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 “동해선 연결 합의하면 상설면회소 설치하겠다”
- 동해선 연결, 남북 공동발전 담보하는 성장엔진
- DJ 햇볕정책 지지. 그러나 원칙 없는 지원이 국민 불신 낳았다
- 국익우선, 권력분산에 동의하는 세력과 연대할 계획
선거가 한나라당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자마자 정치권은 돌연 정계개편 논란에 휩싸였다. 박대표는 여기서도 논의의 중심에 서 있다. 그 스스로 제3의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민주당 일각에서는 박대표를 적극 영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런 저런 뉴스 모두가 한달 남짓한 기간 벌어진 것들이다. 박근혜 대표의 방북은 빅뉴스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국 상황은 박대표의 방북을 차근차근 음미해볼 여유를 빼앗아가 버렸다. 뒤 이어 정치권은 선거판으로 달려갔고 전 국민은 붉은 티셔츠를 입고 축구 응원장으로 달려갔다.
이처럼 뒤죽박죽 엉킨 뉴스의 실타래를 다시 풀어보고자 하는 것이 박대표를 만난 이유다. 그는 방북을 마치고 대단한 성과들을 들고 판문점을 거쳐 돌아왔다.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금강산댐 공동조사, 동해선 연결 및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연결사업 추진 합의 등등 하나하나가 평상시였다면 대단한 얘깃거리가 될 만한 소식들이다.
동시에 의문도 꼬리를 물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왜 굳이 박근혜 대표를 고집해 만났을까? 전용기를 보내 ‘모셔오고’ 판문점을 통해 정중히 ‘돌려보낸’ 저의가 무엇일까? 그리고 두 사람은 과연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등등. 하지만 박대표의 방북 뉴스가 파묻히면서 의문들도 덩달아 증발해버렸다.
이래도 되는 걸까. 남과 북을 오랫동안 통치해온 권력자의 2세이자, 한 사람은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로 군림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도 유력한 대선주자이다. 이들의 만남과 그 속에서 이뤄진 합의를 쉽게 기억의 저편에 묻어버려도 되는 걸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박대표를 만난 날은 6월14일 저녁, 월드컵 한국과 포르투갈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가 치러지던 시간이었다. 약속장소 바깥에는 대형TV가 설치돼 있고 그 주변에 어김없이 한국팀을 응원하는 인파가 몰려있어 시끄러웠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나라 만들자
-월드컵 열기가 대단합니다. 전 국민이 붉은악마 응원단이 돼 대표팀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국민적 열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우리 국민들 속에 잠재한 폭발적 에너지가 지금껏 분출할 통로를 못 찾다가 이번 월드컵으로 표출된 것 아니겠어요? 이런 잠재력을 잘 이끌어내는 게 바로 정치권의 할 일이에요.”
-한국을 16강 대열로 끌어올린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논의가 분분합니다. 정치권에서도 히딩크의 리더십을 따라 배우자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축구에 필요한 기술을 깊이 연구해 이를 근거로 지도력을 발휘했는데, 결국 지도력이란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겠지요. 목표와 비전을 갖고 강력하게 추진해나가는 히딩크 감독의 실천력,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보지 못한 것들이죠.”
-비전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박대표의 국가 비전은 무엇입니까?
“다음의 네 가지를 꼭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내가 바라는 국가비전으로 삼고 있어요. 첫째는 경제는 성장했고 시민의식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지만 교육제도며, 인사제도며, 의료 보건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어요. 이런 거창한 나라를 시스템에 의해 움직여야지, 사람에 의존해서는 제대로 운영할 수가 없어요. 능력있는 사람이 적재적소에 들어가 그 능력을 발휘하는 시스템. 인사청문회를 실시해 제대로 운영함으로써 대통령도 장관도 때가 되면 바뀌지만 누가 와도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일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경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아무것도 없던 개발시대에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끌고 갈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정부가 간섭할 수록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경제활동의 모든 것을 민간에 맡기고 정부는 공정한 시장질서 유지에만 관심을 두자는 겁니다. 정부는 기업의 나쁜 관행이 나타나지 않도록 감시하고 제재하는 역할에만 머물러야지 이런 사업해라, 이렇게 기업을 통합해라 하는 간섭을 해서는 안된다고 봐요.
