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호

병무비리 수사와 기무사의 민간인 내사 의혹

검찰 수사기록에 등장한 기무사 문서의 비밀

  • 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mairso2@donga.com

    입력2004-09-06 14: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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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무사가 민간인 구속과정에 개입하고 내사해온 의혹이 제기됐다. 기무사의 ‘표적’이 된 민간인은 병무비리수사에 큰 공을 세웠던 김대업씨. 병무비리 수사과정에 김씨의 ‘비위사실’을 추적했던 기무사는 지난해 4월 김씨가 개인적 송사에 휘말려 구속되자, 검찰에 찾아가 ‘정보자료’를 넘겼다. 이 문서에는 사건과는 아무 관계없는, 김씨의 ‘전과사실’과 ‘범죄혐의’가 적혀 있었다.
    군정보·수사기관인 기무사가 민간인 구속과정에 개입한 의혹이 제기됐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민간인으로서 군검찰의 병무비리수사팀에서 활약하다 지난해 4월 박노항 원사 체포에 앞서 구속된 김대업(41)씨 관련 검찰수사기록에서 확인됐다. 이 문서에 따르면 기무사가 민간인을 지속적으로 내사해온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들 만하다.

    검찰 수사기록에 왜 기무사 문서가?

    법적으로 민간인 내사가 금지돼 있는 기무사가 이처럼 김씨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은 병무비리수사를 둘러싸고 김씨와 기무사가 맺은 ‘악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수사 여파로 창군 이래 처음으로 군검찰에 의해 일부 부대가 압수수색 당하고 일부 요원이 구속되는 등 군 최대파워기관으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기무사는 병무비리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김씨를 군검찰 수사팀에서 배제하기 위해 애를 썼다. 이런 사실은 그간 일부 언론의 보도로 밝혀진 바 있다.

    사기 혐의로 구속돼 1년 실형을 살고 지난 4월 출소한 김씨는 모 시민단체를 찾아가 자신의 구속사건에 기무사가 관련됐다는 의혹을 제보했다. 이 단체는 김씨 주장에 대해 사실 확인과정을 거쳐 조만간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김씨는 ‘병무비리 족집게’로 불릴 만큼 병무비리수사에 관한 한 국내 최고 전문가로 통하는 인물. 민간인으로는 유일하게 군검찰 수사팀에 참여, 1998년 12월 제1차 병역비리 군·검합동수사반 발족 이후 세 차례에 걸쳐 3년 가까이 진행된 병역비리수사에서 상당한 공을 세웠다.



    반면 그에게는 ‘전과자’ ‘사기꾼’이라는 꼬리표도 따라다녔다. 그의 수사참여를 두고 군검찰 주변에서는 잡음이 일었다. 특히 기무사에서는 불미스러운 사생활 전력을 내세워 그의 수사 참여를 공공연히 반대했다. 민간인이 군에서, 그것도 병무비리 전과자가 병무비리수사에서 수사관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게 기무사의 시각이었다.

    비밀정보원인 김씨에게는 공식직함이 없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특수수사관’ 노릇을 했다는 게 군검찰 주변의 얘기다. 병무비리수사 초기 군검찰은 그의 정보수집과 자료분석에 크게 의존했다. 1차 수사 당시 국방부 검찰부 수석검찰관으로서 병무비리수사의 기본 틀을 마련했던 이명현 중령 같은 이는 “김대업씨의 도움이 없었다면 건군 이래 최대의 병무비리수사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김씨는 1999년 7월 기무·헌병요원의 병무비리를 전담수사한 특별수사팀에서도 활약했다. 2000년 2월 반부패국민연대의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제3차 병역비리 군·검합동수사 당시 군검찰쪽 팀장을 맡았던 국방부 검찰단장 서영득(현재 국방대학원 소속) 대령도 김씨의 능력을 인정해 그를 수사에 참여시켰다. 다만 서대령은 김씨를 둘러싼 잡음과 군검찰 내 불화를 감안해 그의 역할을 ‘수사보조원’에 국한시켰다.

