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호

월드컵 이후에도 한국팀 맡고 싶다

네덜란드 언론에 밝힌 히딩크의 속마음

  • 입력2004-09-06 1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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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스 히딩크 감독은 지난 5월26일 프랑스와의 평가전을 마친 뒤 네덜란드 ‘드 텔레그라프’ 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했다. 월드컵 출사표나 다름없었던 인터뷰를 통해 히딩크 감독은 한국축구의 16강 가능성을 높이 점치면서, “한국은 분명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한국으로부터 감독을 제의받았을 때 솔직히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한국이란 나라를 잘 알지도 못할 뿐더러, 월드컵에서 네덜란드팀을 이끌고 크게 이겨본 팀이기에 껄끄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한국팀을 맡았고, 한국 국민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 과거 한국축구는 월드컵에 5번이나 진출했지만 한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나는 그러한 기록에 마침표를 찍고 싶다. 나는 한국을 세계축구의 강국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진행과정도 순조롭다.

    많은 한국사람들은 내게 질문한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가장 궁금한 것일 수도 있다. “과연 월드컵 16강에 오를 수 있을까?” 나는 그 질문에 “예스”라고 확실하게 말하지 못한다. 승부의 세계에서 확실한 것은 결코 없기 때문이다. 만약 경기도 하기 전에 이미 승패가 정해져 있다면, 스포츠의 존재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나는 다만 그것을 확률로 따지고 싶다. 내가 처음 한국대표팀을 맡았을 때 그 확률은 미미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 팀은 그 어느 때보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고, 그 확률이 서서히 높아지고 있으며, 지금 시점에서 16강 진출의 가능성은 매우 높다.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한국팀의 첫인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전력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한국선수들의 열정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지시하는 점을 충실히 이행하고자 노력했으며, 한결같이 착하고 순수했다. 한국선수들은 월드컵 그 자체를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 무대에서 뛰기 위해선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자세를 보여왔다. 이러한 한국선수들의 마음가짐에 충격을 받았다.

    실력은 중요하지 않다. 실력이 떨어지면 남보다 더 많은 노력으로 보충하면 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하려는 의지다. 그런 점에서 한국선수들은 세계 어느 나라 선수들보다 우월하다. 그러한 한국축구의 기본 잠재력은 일찍이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으며, 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한국선수들을 대단히 사랑한다. 그들의 순수함은 나를 들뜨게 한다. 준비과정에서 흘러나오는 어떠한 비판도 나는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다. 당신들이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비판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 나는 6월을 기다려 왔다. 지금 세계 유명 축구팀들이 우리를 비웃어도 반박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월드컵에서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월드컵에서 16강에 가고 못 가는 일을 떠나서, 우리는 분명 세계를 놀라게 할 강력한 팀이 되어있을 것이다.



    지금의 전력을 더욱 갈고 다듬어서 6월에 있을 본무대에서 모두 폭발시킬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낮은 전력의 팀들을 격파하면서 얻는 값싼 승리가 아니다. 만약 내가 그러한 길을 택했다면, 그 과정에서 나오는 승리에 한국 국민들은 열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세계 일류의 팀이 되길 원한다면, 더욱 강력한 팀과 싸워나가야 한다. 질 때 지더라도 두려움을 떨쳐내고 배우고자 하는 자세로 그들과 일대일로 부딪쳐야 한다. 한국 국민들은 그러한 준비에서 나오는 패배에 실망할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결국 그러한 패배 뒤에 오는 값진 영광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월드컵에서의 승리는 내가 원하고, 또한 한국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단순히 이번 월드컵 무대만을 위해 한국팀에서 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궁극적으로 한국축구가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춘 강력한 팀으로 가는 길에 작은 기여를 하고 싶다. 한국축구의 밝은 미래에 내가 약간의 보탬이라도 된다면…. 과거의 한국축구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변방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속한 나라이며, 내가 이끌고 있는 우리의 나라다.

    비록 국적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그 문화의 차이가 다르지만, 내가 선택한 나라이며, 또한 가능성이 있는 나라다. 남들이 뭐라 떠들던 나는 내가 생각한 길을 갈 것이며, 궁극적으로 이는 성공으로 이어질 것으로 확신한다.

    한국 국민들이 원하는 16강이 나의 바람은 아니다. 내게는 그 이상의 바람이 있다. 만약 6월을 끝으로 내가 한국을 떠나게 될지라도, 한국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으면 한다. 그것이 영광스러운 이별이 될 수도, 불명예스러운 퇴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나는 한국팀의 감독이고, 앞으로도 한국팀의 감독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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