앞으로 무엇을 먹고 사느냐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장엔진을 개발해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프라 구축은 수익이 안나는 일이라 민간이 할 수 없어요. 그거야말로 정부가 나서야 할 일이에요. 21세기 성장엔진은 우리나라를 동북아 물류기지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5월 북한에 가서도 남북이 공동발전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꼭 성사시키자고 제의한 거예요. 남북을 연결한 철도가 유러시아 철도에 연결되면 한반도는 물류기지가 될 겁니다. 이는 민간이 못하는 일입니다. 물류기지에는 인프라가 갖춰져야 합니다. 요즘 물류기지는 단순한 운송기지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곳 노동자들이 외국어를 잘하냐, 외국인이 살기에 얼마나 편리하냐도 따져야 합니다. 최대한 정부규제는 없애야 합니다.
셋째는 남북문제입니다. 어떻게든 평화를 정착시키고 남북한 공동발전의 틀을 마련해야 합니다. 평화정착이 안되는데 통일이 가능하겠어요? 연방제니, 국가연합이니 하는 게 무슨 소용이에요. 평화정착과 남북 공동발전이 중요합니다. 남북한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물류기지 건설도 그래서 필요한 겁니다.
넷째, 동북아의 물류기지를 한반도에 만드는 데는 남북한의 노력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협조도 필요하거든요. 반드시 그것이 아니더라도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문제에도 적극 참여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도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국제적 문제에 도움을 주는 일에 배타적이지 않도록 적극 참여시켜야 합니다.
-동북아 물류기지 건설프로젝트는 대단히 구체적인 사업이라 남북한 정부차원의 합의가 있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번 방북에서 동북아 물류기지 건설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에게 의견을 물어봤습니까? 아울러 우리 정부당국은 어떻게 생각하던가요?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이 얘기를 꺼내면서 이것만 잘 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만약 우리가 협조하지 않아 물류기지가 다른 나라로 가면 얼마나 억울한 일이냐며 우리가 같이 잘 살기 위해서는 물류기지는 꼭 성사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에 김위원장은 ‘아 그거 좋은 생각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래요. 그러면서 ‘동해선 철도 연결에 관심이 많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한 걸음 더 나가 ‘이 철도는 러시아를 거쳐 유럽대륙까지 연결되니 러시아와 유럽국가, 남북한 등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협의기구를 만들자. 그러면 컨소시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자 ‘그것 좋다. 남쪽에서 찬성하면 그 협의기구 우리도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김위원장이 어느 정도 관심이 많으냐 하면, 내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남북의 중앙 지점에 이산가족 상설면회소를 설치하자’고 제의했어요. 100명씩 만나 어느 세월에 이산가족이 다 만나냐, 연로한 분들이 한을 품고 돌아가시게 생겼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김정일 위원장이 ‘맞다’면서 ‘그런데 조건이 있다’고 그래요. 동해선 철도 연결에 남쪽에서 합의해줘야한다는 거죠. 그럴 정도로 관심이 있었어요.”
-남북한이 철도로 연결되면 휴전선 근처의 군인들을 수십km 후방으로 이동배치시켜야 하는 등 문제가 복잡합니다. 그래서 철도연결은 통일의 마지막 단계지 첫번째로 풀 문제는 아니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김위원장이 관심은 많았어요. 그리고 북한도 이런 것을 통해 경제문제를 타개할 수 있고요. 그럴 만한 성장엔진이 많지 않거든요.”
푸틴도 동해선 관심 높아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연결을 전제로 한 동해선 연결이라면 러시아 쪽과도 의견교환이 됐다고 봐야 합니까?
“러시아 푸틴 대통령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우리 정부 당국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북한에서 돌아와서 통일부에도 얘기를 했어요. 김정일 위원장이 동해선 연결과 면회소 설치에 적극 찬성했다고 하니까 우리 정부의 대답도 같았습니다.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죠. 이번 방북에서 내가 네 가지를 제의했습니다.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설치와 금강산댐 남북한 공동조사, 6·25전쟁 때 행방불명된 가족들의 생사확인, 그리고 남북한 철도사업입니다. 그 가운데 이산가족면회소와 생사확인은 적십자를 통해 하려고 하고 있어요. 금강산댐 공동조사와 남북 철도 연결은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를 통해 하려고 하고 있고요.”
