조건(11.99%)에 대한 배점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만일 1단계에서 최고 기종과 그 다음 기종간 우열의 차이가 3%에 미달할 경우 기종을 결정하지 않고 2단계 평가로 넘어간다.
2단계는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한미연합작전과 군사적 협력문제) ▲국제관계에 미치는 영향(한반도 평화유지) ▲해외시장개척에 미치는 영향(수출·수입의 균형) 등의 항목으로 평가하게 된다. 문제는 2단계 평가에서는 ‘정책적’으로만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한미관계를 고려해 판단하겠다는 점에서 F-15K가 절대 유리하다.
2단계 평가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기종간 우열의 차이가 3%를 넘어서는 곤란하다. 앞서 설명한 국방부의 배점 지침이 2단계 평가에서 기종간 우열의 차이를 3% 이내로 조정하는 장치로 인식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것은 마치 세계 바둑대회 결승전에서 이창호와 마샤오춘이 반집 승부를 다투고 있는데 갑자기 주최측이 나서서 바둑 승부가 3집 차 이상 나지 않으면 주최측이 우승자를 결정하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승부의 우열이 현저하게 드러나도록 모든 평가 항목에 엄격한 평가배점을 제시해야 할 국방부가 반대로 더 모호한 반집승부를 유도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중요한 것은 2단계 평가방식의 기본틀 자체가 아니라 이 평가방식의 내용과 그 내용을 결정하는 과정의 문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실증적으로 접근해보자. 국방부가 말한 2단계 평가방법 중 1단계는 기여도에 의한 가중치 설정의 정량분석기법이라고 한다(AHP통계처리기법이라고도 한다). 즉 기종결정에서 중요한 항목에 대해 각각의 기여도와 가중치를 설정하고 각 기종에 배점한 다음 종합적으로 통계처리하는 방식이다. 국방부는 지난 1월 이 방식을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은 표현을 썼다(발표문 그대로 쓴다).
“국방연구원은 지난 11월30일 산학연군 전문가 13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공청회를 개최하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게 됐으며, 12월에는 학계 및 연구소에 종사하는 원로 인사들을 개별 방문해 자문을 구했다. 이와 병행해 국방부, 합참, 공군, 조달본부, 국과연(국방과학연구소), 국방연(국방연구원) 등에 근무하는 군 관련 인사뿐만 아니라 업계 및 외부전문가 2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평가요소를 결정하고, 평가요소별 가중치를 부여해 F-X 기종결정 평가방법을 확정했으며, 금일 언론 및 F-X사업 참여업체에게 그 결과를 공개한다.”
이 문맥은 얼핏 군 관련 인사뿐만 아니라 외부 전문가 210명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그 실상은 이러하다. 이 210명은 1단계 평가방식 결정에 참여한 총 인원수다. 국방부는 이들을 상대로 세 차례 설문조사를 벌였다. 여기에 참가한 인적구성을 보면 1차 설문조사(4개의 주요 평가요소에 대한 설문)에서 외부전문가 13명, 국방부 21명, 합참 12명, 공군본부 42명, 조달본부 5명, 국방과학연구소 5명, 국방품질관리소 3명, 국방연구원 29명, 산업계 3명 총 133명이다. 이중에서 국방부의 월급을 받지 않는 사람은 외부전문가 13명과 산업계 3명, 즉 133명중 16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2차 설문조사(군 운용적합성에 대한 질문) 대상자는 국방부 21명, 공군본부 20명, 공군군수사령부 20명, 국방연구원 9명으로 모두 70명이었다. 외부 전문가는 한 사람도 없다. 3차 설문조사(기술이전/계약조건에 관한 설문)는 국방부 21명, 조달본부 20명, 국방과학연구소 20명, 국방품질관리소 3명, 국방연구원 9명 등 총 73명에 대해 실시했다. 역시 외부전문가는 없다.
애초 국방부가 공청회까지 개최한 이유는 광범위하게 학계, 외부 연구소 등을 참여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큰 공청회에 어째서 참여인원이 130명밖에 안된단 말인가. 이것은 공청회라기보다는 소모임에 불과하다. 결국 국방부의 ‘집안잔치’에 불과한 것이다.
