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호

한국통신 민영화 삼성이냐, 황금분할이냐

  • 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입력2004-10-29 17: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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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개월 앞으로 다가온 한국통신 민영화. ‘팔자’는 쪽은 분주한데 임자가 쉬 나타나지 않는다. 가능한 시나리오는 세 가지. 삼성이냐, 대기업 간 황금분할이냐, 난항 끝 물량 덜어내기냐. 매출액 12조원, 통신업계 ‘맏형’의 새 주인은 누가 될 것인가.
    KT(한국통신)만큼 국민 생활에 밀착돼 있고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기업이 몇이나 될까. 속도와 커뮤니케이션이 중시되는 요즘, 그 역할과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런 KT의 완전민영화 시한이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의 의지가 강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냐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증시 상황이 좋은데다, 올 1월 11.8%의 외국인 지분 매각에 성공한 것도 고무적이다.

    KT 민영화는 단순히 ‘공기업 하나가 민간 소유로 넘어감’을 뜻하지 않는다. 매출액 12조원(자회사 KTF를 포함하면 17조원)을 자랑하는 거대기업이자 국가 기간망을 포함한 통신산업의 핵심역량이, 정부의 직접적 통제에서 벗어나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시장에 완전 편입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KT의 미래에 국민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주식투자자들에게 KT 민영화는 하이닉스 매각에 버금가는 ‘대형 재료’다. 성사 여부에 따라 관련 주가는 물론 증시 전체의 분위기까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6월말까지 매각해야 하는 정부지분은 전체의 28.3%인 8827만4429주다. ‘눈사태’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만큼 엄청난 규모다. 이 정도 물량이 쏟아질 예정인데도 1월말 이후 KT 주가는 연일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정부가 투자자 한 사람이 한번에 취득할 수 있는 지분한도를 5%에서 15%로 확대한 데다, 완전민영화 후 주주 구성은 시장논리에 맡긴다는 방침을 발표한 덕분이다. 이는 쉽게 말해, 장기적으로는 특정 기업이 KT의 ‘주인’이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당초 “경영권도 행사할 수 없는데 왜 뛰어드느냐”며 난색을 표해온 기업들로서는 전혀 새로운 국면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증권가 유명 애널리스트들의 입을 통해 “삼성·SK·LG·포스코 등 대기업들의 지분 쟁탈전이 예상된다”는 분석이 터져 나오면서 4만5000원대에 머물던 주가는 1개월여 만에 6만3000원대까지 뛰어올랐다. 팍스넷, 와우TV 등 증권전문 인터넷사이트 토론방에 들어가보면 “주당 10만원은 가능할 것”이란 의견부터 “황제주 등극은 시간문제”라는 호기로운 예측까지, 장밋빛 전망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주가가 6만원선을 유지한다고 가정했을 때 28.3%의 가격은 5조2965억여 원에 달한다. 15%를 매입하려면 2조8000억원이 필요하다. 5%만 매입하려 해도 9300억원이 든다. 이 정도의 현금 동원력을 가진 기업은 국내에 삼성, SK, LG, 포스코, 현대자동차 정도다. 결국 KT 민영화가 기정사실이 된 지금, 최대 이슈는 어떤 기업이 어느 만큼의 지분을 가져갈 것이냐다.



    과연 삼성전자는 시장에 떠도는 소문대로, KT의 지배주주가 되기 위한 첫발을 내디딜 것인가. 정통부는 민영화를 위해 어떤 전략을 짜고 있는가. KT의 입장은 무엇이며, 민영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지난 2월25일 새벽 4시, 철도·발전산업·가스 등 3개 국가기간산업 노조가 민영화 저지를 위한 사상 첫 동시파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2000년 12월까지만 해도 민영화 철회를 외치며 격렬한 투쟁을 벌이던 KT노조는 의외로 조용했다. KT노조의 침묵은 민영화 가능성에 돛을 달아주었다.

