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고 카피가 개그맨의 입담 소재로 활용되는 시대다. 그만큼 유머성 카피가 인기를 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광고가 넘쳐나는 시대, 과연 광고에서 유머는 어떤 의미일까? 왜 기업들은 앞 다투어 재미있는 광고를 만들까?
그러나 알고보면 우리야말로 유머에 숙련된 민족이다. 판소리 심청전이나 흥부전에 절절 배어 흐르는 해학과 골계미는 가히 압권이다. 어려운 상황을 희화해 표현함으로써 가난과 고통을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여유를 가졌었다. 우리의 유머는 고난을 아프고 슬픈 것으로 여기지 않도록 정서적 거리를 두게 하는 장치였다. 차원 높은 유머였던 것이다. 특히 말장난(pun)을 통한 유머의 구사력에서 우리 민족은 타고났다. 평상에서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듣던 그 구수한 입담을 떠올려보라. 광고에서도 그 점은 드러난다. 카피의 수사학에서 우리나라 광고계를 따라잡을 나라가 없을 것이다. 전체 캠페인을 지탱하는 컨셉트 워드(concept word)가 중심을 잡는 것이 아니라 맛깔스럽고 재미난 카피가 히트하고 회자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식음료 광고가 유머광고의 전형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카피보다는 감각적인, 그리고 정서적으로 울림이 있는 카피가 더 호소력이 있다. 특히 1960년대 TV 광고가 시작된 이후부터 부동의 광고품목으로 자리를 굳힌 것은 식음료와 제약 광고다. 이들 광고를 중심으로 유머광고의 많은 부분이 카피의 말장난에서 시작된 개그식 광고의 전형을 형성했다. 카피라이터들은 뜨는 한마디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의 아까운 재능을 다 바쳤다.
따뜻한 유머의 고전이랄 수 있는 농심라면 광고는 구봉서, 곽규석 콤비를 등장시켜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카피를 회자시켰고, 아직도 농심라면의 이미지는 그 카피로 각인되어 있다. 제품과의 관련성은 거의 없는 카피지만 브랜드 인지도는 확실히 올려놓았다.
근래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축구 경기 캐스터 송재익 특유의 익살 섞인 멘트가 돋보이는 “아~, 한국을 대표하는 버거 자매 참 아름답죠?”란 카피의 롯데리아 광고, 김정은이 등장하여 “딱 좋아, 딱~!”을 외치는 하이주 광고, 그리고 “난 안 갈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네”라는 카피로 “~하는 소망이 있네”라는 서술어를 유행시킨 파파이스 광고에 이르기까지 기억에 남는 카피 하나로 승부하려 한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특히 제약광고에서의 말장난은 가히 세계 최고수준이다. 제품의 속성을 논리적으로 소구하기보다는 브랜드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말재간을 부렸던 초기 제약광고의 형식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어물전에서 생선 고르듯 소비자가 마음대로 약품을 구입할 수 있는 유통체제에서 소비자에게 약품의 이름을 알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으로 구매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김청씨∼, 속청 주세요” “바로 코밑에 인코라민” “이가 탄탄 이가탄” “케토톱으로 캐내십시오”.… 몇몇 카피만 떠올려보아도 제품명을 인지시키기 위해 갖다붙인 억지 카피들이 금세 눈에 들어온다. 장소팔, 고춘자의 청산유수 같은 만담을 듣는 기분이다.
