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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보기관 노무현 뒤를 캐고 있다

주한 미국대사관의 대선 X파일

  • 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yj@donga.com

미 정보기관 노무현 뒤를 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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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순 워싱턴에서 한국의 대선 상황에 대한 미국의 기본 입장을 알리는 발언이 터져나왔다. 한국문제 전문가이자, 미 국무부 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인 제임스 켈리는 4월4일 워싱턴의 아시아협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퇴장 단계에 접어들어 한국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구상을 가진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들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 민주주의의 발전은 예측할 수 없다. 때문에 한국의 차세대 지도자가 한국에서의 미국의 전통적인 역할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미국과의 관계를 다시 규정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잘 지켜보고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한국의 다음 정부와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나는 미군 주둔으로 안보가 확보된 상태에 한국이 있었기에 이같은 성공이 가능했다고 주장하고 싶다. 미국은 한국의 독립과 안보를 위해 3만7000여 명의 미군을 주둔시키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아 한국이 민주주의, 평화, 번영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발언은 분명히 ‘노무현 현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이후 허바드 주한미국대사가 노무현 후보와는 상관없는 발언이었다며 공개적으로 해명하기도 했지만, 이는 워싱턴의 정서를 정확하게 드러낸 것이었다고 하겠다.

이 발언이 있은 뒤 노후보는 4월12일 S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미 동맹을 유지하는 가운데 한국이 한반도 문제에서 주도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자신의 대미관을 밝혔다. 미국대사관은 이 방송내용을 모두 녹취해서 영어로 번역해 본국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노후보의 발언 요지는 다음과 같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한·미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과거의 의존관계에서 벗어나 대등한 상호협력관계를 이루되 한꺼번에 하기보다는 점차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한미관계가, 노태우 대통령 때까지는 미국 입장이 일방적으로 관철되었고, 김영삼 대통령 때는 정서적으로 주도적, 자주적 목소리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주도권이 (한국에)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과) 원만한 관계이면서도 주도적인 목소리를 부각했다. … 주한미군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주둔하는 것이며, 앞으로도 필요하다. 이미 합의한 대로 용산기지를 이전하고, 한·미 행정협정을 일본이나 독일 수준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노후보는 수평적 한미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노후보는 또 “대통령 후보가 되면 미국 조야에 신고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아 힘들다. 이는 사대주의 잔재”라고 비판했다. 그는 “눈도장을 찍기 위해 미국을 찾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미국대사관은 이미 지난해부터 공개 자료 분석을 통해 노후보를 반미성향이 짙은 인물로 분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 2001년 8월2일자에 실린 “여(與) 수원 국정홍보대회 … 대선주자들 이총재 맹공”이란 제목의 기사를 영어로 번역해서 보고용 자료로 활용했다. 이 기사에서 노후보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노무현 상임고문=이총재는 민족적 자존심도 없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그대로 복창하고, 공화당 일부 강경파 의원들에게 놀아나는 사대주의자다. 이총재는 1998년 10월부터 2년간 영남집회만 10여 차례 가지는 등 지역분열을 조장해왔다.”

미국대사관은 공개자료에서 제기된 노후보의 자질과 과거 경력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월간조선’ 2002년 5월호에 실린, 노후보의 장인 권오석(權五晳)씨가 한국전쟁 당시 좌익에 연루되어 양민학살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내용이었다. 미국대사관은 이 기사도 영역하여 보고용 자료로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대사관은 공개자료 이외에 노무현 후보를 잘 아는 한국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노후보 분석 작업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미국측이 가장 긴밀히 접촉한 인물은 김광일 변호사(문민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 역임)다. ‘노풍’이 거세게 몰아치던 지난 4월경 미국대사관측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노무현과 김영삼 전 대통령(YS)과의 관계였다. 미 대사관은 노무현이 YS와 연결된다면 영남표를 움직일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YS와 노무현 사이에는 김광일 변호사가 있었다.

김광일 변호사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미국대사관측과 접촉했고,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노후보에 대한 질문에 답했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김변호사는 미국대사관측에서 전화가 걸려왔기에 통화를 했을 뿐, 직접 만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미국의 CIA 한국지부장이 김변호사를 만나 노후보에 대해서 상세히 조사했다”고 전했다.

김광일 변호사 만난 CIA 한국지부장

김변호사는 노후보를 인권 변호사로 만들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연결하여 정계에 입문시킨 사람이다. 김변호사와 노후보의 인연은 1979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변호사를 개업한 지 1년밖에 안된 신출내기 노변호사가 김변호사 밑에서 변호사 시보로 일하게 된 것. 당시 김광일 변호사는 부산 재야운동의 우두머리격으로 유신체제에 맞서서 재야인사를 변호하는 반체제 변호사로 이름이 높았다. 다음은 김광일 변호사의 설명이다.

“노변호사가 1979년 내 사무실에서 두 달 정도 있었는데 사람됨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노변호사는 내가 반체제 변호사로 알려져 있던 터라, 내 밑에서 일하다 반체제 인물로 찍히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당시 그는 판사생활 1년 만에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돈도 별로 없었다. 조심스레 내 편이 될 수 있는지 의중을 떠보았는데 노변호사는 법조계에서 출세하고 싶은 생각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변호사 개업 자금 100만원을 빌려주었는데 몇 달 뒤 그는 그 돈을 갚았다.”

노무현 후보가 순탄하게 변호사의 길을 걷던 1981년 7월, ‘부림(釜林)사건’이 터진다. 부림사건은 부산지역 학생과 재야운동권 인사 20여 명이 독서클럽을 결성해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토론하다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된 시국사건이다. 이 사건이 터지자 김광일 변호사는 부산지역의 인권 변호사를 모아 구속 학생들의 변호를 맡겼다.

당시 그는 친한 변호사 5명을 수소문해 이 사건을 진두지휘했다. 이 와중에 추가로 학생 1∼2명이 구속되자, 김변호사는 노변호사에게 사건을 수임해달라고 부탁한다. 처음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노변호사는 김변호사가 “내가 들어간 셈치고 변호해달라”고 부탁하자 마지못해 승낙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은 노변호사에게는 중대한 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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