    김씨가 이토록 ‘중용’된 것은 의정하사관 출신으로 기본적인 의학지식을 갖추고 있는 데다 신검규정 등 병무행정에 밝고 그 자신이 한때 병무비리세계에 몸담은 적이 있어 어떤 과정을 거쳐 비리가 발생하는지 훤히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그가 구속된 사건은 병무비리수사 과정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다.

    돈 대신 처벌 요구

    김씨의 구속은 평소 알고 지내던 조아무개(60·여)씨의 고소에서 비롯됐다. 최초 조사를 맡았던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조씨는 김씨가 체포되기 3개월쯤 전인 2000년 12월말 김씨를 사기혐의로 고소했다. 1998년 10월경부터 2000년 2월까지 수회에 걸쳐 3억7700만원을 빌려가 갚지 않았다는 것이 조씨의 주장이다.

    서초경찰서는 2001년 3월초 김씨를 지명수배했다. 담당자인 용아무개 경사는 그 이유에 대해 “김씨의 주민등록상 주소지(대구)로 출두요구서를 보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는 데다 소재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당시 김씨는 제3차 병역비리 군·검합동수사반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김씨 변호를 맡았던 안병희 변호사는 “합수반에서 활동하던 사람의 소재를 몰라 조사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며 수배 경위에 의문을 나타냈다. 수배된 시점이 합수반이 해체된 직후라는 점도 의혹을 낳았다. 말하자면 김씨의 ‘보호막’이 걷힌 직후 수배령이 떨어진 것이다.

    이런 까닭에 김씨는 체포 당시 수배사실은 물론 고소된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체포 직후 김씨는 조씨로부터 돈을 빌린 사실은 시인했지만 사기혐의는 부인했다. 액수도 다르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검찰로 송치되기 전 서초경찰서에서 조씨와 합의를 시도했다. 애초 조씨쪽에서도 돈만 받으면 고소는 취하하겠다는 의사를 비췄다.

    실제로 두 사람은 합의서를 작성했다. 김씨는 우선 자신의 현금카드에서 8000만원을 인출, 조씨에게 건넸다. 나머지 2억9700만원은 제3자의 보증하에 그해 6월4일까지 갚기로 합의했다. 김씨의 보증인으로 나선 이 제3자는 김씨가 병무비리수사 당시 인연을 맺은 군의관 출신 의사다. 양측은 법원제출용 합의서 외에 이면합의서를 작성해 공증까지 받았다. 이면합의서는 5가지 조항을 담고 있다. 이면합의서에 따르면 조씨는 ‘합의 이후 고소를 취하하며 이 건과 관련해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안병희 변호사에 따르면 합의서 작성 직후 조씨는 마음을 바꿔 고소를 취하하지 않았고 오히려 처벌을 요구했다. 그에 따라 합의는 깨졌고, 김씨는 법원의 구속적부심에서도 구제받지 못했다. 그해 4월13일, 서울지검 형사1부 김아무개 검사는 김씨를 사기혐의로 기소했다. 안변호사는 조씨의 태도가 바뀐 경위에 강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기무사 개입의 증거는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수사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검찰 수사기록에 첨부된 기무사 자료가 그것이다. 관련기록에 따르면 이 문서는 김씨가 기소되기 4일 전인 4월9일 기무사측에서 검찰에 넘긴 것이다.

    모두 12쪽으로 구성된 이 문서에는 기무사가 수집한 김씨의 전과 및 범죄혐의 정보가 담겨 있는데, 조씨의 고소 내용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다. 이 문서는 ‘수사보고(기무사 제출 서류 첨부)’라는 제목으로 법원에 제출된 검찰 수사기록 목록에 피의자신문조서, 변호인 의견서 등과 나란히 올라 있다.

    서울지검 형사1부의 이아무개 검찰주사보가 김아무개 검사에게 수사보고 형태로 제출한 이 문서 앞장에는 다음의 설명문이 첨부돼 있다.

    ‘본 건과 관련하여 피의자 김대업이 국방부 병역비리 합동수사본부에서 정보원으로 일할 당시 비리가 있어 위 김대업에 대한 정보수집을 하였던 기무사 소속 성명 불상 직원이 금일 당청에 내왕하여 ‘병무브로커 김대업 범죄경력 및 추가 범죄혐의’ 등 2건의 자료를 제출하기에 첨부하였기(*오타로 보임) 보고합니다’.

