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호

그린에 ‘공짜 점심’은 없다

  • 유현종 < 작가 >

    입력2004-09-07 14: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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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프를 치러 다닌 지도 벌써 20여 년이 넘었다. 평균 한두 주일에 한번 정도는 필드를 나가지만, 골프 약속만 잡으면 아직도 전날 밤엔 소풍 가는 초등학생처럼 흥분이 되어 잠을 설친다. 아무리 골치 아픈 일이 산적해 있어도 일단 골프장을 향해 길을 나서면 온갖 시름과 고민이 깨끗하게 사라지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제조업을 하고 있는 내 친구 이야기. 전날 수금한 돈을 은행에 넣지 못하고 이른 아침 미리 부킹한 골프장에 나갔다. 게임이 끝난 뒤에 넣어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웬걸. 그날 따라 골프가 잘되는 바람에 행복에 젖어 있던 이 친구, 그만 은행에 가는 걸 까맣게 잊어먹고 일차부도를 내고 말았다. 물론 돈은 바지 뒷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골프가 좋아서 저지른 실수다.

    이토록 골프에 열광하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골프경기가 좋아서 일까, 아니면 경치 좋은 골프 코스 때문일까.

    사바나의 초원을 본 일이 있는가. 사바나는 중앙 아프리카의 툭 터진 아름다운 초원이다. 인류의 원조는 이 사바나의 초원에서 태어나 세계 각처로 흩어지며 여러 민족이 되었다는 것이 진화론자들의 주장이다. 사바나 부근 드넓은 정글 속에 인간의 시조인 원숭이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 중 사바나의 초원으로 나온 종족들은 인간으로 진화하여 세계 각처로 이주해 갔지만 남은 무리들은 정글을 벗어나지 못하는 바람에 아직까지도 그냥 원숭이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사바나의 초원’이 인류의 고향인 셈이다. 모든 사람들이 아름답게 트인 평원이나 초원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귀소(歸巢)본능 때문이리라.

    월드컵이 열리는 경기장을 찾았다. 대낮처럼 불을 밝힌 푸른 잔디밭은 물기를 머금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고, 얼룩말처럼 유니폼을 입은 검은 피부의 아프리카 선수들과 백인 선수들이 뒤엉켜 공을 차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으려니 마치 나도 사바나의 평원에 와 선수들과 함께 ‘사냥감(축구공)몰이’를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렇지만 모든 스포츠 중에서 이 귀소본능을 가장 잘 만족시키는 종목은 골프가 아닌가 한다. 골프는 가장 넓은 경기장이 필요하다. 거리로만 따지자면 약 10km, 평수로 따지자면 30만평 정도의 초원에서 시합을 한다.

    이 초원 안에는 없는 것이 없다. 푸르른 언덕이 있는가 하면 숲이 우거진 골짜기도 있으며 시냇물도 흘러가고 여기저기 모래밭(벙커)과 작은 연못(워터 해저드)도 있다. 이처럼 완벽하게 사바나 초원을 옮겨 축소해놓은 경기장이 또 있으랴.

    골프 경기의 규칙을 만들고 코스를 설계한 사람들은 영국인들이다. 그래서인지 골프를 가리켜 신사의 스포츠라 한다. 상대방이 티샷을 날리면 굿샷이라 일제히 외쳐주고, 그린 위에서 퍼팅을 할 때면 옆 사람들도 꼭 들어가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봐야 한다. 안 들어가면 모두 슬픈 얼굴을 하고 일제히 아깝다는 탄성을 발한다.

    “그거야말로 위선이며 교활함이 아니냐. 마음 속으로는 오비나 났으면 바라면서도 굿샷이라 외치며 환성을 질러주어야 한다니. 상대방이 안 들어가면 안타까워해야 한다고? 웃기는 소리 말아라. 내기 게임에서 한 타 지고 있기라도 하다면, 퍼팅을 하려고 셋업에 들어간 상대를 위해 제발 넣어주기를 기도하는 바보가 어디 있겠느냔 말이다. 혹 제발 들어가지 말고 ‘설거지’만 하고 나와달라고 빈다면 또 모를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나도 그랬다. 그러나 골프에 맛을 들이고 나니 이제야 왜 신사의 스포츠라 하는지 알 것도 같다. 골프장에서는 내가 곧 심판이다. 자신과 싸워 이겨야 하는 경기가 바로 골프다. 수도하는 자세로 마음 속에 이는 갈등을 다 겪어내고 ‘해탈’해야 비로소 진짜 신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매너와 에티켓만 그런 게 아니다. 18홀 하나하나는 예술작품처럼 아름답게 설계돼 있다. 하지만 알고보면 갖가지 장애물과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형극(荊棘)의 길이다. 한 고비 넘어가면 또 한 고비, 어쩌면 그렇게 삶의 길과 닮아있는지.

    앞에서 말한 내 친구는 나와 오랫동안 필드를 누벼왔고 실력도 제법 좋은 편이다. 그렇지만 꼭 같은 홀에서 항상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한다. 그 홀에서 그가 치는 티샷은 언제나 똑같은 방향으로 날아간다. 세컨드샷을 하면 늘 그랬던 것처럼 그린 앞의 벙커에 빠지거나 아니면 왼쪽 러프에 들어간다. 공격 방법(사업 방법)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이다. 잘못된 공격 방법을 깨닫고 새로운 전략을 치밀하게 세워 도전해야 할 텐데, 늘 ‘실수’라고만 할 뿐 고치려는 의지가 약하다.

    그러면서도 ‘서비스 홀’에만 오면 거저 먹으려고 잔뜩 벼른다. 어느 골프장에나 있는 서비스 홀은 페어웨이도 시원하게 넓고 반듯한 데다 거리도 짧고 그린의 난이도도 평이하다. 온갖 시련에 지친 골퍼들을 위로해주기 위해 클럽에서 일부러 만들어놓은 것이다.

    “서비스 홀이니까 맘 놓고 잘 치세요.”

    캐디의 그 한마디에 그 동안 쌓인 온갖 짜증이 일시에 다 날아간다. 서비스 홀, 얼마나 멋진 말인가. 전 홀에서 까먹은 점수는 여기서 단 한번에 만회할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

    내 친구 역시 이곳에서는 반드시 버디를 잡고야 말겠다며 있는 힘을 다해 휘두른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늘 ‘역시나’다. 다른 홀보다 서비스 홀에 와서 더 죽을 쑤는 이유는 무엇일까. 친구는 알 수 없다고 고개를 흔들지만 나는 알 듯하다. 세상에 거저 먹을 홀이 어디 있는가. 다른 홀보다 난이도가 좀 낮다는 것일 뿐, 갖추고 있는 함정은 똑같다. 어떤 서비스 홀은 거리도 속인다. 세컨드샷 지점에서 그린까지의 거리가 120yd가 넘는데도 100yd 말뚝을 박아놓아, 공이 항상 앞에 있는 벙커에 빠지게 만들어놓은 경우다.

    사바나 초원의 사자도 열 번 시도하면 사냥 성공률이 서너 번을 넘지 못한다는데.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탁 트인 골프장이 주는 귀소본능과는 또 다른 종류의 ‘데자뷰(기시감)’가 떠오른다. 사바나의 초원이나 세상살이나 골프나 모두 매한가지가 아니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시카고 경제학파의 금언 한마디를 들려주었다.

    “ There’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세상천지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니라).”

    사바나에서 진리면, 삶에서도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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