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대의 인터넷 서점 예스24가 또 한번 ‘사고’를 쳤다. 업계 2위인 와우북을 합병, 시장점유율 60%, 총매출액 700억원 규모로 몸집을 불린 것. 올들어 예스24는 교보문고의 매출규모에 접근하는 등 일취월장의 면모를 보여왔다. 한 중소 건설업체의 젊은 사장이 ‘재미로’ 벌인 사업이라기엔 그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그런 와중에 한 벤처기업이 두 가지 큰일을 해냈다. 몇 년 전처럼 벤처기업이 한창 잘 나가던 시절이라면 귀담아 들을 뉴스가 못되겠지만, 요즘처럼 테헤란밸리에 삭풍이 몰아치는 불황기에는 분명 눈길을 끌 만한 소식이다. 모든 인터넷 기업의 양대 현안인 ‘수익성 찾기’와 ‘불황 타개’를 해결해가는 모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화제의 기업은 예스24(yes24.com). 인터넷의 문외한들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할인경쟁과 도서정가제 논란 등으로 오프라인 서점들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온라인 서점 중에서 명실공히 1위를 달리는 벤처기업이다. 1위도 그냥 1위가 아니다. 지난해 예스24의 매출액은 515억원. 매출 2위인 와우북이 200억원, 3위 알라딘이 170억원에 그친 사실을 감안하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셈이다.
올해는 사정이 또 달라졌다. 예스24는 지난 1월 하루 매출 4억원을 돌파하는 등 월 85억원의 매출을 올려 교보문고 본점 온·오프라인의 총매출액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교보문고 본점 매장의 1월 매출을 60억원, 인터넷 매출을 24억원으로 추산한 출판유통업계의 집계를 토대로 한 것. 교보문고가 인정한 집계는 아니지만, 온라인 기업이 그 분야의 국내 최대 오프라인 기업 매출액과 대등한 수준에 이른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깜짝 놀랄 일은 또 있었다. 5월13일 예스24는 2위 업체인 와우북과 합병을 위한 최종계약서에 서명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시장점유율 60%, 총매출액 700억원(지난해 기준) 규모의 초대형 인터넷서점 업체가 탄생하게 됐으며, 향후 인터넷 기업들의 활로 모색에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예스24와 와우북은 주식을 1대 5로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합병했다.
승자(勝者)의 여유?
예스24 이강인(李康因·44) 사장을 만나러 가는 길은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그가 건설회사 사장이라는 자리를 마다하고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나이 마흔에 인터넷회사를 차린 ‘괴짜’인데다, 거품이 빠진 인터넷업계에서 진짜 강자로 군림하게 된 비결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온라인 서점업계는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있고, 도서정가제 입법추진과 관련해 오프라인 서점들과도 대치상태에 있어 이런저런 얘깃거리가 많을 듯했다.
하지만 예스24 사무실로 접어드는 순간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스포타임’이라는 헬스센터 건물 지하의 피자 매장 옆에 자리한 예스24는 서점가의 ‘공룡’ 교보문고를 위협하는 국내 최대의 인터넷 서점이라기엔 너무도 작고 초라했다. 그 한켠에 있는 사장실에서 이강인 사장은 티셔츠 차림으로 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무척 바쁘겠습니다.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데다 합병까지 했으니…” 하고 의례적인 인사를 건넸다. 인터넷 기업 CEO치고 바쁘지 않은 사람이 있을 리 없다. 대부분의 벤처 CEO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일에 파묻혀 지내는 걸 미덕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별로 바쁘지 않습니다. CEO는 좀 게을러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되도록 결재도 실무자에게 맡기고 저는 한가하게 지내려고 노력합니다. CEO가 바쁘면 회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아요.”
그는 인터뷰 이틀 후인 6월10일에 열릴 한국과 미국의 월드컵 경기 티켓을 어렵게 구했다면서 “대구에 내려가 응원할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흥분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이처럼 여유를 갖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꼭 4년 전인 1998년 6월 창업한 이후 밤을 새는 것은 기본이었고, 밥 먹으러 갈 시간도 없어 하루 세 끼를 햄버거로 때우며 책더미를 옮기고 포장하고 배송하는 일에 매달렸다. 그런 고생이 있었기에 지금은 승자의 여유를 갖게 된 것일까.
-그러다가 2, 3위 업체들이 턱밑까지 쫓아오면 어쩝니까.