    ‘병무브로커 김대업 범죄경력 및 추가 범죄혐의’라는 자료에는 김씨의 인적사항과 범죄경력 등이 자세히 적혀 있다. 그에 따르면 김씨는 공문서 위조, 협박 등 전과 5범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기무사 자료에 적힌 자신의 범죄사실 중 상당수는 허위거나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일부 범죄사실, 이를테면 모 광역시 시장과 모 정당의 고위간부를 역임한 이아무개씨 아들의 병역비리에 연루됐던 사실은 시인한다. 이를 비롯해 자신이 관련됐던 몇 건의 병역비리를 군검찰 수사팀에 합류할 때 다 털어놓았고, 일부는 과거에 처벌을 받은 사안이기 때문에 새삼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이다.

    군검찰에 따르면 김씨의 주장은 사실로 보인다. 1998년 7월 협박죄로 1년 실형을 살고 막 출소한 김씨를 정보원으로 받아들인 국방부 검찰부는 김씨의 과거 행적을 철저히 조사했고, 김씨 스스로 털어놓은 몇 건의 병역비리 중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수사협조 대가로 면책을 약속하기도 했다.

    기무사 문서에 포함된 또 하나의 자료는 ‘김대업 자필진술서’다. 확인 결과 이 진술서는 김씨가 1997년 7월 협박 등의 혐의로 고소당해 경찰청 특수수사과에서 조사받을 때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김씨를 고소한 사람은 앞서 언급한, 정치인 이씨의 부인 민아무개씨다.

    김씨는 조사과정에 자신이 저지른 몇 건의 병역비리를 자백했다. 고소사유인 협박 혐의와 상관없는 병역비리를 털어놓은 것은 자신과 고소인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돈을 받고 이씨 아들의 병역면제를 알선한 적이 있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이 문제를 조사하지 않고 덮어버렸다. 이에 대해 김씨는 당시 수사에 외압이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기무사 문서가 갖는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

    첫째는 군 기관인 기무사가 민간인 소송에 개입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은 군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개인간 채권채무관계에서 비롯된 지극히 사적인 사건이었다. 게다가 문서에 담긴 내용은 이 사건의 본질과 거리가 먼 것으로, 김씨의 과거 행적, 그것도 사실관계가 검증되지 않은 ‘정보수집’ 차원의 얘기를 체계 없이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공식절차를 거쳐 검찰에 넘겨진 문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문서 앞부분에 첨부된 설명문에도 나타나 있듯 이 문서는 기무사령부가 업무협조 차원에서 공문 형태로 서울지검에 발송한 것이 아니라 ‘성명 불상’의 기무사 직원이 검찰에 찾아와 제출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검찰 수사기록에 포함돼 법원 제출용 수사서류목록에도 버젓이 등재된 것이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김아무개 검사는 기무사 문서를 수사기록에 포함시킨 이유에 대해 “김대업씨를 내사해온 군쪽에서 수사하는 데 참고하라고 넘겨준 것이다. 참고자료는 공문서가 아니더라도 수사기록에 첨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내용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검토해 보니 근거가 없어 보이는 것도 있고 공소시효가 지난 것도 있었지만 대체로 근거가 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김검사는 또 “본 사건과 관련 없는 내용을 수사기록에 첨부할 이유가 있느냐”는 물음에 “피의자가 과거 처벌받은 사건에 관한 기록이므로 검찰 입장에서는 참고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당시 검찰은 기무사 문서에 적힌 김씨의 범죄사실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채 ‘원본’ 그대로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의 ‘성명 불상’ 기무사 직원으로부터 직접 문서를 넘겨받은 검찰주사보 이아무개씨는 이 문제와 관련해 일절 답변을 거부했다.

    익명의 진정서에도 같은 내용이

    김대업씨가 구속된 직후 검찰에는 세 차례에 걸쳐 김씨의 비위사실이 담긴 진정서가 접수됐다. 진정서 내용은 문제의 기무사 문서 내용과 거의 동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글의 형식도 비슷하다. 기무사 문서에는 병무비리를 비롯한 김씨의 전과사실이 일련번호에 따라 나열돼 있는데, 진정서도 같은 형식을 띠고 있다. 이 진정서는 박노항 원사가 구속된 후 국방부 검찰단과 함께 병무비리를 수사하던 서울지검 특수1부에도 접수됐다.

