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호

잘 가꾼 山 하나, 열 工團 안부럽다

  • 양영훈 < 여행작가 > travelmaker@hanmir.com www.travelmaker.co.kr

    입력2004-11-01 17: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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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산은 교통이 잘 발달한 요충지라 대규모 공단이나 레저타운이 들어설 조건이 뛰어나다. 그러나 천혜의 풍광과 정서적 풍요를 지키기 위해 금산군이 선택한 발전전략은 ‘산지자원화’였다.
    금산(錦山)에는 금강(錦江)이 흐른다. 비단처럼 수려한 산자락들 사이로 비단결처럼 고운 강줄기가 굽이굽이 흘러간다. ‘비단산’과 ‘비단강’이 절묘하게 어우러졌으니 발길 닿은 곳마다 금수강산(錦繡江山)이다.

    하지만 금산의 산하(山河)는 눈을 즐겁게 만들기보다는 마음을 편안케 해준다. 처음 본 풍경조차 왠지 낯설지가 않다. 초행길의 마을도 언젠가 한동안 머물렀던 곳처럼 아늑하고 정겹다. 이미 오래 전에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은 고향의 옛 정경이 오롯이 살아 있다. 그래서 금산 땅에 한번 가본 사람들은 머지않아 다시 찾게 된다고 한다.

    금산군의 면적은 576㎢. 땅덩이 크기로는 서울특별시보다 조금 작다고 한다. 그러나 인구는 서울시의 두어 개 동을 합친 것에 지나지 않는 6만3000명(2001년)에 불과하다. 그나마 전체 인구의 40% 가량은 금산읍에 집중돼 있다.

    지리적으로는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위치해 전체 면적의 72%가 산지다. 평균 해발고도가 250m로 충청남도 평균치의 2.5배에 이른다. 금산군 곳곳에 봉긋봉긋 솟아오른 산봉우리는 무려 3000여 개를 헤아린다고 한다. 그러니 산너머 또 산이고, 사방을 둘러봐도 겹겹이 쌓인 산자락만 눈에 들어온다.

    이처럼 산지가 많은 금산군에서 가장 큰 자원은 무엇일까. 김행기(金行基·64) 금산군수가 취임 후 오랫동안 고민했던 것도 바로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금산군은 자연풍광이 수려하고 산지가 많은데도 교통이 사통팔달로 잘 발달돼 있다. 게다가 지리적으로는 남한 땅의 배꼽에 해당되는 요충지다. 이런 이점들을 밑천 삼는다면 대규모 물류센터나 공장, 관광레저타운이나 러브호텔 등 당장 지역경제에 보탬이 될 만한 사업을 유치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금산군은 그런 사업에 별로 눈독을 들이지 않았다. 단기적인 경제효과는 얻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천혜의 아름다운 풍광을 오염시키고 파괴함으로써 결국엔 정서적 풍요를 영영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마련한 금산군의 장기발전전략은 ‘산지자원화(山地資源化)’였다. 전체 면적의 7할이 넘는 금산군의 산지를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미래자원으로 가꿔나간다는 전략이다.



    ‘자연 최대, 인위 최소’


    금산군은 잘 가꿔진 숲과 아름다운 환경이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했다. 예컨대 금산군 전역에서 자생하는 산벚나무는 이 지역에 인공 조림된 리기다소나무보다 경제적 가치가 60배나 높다고 한다. 또한 솎아베기를 제대로 해주면 나무의 성장속도가 6∼8배나 빨라지고, 가지치기를 잘 해준 나무는 두께가 2.4배, 목재로서의 가치가 2배나 증가한다.

    숲 가꾸기에 따른 부수적인 이익도 적지 않다. 우선 숲의 잡목을 제거하고 솎아베기로 나무 사이의 간격을 알맞게 벌려주면 나무가 올곧게 성장할 뿐만 아니라 숲 바닥에서는 약초나 산나물 같은 초본류와 각종 버섯이 돋아나게 된다. 그 결과 숲은 중층구조(中層構造)를 이뤄 전체 면적이 넓어지고, 각종 임산물을 채취하는 산간지역의 농가소득도 늘어난다.

    또한 숲은 거대한 ‘산소발생기’이자 소음방지벽, 천연의 다목적댐이라 무형의 이득 또한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숲이 좋아지고 주변환경이 아름다워지면 인근 부동산의 가치가 눈에 띄게 상승한다.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는 숲 가꾸기 사업과 남이자연휴양림이 조성되기 전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가장 땅값이 낮은 곳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무렵보다 20배나 올랐다고 한다.

    이처럼 치밀한 분석과정을 거쳐 추진되는 금산군의 산지자원화 전략은 흔히 봐온 개발 일변도 정책과는 확연히 다르다. 산지, 즉 숲의 자연성을 최대한 존중하고 보존하되, 숲이 건강하고 가치있게 성장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인위적 손길을 가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삶터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자연의 섭리와 가치를 지킨다는 의미다.