그림의 구성은 어떠한가? 엎어지고 자빠지며 웃음을 선사하는 배삼룡식 슬랩스틱 코미디류가 아직도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유머 수준을 알려주는 척도다. 특히 1960∼70년대 국민 대다수의 오락거리가 TV시청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코미디가 선사하는 유머의 질이 국민의 유머 수준을 결정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형성된 한국식 유머광고의 틀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유머광고의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고 평가받는 근래의 몇몇 광고에서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채시라 권용운이 등장했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의 011, 김국진 이창명 콤비를 내세운 “전파가 강하다”의 017, 고소영 신현준의 “소리까지 보여요”의 016 등 초기 모바일 서비스 광고와 이경영 박중훈 콤비의 엔크린 광고 시리즈도 과장된 몸짓으로 승부하는 슬랩스틱류를 벗어나진 못했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유머광고는 말장난에 가까운 카피 중심에다 과장된 몸동작으로 승부하는 개그식 광고가 주류를 이루었다. 재담과 희극적 과장은 유머의 가장 기본적 속성이다. 특히 말을 부리는 능력은 예로부터 글 좀 읽어야 양반 취급받던 문자 숭배 관습과 비교적 문맹률이 낮았던 우리의 환경에도 기인한다. 서구의 경우 문맹률이 높았기 때문에 그림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키치풍 유머의 부상
그러나 IMF 외환위기 이후 기죽은 민초들의 마음을 달래주려는 유머광고가 부쩍 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새로운 문법의 유머광고가 선보이기 시작했다. ‘터치터치 002’ 광고가 불붙인 키치(kitsch)풍의 유머광고가 그것이다. 전원주가 등장하여 유학간 아들이 보고 싶어 비행기 뒤를 쫓아 무작정 달리는 모습은 만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상상력이다. 이 광고 이후 달동네에서 “아버지 난 누구예요?”를 외치는 ‘016Na’ 광고가 키치의 바통을 이어 받았고, 채림이 등장하는 ‘하이홈점컴’ 광고를 거쳐 불량스러워보이는 아이 둘이 골목길에서 싸우는 ‘스니커즈’ 광고에 이르기까지 잘난 사람보다는 못난 사람을, 세련됨보다는 촌스러움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는 광고들이 유머광고의 대열에 편입되었다.
이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미 키치는 외국광고에서도 주된 흐름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트렌드에 한국광고도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트렌드의 전파는 거의 동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둘째, 그 흐름에 보조를 맞춘 것이 외국광고의 모방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자생적이라는 데 있다. 키치를 우리식으로 표현해낼 만한 광고 크리에이티브가 숙성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나 패션잡지, 뮤직비디오 등을 통해 이미 키치는 우리 주위에 만연해 있었고 그 트렌드에 특히 젊은층들이 익숙해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식의 키치에 박수를 보내고 열광했다.
외국 유머광고의 경우 카피는 컨셉트를 전달하는 정도에 그친다. 많은 부분이 비주얼로 유머를 전달하는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에 힘을 모은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웃음을 유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유머 속에 아이러니, 역설, 풍자와 같은 문학적 장치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상당히 고단위의 유머를 선보이고 있는 셈인데, 수용자들이 그러한 심층구조를 가진 광고를 보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하는 힘이 그만큼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광고의 엄청난 전파력을 감안할 때 광고가 국민의 사고 수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칸 광고제에서 인쇄·전파 양 부문 그랑프리를 석권함으로써 크리에이티브의 종가를 이룬 디젤 진광고는 키치를 주요 표현형식으로 삼은 대표적인 유머광고다. 그 키치가 품어내는 유머의 중심엔 풍자가 자리한다. “성공적인 삶을 위하여”란 슬로건 하나로 근 10여 년 장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디젤은 광고를 통해 진실로 성공적인 삶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제품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다만 기존 가치관에 딴죽을 거는 새로운 정신을 브랜드의 철학으로 드러낼 뿐이다.
자상하고 멋진 보안관이 형편없는 악당과의 결투에서 한방을 맞고 어이없이 쓰러져 죽는다. 포르노 감독이 촬영장을 나서자마자 자상한 가장으로 변신하는데, 가족이 함께 탄 차 뒤에는 ‘가족, 사랑, 도덕(family, love, morality)’이란 스티커가 붙어있다. 디젤 TV광고는 이처럼 권선징악 일변도의 기존 서술구조를 해체하거나 인간의 허위의식을 비꼬는 유머를 선보임으로써 풍자의 장을 연다.
