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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코드로 읽는 三國志 인물학

攻·守·速·遲·勇·德·剛·柔

  • 권삼윤 < 문화비평가 > tumida@hanmail.net

21세기 코드로 읽는 三國志 인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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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많은 인물이 등장해 지모와 용맹으로 자웅을 겨루는 삼국지는 문학서이자 교양서, 역사서이자 처세학 교본이다. 그래서 정치인은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참고서로, 기업인은 경영의 지침서로 활용한다.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면서 갖가지 ‘인물론’이 쏟아진다. 이런 시점에 삼국지 등장인물들의 인품과 행적, 시대상황 등을 살펴봄으로써 승자와 패자를 구분지은 조건을 곱씹어보는 것은 흥미와 의미를 더할 것이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남겼다. 기독교도였던 그는 종교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아니, 살고 있는 것일까.

사내들은 흔히 제 가슴에 품은 포부를 펼쳐 보이기 위해 세상을 산다고 말한다. 그날을 위해 푸줏간 사나이의 바짓가랑이 밑을 기었던 그 옛날의 한신(韓信)처럼 험한 꼴을 보면서도 꾹 참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포부! 그것은 때로는 아름다운 청운의 꿈으로, 때로는 엄청난 대망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길래 온갖 수모를 견뎌내며 그걸 펼치고자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밖에 없는 목숨마저 초개처럼 버릴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데에는 15세기 중국 작가 나관중(羅貫中)이 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보다 더 효과적인 정보원은 달리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나름의 포부와 능력, 자신감을 갖고 난세와 맞서려 했던 사나이들의 삶이 생생하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나관중은 진수(陳壽)가 쓴 정사(正史) ‘삼국지(三國志)’를 바탕 삼아 거기에다 자신의 가치관을 더하고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드라마틱한 요소까지 곁들인 얘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역사의 흐름은 물론 세상을 사는 지혜에도 눈뜨게 만든다. 그래서 한번 책장을 잡으면 쉽게 놓지 못한다. 이 책이 문학서이자 교양서이기도 하지만 역사서로서, 또 처세의 교본으로 읽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이루기 위한 참고서로, 기업가나 경영인은 경영철학의 지침서로도 활용한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삼국지 영웅론’ ‘삼국지 인간학’ ‘삼국지 경영학’ 같은 이름을 단 책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삼국지의 쓰임새는 이처럼 넓고 다양하다. 필자는 이 글에서 이 모든 것을 다 다루지는 않는다. 그저 올해에 대통령선거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삼국지 등장인물들의 행적과 인품, 시대상황 등을 살펴봄으로써 이들 가운데 승자와 패자를 가른 조건이 무엇이었던가를 밝혀보려 할 뿐이다. 그렇게 해서 도출된 승자의 조건이 바로 천하 제패의 조건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정공법은 下策, 꼼수는 上策?


‘삼국지연의’는 소설이긴 하나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삼았으므로 등장인물들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먼저 그들이 살았던 공간과 시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역적으로는 지금의 중국 영토를 기준으로 하여 지린(吉林)성 이북과 윈난(雲南)성 이남, 신장(新疆)성 이서를 제외한 중국 전역이 된다. 시간적으로는 후한 말기에 터진 황건적의 난(184)으로부터 시작, 위(魏)·촉(蜀)·오(吳)가 정립(鼎立)한 이른바 ‘삼국시대’를 거쳐 사마의(司馬懿)의 손자 사마염(司馬炎)이 삼국을 통일하면서 진(晉)을 건국(265)하기까지 약 1세기에 걸친다.

그렇다면 그 무대가 됐던 중국이란 어떤 곳일까. 중국은 거대한 대륙이다.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인지라 중국인 스스로 ‘천하’라고 불렀다. ‘천하’의 주인은 그래서 ‘천자’가 됐다. 야망이 있는 자는 천하를 자신의 손에 움켜쥐려 했다. 천자를 향한 꿈이었다. 천하 제패의 야망이란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천하라는 말에서 이미 중국 대륙이 갖는 공간의 스케일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중국을 실제로 여행해보면 그 사실을 분명히 실감할 수 있다. 동서와 남북간의 공간이동을 통해 목격하게 되는 자연과 인문환경의 변화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이렇게 장대한 공간에선 상대를 밀어내 굴복시키는 전법은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밀어내도 그 끝이 보이지 않거니와, 그렇게 밀고 있는 순간 누가 뒤통수를 때릴지도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매복, 야습, 화공, 허위정보 유포 등이 가세하면 상황은 정말 복잡해진다. 전진과 공격이 절대로 능사가 아닌 것이다. 정공법은 오히려 하책(下策)이 되고, 꼼수같이 보이는 후퇴와 도망, 기습이 상책이 될 수 있다.

모두 13편으로 구성된 병법의 교본 ‘손자(孫子)’에도 이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장기전을 피하라(제2 작전편)’ ‘적의 의표를 찌르라(제6 허실편)’ ‘기선을 제압해 국면을 전환하라(제7 군쟁편)’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라(제8 구변편)’ ‘지형에 따라 작전을 구사하라(제10 지형편)’ ‘화공의 효과를 높여라(제12 화공편)’ ‘밀정을 최대한 활용하라(제13 용간편)’ 같은 구체적인 방법까지 일러준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손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가르쳤다.

싸움이란 말이 나왔으니까 말이지만 중국인에게 싸움은 싸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인심은 물론 천문, 지리에까지 두루 통달해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한 제갈공명(諸葛孔明)의 말대로 그들에게 있어 싸움이란 지혜와 용기, 전투력 등 모든 것이 총동원되는 극적 모멘트다. 따라서 그 결과에 따라 역사의 흐름이 바뀌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중국은 공간적으로만 스케일이 장대한 것이 아니다. 사람의 수에서도 상상을 초월한다. 세계 최대의 인구를 자랑하는 만큼 한번 싸웠다 하면 몇십만 대군이 동원된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인해전술’을 구사했을 정도이니 그들의 인적 자원은 차원이 다르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양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질적으로도 그러하다. 출중한 인물, 기상천외한 인재들이 부지기수라 그들만으로도 한 나라를 세울 만큼 엄청난 ‘인재 풀’을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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