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호

유상부의 포스코인가 박태준의 포스코인가

  • 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입력2004-09-07 1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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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을 대표하는 CEO’에서 기소 대상자로 전락한 유회장. 창업 원로, 정치권과의 갈등은 깊어만 가는데. ‘민간기업 포스코’의 리더는 여전히 박태준인가, 유회장은 CEO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지곡동산. 유치원 이름 같기도 하고 놀이공원 이름 같기도 한 이 명칭은 경북 포항시 남구 지곡동에 위치한 포스코 단지를 뜻한다. 지곡동산에는 포철교육재단 산하 여러 학교들과 포스코 직원을 위한 아파트, 각종 편의시설 등이 들어차 있다. 깨끗한 도로, 완벽한 조경, 그림 같은 집들과 고급스런 문화시설. 유치원부터 포항공대까지 수직계열화한 교육기관들은 국내 최고 수준의 학력을 자랑한다. 마치 서구의 잘 가꿔진 베드타운을 연상케 하는 그곳은 척박한 공업도시 포항에서 외떨어진 섬 같은 존재다.

    지곡동산은 포스코 직원들의 자랑이자 자존심이다. 1970~80년대,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는 직원들을 위해 설립자 박태준(74·TJ) 명예회장이 고집스레 완성한 ‘약속의 땅’이다. 공중전화까지 공짜로 걸 수 있게 해 놓은 그 곳에서, 그는 왕이요 ‘주인’이었다.

    올해는 그런 TJ가 포스코 경영에서 손 뗀 지 꼭 10년이 되는 해다. 이름만 명예회장일 뿐, 자리도 비서도 월급도 없다. 지금 포스코를 이끌어 가는 건 그의 후계자 유상부(60) 회장이다. 1998년 TJ의 낙점에 따라 ‘왕국’을 이어받은 그는, 그러나 더 이상 왕이 아니다.

    유회장은 CEO란 이름으로 많은 것을 바꿔 나갔다. 사람이 바뀌고 관행이 바뀌고 시스템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것,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왕’의 그림자, 그의 존재가 던지는 무게감이었다. 회사는 국영기업 포항제철에서 민간기업 포스코로 양질전화했지만 여전히 왕좌는 존재하며,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이 또한 한 사람 뿐이다. 유회장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포스코 계열사와 협력업체의 타이거풀스 주식 매입으로 불거진 정치 스캔들, 유회장이 ‘한국을 대표하는 CEO’에서 불구속 기소 대상자로 전락한 지금, TJ의 존재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무겁다. 매출 11조원, 영업이익 1조5000억원을 자랑하는 철강부문 세계 1위 기업. ‘유상부의 포스코’인가, 아니면 여전히 ‘박태준의 포항제철’인가.



    ‘발언 의미 축소’ 보도에 노한 TJ

    지난 6월6일 검찰은, 작년 4월 포스코 계열사 및 협력업체가 타이거풀스 인터내셔널 주식 20만주를 70억원에 매입하는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유상부 포스코 회장을 불구속 기소키로 했다. 세계적 기업 포스코의 CEO가 비리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사법처리될 위기에 처한 상황은 국내외에 적지 않은 파장을 던졌다.

    그보다 보름 남짓 앞선 5월17일, 신병치료차 미국과 일본에 머물러온 TJ는 인천공항에서 만난 포스코 전·현직 임직원, 그리고 기자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포항제철 34년 역사에 중대한 오점을 찍었다. 내가 25년 동안 재직하며 외압을 단절하느라 병이 다 들었는데, 창업자로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책임지지 않고 엉뚱한 짓 하며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라.”

    TJ가 “오점을 찍었으니 책임지라”고 호통 친 대상은 다름 아닌 유상부 회장이었다. TJ는 또 이런 말도 했다.

    “(회장) 시키고 한 달 지나니까 내 말을 안 듣더라. 자기가 임명되는 데 도움 준 사람들이 있으면 스스로 와 의논을 해야지. 내가 죽을 때까지 결정적인 순간이 있으면 절대로 가만있지 않아. 책임져야 해.”