박의원은 “혹시 참고가 될까싶어 이걸 가져왔다”며 서류봉투에서 A4용지 두 장짜리 문건을 보여줬다. ‘박근혜 녀사에게’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이 문건은 북한의 아태평화재단이 유럽코리아재단을 통해 박대표에게 보낸 서신이었다. 서신에는 북한이 금강산댐의 물을 방류하게 된 이유와 배경, 그리고 같은 시기 남한 당국에도 통보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박대표는 “지난번에 금강산댐 물 방류에 대해 한국정부에 공식 공문을 보냈지만 내가 제의한 사람이니까 나한테도 북한 아태재단에서 답을 보내온 것 같다”고 말했다.
-박대표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신뢰감을 받은 것 같지만 많은 국민들은 여전히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불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실제 만나본 김정일 위원장은 어떤 사람이던가요.
“김정일 위원장과는 3시간 정도 만났습니다. 그 중 한 시간은 단독회담이었어요. 김위원장은 가식이 없었어요. 나도 사명감을 갖고 북한을 방문했어요. 내가 속한 상임위가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여서 평소에도 남북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김위원장은 거침없이 답변 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가령 이산가족들이 지금처럼 만나면 어느 세월에 다 만나겠느냐, 상설면회소를 설치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거침없이 대답해요. 남북한이 같이 잘사는 방향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하면 ‘내 생각도 그 생각이다’라고 답했어요. 끊임없이 얘기가 이어졌어요. 7·4 남북공동성명은 아버지(박정희 전대통령)와 김일성 주석 대에 발표된 것 아니에요? 만날 대결만 하다가 평화통일의 원칙이 그때 비로소 만들어졌는데 당시로는 대단한 결단이었지요. 하지만 그 원칙들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 부친들이 못한 것 우리 대에는 실천되도록 하자고 얘기했어요. 그러니까 좋다고 대답했어요. 그래서 내가 또 한번 확인하려고 ‘꼭 이뤄내겠다고 약속하시겠죠’ 하고 물으니 ‘약속합니다’ 그러더라고요.”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굉장히 중요한 약속들을 많이 했군요.
“네. 그리고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얘기를 했어요. 남북이 평화의 길로 가려면 신뢰가 구축돼야 하는데, 남측이 자극한 것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회담이나 약속은 꼭 좀 지켰으면 좋겠다, 그러지 않으면 남쪽에서도 약속이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북측을 신뢰하지 않는다고요. 이번에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담이 결렬된 것도 북한 쪽에서야 남측이 금강산댐의 위험을 과장 보도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회담장소에 일단 나와서 그 문제를 따져야 한다고 얘기했어요.
-박대표의 방북에 대해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남한의 전직 대통령 딸과 북한의 전주석 아들 사이에 개인적 화해만 하고 온 것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정부 당국간 화해가 개인적 화해에 우선해야 한다는 거죠.
“우선은 누구라도 물꼬를 터야 하잖아요. 미국에서도 북한에 특사를 보내지 않나요. 나는 특사로 간 것은 아니지만 국회의원으로서, 정치인으로서 남북평화를 증진하는 데 역할을 해서 잘되면 좋은 것 아닌가요. 정부가 대화하다가 끊어지면 그거 뚫릴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는 것 아니에요? 그렇게 좁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지요.”
박대표는 잠시 말을 멈춘 뒤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 때 평양산원에 기증한 의료기기에 대해 얘기했다.
“그쪽에 평양산원이라고 큰 병원이 있는데 6·15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이곳에 의료기기를 기증했어요. 이번에 가 보니까 의료기기가 망가진 채로 쓰지도 못하고 있는 거예요. 왜 이렇게 방치돼 있냐고 하니까 거기서는 손을 못 본대요. 그래서 돌아와 정부당국에 이 사실을 얘기했어요. 얼마 전 의료기 고치는 일행이 중국을 거쳐 북한에 다녀온 것으로 압니다. 이런 식의 교류로 남북을 연결해 나가는 거죠.”
-전용기로 입북하고 판문점으로 돌아왔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환대가 대단했습니다. 그 배경이 무엇입니까?