    KT노조 김인관 선전국장은 “경영진과의 오랜 대화를 통해 민영화가 막을 수 없는 대세이며, 회사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라는 데 일정부분 동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태도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KT 민영화가 어제오늘이 아닌 16년 전부터 계획되고 추진돼온 사안이기 때문이다.

    KT 민영화 계획이 처음 발표된 것은 1987년이다. 국민주 매각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으나 증시 침체로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이후 일부 계획을 수정해 1993~96년 28.8%의 지분을 매각했다.

    1998년 7월 국민의 정부는, 2000년까지 정부 지분 71.2%를 33.4%까지 축소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1999년 5월 해외DR(주식예탁증서) 발행으로 총지분의 12.2%를 매각하는 데 그쳤다. 2000년 6월 공기업민영화추진위원회는 다시, 2002년 6월까지 완전 민영화를 달성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계획에 따라 2001년 2월, 경쟁입찰을 통한 국내 매각이 실시했다. 그러나 성과는 미미했다. 전체 입찰 대상인 5097만주(14.7%) 중 333만주(1.1%)만이 낙찰된 것이다.

    부진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였다. ‘경영권 보장 없는 주식인수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대기업들이 불참한 데다, 개인투자자의 경우 최저입찰 가능 수량을 1000주(7000만원 상당)로 정해 자금 부담이 지나치게 컸고, 주가하락에 대한 우려로 기관투자가들의 참여가 저조했던 것이다.

    정통부 관계자는 “증시 침체와 더불어, 정부가 너무 곧이곧대로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후로는 방법을 바꿨다. 증권사가 개발한 방법을 적극 수용키로 한 것이다.”

    국내 매각이 어렵다고 판단한 정부는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2차 해외DR 발행, MS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한 BW(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및 해외EB(교환사채) 발행을 단행한 것이다. 이를 통해 2001년 6~12월, 57.9%의 정부 지분을 28.4%까지 낮추는 데 성공했다. 완전 민영화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남은 것은 잔여 지분 28.3%의 국내 매각이다. 외국인 지분 한도인 49%는 이미 꽉 찼다. 정부는 1차 매각 실패를 교훈 삼아 투자자를 끌어모으기 위한 다각적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1개 기업이 한번에 취득할 수 있는 지분한도를 5%에서 15%로 확대했다. 소유지배구조에서도 KT의 국민경제적 비중을 감안해 일단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되, 이후에는 시장에 의한 소유자 지배구조로 가는 자율 전환을 허용키로 했다. 일반투자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1000주였던 최저입찰 수량 제한도 폐지할 계획이다.

    물론 특정기업이 이번 입찰에서 15%의 지분을 확보한다 해도 그것이 바로 경영권 획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주총에서 절대적 의결권을 행사하려면 33%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은 있다. 일단 민영화가 되고 나면 ‘대기업이 공기업 지분의 15% 이상을 소유할 수 없다’는 공기업민영화특별법상 동일인 취득한도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된다. 즉 민영화 이후에는 얼마든지 추가 지분 매입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KT의 지배주주로 등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KT 민영화에 대해 정통부가 그리고 있는 그림은 무엇일까.

    정통부 관계자는 “직접 방안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답했다. 원칙은 제시하되 주관 증권사가 개발한 방법에 의거해 매각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JP 모건·LG증권·현대증권·대신증권 등 국내외 4개 증권사가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돼 있다. 외국사를 포함시킨 것은, 선진 기법을 구사하는 데는 아무래도 외국사가 앞서며, 국내업체들과의 선의의 경쟁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다. 3월중 주관사를 확정해, 4~5월 소유지배구조를 정하고, 5~6월 국내 매각 방법을 결정·시행한다는 것이 정통부의 계획이다.