“하하, 걱정없습니다. 저희와 2, 3위 업체들의 격차는 이미 상당히 벌어져 있어요. 2위 기업을 인수했기 때문에 자만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저희의 상대가 못됩니다. 콘텐츠만 해도 우리가 선점한 것을 그들이 뒤따르거나 모방하고 있어요. 네티즌들도 그걸 잘 알죠. 인터넷 업계에선 선점효과가 대단히 큽니다. 선점해서 1위에 오르면 좀체 아성을 내주지 않지요.”
-종로서적이 부도를 냈습니다. 아무래도 이 얘기를 먼저 꺼내야겠네요.
“제가 77학번인데, 제 또래에게 종로서적은 많은 추억이 서린 곳이에요. 그런 곳이 문을 닫았으니 안타까운 일이죠. 서점업계에선 종로서적의 부도 원인을 경영상의 문제와 온라인 서점의 공격 두 가지로 보는 것 같아요. 경영 면에서는 강성 노조와 가족 간의 불화도 문제가 됐지만, 가장 큰 원인은 좁은 면적의 5층짜리 서점이라는 핸디캡이었습니다. 쾌적한 단일 매장에서 책을 고르려는 게 독자들의 바람이고, 영풍문고나 교보문고 같은 경쟁업체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데 종로서적은 5층을 오르내려야 하는 불편이 있었지요.
온라인 서점의 공격이 위협 요소가 됐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는 시대의 흐름입니다. 온라인 서점은 책값을 깎아줍니다. 값도 싸고, 시내까지 책을 사러 가는 번거로움도 없으니 많은 독자가 인터넷 서점을 선호할 수밖에요.”
-오프라인 서점은 다 위기라는 얘긴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프라인 서점은 나름대로 장점이 있습니다. 온라인 서점은 책을 직접 보면서 고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어요. 게다가 책을 손에 쥐려면 며칠씩 기다려야 하고요. 하지만 오프라인이라도 영세서점은 버티기 힘들 겁니다. 한때 6000여 개에 달했던 서점이 벌써 절반으로 줄었어요. 결국은 50평 이상의 중·대형 매장이나 체인점만 남게 될 겁니다. 미국도 그렇게 됐지요.”
-오프라인 서점도 온라인 서점처럼 책값을 깎아주면 될 것 아닙니까.
“그건 불가능합니다. 오프라인 서점은 책을 정가에 팔아도 10% 정도 이익을 볼까 말까예요. 저희는 15∼20% 정도 할인해 팔아도 그 정도 마진을 남길 수 있습니다. 저희 사무실과 교보문고를 비교해보세요. 교보문고는 서울 한복판의 금싸리기 땅에서 매장을 운영합니다. 저희는 모든 걸 컴퓨터가 알아서 해주지만 오프라인 서점은 인건비도 만만치 않지요.
게다가 그간 기존 서점들은 출판사측에 어음을 결제할 때도 ‘위탁판매’라고 해서 책이 팔리는 만큼만 해줬습니다. 그런데 온라인 서점은 현금으로 책을 구입합니다. 그러니 훨씬 싼값에 책을 가져올 수 있죠. 이런 차이 때문에 저희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겁니다. 예스24가 올해 매출목표를 지난해의 2.5배에 이르는 1300억원으로 잡은 것도 이 때문이죠.”
“가을부터 흑자 낼 것”
그러나 인터넷 서점들은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흑자를 낼 시점에 이르렀지만, 지나친 할인경쟁 탓에 모두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 인터넷 서점이 출범했을 무렵에는 오프라인 서점과 경쟁을 하기 위해 15∼20% 정도 할인판매를 했다. 이 정도만 유지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온라인 서점 후발주자들은 30∼40%, 일부 품목에서는 50%까지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계속했다.
선점효과가 큰 인터넷 업계에선 선발주자가 일단 이름값(name value)을 얻으면 후발주자들이 좀체 따라잡기 어렵다. 그래서 후발주자들은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할인판매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게 이강인 사장의 설명이다.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했을 때는 적자가 나도 어느 정도의 시장점유율만 확보하면 투자자를 끌어모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흑자를 못내면 추가 투자 유치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대로 가면 몇몇 업체 외엔 문을 닫게 되리라는 것. 그래서 예스24는 이제 ‘딴죽걸기식 할인’에는 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사장은 “할인폭이 18%선에서만 유지됐어도 지금까지 상당한 흑자를 올렸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쟁업체들의 할인폭이 커지면서 이에 대응하다보니 흑자를 내지 못했다는 것. 그러나 올 가을부터는 흑자로 돌아설 것을 자신한다. 그 이유는 그가 최근 단행한 와우북 합병과 맞물려 있다.