“이번에 나는 유럽코리아재단 이사 자격으로 갔지만, 그 전에도 방북한 우리 통일부장관을 통해 김위원장이 ‘박의원을 만나고 싶다’ 또 여성 민간단체가 갔을 때도 ‘박의원과 함께 올 수는 없느냐’고 얘기했다고 해요. 또 외국에 나갔더니 그곳 한국 대사가 북측 인사로부터도 김정일 위원장이 나의 방북을 바란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해요. 또 얼마 전 도지사 한 분이 방북했는데 그분이 오셔서 ‘그쪽에서 박의원의 방북을 원하는데 한번 가보라’고 해요. 그런 얘기만 듣고 있었어요. 가야 할일이 있어야 가는 거지 무조건 가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러던 차에 장 자크 그로하 주한유럽상공회의소 의장으로부터 ‘북한이 박의원을 초대하는데 가겠느냐’는 제안이 왔어요. 가면 보람있는 일을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가겠다고 했지요. 김위원장은 만찬장에서 ‘평소 만나고 싶어 여러 차례 얘기를 했는데 유럽코리아재단을 통해 만나게 될 줄은 전혀 생각 못했다’며 반가워했습니다.”
-중국을 통해 귀국하기 위해 항공기 예약까지 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판문점으로 오게 됐나요?
“원래 베이징을 통해 오는 것으로 예정돼 있었는데 만찬 말미에 김위원장이 ‘북경을 통해 가야할 다른 계획이 있냐’고 물어요. 그래서 그런 건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판문점을 통해 가라. 돌아서 갈 게 뭐 있냐’고 제안했어요. 좋잖아요. 그렇게 갑자기 그 자리에서 결정된 거예요.”
-판문점을 통해 귀환한 것에 대해 거절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판문점이 아무나 갈 수 없는 장막인데 너무 손쉽게 응한 것은 아닌가요.
“왜 그래야 하나요? 물론 판문점은 아무나 오갈 수 없는 곳입니다. 북쪽에서 허가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남쪽에서도 허가를 얻어야 그곳을 통해 귀환할 수 있죠. 만찬장에서 김위원장의 지시가 있자 실무자들이 분주하게 절차를 밟았습니다. 남한 당국에도 통보했고요. 나는 나대로 서울 사무실의 비서들에게 전화를 걸어 판문점을 통해 돌아가게 됐으니 통일부에 확인해 달라고 지시했어요. 판문점을 통해 내일 11시 반쯤 가게 될테니 통일부의 허가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에 북한 당국과는 별도로 연락을 한 거죠.”
“북·러 관계 개선 도와줄 생각”
박근혜 대표는 국내에서 몇 안되는 러시아 전문가다. 한러문제연구원 원장으로 러시아 현역의원과 장관 등 러시아 쪽 지인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이번 방북의 배경에 북·러 간의 현안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박대표에게 모종의 부탁을 하려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하지만 박대표는 “러시아와 관련된 얘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박대표는 러시아 전문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이 박의원을 초청한 것은 박의원에게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을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글쎄요. 구체적인 요청은 없었어요. 평소 나는 러시아 국회의원이라든가 감사원장 등 정부의 유력한 분들을 만나고 유대를 가져왔습니다. (북·러관계 개선을 위한) 역할을 할 수는 있어요. 유럽국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유럽상공회의소와도 유대가 있으니까, 만약 북에서 요청한다면 도와줄 생각입니다.”
발표는 내게 위임
-직접 가보니 북한의 형편이 어떻던가요?
“그래서 제가 남북이 같이 잘사는 문제를 얘기한 거예요.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에 앞서 김용순 비서하고도 회담을 했거든요. 거기서도 남북 철도문제를 먼저 얘기했어요. 그러니까 그 고위관리가 고맙다고 하더군요.”
-경의선 문제를 상의할 장관급 회담도 중단된 상태입니다. 회담 중단의 이유가 주적문제인데요. 우리는 문민우위 국가입니다만 저쪽은 선군(先軍)정치란 말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군사분계선 내에서는 군이 우위에 있다는 거죠. 김용순씨 등 북한 당국자들은 철도를 연결할 생각이 있어도 군부에서 작전목적상 불가능하다고 하면 중단되는데, 경의선 문제는 그래서 1년 이상 진척이 안되고 있습니다.