    정통부 관계자는 “기업간 지분 참여의 ‘황금률’을 도출해내기 위해 인위적인 조정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특정사가 15%를 가져가는 것 또한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SK텔레콤, LG텔레콤 등 같은 통신서비스업체가 (15%를) 가져가는 것은 안된다. 공정거래법에도 위배될 뿐더러, 정통부가 추진중인 KT-SK-LG의 3강구도 재편에도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참여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상의 문제는 없다. 아이디어는 있으나 확정된 방침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했다.

    관련 업체라 할지라도 컨소시엄 구성을 통한 참여는 허용할 방침이다. 그러나 관련사업자가 컨소시엄의 최대주주가 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경영 불참을 조건으로 업무 제휴를 통해 매각하는 방법도 고려대상이다. 이 관계자는 또 “15%는 몇몇 대기업이 나눠 가져가고 나머지 13% 정도는 EB 발행, 기관투자가 및 개인투자자의 참여 등으로 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B를 발행하면 1조~2조원은 해결 가능하리라는 것이다. 소유지배구조에 관해서는 “민영화 이후에는 간섭하지 않을 것이고 또 간섭할 명분도 없다”고 강조했다.

    정통부 관계자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주식매각 방법 및 소유지배구조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된 안이 없다. 그러나 정통부, KT, 관련 업체 및 애널리스트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크게 세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함을 알 수 있다.

    첫째는 특정사가 15%의 지분을 매입, 향후 1대주주로 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여러 대기업이 골고루 지분을 나눠 갖는 상황을 상정할 수 있다. 셋째는, KT가 자사주 매입을 통해 물량 부담을 10% 정도 덜어내고 나머지를 매각하는 방식이다. 세 방안 모두 잔여분은 EB 발행 및 기관·일반 투자자의 참여로 해결하게 될 듯 하다.

    첫째 방안의 경우, 특정기업이 15%의 지분을 가져간다고 할 때 가장 유력한 업체는 삼성전자다.

    “KT는 매해 1조원 이상의 순이익을 내는 초우량 기업이다. 유선통신사업은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견해도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무선통신도 유선망 없이는 불가능하다. 또 KT를 갖게 되면 KTF도 자연스럽게 딸려온다. 초고속인터넷 사업의 경우 대부분의 투자가 끝나 이제 돈 버는 일만 남았다. 매입 자금이 충분한데 이런 사업상의 큰 기회를 왜 놓치겠는가. 이전부터 삼성은 통신서비스사업 진출을 위해 여러 길을 모색해왔다. KT 민영화는 그 마지막 기회이자 결정판이 될 것이다.

    특혜시비가 일 것이란 염려도 있는데 이는 경쟁 입찰을 하면 해결될 일이다. 사실 KT와 직접적인 경쟁관계에 있는 LG나 SK가 들어오는 것이 더 큰 문제 아닌가. 이번 매각 건에서 LG, SK는 보조 및 견제 역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삼성이 10%만 들어온다 해도 ‘게임’은 끝난다. 설사 1대주주 욕심을 내지 않는다 쳐도 LG, SK 등으로서는 삼성 견제를 위해 지분 매입에 나서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의 KT 진입 가능성을 강력하게 주장해온 한 애널리스트의 설명이다.

    삼성의 KT 민영화 참여 여부에 대해서는 증시를 중심으로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다.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로 등장했듯, 아들인 이재용 상무는 통신으로 등장시키려는 것”이라는 소문이다. IT산업에 관심이 많은 이재용 상무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 정통부의 한 인사도 “삼성에서 지분 참여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의 모씨 또한 “정통한 소식통으로부터 삼성이 KT 인수와 관련한 태스크포스팀을 가동중이며 이미 1차 보고서 작성이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LG그룹의 한 임원은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은 ‘사자’는 입장이나 그룹구조본의 이학수 본부장은 부정적이라고 한다. 지난해 1차 입찰 때 참여하지 않은 것도 구조본쪽 주장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기본 데이터는 준비한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측은 이같은 소문이나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며 강력히 부정했다. KT의 경영권을 갖게 될 경우 큰 이익을 보리라는 것은 알고 있으나, 특혜 시비는 물론 국민 정서상 국내 최대기업이 통신 인프라 사업을 인수하는 것은 용납되기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태스크포스팀을 설치한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삼성의 KT 경영권 인수설’에 대해서는 증시 분석가나 KT 관계자들도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KT 관계자의 설명은 이렇다.