이 평가방식이 발표되자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던 것은 이번 F-X사업을 항공산업 육성의 지렛대로 삼겠다느니, 기술축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독자적 항공기 생산의 토대를 닦겠다느니 하던 그동안의 공언이 어디로 사라졌느냐다. 4개 항목 중 기술이전/계약조건에 관한 가중치는 11.99%에 불과했다. 4개 항목 중 가장 낮은 점수를 부여한 것이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앞서 말한 설문참여 인적구성과 관련돼 있다. 기술이전에 가장 흥미를 갖는 집단은 국방과학연구소와 산업계다. 이 두 집단에서 설문대상자로 선정된 사람은 23명밖에 안된다. 전체 인원의 10%도 안되는 것이다. 이는 기술이전에 유리한 유럽제 전투기의 비교우위를 없애고 F-15K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세부항목으로 들어가면 그 의혹에 대한 심증은 확증으로 바뀐다. 유럽국가들에게 명백히 유리한 기술이전, 특히 핵심기술 이전문제가 완전히 밖으로 밀려나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1단계 평가항목 중 기술이전/계약조건이 11.99%밖에 안 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1.99%를 구성하는 세부항목을 보면 핵심기술획득 5.51%, 항공우주산업지원(작업량) 1.97%, 옵셋계약 1.97%, 주계약조건 2.54%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이전해주는 국가라도 5.51%의 가중치 내에서 점수를 얻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일부 언론의 보도로 드러났듯 기술이전을 전혀 안 해주겠다는 공급업체에 대해 0점이 아니라 60점으로 처리한다는 배점기준이 그것이다. 이 40점의 차이는 가중치에 0.4를 곱한 숫자만큼의 변별력을 가진다는 뜻이다. 핵심기술이전에 완전히 등을 돌려 기술이전을 전혀 안해주는 업체와 기술이전을 100% 해주겠다는 업체의 최대 점수 차이는 2.20%(5.51%×0.4)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기술이전을 해주는 업체와 안해주는 업체가 전체 평가점수에서 2.20%의 변별력밖에 갖지 않는 것이다. 1년 반 동안 기술이전을 외쳐온 대통령과 국방부의 공언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아울러 파격적인 기술이전을 제시한 유럽업체의 비교우위는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실로 F-15K를 고려한 교묘한 숫자놀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뿐인가. 국방부는 작년 4월 해외업체와의 신 협상지침에서 절충교역 규모를 30%에서 70%로 상향조정하고 국내업체의 수주물량 부분을 협상 우선순위 D등급에서 A등급으로 상향조정했다. 즉 전투기를 판매하면서 반대급부로 국내업체를 먹여 살리는 업체에 높은 점수를 주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앞의 계산법에 의하면 이에 대한 변별력은 1.97%×0.4〓0.78%, 즉 1%도 안된다.
기술이전 2.20%, 국내업체 물량 0.78%를 합친 2.98%는 어느 정도 변별력을 갖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라팔이 기술이전을 100% 해준다면, 보잉사는 70% 정도 해준다. 국내 물량 부분에서도 비슷한 차이가 난다. 그러면 변별력을 다시 계산해야 하는데, 2.98%×0.3(예상되는 기술이전과 국내물량제공 차이)〓0.89%다. 즉 절충교역에 의한 기술이전과 국내업체 물량제공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변수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
이것은 명백히 하나의 흐름을 지향하고 있다. 지금껏 ROC를 충족시키는 4개 기종에 대한 공군의 시험평가와 각종 옵션성능에 대한 협상, 조달본부의 계약협상, 업체의 절충교역 협상 전부를 무력화하고 기종결정에 대한 권한을 국방부가 다 가져가 버리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조주형 대령의 ‘양심선언’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핵심기술이전에 대한 협상을 진척시키지 않도록 강요했다는 국방부 관계자의 언행은 바로 이러한 불합리한 평가방법이나 설문조사와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3월12일 참여연대가 공개한 조대령의 육성 녹음테이프에 따르면 핵심기술이전 항목에 대한 가중치가 5% 안팎으로 제한된 것은 국방부 관련부서에 의한 ‘외압’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면 기술이전, 물량제공 외 항목에서 드러나는 차이점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비밀은 수명주기비용(35.33%)에 숨어 있다. 