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은 1973년에 일어났다.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되어 그 진상에 접근하기까지 이 사건에 관해 합치된 결론은 없었다. 1973년 중앙정보부의 공식발표와 1988년 검찰의 공식발표도 ‘최종결론’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자살에 의한 단순사망 사건부터 고문치사 사건에 이르기까지 30년 전 벌어졌던 역사적 비극에 대한 ‘진실탐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신동아’ 2002년 2월호는 김형태 의문사진상규명위원의 ‘최종길 사건 중간보고서(“중정은 고문으로 간첩 만들고 타살 후 증거를 조작했다”)’를 독점 게재했다. 그러자 1973년 당시 최교수를 직접 조사했던 차철권 전 중정 수사관은 3월호 인터뷰(“천지신명에 맹세코 나는 최교수를 죽이지 않았다”)에서 김형태 위원의 주장을 반박했다. 차씨의 인터뷰가 보도된 뒤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추진위원회’ 실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광택 국민대 교수는 이 사건의 진정인 자격으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자료를 열람한 뒤 재반박문을 보내왔다. ‘신동아’는 이교수의 글이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판단, 6월호에 싣기로 결정했다. 사건에 대한 진실게임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신동아’ 지면을 통한 논쟁은 이 글로 일단 종지부를 찍는다.
‘신동아’ 2002년 3월호에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의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에 관한 중간보고서’에 대해 당시 수사관어었던 차철권씨가 반박하는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필자는 이 기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려고 한다. 우선 조사중인 사건의 피조사자 주장을 전면적으로 소개한 것이 이례적이다. 이로 말미암아 자칫 사건의 진상이 그릇되게 인식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관련된 수많은 피조사자들의 향후 진술이 차씨의 주장에 짜맞추어질 위험까지 갖고 있어 걱정스럽다.
필자는 최종길 교수 의문사에 대한 대표진정인 중 한 사람으로서 차씨의 증언이 조사중인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절감하고, 차씨 증언 중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차질없는 노력이 이루어지도록 하려는 일념에서 붓을 들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위원회 관계자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들의 도움으로 필자는 방대한 관련자료를 열람할 수 있었다.
차씨는 ‘신동아’ 인터뷰에서 ‘나는 천지신명께 맹세코 최교수를 뺨 한 대 때린 일이 없고, 더구나 타살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추진위원회’는 물론 국민이 바라는 것은 객관적인 근거에 입각한 진실이다. 필자는 차씨의 글을 읽은 즉시 위원회에 찾아가 자료를 하나하나 찾아 읽으면서 차씨의 증언을 낱낱이 해부했다. 그 결과 차씨는 모두 47회에 걸쳐 거짓증언을 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차씨의 거짓말을 다음과 같은 6개 항목으로 나눠 살펴보자. 1. 혐의사실과 조사동기 2. 조사과정과 조사방식 3. 7층 조사실로의 이동시점과 그 이유 4. 7층에서 최교수가 조사받은 장소 5. 간첩자백 6. 자살과 타살 등이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