“철도문제는요, 김정일 위원장하고 직접 얘기한 거예요. 김위원장도 좋다고, 합의한다고 약속했어요. 마지막에 이것을 어떻게 발표할 것이냐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어요. 나는 합의사항을 발표했는데 북에서는 그것이 아니라고 하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발표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으니 김정일 위원장은 ‘지금 얘기한 그대로 발표하면 된다’며 (발표를) 내게 일임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귀국하자마자 기자회견에서 전부 다 얘기한 거죠. 김위원장은 자신의 말이 기자회견을 통해 전부 발표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저하고만의 약속이 아니라 남쪽 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약속한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약속이 지켜질 것으로 봐요. 내가 김위원장에게 약속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동해선이 뚫리게 되면 경의선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경의선은 경의선대로 해야죠. 김정일 위원장이 개성공단에 관심이 참 많았어요. 그래서 유럽코리아재단에서 -지금 당장 할일은 아니지만- 앞으로 북한 주재 유럽상공회의소 같은 것을 평양에 설치하는 것을 구상중이라는 얘기를 김위원장에게 했어요. 투자유치나 경제협력을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요. 그런데 김위원장은 그것은 조금 있다가 하자고 하더군요. 먼저 개성공단을 통해 시장경제를 검토해보고 그게 잘되면 사무소도 설치하면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얘기였어요. 덧붙여서 하는 얘기가 ‘개성공단은 남쪽에서 한다더니 소식이 없어요’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개성공단 하려면 경의선 꼭 연결해야 하거든요.”
-박대표가 생각하는 통일 마스터플랜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통일을 이뤄야 할까요.
“남북문제는 국민적 공감대 위에서 추진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민이 좋다고 인정하고 마음으로 공감해야 정부가 추진해 나갈 수 있다는 거죠. 대다수 국민들은 북한에 대한 지원에 반대하지 않아요. 하지만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데 대한 불만, 이런 것 때문에 등을 돌리게 되는 거죠. 원칙을 갖고 남북문제를 하나하나 제도화해야죠. 이산가족 문제도 한번 만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상설면회소를 설치해 일상화해야 합니다. 장관급회담도 약속을 하면 꼭 지켜야지요. 하나하나 제도화해 나갈 때 신뢰가 구축되고, 신뢰가 쌓이면 어려운 일도 해나갈 수 있잖아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공감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원칙은 찬성하지요. 왜냐하면 남북문제의 해결방안은 두 가지예요. 전쟁으로 끝을 보느냐, 아니면 어떻게든 대화를 통해 평화정착을 이룰 것이냐. 그렇지만 어떤 경우든 전쟁은 있을 수 없거든요. 그러면 긴장완화·평화정착으로 가야 하는데, 저는 이 정책은 다음 정권에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햇볕정책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은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구체적 사례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서로 신뢰를 구축할 수 있게 제도화하지 않고 정부가 너무 서둘렀어요. 성과를 내기 위해 서두르는 바람에 원칙이 지켜질 수가 없었죠.”
-햇볕정책이 자리잡지 못한 데는 북한의 책임도 있지 않을까요.
“서로에게 책임이 있는 거죠. 원칙은 우리가 지키자. (상대가) 안 지키면 서로 기다리면서 어떻게든 원칙을 지키겠다는 행동통일이 안된거죠.”
탈북자 다 받아들여야
-6·15공동선언문 2항이 최근 쟁점이 됐습니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했다’는 것이 합의문 내용인데,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관훈토론회에서 ‘북한 측이 공동선언 2항을 근거로 남쪽에서도 연방제에 공감하고 있다며 정치공세를 펼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이총재의 생각은 무엇이냐’고 묻자 ‘그렇다면 폐기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박대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는 그 논쟁을 보면서 왜 그걸 갖고 싸우는지 이해를 못하겠어요. 낮은 단계의 연합인지 연방인지 그것 백날 논의해봤자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탁상공론이지요. 평화정착이 이뤄지지 않으면 연방제든 연합제든 의미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평화정착과 남북의 공동발전이라는 공동목표를 세워놓고 신뢰구축에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14일) 신문에 중국의 우리대사관에 북한 난민들이 진입하다 중국공안과 충돌한 사건이 보도됐습니다.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해결방안이 있다고 보나요.