수명주기비용이 왜 문제냐 하면 비교적 조작하기가 쉬운 항목이기 때문이다. 국방연구원은 F-15K의 수명주기비용을 계산하면서 전적으로 보잉사 자료에 의존했다. 무기도입 때마다 나타나는 고질병이지만, 미국이 제대로 된 비용정보와 가격정보를 주었을 리 없다. 유럽기종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구세대 전투기에 비해 신기종은 획득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은 반면 유지비용이 적다. 따라서 수명유지비용 조작은 주로 F-15K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진다. 게다가 업체가 제시한 자료의 오차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사후정산 원가관리제도’이기 때문에 나중에 이 부분의 부정확성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국방부가 빠져나갈 구멍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1단계 평가를 마치고 나면 구식 전투기와 최신형 전투기간의 변별력이 거의 없어져 버린다. 이 상태에서 2단계, 즉 정책적 고려단계로 넘어가는데 이 2단계 과정에서 국방부는 또다시 도저히 해서는 안되는 일을 저질렀다. 2단계 평가항목인 국가안보(연합작전, 군사적 협력), 국제관계(한반도 평화유지), 해외시장 개척(수출·수입의 균형)에 대해 각각 얼마만큼의 가중치를 부여하는지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가 몇%나 차지하는지, 국제사회 평화유지를 몇%나 고려하는지, 세부항목에 대한 평가치를 정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명기된 ‘연합작전’은 미국을 고려하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러면 국방부는 왜 이런 무리수를 두는가. 그 속사정이 무엇인가. F-15K를 생산하는 보잉사의 공장은 미국 미주리주에 있다. 미주리주는 원래 보수 분위기가 강한 곳이다. 과거 KKK단을 비롯한 인종차별사건이 많았던 곳으로 어찌 보면 부시 대통령의 성향과 딱 맞아떨어지는 정서적 토양을 갖고 있다. 이 주에서는 공화당의 크리스토퍼 본드 상원의원, 리처드 게파트 하원 민주당 원내총무 등 부시 대통령이 무시하기 어려운 거물정치인이 배출되었다.
보잉사는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 때 정치권에 총 150만 달러를 기부했는데 그중 58%가 공화당으로 흘러 들어갔다. ‘코리아 헤럴드’ 보도에 의하면 본드 상원의원은 1998년 선거 때 보잉사로부터 4만6000달러를 기부받았다고 밝혔다. 주로 공화당 측에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이 거대기업의 내부사정은 심각하다. 9·11테러 이후 민항 분야에서 경영난이 악화되고 미 공군의 차기 합동전투기사업 수주경쟁에서 밀려남으로써 이미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에 도달했다. 이 주에서 F-15K 전투기 생산공장은 이미 미 공군의 수주물량을 다 채우고 추가물량도 완전히 바닥난 상태다. 만일 이 공장이 문을 닫으면 조립라인에 종사하는 인력이 일자리를 잃을 뿐만 아니라 하청업체들까지 연쇄도산이 불가피하다. 아직도 이 공장이 불을 때는 유일한 이유는 바로 한국의 F-X사업 때문이다.
미 공군은 2030년까지 F-15를 유지해야 한다. 당연히 군수지원, 특히 부품공장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생산공장이 문 닫기를 원하지 않는다. ‘워싱턴 포스트’는 여러 차례 F-15의 문제점을 다뤘다. 이 신문에 따르면 F-15는 유지비가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덜컹거리고 흔들리고 늙은 헐크’로 ‘미 공군의 애물단지’다.
미 의회 회계감사원(GAO)는 작년에 이미 F-15 유지관리비 증가를 심각한 문제로 거론하면서 조속히 이 기종의 도태를 검토해야 한다는 특별보고서를 발간한 상태다. 미 의회는 작년 3월, 럼스펠드 국방장관 앞으로 편지를 보내 F-15 조기 도태와 차세대전투기 도입을 촉구한 바 있다. 미 공군으로부터 추가 주문량이 없는 상태에서 보잉사는 F-15 유지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에 F-15K를 판매하고 나면 곧바로 공장이 폐쇄될 예정이다.
국방부가 F-15를 도입하면 한국은 2040년경 세계에서 유일하게 F-15를 운용하는 나라가 된다. 게다가 보잉사는 작년부터 F-15가 그동안 한번도 격추된 적 없고 실전에서 검증된 ‘불패의 전투기’, ‘세계 최강의 전투기’라고 홍보해왔다. 이 홍보가 절정에 이른 올 2월 중순, 미 국방부 홈페이지 ‘뉴스 브리핑’에는 걸프전 당시 이라크의 대공미사일을 맞고 격추당한 F-15 조종사의 극적인 구출과정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가 실렸다. 미 국방부가 보잉사의 홍보내용을 뒤집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