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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 150명 ‘초미니 선거’ 동행 취재기

“코미디 같다구요? 이게 바로 민주주의죠”

  • 황일도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hamora@donga.com

유권자 150명 ‘초미니 선거’ 동행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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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혁 후보.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1973년 입주할 때 마을에 들어온 2세대 대표주자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그는 군 생활과 읍내에서의 짧은 직장생활을 제외하고는 줄곧 이 마을에서 살았다. 그러나 마을 어른들에게는 여전히 ‘코흘리개 진혁이’로 기억된다는 점이 가장 큰 한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가 내건 선거 컨셉트는 “유곡리가 변하고 있다”는 것. 1세대의 낡은 사고방식으로는 마을의 경제적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없다는 의식이 반영된 구호라고 본인은 설명한다. 핵심공약은 마을을 지나는 안보관광도로의 조기 개설과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농산물 직거래 판매장의 설치. ‘현상유지’가 아니라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겠다는 의욕이 엿보인다.

장진혁 후보는 마을 구석에 있는 자신의 집에 선거캠프를 차렸다. 새마을 지도자, 부녀회장 등을 선거본부에 영입하는 등 현직 의원으로서의 프리미엄이 돋보인다. 그 가운데서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단연 김정근(58) 사무장. 캠프를 이끌고 있는 유곡리 마을의 새마을지도자다. 마을 1세대이자 상대 후보의 친구이기도 한 그는 조용한 모습과 목소리의 소유자. 재미있는 것은 그가 지난 1994년에는 장대집 후보의 선거사무장을 맡아 승리로 이끌었다는 사실이다.

이후 장대집 의원의 의정활동을 3년 가까이 보좌했던 그는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장대집씨와 의가 상해 그의 곁을 떠났다. 이후 1998년 선거에서는 한 발짝 떨어져 있다가 이번 선거에서 장진혁 후보의 사무장을 맡으면서 선거판에 복귀했다.

1994년 선거를 승리로 이끈 ‘관록’에, 상대 후보의 선거전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의 존재는 이번 선거의 또 다른 관심사였지만, 상대후보 진영에서는 그를 ‘배신자’로 보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어찌 됐건 김씨가 이번 선거를 다시 한번 승리로 이끈다면 그는 개인적으로 ‘후보에 상관없이 당선시키는 선거의 귀재’라는 명성을 얻게 될 상황.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미국의 선거전문가 딕 모리스를 연상케 하는 김씨의 성공 여부는 선거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였다.



장진혁 후보 본인은 지난 4년간의 의정 활동을 근거로 승리를 낙관하고 있었다. 그 동안 장진혁 후보는 마을의 최대 현안이었던 토지 소유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정부의 재정지원을 이끌어내는 큰 수확을 거뒀다. 주택 등기를 군청에서 입주 주민 앞으로 바꾸고, 예산을 따내 마을주택 지붕을 수리하는 등의 사업도 펼쳤다.

그러나 업적이 많으면 적이 많다고 했던가. 사업 추진 과정에서 빚어진 크고 작은 오해들이 오히려 장진혁 후보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마을 뒤를 돌아나가는 소하천 장비사업. 마을 구석에서부터 공사가 시작됐는데 공교롭게도 이것이 바로 장의원의 집 옆이었던 것. 사람들은 수근대기 시작했고 소문은 마을을 떠돌았다.

중앙정부로부터 따낸 농지구입자금 역시 ‘빛 좋은 개살구’라는 비난이 일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전방지역에 불어 닥친 땅 투기 열풍의 와중에서 땅값이 두세 배 이상 뛰어버린 것. 아무리 장기저리 상환 자금이라지만 감당할 수 없이 높아진 땅값을 빌리기에는 마을주민 모두 부담이 컸다. 결국 자금은 은행금고에서 잠을 잤고, 마을 일부에서는 “진혁이가 자기만 군청에서 등기를 이전해 외지인에게 높은 값에 땅을 팔았다”는 마타도어가 제기됐다. 이른바 ‘장진혁 비토 세력’이 태동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다.