“합병하자는 얘기는 와우북 쪽에서 나왔어요. 저희는 거의 다 개인투자자인데 비해 와우북은 기관투자가들이 대주주예요. 1대 주주는 KTB죠. 그런데 기관투자가들은 1위 업체가 아니면 좀체 베팅하지 않습니다. 2, 3위 업체에겐 투자를 해도 조건이 좋지 않죠. 지금까지는 와우북에게 예스24를 잡아보라고 돈을 대줬지만 실패하자 다른 길을 찾게 된 겁니다. 처음 제의가 들어왔을 때는 저희 지분이 희석되는 것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와우북이 3, 4위 업체와 합병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어요.”
-경쟁업체들이 크면 안된다는 뜻입니까.
“그분들에게는 안된 얘기지만, 사실 저희에게 후발주자들은 눈엣가시입니다. 예스24는 4년 전 가장 먼저 온라인 서점을 만들었고 지금까지 갖은 고생을 다한 끝에 1위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래서 이제나 돈 좀 만져보겠다고 생각했는데, 뒤늦게 나타난 온라인 서점들이 예스24를 이기려고 출혈경쟁을 일삼고 있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지요. 그렇지만 저희는 다 계산하고 있어요. 출혈경쟁을 하면 한 달에 몇억씩 깨지기 때문에 신규 투자를 끌어들이지 못하면 오래 갈 수가 없습니다.”
-후발주자들을 만나 출혈경쟁을 자제하자고 제의하진 않았습니까.
“도무지 말이 안 통합니다. 그분들 처지에선 굶어죽으나 맞아죽으나 마찬가지일 테니 사생결단식으로 나오는 겁니다. 어차피 저희와 같은 조건에서 싸우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거든요. 그러니 가격경쟁으로 나올 수밖에 없지요.”
-무분별한 할인판매만 없어지면 흑자를 기록할 수 있다고 했는데, 아직도 적자에 허덕이는 아마존이라든지, 온라인 서점이 실패한 독일이나 일본의 경우를 보면 사정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요.
“아마존은 인터넷 서점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모든 물건을 파는 ‘만물상’이나 마찬가지예요. 서적사업 부문만 보면 2년 전부터 흑자였지만 종합쇼핑몰로 운영하다 보니 흑자를 못내는 거지요. 전세계에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 엄청난 물류시설을 짓는 등 지금까지 6조원이나 투자했으니 130억원을 투자한 우리와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독일과 일본은 도서정가제를 실시하는데다 인터넷 인프라가 우리나라만큼 조성돼 있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거고요.”
-도서정가제를 입법 추진하는 문제는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국회 소위에 계류돼 있는데, 보류를 부결로 볼 수도 있고 다시 올릴 수도 있고 해서 아직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지금처럼 경쟁력이 뒤지는 상태에서 오프라인 서점이 사장되는 걸 막으려면 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자본주의 논리상 설득력이 없다는 견해거든요. 네티즌과 소비자단체의 반대도 만만치 않고…. 소비자들이 상품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서야 되겠습니까.”
그가 인터넷 기업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하는 일이 심심하고 재미없어서 뭔가 의미있는 일, 재미있는 삶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먹고 살 만큼 돈도 많았고 건설회사 사장이라는 직함도 있었지만 그에겐 양에 차지 않았다.
-무척 활동적인 성격인 것 같습니다.
“뭐, 그렇기도 하지만 나이 40이 되니까 아무것도 해놓은 것 없이 살아온 게 후회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좀 신나고 다이내믹한 삶을 살려고 생각하다 인터넷 기업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그는 연세대 정외과를 나와 미국 뉴욕대에서 MBA(경영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부친의 사업을 물려받을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던 그는 졸업후 뉴저지의 삼성전자에 지원해 합격했지만, 부친의 반대로 입사를 포기해야 했다.
“저는 아버지가 하시는 사업은 동네 슈퍼마켓처럼 보여 관심이 없었어요. 더구나 뒤를 이을 형님도 계시니까. 대기업에 근무하며 007 가방 들고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었는데, 하도 아버지가 완강하셔서 결국엔 아버지 회사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이사장의 부친은 건설회사인 삼정건설과 고속도로 휴게소를 운영하는 대신기업, 학교법인 등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처음에 이사장은 대신기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휴게소에서 핫도그며 우동을 파는 일은 영 마뜩치가 않았다. 그가 일에 흥미를 보이지 않자 부친은 서울 양재동 땅 1만평을 주며 개발을 해보라고 했다. 그 땅이 지금 그의 사무실과 스포타임이 있는 건물 부지다.
