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퀴즈 하나를 풀어보자. ‘만화로 배우는 세계 4대 문명’(신원문화사), ‘인류 최초의 문명들’(중앙M&B), ‘쿠오 바디스, 역사는 어디로 가는가’(푸른숲), 이 세 권 책의 공통점은?
제목을 보면 역사 도서라는 공통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위의 세 책은 차례로 일본 NHK, 영국 BBC, 독일 ZDF, 이렇게 각 나라 공영방송사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내용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이 책들은 다른 책들에 비해 사진 자료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는 특징도 있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만화로 배우는 세계 4대 문명’은 NHK 스페셜 4대 문명 프로젝트팀이 요시무라 사쿠지 와세다대 교수 등 5명의 전문가들의 감수를 받아 완성했다. 이집트, 인더스, 메소포타미아, 황하 문명이 각기 처한 자연 환경을 바탕으로 발생하여 성장 쇠퇴하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하고, 관련 사진·지도·연표 등을 수록했다.
‘인류 최초의 문명들’은 ‘BBC 고대 문명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제1편으로 이라크, 인도, 중국, 이집트, 중앙아메리카, 유럽 등을 포괄하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근대 이후 유럽의 개인주의, 합리주의의 뿌리를 이라크 문명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라크 문명은 유일신을 숭배하고 자연과 인간을 분리한 유일한 문명이다. 이런 특징이 유럽에 전수된 끝에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서구 합리주의로까지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우드는 이 다큐멘터리를 포함해서 50여 편의 역사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고 직접 진행하기도 했다. BBC 출판부는 우드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전체를 책으로 내놓았다. 우드가 쓴 대부분의 책은 생생한 현지 답사 경험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책상물림 필자들의 책과는 달리 글의 박자가 빠르고 군더더기가 없다.
한편 ‘쿠오 바디스, 역사는 어디로 가는가’는 나폴레옹 최후의 전투, 스페인 무적 함대의 침몰, 크레시 기사 전투, 카이사르의 살해, 베들레헴의 대학살, 사라예보의 암살, 페스트, 베수비오 화산, 아틀란티스 등의 주제를 다룬다.
16세기의 해전 상황을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당시의 대포 발사 과정을 그대로 재현해내기도 한다. 당시의 대포는 적에게도 위력적이었지만 대포를 다루는 포병들에게도 무척 위험스러웠다. 발사시의 반동으로 밀려난 포신에 포병이 깔려 죽거나, 심지어 포탄의 30%는 뒤쪽으로 발사됐다고 한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면 규명하기 힘든 생생한 내용을 담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의 서술 및 구성상의 특징은, 워털루 전투나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 같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이 만일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가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물론 사건의 전말, 배경, 결과 등을 자세히 규명하면서 역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논증해낸다.
예컨대 워털루 전투의 경우 ‘나폴레옹이 승리했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하지만 나폴레옹이 이겼다 하더라도 결국은 몰락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결론 짓는다. 나폴레옹은 프랑스에서도 잊혀진 존재였고 유럽의 모든 열강들이 그에게 맞서기 위한 동맹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이겼다 하더라도 이후 유럽 역사의 전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프로그램 제작 및 집필에 참여한 9명 가운데 한스 크리스티안 후프는, 이 책 이외에 ‘역사의 비밀’(오늘의 책), ‘세계를 움직이는 3대 성인’(북스토리) 등으로도 유명하다. 위의 두 책 모두 ZDF가 방영한 역사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책으로 옮긴 것이다.
다큐멘터리와 책의 이중주
다큐멘터리와 책의 이중주는 국영 방송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인문 분야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중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예술평론가 위치우위가 홍콩 위성TV 펑황에서 기획한 밀레니엄 여행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 결과로 나온 ‘세계문명기행’(미래M&B), 영국 BBC 방영 과학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책으로 옮긴 ‘별’ ‘빅뱅: 우주의 탄생과 죽음’ ‘혜성, 유성, 소행성’(이상 다림출판사) 등이 있다. 예술 분야라면 BBC 시리즈 ‘웬디 수녀와 함께 떠나는 미술 여행’으로 유명한 웬디 베케트의 여러 저서가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대표적으로 KBS 역사 다큐멘터리 ‘역사스페셜’ 내용을 담은 ‘역사스페셜’(효형출판)을 들 수 있다. 하지만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방송 제작 및 집필, 진행에 이르기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외국과 다르다. 외국의 경우 전문가의 이름 자체가 방송 프로그램과 책의 브랜드 이미지와 가치로 이어진다.
자연 다큐멘터리 분야의 데이비드 애튼보로, 과학기술 다큐멘터리 분야의 제임스 버크, 최근 영국 도서시장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국사(A History of Britain)’의 필자이자 다큐멘터리 진행자 사이먼 샤마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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