    유회장은 포스코 내 ‘TJ사단’의 적자다. 30여년 동안 TJ와 고락을 같이 해왔다. 그럼에도 TJ가 공개석상에서 유회장 책임론과 일선 퇴진을 촉구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세간의 관심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TJ의 발언을 접한 포스코측은 매우 곤혹스러워하면서도 “포스코가 좋지 않은 사건으로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데 대해 창업자로서 일순간 진노했던 것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TJ의 한 측근도 “자신이 천거한 인물이 이런저런 구설수에 휘말려 있는 상황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지나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오랜만의 귀국 길이니 사람들이 다 궁금해할 것은 뻔한데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넘어갈 수는 없어 나온 이야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간단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TJ 발언이 있은 사흘 후 조선일보 경제면에는 포스코의 반응을 담은 기사가 실렸다. 그런데 이 기사를 본 TJ가 무척 화를 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구절은 다음과 같다.

    ‘포스코 고위 관계자는 “박 전 총리가 창업자로서 우려를 표시한 것으로 본다”면서 “하지만 이번 사건을 해외에서 언론 보도로만 접했기 때문에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고 하신 말씀은 아닐 것”이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이 구절에 역정을 낸 것으로 볼 때, TJ의 공항 발언은 뭘 잘 몰라 한 말이라기보다는 진심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 봐야 옳을 것이다. 포스코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의미를 축소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매우 불쾌해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은 유회장과 TJ 사이에 쉽게 해소하기 힘든 ‘불화’가 존재하며, 그 연원 또한 생각보다 깊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궁금증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사자를 직접 만나 물어보는 것. 지난 5월31일,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본가(本家)에 머물고 있는 TJ를 만나기 위해 아침 일찍 비행기에 올랐다.

    애써 집을 찾았으나 관리인은 “총재님은 지금 안 계신다”며 “집안에 기자를 들였다간 사단이 나니 돌아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실랑이 끝에 어찌어찌하여 대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잔디가 깔린 정원은 잘 가꾸어져 있었다. 울타리 안에는 TJ 일가가 머무는 본채와 고용인들을 위한 별채, 창고와 차고가 있었다.

    TJ는 정말 집에 없었다. 무조건 기다리겠다며 별채로 들어가 보니 먼저 찾아온 손님 둘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포스코 OB(퇴직자)들이었다. “포항에서 버스 대절해 온다더라”는 이야기도 들렸다. 포스코 사람들의 출입이 매우 잦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집에는 고용인들이 많았다. 얼른 헤아려 봐도 대여섯 명은 됐다. 손님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 것이었다. 비서에게 TJ의 요즘 생활에 대해 물었다.

    일단 건강은 매우 좋다고 했다. TJ는 지난해 7월 미국에서 폐 아랫부분에 자리잡은 물혹 제거 수술을 받았다. 한동안은 그 후유증 때문에 힘들었으나 지금은 완전히 회복된 상태라고 했다.

    “정치적인 것들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십니다. 신문도 정치면은 건너뛰고 보실 정도예요. 텔레비전도 축구나 뭐 그런 쪽으로만 시청하고요. 서울 논현동에도 집이 있지만 여기 머무는 건 번거로움을 피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TJ의 공항 발언으로 인해 포스코 쪽이 많이 불편해하는 것 같다, 지나친 간섭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고 하자 “그건 그 사람들이 잘못 하는 거다. 자식은 아버지를 버릴 수 있어도 아버지는 그럴 수 없는 것 아니냐. TJ는 포스코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다. 자식이 잘못돼 가는데 아버지가 어떻게 가만히 있느냐”고 반문했다.

    TJ 집에 머무는 반나절 동안 여러 사람으로부터 이 ‘아버지론’을 되풀이해 들을 수 있었다. TJ가 포스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었다.