    “삼성이 KT에 욕심을 낸다면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 이번이 KT 주식을 대량 매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고, 둘째, IT산업에 대한 이재용씨의 관심이 높으며, 셋째, 가전산업과의 연계를 통한 밸류네트워킹 컴퍼니로의 도약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각종 가전제품을 통신으로 제어하는 시대가 곧 올 텐데, 양쪽 사업을 다 하고 있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이 KT의 주인으로 나서기에는 난관이 너무 많다. 첫째, 정치적 부담이 매우 크다. 특혜 시비가 일 게 뻔한데 어떻게 섣불리 들어오나. 둘째, 노조 문제다. KT노조는 특정기업에 경영권이 귀속되는 민영화에 대해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해왔다. 또 우리 노조가 보통 강성인가. 무노조 정책을 밀어 붙여온 삼성으로서는 이래저래 피하고픈 상황일 수밖에 없다. 셋째, KT 지분 참여를 위해서는 외국인 주주들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들을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넷째, 인수한 KT 지분을 이재용씨 앞으로 돌려놓을 경우 엄청난 사회적 저항이 예상된다.”

    LG투자증권 정승교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는 교환기·전송기로 기반을 닦아 가전사업으로 일어섰고 반도체로 한국 최고 기업이 됐다. 삼성전자의 미래는 D램뿐 아니라 통신장비 사업에 달려 있다. 그런데 장비생산과 서비스사업을 동시에 해 성공한 사례는 없다. 특히 최대 통신장비업체가 최대 통신서비스업체를 인수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M&A는 태스크포스팀 만든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정부와 최고경영자의 결단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삼성 외에 15%를 가져갈 가능성이 큰 기업으로는 포스코가 있다. 통신사업자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무난해 보이지만, 문제는 포스코 또한 태생이 공기업이라는 점이다.

    동원증권 양종인 애널리스트는 “민영화된 업체가 다른 공기업의 민영화에 참가한다는 것은 모양새가 이상하다. 또 KT는 포스코보다 기업 규모가 훨씬 크다. 그걸 가져오려면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과연 외국인 주주들이 동의할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특정업체가 큰 지분을 가져가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여러 기업이 동시에 입찰에 나서는 것이다. 기업간 물량 쟁탈전이 벌어져 주가가 올라가고 지분 매각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것이야말로 이상적인 형태다. KT 입장에서도 끈질기게 고수해온 ‘소유와 경영의 분리 원칙’을 무리 없이 관철할 수 있어 환영이다. 문제는 어떻게 기업간 황금분할을 이루어내느냐다.

    정통부와 KT는, 일단 어떤 기업이든 지분 매입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면 다른 기업들도 덩달아 물량 확보에 나서리라고 보고 있다. LG, SK, 삼성 등은 모두 KT와 깊은 관련이 있는 만큼 그중 한 기업이 들어가면 다른 업체들도 자사 이익 보호를 위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켠에서는 “대기업들이 알아서 들어오리라는 건 지나치게 나이브한 생각”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명 애널리스트는 “나는 대기업이 자진해서 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며 “가장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방법은 EB를 대량 발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KT가 발행한 EB라면 5조원이 아니라 10조원어치도 팔 수 있다. 최근의 주가 상승은 단순히 ‘민영화 호재’ 때문이라기보다는 KT 주식이 저평가돼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때문이다. 기업 내용이 좋은 만큼 대기업 참여를 기다리는 것보다 시장에서 소화할 수 있는 다양한 기법을 개발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한편, 사실상 지배주주가 없는 형태의 민영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한 애널리스트는 “KT 민영화는 경제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봐야 한다. KT의 1인당 생산성은 경쟁 업체인 SK텔레콤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통신기간사업자로서 공익의무를 다하기 위해 얼마간의 손실은 감수한다 하더라도 지금 같은 구조로는 세계적 통신기업으로 발돋움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KT 출신의 한 투자전문가는 “KT측이 포스코 형태의 민영화, 즉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줄기차게 강조하는 것은 현재의 인적·물적 구도를 민영화 이후에도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며 말문을 열었다.