“탈북자 문제는 당장 탈북한 사람을 우리 정부가 다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기적으로는 북한의 경제난 때문에 저런 일이 생기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북한 경제가 발전하도록 해야겠죠. 나중에 통일이 됐을 경우에도 통일부담이라는 게 어마어마할 테니까요. 남북이 공동 발전하는 큰 프로젝트가 아까 얘기했던 남북철도사업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김정일 위원장이 처음에는 박대표의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들어주었지만 유럽상공회의소 사무소 설치는 나중에 하자며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분명히 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유럽상공회의소 설치 건 외에 안된다고 한 것은 또 무엇인가요?
“유럽상공회의소 설치 문제는 개성공단에서 먼저 시장경제의 법칙을 익히고 나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한 거지 안한다고 한 것은 아니었어요. 답변을 유보한 것은 김위원장의 답방문제였어요. 6·15선언에 답방하겠다고 약속했고, 한국 대통령이 방문을 했으면 그쪽에서도 답방을 해야 평화정착에도 좋은 것 아니냐고 하니까 ‘그건(답방) 하겠다. 그러나 적절한 시기에 하겠다’고 대답하더군요.”
-그 ‘적절한 시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 같습니다. 직접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얘기를 들었으니까 감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답방할 의사는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구체적으로 답방의 적절한 시기를 언제쯤으로 보는 것 같던가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환경도 문제가 되겠지요. 지금 한나라당과 그러고 (대립하고)있지 않습니까?”
박대표에게 북한의 인권문제 등 남북한 간에 갈등의 소지가 될 만한 이슈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박대표는 “대화를 하려고 마주앉아서 인권이 어떻고 하면 거기서 다 끝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평화정착과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대화 상대방으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남한 내 보수층의 문제제기에 대해서도 의견을 물어보았다. 박대표는 “지금 북한의 지도자인 이상 대화상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가령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사람으로 알려진 세종연구소의 이종석 박사가 며칠 전 동아일보에 ‘김위원장도 약속을 지켜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더군요. 6·15공동선언에서 답방을 약속했으면 와야하지 않나요. 적절한 시기라고 답방시기를 막연하게 표현한 것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대통령이 갈 때도 여건은 불확실했습니다.
“나는 답방약속이 꼭 지켜지리라고 봐요. 한국에 오면 ‘박정희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겠다, 나는 그게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한 것에 비추어 분명히 답방할 의사가 있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언제까지 오라고 우리가 강요할 문제는 아니고 그쪽에서 봐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시기에 오면 되는 거죠.”
-김위원장과는 몇 차례 만났습니까?
“한 번 만났습니다.”
-두 번 아니었습니까? 세 시간 만찬 외에 별도의 단독회동을 가졌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딱 한번이었어요. 한 시간은 단독회담이고 두 시간은 만찬을 겸해서였습니다. 그게 다 입니다.”
-이번 방북기간 중 북한 측으로부터 김일성 주석의 묘소를 참배하라는 제의는 없었습니까?
“없었어요. 어떻게든 내가 평양에 머무는 동안 마음의 부담을 느끼지 않고 편안히 머물다 가는 것이 자신들에게 중요하다더군요. 부담 갖지 말고 편안하게 있다 가라고 하더라고요. 아무튼 저한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가난을 몰아낸 지도자라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일성 전주석이나 북한 지도자들은 북한 주민을 가난에서 구해내지 못했습니다. 주민들이 영양부실로 체격이 왜소해졌고요. 박대통령의 따님이라면 이런 점에 대해 북의 실정을 공박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나는 미래지향적으로 일을 합니다. 국민들은 항상 마음 속에 불안감을 안고 삽니다. 특히 남북문제에 있어서는요. 그걸 떨쳐버리고 평화로운 나라에 살아보고 싶다는 것이 국민의 염원입니다. 또 이산가족들은 살아 생전 피붙이를 만났으면 하는 게 소원입니다. 정치인은 국민을 대변해야 할 사람이 아닌가요. 조그만 일이라도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풀어주고….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과거 일을 얘기하는 것이 국민들 평화롭게 사는데 도움이 되겠어요? 도움되는 일이라면 하죠. 국민이 평화스럽게 살고 원하는 가족 만나고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그것을 위해 일하는 거지, 국민이 편안하게 사는데 도움이 안되는 얘기를 해서 뭐하겠어요.”