    모래바람 부는 허허벌판에서 오늘의 포스코를 탄생시킨 장본인인 만큼, 그에 대한 TJ의 애착은 혈연에 대한 애정 이상으로 뜨겁고 확고하다는 것이 주변의 설명이었다. 어쩌면 서울이 아닌 기장 집에 머무는 것도 골치 아픈 정치인사들과의 만남은 줄이는 대신 포스코의 옛 동지들이 편히 찾아올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넘치는 청탁이 둘 사이 갈라놓아”

    세 시간 가까이 기다렸지만 TJ가 도착했다는 소식은 없었다. 오후5시가 다 돼서야 비서로부터 “벌써 도착하셨다. 기자가 서울에서 여기까지 찾아왔으니 한번 만나시는 게 어떠냐고 여쭸지만 ‘자네가 날 그렇게 몰라, 쉬고 있는 사람이 기자를 왜 만나냐’는 꾸지람만 들었다. 잠깐 인사하는 것도 안 된다고 하시니 그냥 돌아가 달라”고 했다.

    간신히 TJ 부인 장옥자 씨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눈길조차 변변히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지금 인터뷰는 안된다”며 돌아서는 그에게 “건강은 정말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정씨는 몸을 돌리며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아주 좋으시다”고 답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여기서 잠시 TJ와 유회장 간의 30년 인연을 되짚어 보자. 유회장은 1970년 포스코에 입사했다. TJ는 명석하고 성실하며 배짱 두둑한 유회장을 신임했다. 고속 승진을 거듭한 유회장은 ‘TJ 4인방(황경로 박득표 이대공 유상부)’의 일원으로 불리게 됐다.

    1993년 유회장은 김영삼 정부가 포스코에서 TJ사단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희생양이 돼 6개월간 감옥살이를 했다. 그가 출옥하자 현대그룹과 삼성그룹 사이에 치열한 스카우트전이 벌어졌다. 1994년 삼성중공업 고문이 된 유회장은 이후 삼성중공업 사장, 일본 삼성 사장, 삼성그룹 일본본사 사장 등을 역임하며 이건희 회장의 측근으로 활동했다. 일본에 근무하는 동안 유회장은 그곳에서 ‘망명 아닌 망명 생활’을 하고 있던 TJ 부부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TJ가 큰 고마움을 느꼈음은 물론이다.

    1998년 3월 유회장은 TJ의 추천에 힘입어 포스코 회장 자리에 오른다. 유회장은 취임 초기부터 투명경영, 디지털경영의 기치를 내걸고 강도 높은 개혁 작업을 진행했다. TJ는 유회장이 소신껏 회사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외풍을 막는 바람막이 역할을 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속사정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유회장 취임 얼마 후부터 두 사람 사이의 갈등설이 밖으로 솔솔 새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발단은 포철 내부의 물갈이 방식을 둘러싼 의견 차이였다. 유회장 취임 직후 단행된 인사에서 TJ는 과감한 물갈이를 주문한 반면 유회장은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 결국 유회장은 TJ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 일을 마무리지었다.

    또 한 가지는 정·관계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청탁에 대한 유회장의 단호한 태도였다. 민원이 통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TJ를 찾아가 불만을 터뜨렸다. TJ의 한 측근은 “유회장은 TJ가 직접 연락하는 것 외에는 대부분의 청탁을 거절했다. 어떤 때는 TJ가 사람들 앞에서 유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부탁해놓고는 다시 연락을 취해 ‘신경 쓰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그러느라 TJ도 많이 지쳤다. 섭섭한 마음이 조금씩 쌓여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회장의 고집과 ‘다시는 감옥에 가지 않겠다’는 결의는 최규선 게이트와 관련한 검찰 조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유회장은 두 차례 조사를 받는 동안 “나는 죄가 없다”며 끝까지 조서 작성을 거부했다. 검찰이 유회장에 대한 불구속 기소 방침을 정해 놓고도 바로 실행해 옮기지 못한 데는 그 같은 속사정이 있다.