    “포스코는 2차 산업체다. 이미 세계화된 사업구조를 갖고 있으며 경기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반면 KT는 서비스업체다. 로컬사업자인만큼 글로벌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장만 봐도 SK텔레콤이라는 강력한 적수와 맞서야 한다. 사실 기업 가치는 SK텔레콤이 더 높지 않은가. 또 KT의 시내망은 사실상 개방망이어서 포스코처럼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형성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때 소유-경영을 분리해달라,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민영화 이후에도 기존 인력이 회사를 계속 이끌고 가겠다는 뜻이다. 그래서는 확실한 체질 개선이 이루어질 수 없다. 민영화를 하려면 ‘주인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정도라 생각한다.”

    이와 관련, 업계에서는 KT 이상철 사장이 노조측에 “민영화 후 인위적으로 사람을 잘라내는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에 대해 KT 측은 “강제력 있고 공식적인 협상 테이블이 아니라, 현안 토의를 하던중 비슷한 얘기를 나눈 적이 몇 번 있다. 100%는 아니지만 일단은 이사장의 말을 신뢰하기로 했다. 물론 노조는 노조대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나름의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민영화 후 적극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겠다는 약속은 주가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문제여서 주목된다.

    민영화의 셋째 시나리오는 KT의 자사주 매입이다. 자금 사정이 좋은 KT가 매각 대상 28.3% 중 10% 내외를 자체 매입해 물량 부담을 줄이고, 민영화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방식이 처음 언급된 것은 지난해 12월이다. KT 이상철 사장은 외국인 지분 11.8%의 처리를 위해 우선 이를 자사주 방식으로 매입한 후 해외에 재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서의 자사주 매입은 소유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지분 매각을 위한 일종의 ‘준비 절차’에 해당된다. 아울러 이사장은 민영화 이전, 물량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 지분의 10% 내외를 추가 매입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매를 위한 것이 아닌, 자체 보유를 위한 순수 자사주 매입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통부는 이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전체 물량을 매각할 자신이 있는 만큼 자사주 매입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업계 및 증권가 일각에서는 여전히 자사주 매입을 통한 민영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잔여 물량 28.3%를 한꺼번에 풀어놓으면 증시에 충격을 가하게 된다. 심한 경우 주가가 3만~4만원선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 성공적 민영화를 위해서는 자사주 매입으로 물량을 조절해야 한다”는 논리다.

    “정부가 KT로 하여금 10~15%의 자사주를 미리 사놓도록 하거나, 지분 매각후 남는 물량은 무조건 KT에 배정하겠다는 뜻을 밝히면 기업들도 ‘이번이 정말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확실히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주가도 6만5000원에서 7만원선까지 뛰어오를 것으로 보인다. 민영화 전망이 그만큼 밝아지기 때문이다.” 한 외국계 증권사 소속 애널리스트의 말이다.

