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으로 바위치기란 건 안다. 괘씸죄로 깨질 각오는 돼 있다. 우리에겐 더이상 잃을 것도 없다.”
대한항공이 마침내 반격에 나섰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오너 경영인 퇴진과 고강도 세무조사, 잇딴 항공기 사고에 따른 운항제한조치 등 거센 칼바람에 숨죽여온 대한항공이 위축된 사세(社勢) 회복을 시도하며 정부와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대한항공은 건설교통부가, 2월9일 영국 런던 등지로의 국제항공 노선운항권을 배분한 결과가 극히 편파적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런던 노선권을 아시아나항공에 준 구체적인 기준과 근거자료, 양 항공사의 노선권 신청내용을 비교·분석한 검토자료 등을 제시하라”며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불공정한 노선권 배분이 거듭될 때마다 건교부에 질의서를 보내 해명을 요구했으나 단 한번도 답변을 듣지 못했다. 참다 못해 이번에는 법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보공개를 청구했다”고 밝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한항공은 건교부를 상대로 이미 세 건의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1999년 12월 건교부는 대한항공이 중국 구이린(桂林), 우한(武漢), 쿤밍(昆明) 등 7개 노선권을 받은 뒤 1년 동안 취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들 노선권을 몰수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건교부의 처분이 위법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 1심에서 일부 승소한 후 2심을 기다리고 있다.
2001년 4월에는 건교부가, 그해 1월 부산발 김포행 대한항공 여객기가 김포공항 야간운행 통제시간을 어겼다는 이유로 4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대한항공은 “폭설 때문에 운항지연이 불가피했다”며 이에 불복, 과징금 부과처분취소청구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건교부 상대 소송 3건 제기
또한 1999년 4월 중국 상하이공항 화물기 추락사고의 책임을 물어 2001년 6월 건교부가 대한항공의 상하이 화물노선면허를 취소하자 대한항공은 “이 사고가 노선면허 취소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일단 행정법원에 노선면허취소처분 집행정지를 신청해 받아들여졌으며, 현재 본안 소송이 진행중이다.
대한항공과 건교부의 관계는 여느 민간기업과 인·허가 주무관청의 관계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건교부는 항공사의 사업면허는 물론 국제항공 노선운항권 면허도 관장한다. 항공산업은 기업이 독자적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시장에서 경쟁하는 구도가 아니다. 항공사는 건교부가 국가간 항공회담에서 확보해 나눠주는 노선권 면허에 따라 비행기를 띄우고 영업활동을 벌인다. 항공사의 매출과 수익규모는 노선권의 수와 질에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비자의 선택’보다 ‘건교부의 선택’에 밥줄이 달려 있는 대한항공이 건교부에 대해 연거푸 강수(强手)를 둔 것은 항공업계의 상식을 뒤엎는 행태다.
국내 항공업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두 회사가 시장을 나눠 갖는다. 따라서 양사(兩社)는 노선권 확보를 놓고 치열한 제로섬 게임을 벌여야 한다. 한 회사가 특혜를 받으면 다른 회사에겐 곧바로 불이익이 돌아간다. ‘나의 불행은 곧 남의 행복’인 것이다. 대한항공이 건교부에 거센 공세를 취하는 것도 이런 사정에서 비롯됐다. 건교부가 자신을 압박하면 할수록 아시아나의 입지가 강화된다고 보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현 정권이 호남 연고의 금호그룹 간판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을 비호해 왔다고 본다. 대한항공의 모그룹인 한진그룹은 역대 정권들과 친밀한 관계를 가져왔지만 현 정권과는 좋은 인연을 맺지 못했다.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은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 때 김영삼 후보를 공공연하게 지지했을 뿐 아니라 1973년 DJ 납치사건이 터진 후에는 일본 정부가 이 사건을 외교문제화하지 않도록 일본 정치인들과 접촉하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15대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자 당시 한진그룹 최고경영진 중 한 인사는 이런 악연을 떠올린 듯 측근들에게 “앞으로 5년 동안은 죽었다고 생각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그런 우려가 최초로 현실화한 것이 대통령 특별전세기의 ‘정권교체’였다. 1998년 11월 중국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과 수행원들이 아시아나의 특별전세기를 이용한 것이다. 그때껏 역대 대통령들의 해외 방문 전세기는 국적항공사인 대한항공이 책임지고 준비하는 게 관례였으나, 정부는 두 항공사를 입찰에 부친 끝에 아시아나의 손을 들어줬다. 아시아나로선 1988년 회사창립 이후 11년 만에 숙원사업을 이룬 셈이었지만, 대한항공은 독점적 지위를 내주고 시련의 길로 접어드는 신호탄이었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