날렵한 카레이서 대신 피에로 같은 남자를 등장시킨 디젤의 인쇄광고(그림①)
얄타회담의 근엄한 장면을 룸살롱 분위기로 전락시킨 디젤의 또 다른 광고(그림②)
그림③ 미녀와 야수를 패러디한 카멜 담배의 풍자성 인쇄광고. 경찰은 담배산업에 제재를 가하는 정부를 뜻하고 바다괴물은 담배회사를, 품에 안긴 미녀는 소비자를 각각 의미한다.
디젤의 키치풍 유머광고는 카멜 담배 광고에서도 쌍둥이처럼 드러나 있다(그림3). 담배산업에 제재를 가하는 미국 정부를 비꼰 이 광고는 경찰로 대변되는 공권력이 아무리 압력을 행사해도 소비자들은 카멜을 사랑할 것이라는 점을 미녀와 야수를 패러디하여 표현했다.
물론 이때의 그로테스크한 바다괴물은 언론을 통해 묘사되고 있는 담배회사의 이미지다. 이들 광고에서 보이는 부적절·부적합의 요소와 한데 어우러져 벌이는 난장 분위기, 즉 과장·광란의 요소는 키치의 가장 주된 특성이다. 그 엇갈림이 연출하는 광란의 분위기는 유머 속에 담긴 신랄한 풍자의 맛을 더해준다.
네덜란드의 ‘헷 파룰(Het Parool)’이란 일간신문 광고 역시 아이러니를 통한 풍자의 장을 연다(그림4, 5). 네덜란드 비트릭스(Beatrix) 여왕의 생일을 맞아 집행된 이 광고는 여왕과 같은 이름을 가진 평범한 아줌마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펑퍼짐하고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모델을 활용하여 여왕이 공식적인 사진을 찍을 때의 세팅과 복장을 그대로 재현하여 촬영했다. 이 광고는 일부러 여왕의 이미지를 이웃 아줌마들의 이미지로 형상화함으로써 마치 안티 미스코리아와 같은 축제의 느낌을 전달한다. 카피는 개개의 비트릭스가 헷 파룰을 몇 년도부터 구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릴 뿐이다.
한스브링커라는 유스호스텔 광고는 자기 숙박소의 설비와 서비스가 형편없다는 반어법을 통해 접근한다. ‘방마다 문이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자랑하거나(그림6) ‘입구에 개똥이 많다’는 부정적 사실을 전달하면서(그림7) 없어 보이고, 질 낮은 것들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의 키치적 감수성을 건드리고 있다.
브라질의 헬스클럽 광고 역시 아이러니가 돋보인다(그림8). 그림엔 운동기구 두 대가 나란히 놓여있다. 앞에는 핸드백을 훔친 좀도둑이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고, 뒤에는 그를 쫓는 경찰이 달리기를 하고 있다. 도둑은 도망이라는, 경찰은 체포라는 각기 다른 목적을 가졌지만 체력관리라는 같은 목적을 위해 한 장소에서 운동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의 유머를 담았다. 실제적인 상황에 운동기구라는 장치를 살짝 끼워넣음으로써 별다른 과장 없이도 무릎을 치게 하는 웃음을 자아낸다.
또 하나 외국 유머광고의 특징으로 엽기 성향의 유머를 들 수 있다. 2001년 칸 광고제 TV커머셜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한 폭스 스포츠(Fox Sports) TV 광고는 다이빙대에서 낙하한 다이버가 물이 아니라 땅바닥에 곤두박질치는 장면을 보여준다. 화면 하단에는 5.8 5.6식의 점수까지 등장한다. 일관성 있게 폭력적인 유머광고를 집행해온 폭스 TV에게 마침내 그랑프리의 영예가 돌아간 것은, 스포츠에 내재한 폭력성을 드러내 인간 내면에 존재한 야수성을 대리분출시키되 그것을 유머로 감싸안아 폭력으로 느껴지지 않게 줄타기를 시도한 크리에이티브에 손을 들어 준 것으로 풀이된다.