    ‘순수 자사주 매입 불허’라는 정통부의 뜻은 확고하다. 관계자는 “자사주 매입이 성사되면 KT의 주인은 절대 나올 수 없다. 남은 18.3%의 물량으로는 누군가 15% 매입을 원할 경우 수급을 맞추기가 어렵다. KT가 자사주 매입을 언급한 것은 포스코의 경우를 염두에 둔 것인 듯하다. 그러나 KT는 포스코와 다르다. 포스코가 10%가 넘는 순수 자사주와 역시 10% 가량의 우호지분을 보유하게 된 것은 지분 매각이 막판에 2번이나 유찰됐기 때문이다. 민영화의 진정한 의미는 말 그대로 지분과 경영권을 민간에 이양하는 것이다. 자사주 매입은 그런 원칙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원증권 양종인 애널리스트 또한 “KT는 해외EB 발행을 위해 이미 11.8%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여기에 다시 10%를 매입하면 어쨌거나 자사주 비율이 21.8%까지 오르게 된다. 그렇다고 나머지 18.3%가 다 팔리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할 수 없이 또 EB 발행을 할 경우 자사주 비율은 더 늘어난다. 그래서야 민영화라고 볼 수가 없다. 문제는 대기업의 참여 여부다. 대기업이 뛰어들지 않는다면 28.3%건 18.3%건 소화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지금으로서는 그 결과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영화에 대한 정부와 KT의 의지가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SK텔레콤·LG텔레콤·하나로통신·데이콤 등 경쟁사들의 견제와 반발이다. KT가 민영화되면 공기업적 성격이 희석돼 불공정 거래가 자행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아울러 민영화가 경쟁력 강화로 이어져 KT가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기업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란 두려움도 있다. 만일 특정기업이 KT의 대주주로 나서게 될 경우에는 비판도 만만치 않게 쏟아져 나올 것이다.

    다음으로는 소유지배구조에 대한 정부의 애매한 입장을 들 수 있다. ‘선 전문경영인 후 소유자 지배’의 원칙은 확인했으나 그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그룹의 한 임원은 “경영권을 주겠다는 딱 부러진 약속도 없는데 어떻게 들어가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한 업계 인사는 “정부도 곤혹스러울 것이다. 민영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으려면 대기업들의 관심을 유도해야 하는데, 그를 위해서는 경영권 보장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자칫 재벌에 대한 특혜로 인식될 수 있으며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독점화를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모든 논란과 어려움을 뚫고 민영화 고지에 다다른다 해도 KT노조를 설득하지 못하면 일정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지난 3월4일 KT노조는 민영화대책반을 구성했다.

    민영화와 관련한 노조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다. 회사에 대해서는 고용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정부쪽에는 소유·경영의 분리와 외국인 지분한도를 지금과 같은 49%로 유지할 것을 요구할 예정이다. 만일 재벌기업이나 외국계 자본이 지배주주로 등장할 경우에는 민영화를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노조의 기본 입장이다. 자사주 취득을 추진해 경영 안정을 꾀하고 우리사주나 스톡옵션 등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길도 열어달라는 주장도 하고 있다.

    그렇다면 KT 민영화는 당초 계획대로 6월말 안에 성사될 수 있을까.

    LG투자증권 정승교 애널리스트는 “기한 안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5월말에 월드컵경기가 시작되면 온 세상 관심이 그쪽으로 쏠릴 것이다. 주식을 팔려면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아야 한다. 그런 점을 고려할 때 당초 계획보다 오히려 한 달 가량 당겨진 5월말쯤 결판이 날 수도 있다고 본다. 3월 중순부터 4월까지는 탐색기가 될 것이며, 5월초쯤 되면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매각은 5월 중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예측한다.”

    정통부 관계자는 “6월말까지 마무리짓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다소 늦어진다 해도 해를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흔히들 정부의 KT 민영화 추진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증명하는 예로, 올해 예산에 KT 지분 매각 대금이 포함되어 있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박용주 기획예산처 공공2팀장은 “KT 민영화와 관련 5조4000억원의 예산을 책정해놓았다. 지난해말 11.8%의 지분 매각으로 이미 2조원 넘는 자금이 들어온 만큼, 남은 3조원 가량을 채우는 데는 무리가 없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주가가 일정 선을 유지할 경우 28.3%를 다 매각하지 않고도 국고를 채울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민영화 완료 시점이 2003년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KT 민영화를 공기업 개혁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정부의 시각을 고려할 때 연내 해결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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