    정치권의 청탁은 2000년 9월 포스코가 민영화된 뒤에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포스코의 한 임원은 “그게 얼마나 지긋지긋한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유회장 취임 후 ‘청탁은 안된다’는 방침에 따라 철저히 차단하려 노력했지만 역부족임을 느낄 때가 많았다. 오죽하면 임원들이 나서서 ‘밖에 말들이 너무 많다. 작은 것은 좀 들어주는 게 어떠냐’는 건의까지 했겠느냐”고 말했다.

    외부 입김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건 포스코뿐 아니라 민영화한 공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다. 포스코만 해도 순수 투자지분인 외국인 몫과 자사주를 제외할 때, 경영권을 좌우할 수 있는 15.88%는 연기금·시중은행·투자신탁 등 사실상 정부 영향력 하에 있는 주주들 손에 쥐어져 있다.

    2000년 5월 TJ가 명의신탁 문제로 총리직에서 낙마하자 ‘유상부의 포스코’에 대한 정치권의 흔들기는 극에 달했다. “포스코를 계속 ‘TJ사단’ 손에 맡겨둘 수는 없다. 여권에도 챙겨야 할 사람이 아직 많다”는 논리였다. 다급해진 유회장은 TJ 보좌역으로 오래 일해 정치권에 발이 넓은 조용경 포스코건설 부사장(당시 전무)을 창구로 활용, 진화에 나섰다. 파문은 가라앉았으나 같은 해 7월 유회장은 조부사장의 주선으로 최규선, 김홍걸씨를 만남으로써 ‘불운의 씨앗’을 배태하게 됐다.

    이에 대해 한 철강업계 원로는 “솔직히 70억원(타이거풀스 주식 20만주 인수액) 정도면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손 벌리는 쪽이 워낙 많다. 공기업 시절의 포스코는 뭐 그리 완벽했는가. 진실은 TJ가 더 잘 알 것”이라며 유회장을 두둔했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다음에도 유회장의 경영 쇄신은 계속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직원들이 유회장의 경영방식에 불만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큰 이슈는 임금 수준이었다. 포항제철소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유회장 취임 이후 최근까지 실질적인 임금 인상은 없었다. 회사는 계속 흑자가 난다는데 월급은 제자리걸음이니 불만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를 더 화나게 한 건 스톡옵션제도 도입이었다. 사외이사를 포함, 전체 임원 38명에게 총 49만8000주를 준다고 했다. 직원들 임금은 억제하면서 그렇게 생긴 이득을 임원들끼리 나눠 갖겠다는데 어떻게 속이 쓰리지 않을 수 있냐”고 주장했다. 참고로 유회장은 스톡옵션으로 10만주를 받았다. 6월14일 현재 시가로 따져 약 150억원 어치다.

    이에 대해 유회장의 한 측근은 “유회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해고다. 외환위기 후 취임한 유회장은 무엇보다 고용안정을 중요하게 여겼고 직원들이 거리에 나앉는 사태를 막기 위해 노력했다. 감사원 감사에서 인력 구조조정을 하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지만 단호히 물리쳤다. 해고 없이 이익을 내려면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한가지 직원들을 내심 당혹스럽게 한 건 포철 내부의 관료주의에 대한 유회장의 질타였다. 유회장은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말을 했다. “포철이 민영화됐지만 직원들은 아직도 관료적이다. 대다수 직원들이 포스코에서만 근무해봤기 때문에 민간기업의 업무처리를 경험해보지 않아 상대적 차이를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정부, 국회로부터 줄곧 경영감사를 받아왔기 때문에 이해는 가지만 앞으로는 어림없다.”

    이어 유회장은 포스코에 PI(업무 혁신 Process Innovation)를 도입했다. ERP(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도 구축했다. 영업, 인사, 재무는 물론 고객관리, 물류, 생산관리까지 하나의 망으로 통합됐다. 자연히 직원들이 자신의 입맛에 따라 ‘유도리’를 부릴 여지가 없어졌다. 모든 업무 진행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이었다.