    산지자원화의 첫째 단계인 ‘아름다운 숲 가꾸기’ 사업(1998)도 이 원칙에 따라 추진됐다. 이 사업을 통해 새로운 생태관광자원을 발굴해 내기도 했다. 약 100만평으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군북면 산안리 일대의 산벚꽃 군락지, 금성면 의총리 칠백의총, 복수면 지량리 일대의 진달래동산, 제원면 신안리 화원골의 조팝동산 등이 그것이다. 금산군은 이런 산림자원과 축제를 연계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독특한 지역문화도 널리 알릴 계획이다.

    산지자원화의 둘째 단계인 ‘금수강산 가꾸기’ 사업(1999)은 “금산의 자연을 본래 모습에 가깝게 개발하겠다”는 취지로 실시됐다. 그 일환으로 숲길을 정비하고 삼림욕장이나 휴양림 같은 휴식공간을 조성해 사람과 자연이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만들었다. 자연과 더 가까워지면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도 그만큼 깊어진다.

    셋째 단계는 2000년부터 10개년 계획으로 추진되고 있는 ‘1000개의 자연공원 가꾸기’ 사업이다. ‘1000’이라는 숫자는 그저 막연하게 많은 자연공원을 뜻하는 게 아니다. 곳곳에 실제로 1000개의 자연공원을 만들 계획이다. 우선 474개 자연부락의 앞동산과 뒷동산만 제대로 가꿔도 948개의 자연공원이 생긴다. 여기에다 금산군의 아름다운 산과 강, 문화유적과 인삼·약초 산지 등에 생겨난 자연공원까지 보태면 거뜬히 1000개를 넘어선다는 것.

    자연공원이라고 해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림에 들어선 공원은 숲 가꾸기를 해주고, 큰길가나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한 공원에는 누구나 쉬어갈 수 있도록 아담한 원두막이나 정자 등을 세우기도 한다. 공한지에 조성된 공원에는 이 땅에 자생하는 야생화나 약초를 심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정서적 안정감과 친밀감을 갖게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1000개의 자연공원은 지형적 특성과 역사·문화적 조건에 따라 21개의 테마로 분류된다. 숫적으로 가장 많은 마을공원을 비롯해 자연의 꽃밭, 충절공원, 학교공원, 자연의 명소, 인삼약초공원, 고속도로공원, 체육공원, 뛰어난 풍광공원, 실개천옹달샘공원, 풍수공원, 샛강변공원 등이 그것. 한마디로 사람의 삶터와 가장 가까운 자연을 정성스레 가꿔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1000개의 자연공원은 어쩌다 한번 들러 놀다가는 공원이 아니라 늘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고 즐기는 일상의 공원이다.

    1000개의 자연공원 가꾸기 사업을 통해 현재 금산군 전역에 조성된 공원은 모두 215개. 올해에는 지난해 지정된 470개의 시범공원과 새로 추가된 85개의 마을공원을 합해 모두 555개 공원 조성이 마무리될 예정이다. 금산군의 이러한 노력과 성과는 이미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다른 지자체들의 견학 방문이 한 해에만도 50여 차례가 넘는다. 산림청으로부터는 ‘전국 최고의 산림자원화 시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금사모’의 열정


    금산군의 독특한 산림자원화 시책에 대한 민간 전문가들의 격려와 성원은 뜨겁다. 특히 ‘금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약칭 금사모)’에 참여하는 이들의 금산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토박이를 무색케 한다. 이 모임은 금산 땅의 아름다움과 아늑함에 매료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었는데, 회비도 회칙도 없다. 하지만 금산 출신인 사람은 가입할 수 없다. 정파나 이권이 개입될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금사모 회원들은 대부분 각자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그저 금산이 좋아서 참여하는 사람도 있고, 금산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앞장서서 봉사하는 사람도 여럿이다. 어떤 이들은 틈나는 대로 금산군의 숲 가꾸기에 힘을 보태는가 하면 군정(郡政)에 대해 자문해주기도 한다. 때로는 물질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지난해 7월 금산군 제원면의 한 폐교에서는 금사모 주최로 가수 노영심씨의 작은 음악회가 열리기도 했다.

    금사모 회원들의 남다른 활동과 성원은 지금껏 제 고향을 잘 가꾸고 보존해온 금산 토박이와 행정관료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자 ‘앞으로도 금산을 잘 지켜달라’는 무언의 압력이다. 그들의 격려와 성원이 앞으로도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금사모 회원뿐만 아니라 고향의 정취와 풍경을 잃어버린 많은 이들이 금산군을 제2의 고향으로 삼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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