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 의원은 이따금씩 측근들과 노래방을 찾는다. 그는 한번 마이크를 잡으면 여러 곡을 불러야만 직성이 풀리는 체질이다. 그래서 측근들은 김의원이 7∼8곡의 레퍼토리를 다 부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김의원의 애창곡은 나훈아의 ‘사랑’과 김원중의 ‘바위섬’이다. 멜로디가 무난한 데다 무엇보다 가사가 마음에 든다는 것이 김의원의 얘기다.
‘행여 당신 외로울 땐 내가 당신 친구가 되고, 행여 당신 우울할 땐 내가 당신 웃음 주리라.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사랑)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이 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둘 모여들더니, 어느 밤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긴 파도라네’(바위섬)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게 마련이다. 노래의 가사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할수록 애정을 갖게 된다. 김의원이 부를 때마다 마음이 편해진다는 ‘사랑’과 ‘바위섬’의 공통된 정서는 아마도 외로움과 그리움일 것이다. 김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이자 ‘국민의 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이었지만, 동생들이 연루된 게이트가 잇따라 터지면서 정치적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민주당이 6·13 지방선거에서 완패하면서 또다시 ‘김홍일 희생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김의원이 노래를 통해 외로움과 그리움을 호소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미국에 다녀와서 봅시다
‘신동아’가 김의원측에 인터뷰를 처음 요청한 것은 2001년 10월이다. 당시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은 ‘정현준 게이트’의 ‘3K’ 중 한 명이 김의원이라고 주장했으며, 안경률 의원은 ‘이용호 게이트’의 배후인물로 김의원을 지목했다. 때마침 김의원이 제주도 휴가를 떠나면서 정학모 LG스포츠단 사장, 박종열 대검 공안부장 등과 동행한 사실이 밝혀져 정국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또한 11월엔 “김의원에게 ‘건달을 만나지 말라’고 조언했다”는 정성홍 전 국정원 경제과장의 주장까지 터져나왔다.
야당의 집중공세에 김의원은 선별대응으로 맞섰다.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문제에 대해서는 짤막하게 반박하고,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사안은 소송을 불사했다. 실례로 김의원은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문제삼은 여운환씨와의 관계에 대해 “우연한 만남이었다”고 주장했으며, 제주도 휴가를 ‘총체적 부패여행, 김홍일 커넥션’으로 몰아세운 한나라당 대변인을 검찰에 고소했다.
한나라당의 ‘김홍일 때리기’는 10·26 보궐선거에서 짭짤한 효과를 보았다. 한나라당은 당초 접전을 예상했던 서울 구로을과 동대문을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낮은 투표율도 변수였지만, 김의원과 관련된 언론보도가 표심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보궐선거가 끝난 뒤 한나라당에서는 조심스럽게 페이스 조절론이 등장했고, 민주당에서는 ‘반(反)동교동’을 전면에 내세운 정풍운동이 일어났다. 이때부터 김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표적이 되었다.
‘신동아’는 이 무렵 시중에 나돌고 있는 각종 루머의 진상을 김의원의 입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다. 날마다 수많은 의혹이 쏟아지고 있는 데 비해 김의원의 해명은 너무나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의원은 한사코 인터뷰를 고사했다. “루머는 루머일 뿐이고, 진실은 분명히 밝혀질 것”이라는 게 김의원측의 답변이었다.
2001년 12월 말. ‘신동아’는 두번째로 김의원측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 때도 김의원을 곤혹스럽게 만든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다. ‘민주당 당료 최택곤씨가 검찰 간부들에게 김의원 명의의 격려금을 전달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고, 곧이어 박정훈 전민주당 의원의 부인 김재옥씨가 “김우중 전대우그룹 회장이 보낸 돈 상자를 김홍일 의원이 직접 찾아갔다”고 폭로했다.
이번에도 김의원은 사안별로 분리대응했다. 돈 살포설을 보도한 언론사에 강력히 항의하는 한편, 김재옥씨 주장에 대해서는 “그 분이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김의원은 언론사에 대한 소송은 가급적 자제했다. 왜 그랬을까. 이 무렵 한 측근은 김의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의원님, 어려울 때 도와줄 곳은 그래도 언론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억울하지만 언론사와는 잘 지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의원은 평소에도 “기자들이 나를 많이 동정해줘서 늘 고맙게 생각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2002년 1월 초 국회에서 기자와 마주쳤을 때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언론이 아버지를 너무 몰아치는 것 같아서 화가 날 때가 많아요. 하지만 저한테는 잘해줘요.”
아무튼 김의원은 이번에도 인터뷰를 거절했다. 하지만 ‘신동아’가 거듭 요청하자, ‘지켜지기 힘든’ 약속을 하나 했다. “미국에 다녀와서 봅시다”. 이 무렵 김의원은 신병치료를 위해 미국행을 서두르고 있었다. 최소 달포(한달 반) 이상 걸리는 장기체류 일정이었다. 그의 몸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경선을 목전에 두고 떠나는 김의원의 행보를 예사롭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김의원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는 게 민주당 사람들의 공통된 얘기다. 그것은 김의원이 현직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해왔고, 또 현직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김의원은 애초부터 민주당 대통령후보를 뽑는 현장에 참석할 수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의원은 출국 직전 기자들과 만나 “미국에서 돌아오면 동교동의 의견을 모아 경선에 간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면에 나서지는 않겠지만, 소신은 분명하게 밝히겠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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