    “OB와 협력업체들에 상처 줬다”

    스톡옵션 도입과 PI 작업은 OB들에게도 큰 불만을 샀다.

    “아무리 스톡옵션이 요즘 생긴 제도라지만 포스코가 한참 어렵던 시절 난관을 뚫고 오늘의 기반을 닦은 OB들에게 그것이 듣기 좋은 소식일 리는 없다. PI시스템 구축도 현장 사람들은 물론 OB들, 협력업체 등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었다. 오랫동안 포스코와 공생해온 군소업체들은 큰 데미지를 입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러야 했다. 투명성 보장도 좋고 비용 절감도 좋지만 포스코란 회사가 꼭 이래야 하냐, 꼭 이렇게까지 최고의 수익을 얻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뒷말이 많았다.”

    한 퇴직 임원의 말이다.

    유회장 측은 대개 포스코 OB들인 협력업체 사장들의 불만이 TJ 쪽에 가감 없이 전달되면서 유회장에 대한 TJ의 신뢰에 결정적인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한편 포스코의 한 인사는 “올 3월 주총에서 TJ 라인 인사 여러 명을 물갈이한 것도 원인이 됐을 것이다. 당시 포스코 안팎에서는 ‘TJ에 가까운 사람부터 잘랐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고 전했다. 3월 인사를 유회장의 ‘진정한 독자 노선의 시작’이라 보았던 이들은 TJ가 귀국 길에서 유회장을 격렬히 비판하자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한다.

    실제로 TJ는 포스코의 명예회장이라고는 하지만 경영과 관련해서는 철저하게 배제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포스코는 회장실, 홍보실 할 것 없이 TJ의 연락처조차 제대로 챙겨두고 있지 않았다. ‘핫 라인’이라 할만한 것도 사라진 상태다.

    일각에서는 TJ의 발언에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TJ가 국내에서 활동을 재개한다면 일단 포스코부터 장악하려 들지 않겠는가. 정권 교체가 이루어질 것에 대비해 현 정부과 일정한 선을 그을 필요도 느꼈을 것이다. 이런 참에 최규선 게이트가 터지자 유회장을 그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전직 포스코 임원의 해석이다.

    이러한 시각에 대해 TJ 측근들은 “어른은 이미 정치에 아무 뜻이 없음을 여러 차례 밝혔다. 아버지가 자식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무란 것을 가지고 확대해석하지 말라”는 반응을 보였다.

    어쨌거나 현재 TJ와 유상부 회장의 관계는 매우 냉각돼 있다. TJ 측에서는 “결자해지라고, 문제를 풀 생각이 있다면 잘못한 사람이 먼저 찾아와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유회장으로서는 여간 마음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유상부 흔들기’는 있는가

    이제 관심의 초점은 유회장의 진퇴 여부에 모아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유회장이 이번 스캔들로 옷을 벗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지난 6월7일 열린 포스코 정기이사회에서 사외이사들은 유회장의 거취문제에 대해 아무 거론도 하지 않았다. 정부의 입김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회사 지분의 60%를 쥐고 있는 해외투자가들로서는 경영 안정과 지속적 수익 창출을 이뤄낸 유회장을 불신임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포스코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상부 흔들기’가 얼마만한 강도로, 얼마나 집요하게 계속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외국계 증권사의 한 중공업 전문 애널리스트는 “특정 기업에 대해 퇴직 임원이나 정·관계 인사들이 개입을 시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포스코는 유상부 회장의 것도, 박태준 명예총재의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주주와 고객, 직원들의 것이다. 내년 3월 주총에서 유회장이 재신임을 받든 받지 못하든, 중요한 건 세계 일류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지켜갈 수 있는 경영 철학과 시스템을 더욱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나 원로들의 입김은 전혀 필요치 않다. 유회장 또한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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