노스탤지어를 잡아라

장대집 후보의 집은 마을광장 옆에 위치하고 있다. 뜰 앞에 있던 비닐하우스에 선거캠프를 차린 장후보 진영은 주민들의 동선과 일치하는 까닭에 늘 시끌벅적한 분위기다. 장대집 후보는 스스로 ‘농사밖에 지을 줄 모른다’고 말하는 입주 1세대. 뿐만 아니라 그는 6·25 전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진짜 토박이’다. 전쟁 후 부모도 없이 떠돌다 나이가 들어 1973년 ‘금의환향’한 것. 당연히 이 지역에서는 누구 못지않은 발언권을 갖고 있는 마을의 중추 세대로 30년을 보냈다. 선거 컨셉트는 “믿음직하고 황소 같은 장대집”.

“나는 농사꾼입니다. 무식한 것도 사실이고, 농사밖에 지을 줄 모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유곡리를 압니다. 우리가 얼마나 뼈 빠지게 일했는지 잘 압니다. 나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번드르르한 말도 할 줄 모릅니다. 제가 아는 건 우리가 고생했던 만큼 대우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1세대가 군의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저를 밀어주십시오. 정직한 일꾼, 이 장대집이를 밀어주세요.”

6월5일 마을광장에서 열린 합동유세에 울려퍼진 장대집 후보의 출마 일성이다. 사실 장대집 선본의 가장 큰 힘은 ‘젊은 사람들은 모르는 1세대들의 고생담’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이른바 ‘입주동기’들 사이의 끈끈한 동지 의식이 바탕이라는 것.

“북한 방송이 울려 퍼지는 살벌한 동네에서 함께 황무지를 개간해 여기까지 왔지. 형제보다 오히려 낫다니까. 마을을 처음 세웠을 때는 옥수수 한 솥을 쪄도 모두 나눠먹을 정도로 우애가 좋았어. 살기는 퍽퍽했어도 얼마나 좋은 동네였나 몰라.”

장대집 후보 선거진영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던 마을 노인의 말이다. 장후보의 선거전략은 바로 이 ‘노스탤지어’에 근거하고 있다. 옛날 고생을 모르는 ‘어린애’가 마을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다는 정서다.

장대집 후보 캠프에서 눈에 띄는 것은 후보와 끈끈한 연대의식을 다져온 입주동기 1세대들. 중·노년층이 유권자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대집 후보가 이들의 구심점을 자처하고 나선 것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정치적 자산이었다.

장후보가 ‘실버타운 건설’이라는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공약을 내건 것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한다. 1세대들이 늙어감에 따라 마을은 거의 수명을 다했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모두 도회로 빠져나간 마당에 도로나 직판장 같은 공약들은 호소력이 없다고 장대집 후보 캠프는 판단하고 있었다. 대신 수십 년을 고생한 1세대와 노인들이 남은 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실버타운이라는 비전을 제시한 것.

또 다른 전략 포인트는 ‘현 군의원의 독주 견제’. 이는 ‘장진혁 비토세력’이 장대집 후보 쪽으로 결집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진혁이가 일은 많이 벌였는지 몰라도, 그게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여.” 장대집 후보 캠프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노인들만이 오가는 캠프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 장대집 후보가 띄운 또 다른 승부수는 ‘젊은 피’ 수혈. 읍내에 나가 있던 30대 초반의 송석배씨를 사무장으로 영입하면서, 송씨를 따르는 젊은이들을 자연스럽게 선거운동원으로 끌어들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을 누비는 이들 운동원들 덕분에 선거는 더욱 떠들썩해졌다. 후보 본인의 중년층 인맥에 청년층까지 포섭한 장대집 후보는 인적 구성에서 만큼은 단연 우위를 점한 듯 보였다.

그러나 한계는 있었다. 2기 군의원일 때 활동에 대한 회의론이 그것이다. 역시 익명을 요구한 마을주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장씨 아저씨가 정직한 사람인 거는 다 아는 얘기지. 그런데 그만큼 야무지지가 못했단 말이야. 의정일을 농사일 하듯 하니까 성과가 별로 없는 거야. 3년 동안 한 일이 뭐 있어.”

정서적 호소력과 정책적 약점. 장대집 후보의 상반된 두 측면 가운데 유권자들은 과연 무엇을 고려할 것이냐가 승부의 관건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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