국민 지지 있으면 출마
-이번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뜻이 있으십니까?
“아니 뭐 그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거지요.”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 입니다. 60만 국군을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이냐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안보야 가장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대통령이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것은 첫 번째 임무입니다. 가장 큰 사명이지요. 그건 당연하죠. 남북문제 해결에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 역시 포함되는 얘기입니다.”
-대결 논리보다 어떻게든 북을 안고 가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신뢰를 구축하고 남과 북이 서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류한다고는 하지만 서로 이해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자꾸 만나면서 이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방북하실 계획이 있습니까?
“지금은 없죠. 그러나 나라를 위해 할 필요가 있다면 할 수 있죠.”
이쯤에서 국내 정치문제로 질문의 방향을 돌려보았다. 박근혜 대표는 방북으로도 화제가 됐지만 앞으로 상당기간 정계개편의 한 축으로도 만만치 않은 역할을 할 전망이다. 벌써부터 민주당 일각에서는 박대표를 적극 영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남북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느냐는 정치세력의 성향을 결정짓는 기준이라고 합니다. 앞서 국민의 지지가 있으면 대권에 도전할 수 있다고 했는데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 박대표의 뜻에 공감하는 세력과의 연대나 제휴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함께 정치를 하고 싶다 생각하는 분들은 국익을 우선으로 하는 분들입니다. 맨날 당리당략에 얽매이고 정권을 잡기 위해 다투는 그런 모습이 너무 싫어요. 국익우선이라는 원칙을 두고 얘기하면 자연스럽게 남북문제에 대해서도 얘기하게 됩니다. 어쨌든 전쟁을 피하고 평화정착에 뜻을 같이하는 세력이 되겠죠.”
-이번 지방선거 결과 한나라당의 정당지지도가 전국적으로 50%를 넘었습니다. 우리 헌정사에서 한 정당이 투표에서 얻은 전국 지지도가 50%를 넘은 경우가 흔치 않은데요.
“이번 투표율이 48%밖에 안됐죠. 거기에서 50%가 되는 거니까, 전체로 보면 3분의 1쯤 되지 않을까요? 이번 선거의 최대이슈는 부정부패였습니다. 연일 부패사건이 터지니까 투표에서도 그렇게 나타난 거죠.”
박대표는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난 선거결과에 그리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였다. 우리 사회가 보수와 진보의 양단으로 나뉜 것도 아니고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보수층이 득세한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부패문제로 현정권에 실망한 민심이 한나라당으로 쏠렸을 뿐, 그나마도 다수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대선이 6개월 남았는데 국민들의 마음을 잡을 비장의 무기가 있습니까?
“부정부패하겠다고 마음 먹고 부패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패방지를 위해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는 기구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기구가 없어서 부패척결이 안된 것도 아닙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나는 부패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어야 가능한 겁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돈 드는 정치에서는 부패방지는 불가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야말로 깨끗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부양할 가족이나, 자녀가 있나. 부모님도 다 그렇게 총탄에 돌아가셨으니 말예요. 저는 잃을 것도 없고 챙길 것도 없어요. 아까 내가 말한 비전대로 그런 나라 한번 만들고 싶다, 그게 꿈이예요. 그 이상 다른 것 없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중 어느 분을 더 존경하세요?
“두분 모두 제게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어머니는 근면하고 겸손하게 사는 것이나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배려라든가 그런 점에서 영향을 많이 주셨어요. 아버지는 국가관이나 안보관, 세계를 보는 법 등에서 영향을 많이 주셨죠.”
-어떤 사람은 박대표의 장점을 얘기하면서 “총리 10년 하는 것보다 퍼스트레이디 5년 하면서 훨씬 더 많을 것을 보고 배운다. 그런 면에서 박대표는 다른 대선후보보다 자질을 갖추었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실감있게 와 닿지 않습니다. 그냥 대통령을 뒤에서 따라다니고 테이프 커팅하고 그런 정도 아닌가요?
“우선 아버지 중심으로 세상을 살게 돼요. 따라서 모든 대화가 아버지를 통해 진행되죠. 식탁에서의 대화도 ‘어제 어느 나라의 하원의장이 왔는데 우리나라 문제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더라, 그래서 내가 이렇게 답을 했다’고 말씀하시죠.
