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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취재

“동생들 문제는 내 책임, 그러나 희생양은 될 수 없다”

DJ 장남 김홍일 의원의 심경 고백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동생들 문제는 내 책임, 그러나 희생양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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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월7일 김의원은 미국으로 떠났다. 로스앤젤레스의 UCLA병원에서 수술을 받기 위해서였다. 다음날 이희호 여사가 김의원을 간병하기 위해 출국했다. 수술은 비교적 잘 끝났다. 청와대는 “경과가 좋다”는 논평을 발표했고, 김의원측은 “물리치료를 꾸준히 할 경우, 상당 부분 회복될 수 있다”는 병원측의 진단내용까지 공개했다.

2월 말. 정치권에 김의원이 조만간 귀국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하지만 김의원은 이때까지 치료가 덜 끝난 상태였다. 그래서 귀국은 3월로 미루어졌는데, 민주당 경선이 변수로 등장했다. 경선을 치르는 와중에 김의원이 들어올 경우 ‘김심(金心)’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김의원의 측근을 찾아와 “당분간 들어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김의원이 귀국을 미루는 사이 정치적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이번엔 두 동생에 관한 루머가 김의원의 발목을 잡았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김홍걸씨의 미국 한미은행 예금계좌 입출금 자료를 폭로했고, 곧이어 최규선 미래도시환경 대표와 김홍걸씨의 관계가 최씨의 비서였던 천호영씨의 증언을 통해 공개됐다. 또한 김홍업 아태재단 부이사장과 김성환씨의 자금거래 의혹이 터져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그러자 한나라당은 김의원까지 포함한 ‘DJ 친인척 국정조사’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김의원의 지역구인 전남 목포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사태가 벌어졌다. 민주당 후보 경선을 앞두고 불공정 시비가 벌어진 것이다. 김의원은 2001년 가을 차기 목포시장을 염두에 두고 김흥래 전행정자치부 차관을 접촉한 일이 있다. 김 전차관이 목포시장 경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현직 시장을 비롯해 출마를 준비중이던 후보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김의원은 지구당위원장으로서 이 같은 사태를 외면할 수 없었고, 결국 최악의 조건에서 귀국을 서둘러야 했다.

민주당 경선이 대단원의 막을 내린 4월27일 김의원이 마침내 돌아왔다. 주변에서는 귀국을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김의원은 “내가 무슨 잘못이 있냐”며 고집을 세웠다고 한다. 그는 또 홍걸씨와 최규선씨의 관계가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홍걸이에게 여러 차례 ‘최규선과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충고했으며, 아버지(김대통령)도 그렇게 얘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의원은 의식적으로 홍걸씨 문제가 가족비리로 확대되는 것을 막고 싶었던 것이다.



김의원은 정치권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는 목포시장 후보경선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그는 “처음엔 김 전차관을 밀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자유경선을 해야 한다’고 얘기해서 현재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김의원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목포 현지에서는 김의원의 마음이 김 전차관에 쏠려 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김의원이 귀국하고 나흘 뒤인 5월1일. 목포에서는 ‘작은 이변’이 나타났다. 목포시장 후보경선에서 전태홍 목포상공회의소 회장이 김 전차관을 누른 것이다.

5월 중순, 정국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 민주당은 국민경선제를 통해 ‘노풍(盧風)’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홍업씨와 홍걸씨에 관한 의혹이 연이어 터져나오면서 ‘노풍’도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은 ‘DJ 3형제’를 싸잡아 비난했고, 민주당에서는 ‘김홍일 희생론’이 등장했다.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김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지 않을 경우,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토요일 밤의 기습 방문

물론 김의원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나는 아버님 임기가 끝날 때까지 할 일이 있다. 정치는 그만두고 싶다고 해서 그만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김의원과 가까운 동교동계 의원들도 거들었다. 한화갑 대표는 “지역구민의 결정이 중요하다”고 말했고, 최재승 의원은 “의원직 사퇴는 동료의원들이 얘기할 부분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신동아’는 이 무렵 김의원 인터뷰를 다시 추진했다. 이번에도 김의원은 완곡하게 사양했다. 기자가 “‘미국에 다녀와서 보자’고 했던 약속을 거론하자, 김의원측은 “상황이 이렇게까지 꼬일 줄 몰랐다”고 답했다. 김의원은 “동생들이 물의를 일으킨 마당에, 형이 나서서 얘기하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말도 했다.

정상적인 취재로는 인터뷰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기자는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의원이 무척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사석에서 “동생 일만 아니라면…”이라며 당당하게 나설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아쉬워했다고 한다. 인터뷰를 하고 싶어도 응할 수 없는 상황. 김의원은 그것을 가장 답답해했다.

6월1일 밤 11시30분. 기자는 김의원이 집에서 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예고 없이 서교동 자택을 찾았다. 초인종을 누르자 비서가 달려나왔고, 현관 앞에 김의원이 나타났다. 그는 다소 놀란 표정으로 “들어와서 차나 한잔 하자”고 말했다. 측근들에 따르면 김의원은 최근 수개월간 밤늦게 손님을 맞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먼저 건강부터 물었다. 김의원은 1970~80년대에 민주화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는데 그 후유증으로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발음을 정확하게 못하는 신병을 앓아왔다. 김의원이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측근들은 한동안 기대에 부풀었다고 한다. 출국 전과 비교해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귀국한 뒤 치료에 전념할 수 없었다. 미국 병원에서는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아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국내 정치상황은 그를 한가롭게 놓아주질 않았다.

“몸은 좋아지는 것 같은데, 아직도 조금만 무리해도 피곤해요. 요즘엔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더 힘들어요.”

김의원은 건강관리에 철저하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날마다 수영장을 찾는다. 여느 정치인 못지않게 식사모임이 많지만, 술을 마시는 일은 거의 없다. 아주 기분이 좋을 때 맥주와 사이다를 섞어 3분의 1잔 정도 마실 뿐이다. 이런 김의원을 바라보는 보좌진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한 측근은 이런 말까지 한다.

“의원님이 다른 정치인처럼 밤에 룸살롱 가서 술 마시고, 주말에 지인들과 필드에 나가서 골프치는 모습을 본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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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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