    서울지검 특수1부는 그해 7월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김대업씨를 소환했다. 진정서에 제시된 김씨 관련 병역비리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조사를 맡았던 검찰 간부에 따르면 김씨의 병역비리는 사실여부를 떠나, 대부분 오래 전 일이라 공소시효가 지난 것이었다. 따라서 당사자인 김씨에게 책임을 물을 만한 것이 없었다는 게 이 간부의 설명이다. 또 구체적인 일시, 장소, 관련자 이름까지 적시돼 겉보기엔 구체성을 띠고 있었지만 사실관계를 확인하기가 불가능한 것이 많았다고 한다.

    게다가 진정인의 신분도 의문이었다. 진정서 제출자의 이름과 주소지를 확인해보니 가공의 인물임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진정서가 접수되면 진정인 조사부터 하는 것이 수사원칙이다. 이에 대해 위 검찰 간부는 “진정인 신분이 확인되지 않으면 익명의 투서로 판단해 조사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진정서의 주 내용이 병역비리이고 그 중엔 정치인이 관련된 것도 있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조사를 벌였다”고 말했다.

    어쨌든 진정서 조사가 계기가 돼 김씨는 수감자 신분으로 서울지검 특수1부의 병역비리수사에 수사보조원으로 참여, 약 8개월 동안 매일같이 서울구치소에서 서울지검으로 출근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김씨가 병역비리수사에 참여하는 동안 군쪽에서 어떤 얘기가 없었냐”는 물음에 “당연히 께름칙하게 여기지 않았겠나. 그 정도만 얘기하겠다”며 군쪽에서 ‘특별한 반응’을 보였음을 암시했다. 이 관계자는 또 김씨가 구속된 후 비슷한 내용의 진정서가 몇 차례 검찰에 접수된 것에 대해 “어디선가 조직적으로 움직인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은 들었다”고 귀띔했다.

    기무사 문서와 더불어 김대업씨 구속사건에 얽힌 또 하나의 미스터리는 김씨 구속 및 재판과정에 고소인 조씨 옆에 따라다니던 40대 남자의 정체다. 서초경찰서에서 김씨와 조씨 사이에 대질신문이 벌어질 때부터 모습을 보였던 이 남자는 합의서 작성에도 관여했고, 재판이 열릴 때마다 조씨와 함께 법정에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4월말 기자는 김대업씨가 구속된 후 이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기자는 김대업씨 구속경위에 대한 의문을 풀고자 조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인터뷰 자리에 이 남자가 따라나왔던 것이다. 그날 그는 자신의 신분을 끝내 밝히지 않았다. ‘조씨를 도와주는 사람’이라고만 할 뿐 무슨 일을 하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자신의 신상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다. “기무사 직원이 아니냐”는 물음에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이날 기자는 서울 서초동 모 식당과 카페에서 두 사람과 약 두 시간 가량 얘기를 나눴다. 조씨는 몹시 흥분한 상태로 김대업씨를 알게 된 경위와 김씨의 사기혐의에 대해 설명했는데, 중요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이 남자가 답변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는 그후 몇 차례 전화를 걸어와 기사가 어떤 식으로 나가는지 물었다. 당시 기자는 ‘재판중인 사건’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인터뷰 내용을 기사화하지 않았다.