“1989년부터 준비하기 시작해서 1994년에 분양했습니다. 원래는 호텔을 지으려고 용역까지 줬는데, 건물 바로 뒤에 우리보다 한 달 먼저 학교를 짓겠다고 말뚝을 박았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어요. 그래서 호텔을 포기하고 스포츠센터를 지은 거지요.”
책은 전자상거래 최적 상품
분양을 하고 회원을 뽑고 나니 할 일이 없었다. 무료해진 그는 당시 호황을 맞은 주식투자에 회사 돈을 들고 뛰어들었다가 큰 손해를 봤다. 종합주가지수가 950일 때 들어갔는데 400까지 추락한 후 손을 털고 나왔다. 그후로는 주식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형이 경영하는 삼정건설이 어려워졌다. 그는 삼정건설의 부사장과 사장을 거푸 맡으며 형을 도왔다. 경영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되자 그는 그간 생각해온 사업을 벌이기로 결심하고 친구들과 상의했다. 결론은 벤처기업, 그중에서도 인터넷 서점이었다. 그가 3억원을 내놓고 친구들과 개인투자가들의 돈을 모아 12억원의 초기 자본금을 마련했다.
-부친의 지원은 없었습니까.
“아버님은 건설처럼 눈에 보이는 사업에는 관심이 있지만, 인터넷 같은 무형의 사업, 서비스산업 같은 것은 말을 드려봤자 혼을 내면 냈지 전혀 도움을 주실 분이 아닙니다. 저 역시 아버지로부터 도움받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고요. 저는 자수성가한 것을 커다란 자랑거리로 여깁니다. 사정을 잘 모르는 분들은 제가 부잣집 아들이라 집에서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제가 마련한 3억원은 그때껏 한푼두푼 저축한 돈과 골프장 회원권을 팔아 마련한 전재산이었습니다. 제가 스포타임 사장이라 스포타임 건물에 예스24 사무실을 얻었지만, 둘은 엄연히 별도 법인이므로 임대료를 꼬박꼬박 물고 있습니다.”
-하필이면 왜 인터넷 서점이었습니까.
“인터넷도 결국 장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장사를 할 것이냐를 고민한 끝에 ‘나중에는 이쪽에도 대기업이 뛰어들 텐데 그들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으려면 전문몰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책이 가장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당시에 인터넷 서점이 없었다는 점도 상당한 매력이었고요.”
책은 품질이 일정하고 규격상품이라 전자상거래 품목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의류나 전자제품 등은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사기 힘들지만 책은 어느 상점엘 가도 똑같은 제품이므로 인터넷으로도 불편 없이 팔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게다가 전자상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배송 면에서도 책은 가장 안전하다고 봤다. 파손될 일도 거의 없고 포장하기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사장이 인터넷 기업을 하기로 작정한 것은 그가 컴퓨터광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8비트 컴퓨터 시절부터 직접 프로그램을 짤 정도의 실력이 있었고, 유학 후 회사에 근무할 때는 직원들에게 로터스를 강의하기도 했다. 특히 게임광이었던 그는 삼국지 1부터 7까지 마스터했고, 인터넷 바둑으로 5급 실력을 1급으로 올릴 정도였다.
“하지만 처음에는 굉장히 불안했어요. 솔직히 확신이 없었거든요. 사이트를 개설하고 처음 며칠 동안은 하루에 다섯 권 정도 팔았습니다. 주문을 받으면 직원이 가방 들고 서점에 가서 책을 사다가 손해 보고 배송해줬어요. 당시는 인터넷도 모뎀으로 될 때니까 사이트도 형편없었어요. 게시판에 제목과 저자만 올린 게 전부였으니까. 데이터베이스도 1400권에 70페이지뷰 정도 였으니 완전히 구멍가게 수준이었죠.”
그러나 갑작스레 주문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네티즌 사이에 입소문이 퍼진데다, 인터넷 서점의 효시이고 교육적인 사이트라는 점 때문에 매스컴이 호의적인 기사를 써줬기 때문이었다.
“서서히 늘어나는 게 아니라 한마디로 폭발적이었어요. 초창기에는 한 달에 10배 이상 매출이 늘어나는 식이어서 감당하기 힘들었어요. 시스템을 완전히 개발해놓고 회원을 받아들인 게 아니기 때문에 늘어나는 회원 감당해야지, 시스템 보완하고 수리해야지, 콘텐츠 늘리고 데이터베이스 키워야지…정말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매일 밤 자정이 넘어서야 퇴근했고, 밤을 새는 날도 허다했지요.”