그림⑧ 브라질의 헬스클럽 광고. 각각 다른 목표를 가진 사람이 한자리에서 운동을 할수 있다는 의미를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다.
이밖에도 유머의 유형은 다양하다. 제품과의 아무런 관련 없이 툭 던져진 채로 광고 자체를 즐기게 하는 넌센스형 유머가 있는가 하면, 앱설루트 보드카 광고처럼 제품의 형태를 기호화하여 표현하는 예술품 수준의 유머도 있다(그림9).
그림⑨ 엡설루트 보드카 광고는 제품의 형태를 기호화한 예술품 수준의 유머를 선보이고 있다.
제품이 지닌 독특한 소구점을 알리는 것을 광고의 역할로 생각한 클로드 홉킨스는 “소비자는 익살꾼이나 광대로부터 물건을 구입하지 않는다”고 유머광고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음악의 바하처럼 광고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이비드 오길비 역시 “훌륭한 카피라이터는 유머를 광고카피에 도입하지 않는다”며 유머광고에 대해 ‘안티한’ 태도를 견지했다.
광고의 과학적 기초를 세운 그들이지만, 그들의 발언에 수정을 가해야 할 시점이 도래했다. 마케팅의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고 광고의 트렌드는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눈에 띌 수만 있다면, 그래서 브랜드만 확실히 인지시킬 수 있다면 무슨 방법이라도 동원해야 할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유머광고 수준이 국민 수준
홉킨스나 오길비의 시대는 비교적 제품의 가짓수가 많지 않았던 시대다. 제품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나 오늘날 상황은 상당히 바뀌었다. 엇비슷한 성능을 가진 제품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정보량도 늘어나다 보니 광고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마치 스팸 메일처럼 읽기 귀찮은 것으로 떨어질 우려가 있다. 광고가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가버린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우선 광고가 눈에 띄어야 하고, 이를 통해 브랜드를 인지시켜야 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각종 프로모션활동이 측면 지원되면서 물건을 팔게 되는 통합적 마케팅 기법이 통용되는 시대다.
이처럼 광고를 통해 브랜드를 인지시키고자 하는 효과적인 방법의 중심에 유머광고는 자리한다. 이미 유머광고는 세계적인 추세다. 칸, 클리오 같은 세계 유수의 광고제에서 수상한 작품들은 대개가 유머를 활용하고 있다.
왜 유머 광고는 힘이 센가? 간단하다. 소비자에게 어필하기 때문이다. 웃음이 싫은 사람이 있을까? 1998년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전국 남녀 27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소비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2.8%가 유머광고를 좋아한다고 답해 여러 광고유형 중 가장 높은 선호도를 나타냈다.
밖에서 참담한 하루를 마치고 지쳐 돌아온 후 집에서마저 광고를 보며 얼굴을 찡그리고 싶은 사람은 없다. 신문을 펼쳐 보면 우울하고 잔혹한 기사만 득실거리는 현실이다. 이제 사람들은 소설을 읽지 않는다. 현실이 허구보다 더 잔혹하고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광고에서의 유머는 현실의 악몽을 잊게 만든다. 달리 말하면 사회가 유머광고를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광고를 통해 단순히 제품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을 넘어서 광고 자체가 유희의 수단이 되고 있는 지금, 제품의 성격과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면 유머로 소구하는 것은 충분히 소득이 있는 일이다. 비교적 유머광고를 꺼리던 은행광고나 기업 이미지 광고에서도 유머광고를 시도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이제 광고 카피가 개그맨의 입담 소재로 활용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만큼 유머성 카피가 인기를 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유머광고를 접할 때면 마치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말장난과 과장된 몸짓의 향연에 초대된 느낌이다.
물론 재미있다. 그러나 박장대소 뒤에는 늘 허무함이 따른다. 보고 난 후에도 여운이 남는 유머를 구현할 수 있었으면 한다. 광고의 유머가 국민 유머의 수준을 결정지을 수 있는 위치까지 광고의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우리야말로 수준 높은 유머를 향유했던 민족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