    김대업씨는 출소 직후 이 남자의 정체를 추적했다. 김씨에 따르면 이 남자는 기무사 모 부서 소속 군무원 이아무개씨라는 것. 기자는 최근 조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 남자의 정체에 대해 1년 만에 다시 물었다. 조씨는 “기무사 사람은 아니다”고 강조하면서도 그의 이름과 하는 일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밝히지 못할 이유가 뭐냐”고 묻자 “그 사람이 원치 않는다”고 답변했다. 조씨는 거듭된 확인요청에 “그 사람한테 ‘조기자에게 직접 전화하라’고 말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그후 그 남자는 물론 조씨로부터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누가 그를 미행했나

    김대업씨 구속사건에 대한 의혹은 지난해 4월 중순 그가 구속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직후 일부 언론에 의해 제기됐다. 당시 언론은 그의 구속배경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마디로 ‘공작’의 냄새가 난다는 것. 의혹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

    첫째는 구속시기와 관련된 것이다. 김대업씨가 사기 혐의로 긴급체포된 것은 제3차 병역비리 군·검합동수사반이 해체된 지 한 달쯤 지난 지난해 3월30일. 공교롭게도 그가 체포된 지 20여 일 후 ‘병무비리 대부’로 불리던 박노항 원사가 도피생활 3년 만에 체포돼 의혹을 부채질했다.

    군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김씨는 군·검합동수사반이 해체된 후에도 독자적으로 박원사의 행적을 추적, 체포되기 직전엔 그의 소재지를 파악하고 있었다. 병무비리 전과자인 김씨는 일찍이 박원사의 활약상을 잘 알고 있었다. 박원사 체포 당시 군검찰 주변에서 “박노항의 비리를 속속들이 캐낼 수 있는 사람은 김대업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온 것은 그런 사정에서다.

    이처럼 김씨의 구속시기에 대한 의문은 바로 박원사 체포시기와의 관련 여부에서 비롯된 것이다. ‘군검찰의 박원사 체포가 임박했음을 감지한 특정세력이 김씨가 박노항 조사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꾸민 음모’라는 의혹이 그것이다. 김씨도 이 같은 주장을 폈으나 증거는 없는 상태다.

    둘째 의혹은 체포과정에 관한 것이다. 그를 긴급체포한 사람은 마포경찰서 예하 동교파출소의 엄아무개 경장. 3월30일 오후 순찰차를 타고 관내를 돌던 엄경장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근처 PC방을 가리키며 “저 안에 지명수배자가 있으니 가서 체포하라”고 일러줬다. 아울러 ‘친절하게도’ 누군가의 얼굴사진과 주민등록번호 등 인적사항이 적힌 쪽지를 내밀었다. 엄경장이 PC방에 들어서자 신고자가 건네준 사진 속 얼굴과 닮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가 바로 김대업씨였다. 주민등록조회를 하자 서초경찰서에서 기소중지 처분한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얼떨결에’ 김씨를 체포한 엄경장에 따르면 신고자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곧바로 사라졌다. 그후 엄경장에게 김씨의 체포사실을 확인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역시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김씨의 전과사실을 자세히 알려줬다. 김씨 조사를 맡았던 서초경찰서 관계자에게도 비슷한 내용의 전화가 걸려왔다.

    기무사와 김대업씨의 ‘악연’은 오래된 것이다. 군검찰의 병무비리수사 칼끝이 기무 요원들을 겨냥하자 기무사는 방어 차원을 넘어 반격에 나섰다. 일부 기무요원은 병무비리수사에서 핵심 노릇을 하는 김씨에 대한 ‘뒷조사’에 나섰다. 김씨를 ‘기무 죽이기’의 주역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기무사는 김씨가 연루됐던 병무비리사건을 독자적으로 추적해 관련정보를 수집했다. 또 병무비리수사에 협조한 군의관들을 찾아다니며 김씨의 전과사실을 공개하는 한편 수사과정에서 김씨가 저지른 비리가 없는지 알아보기도 했다.

    몇몇 군의관에게는 김씨의 처벌을 요구하는 진정서 작성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군검찰의 조사로 밝혀졌다.

    기무사는 대외적으로 “김대업씨는 사생활에 문제가 많은 부도덕한 인물로 ‘사적인 복수’를 위해 병무비리수사에 참여했으며 수사과정에도 많은 비리를 저질렀다”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그런 문제의 인물에게 병무비리수사를 맡기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게 군검찰에 맞선 기무사의 논리였다. 1999년 8월엔 기무사 참모장이 박주선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찾아가 김씨의 전과와 ‘비위사실’을 알리며 구속을 건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박비서관은 김씨에 대한 군검찰의 면책약속을 내세워 기무사측 요청을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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