또 남쪽 지방에 가뭄이 났는데 어떻게 대처할지, 전자산업을 일으켜야 하겠는데 그건 어떻게 할까 등등 많은 얘기를 듣게 됩니다. 자연히 저는 아버지 입장에서 생각하게 됩니다. 항상 그 안에서 살게 되는 거죠. 그리고 외국 손님이 오면 만찬 때 제가 호스테스로 나서서 그분들 하고 얘기를 나누게 되죠. 때문에 아버지가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 때문에 애쓰는가를 알게 되는 거죠.”
박대표에게 “현역정치인들 가운데 박대통령과 유사한 정치적 의식을 갖고 있는 분이 있느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이에 대해 박대표는 “글쎄요” 하며 웃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런 분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정치를 함께 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그럼요”라며 크게 동의했다.
-지난 5월말 이인제 의원을 만나셨는데 얘기가 잘 통하던가요.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언론을 통해서도 그렇게 느꼈지만 나와 통하는 점이 많았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두 분이 이원집정부제에도 공감하신 것으로 아는데요.
“권력분산에 대해서는 평소에도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미래연합에서 내세우는 정강정책에는 대통령 4년 중임제에 정부통령제를 표방했습니다. 아직까지는 우리 당의 생각일 뿐이고 논의가 필요하겠죠. 우리나라에는 총리가 있지만 제 역할을 못하고 있잖아요. 책임총리를 두고 무슨 책임을 지워 어떤 일을 맞도록 하느냐, 정부통령제로 하느냐, 아니면 이인제 의원이 말한 안으로 하느냐 논의해 볼 수 있죠. 논의를 통해 가장 바람직한 권력구조를 만들어야죠.”
-한나라당이 전국을 석권했는데요, 나머지 정치인들 간의 합종연횡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권력분산에 동의하고 평화적인 남북문제 해결에 동의하는 분들을 묶어볼 생각은 없으십니까?
“정계개편의 뜻을 같이 하는 사람, 우리 당에서 내세우는 국익우선의 정강정책에 찬성하는 분들이라면 적극적으로 영입하려고 합니다.”
-현재까지는 소극적이셨는데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정계개편을 주장하고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는 정신이 없었거든요. 창당하자마자 1주일만에 지방선거 치렀죠, 그에 앞서 창당 발기인대회 했죠, 북한에 다녀왔죠…. 이제부터는 할 겁니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만날 겁니다.”
-혹시 염두에 두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그건 내가 일방적으로 말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상대가 있는 거니까….”
-그럼 이렇게 물어봐도 됩니까? 물 밑에서는 교감이 이뤄지고 있냐고.
“좀 있긴 있죠.”
여담으로 박대표에게 여성 대통령을 예언한 무속인들에 관해 들어보았느냐고 물어보았다. 박대표는 “잡지 등에 기사가 난 것을 보아 알고 있다”고 답했다.
-94년에 김일성 사망을 예측한 무속인 가운데 심진송씨가 있는데 혹시 만나본 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 역술인이 차기 대통령은 여성, 혹은 여성성을 가진 분이 된다고 예언했습니다.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세요. 하하.”
인터뷰 말미 박대표의 동기에 대해 물어보았다. 다시 마약복용 혐의로 구속된 막내동생 지만씨의 비극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시종 당당하던 박대표도 동생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안타깝죠”라며 말을 줄였다.
“일전에도 면회를 갔었는데 너무 어린 나이에 충격을 받아서…. 이제는 사업도 안정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안타까워요.”
인터뷰를 마치고 박대표가 자리를 뜬 직후 한국 축구대표팀의 박지성이 결승골을 터뜨렸다. 순간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한반도는 붉은 에너지가 용솟음치는 용광로로 변해버렸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국민적 열광과 흥분, 혼을 쏟아 집중하면 뭐든 이루고 마는 저력의 민족. 과연 이 민족을 이끌 지도자는 누가 될 것인가. 박대표는 인터뷰 도중 여러 곳에서 자신이 그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을 숨기지 않았다.
과연 박근혜는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가 넘어야 할 고비들은 앞으로도 무수히 많고 정치권은 또 어떤 식으로 요동을 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