그러다 결정적인 계기가 왔다. 사업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제1회 조선일보 인터넷대상 전자상거래 부분 대상 및 인기상을 수상한 것이다. 1999년 8월에는 회원수 7만명, 사이트 방문자 100만명, 하루 매출 500만원을 돌파했고, 2000년 1월에는 사이트 방문자 300만명, 하루 매출 2000만원을 넘어섰다. 현재 예스24 직원은 정규직만 120여 명이다. 불과 4년 전 6명으로 시작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사무실 한쪽에 마련했던 창고는 이제 1000평 규모의 수원 물류센터로 성장했다. 수원 물류센터는 ‘인프라24’라는 이름으로 분사해 나갔다.
“초기에는 스파르타식으로 직원들을 몰아붙였습니다. 직원들 군기 잡는다고 책장 정리로 밤을 새게 하기도 했고, 공휴일에도 일을 시켰죠. 직원들에겐 ‘일요일에 놀지 말고 쉬라’고 했어요. 다음날 또 힘들게 일해야 하니까. 추석이나 설 연휴에도 하루만 쉬었습니다. 그렇게 일을 시키고도 초창기에는 대졸자 월급이 40만원이었어요. 스톡옵션을 주겠다면서 함께 허리띠를 졸라맸지요.”
하지만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긴장을 풀어줬다. 고생한 직원들에게 주식도 액면가로 나눠줬다. 현재 예스24 지분의 15%는 직원들 몫이다.
“직원들이 저에게 끊임없이 요구한 것은 자율이었어요. 그래서 확 풀어줬지요. 이젠 격주로 토요일을 쉬고 월차도 줍니다. 급여도 대졸 초임 연봉이 1800만원쯤 되니까 많이 올랐지요. 출퇴근도 자유롭고 복장에도 전혀 간섭하지 않습니다. 여사원들은 흡연실에서 스스럼없이 담배를 피웁니다. 대신 체크 시스템을 고안, 공정하고 냉정한 평가를 하려 애씁니다.”
-온라인 서적몰의 효시니 콘텐츠나 소프트웨어 등에서 자랑할 만한 것도 많겠군요.
“사실 아마존을 많이 모방했습니다. 그걸 두고 이런저런 말도 많았는데, 올바르고 좋은 것이니까 모방을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인터넷의 시스템들은 모방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예요. 저희가 창안한 것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1대1 서비스와 배송추적시스템인데, 특히 1대1 서비스는 네티즌들로부터 커다란 호응을 얻고 있지요.”
1대1 서비스는, 고객의 불편사항에 대해 답해주는 e메일이 중간에 유실되는 경우가 많고 담당자가 제대로 답변해줬는지 확인하기도 어렵다는 점에 착안, 고객에게 1대1로 답해주게 한 제도다. 고객이 질문을 하면 그 내용이 각 분야별 담당자의 컴퓨터에 자동으로 전달되고, 서버에 모든 기록이 남겨져 담당자들이 제대로 응답하고 있는지를 관리자가 한번에 파악할 수 있다.
예스24는 이밖에도 다양한 콘텐츠와 깊이 있고 정확한 서평 및 북리뷰 등의 서비스를 개발해 네티즌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한편 각종 상을 휩쓸어왔다. 전자상거래업체 AAA 최상급 기능평가, 한경 웹 어워즈 최우수상, 대한민국 웹사이트 인증 서적전문 쇼핑몰 네티즌 1위 및 전문가 1위, 제2회 정보통신기업 디지털대상 등이 그것.
문화콘텐츠 종합몰 구상
-굴뚝기업과 인터넷 기업의 CEO를 다 해보셨는데,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건설회사 경영할 때와 비교하면 아주 좋아요. 우선 술 마시고 접대할 일이 없어 좋고요. 회사를 투명하게 경영할 수 있어 마음이 편합니다.”
돈을 벌 생각이었으면 게임회사를 차렸을 것이라는 이사장은 문화콘텐츠를 보급한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했다. 이 자부심을 유지하기 위해 향후 예스24를 서적을 전문으로 하는 문화콘텐츠 종합몰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서적몰만 하게 되면 어느 순간 포화상태가 되어 성장이 둔화될 가능성이 크거든요. 저희가 음반을 비롯해 소프트웨어, DVD 등에 손대고 있는 것도 이들이 다 문화콘텐츠의 범주에 들기 때문이죠. 출판사업도 하려고 준비중인데, 한두 번 책 내다 말 게 아니라 교육에 제대로 도움이 될 시리즈물을 구상하느라 머리를 짜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열된 인터넷 서점 시장을 안정시키는 일일 터. 그 일환으로 와우북을 인수한 이사장은 와우북 브랜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예스24와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구상에 골몰해 있다. 와우북을 공식적으로 경영할 8월부터 그의 구상을 어떻게 실현해 나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