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호

北, 서해갑문 살리려 금강산댐 버렸다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입력2004-09-07 11:1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금강산댐은 제2의 노동미사일. 금강산댐 붕괴는 戰時체제 부른다
    • 탱크 동원해 설렁설렁 다지고, 댐 표면은 마감하지 않고 초스피드로 쌓았다
    • 금강산댐 건설 부대, 서해갑문 보강공사 위해 지난해 9월 금강산댐에서 철수
    • 금강산댐 여수로는 댐보다 높은 ‘공중(空中)여수로’. 이 여수로는 물을 넘길 수 없다
    • 평화의 댐 증축이 유일한 대안. 그러나 이를 애써 외면하는 김대중 정부
    • 화천댐 중앙에 구멍이 뚫린 사연
    북한이 금강산댐(북한측 이름은 임남언제) 물을 방류하겠다고 한 6월3일,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의 평화의 댐 보강공사 현장은 매우 분주했다. 트럭들은 인근 산을 깎아서 만든 돌을 평화의 댐 보강공사 현장으로 부지런히 실어 나르고 있었다.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데 “오후 2시부터 금강산댐에서 방류를 시작했다”는 연락이 왔다. 평화의 댐 바로 북쪽은 민통선 구역이다. 이곳에는 백두산 부대로 불리는 육군 ○사단이 포진해 있다.

    백두산 부대의 협조를 얻어 덜컹거리는 지프를 타고 민통선 안쪽으로 들어갔다. 민통선 안에 있는 평화의 댐 상류의 북한강에는 여러 개의 다리가 있다. 2시30분쯤 그 다리 중 하나인 안동포교에 도착하자, 흙빛 거품을 머금은 혼탁한 물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빛깔만으로 본다면 ‘지독한 폐수(廢水)’ 그 자체다. 왜 금강산댐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은 이렇게 더러운 것일까? 더럽건 말건 메말랐던 남측의 땅은 재빨리 북측의 물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수심을 측정하던 병사는 “오후 2시 이전까지는 60∼70㎝였는데, 지금은 3.4m다”라고 말했다.

    폐수처럼 시커먼 금강산댐 방류수



    지프를 타고 좀더 북쪽으로 올라가 오작교(烏鵲橋)가 걸려 있는 남방한계선에 이르렀다.

    매일 밤 국군은 남방한계선에 불을 밝히는데, 이곳의 불빛이 아주 야릇한 모양을 만든다고 한다. 강 좌측 GOP에서 본 강 우측의 방책선 라인은 여체(女體)의 곡선을 만들어낸다. 강 우측에서 본 좌측 산의 방책선 야경은 남자의 얼굴을 만든다고 한다.

    “이게 무슨 조화냐.” 최전방에서 ‘독수공방’하는 사내들은 ‘필시 사연이 있어 이러한 야경이 만들어졌을 것이다’라고 믿고, 두 산 사이에 걸려 있는 다리를 오작교로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 오작교 밑으로도 시커먼 빛깔의 금강산댐 방류수가 흘러오고 있었다.

    우리의 건설교통부에 해당하는 북한의 기관은 국토환경보호성이다. 북한에서는 장관을 ‘상(相)’이라고 하는데, 국토환경보호상은 장일선이다. 북한에서는 댐을 ‘언제(堰堤: 제방이라는 뜻)’라고 한다. 금강산댐은 강원도 양구군 임남면에 있어 북한은 ‘임남언제’로 부른다.

    5월31일 북한의 국토환경보호성은 북한 적십자사를 통한 전화통지문에서 “장마철을 앞두고 임남언제의 물을 6월3일부터 뽑는다는 것을 귀측에 알린다. 우리의 사전통보 조치는 어디까지나 뜨거운 동포애와 인도주의 정신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인도주의로 방류한다?

    북한은 이 기사를 쓰는 6월14일까지도 계속해서 금강산댐 물을 방류하고 있다. 방류가 계속되자 물은 훨씬 맑아졌다. 그러나 왜 처음 금강산댐에서 방류한 물이 더러웠는가를 시원스럽게 설명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더욱 답답한 것은 이 물이 금강산댐의 ‘어느 구멍’에서 나오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금강산댐은 남한을 겨냥한 ‘제2의 노동미사일’이고 또 하나의 핵무기다. 고의든 부실공사 때문이든 이 댐이 터지면, 남한은 즉각 전시(戰時) 체제로 돌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한의 많은 토목 전문가들은 “올 여름 홍수 때 금강산댐이 붕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한반도에 전시를 방불케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금강산댐 붕괴 논란이 일자 남한 정부는 평화의 댐 시공사인 대림산업을 시켜 4월 말부터 평화의 댐 보강 공사에 착수했다.

    올 여름 장마 때 금강산댐이 붕괴한다면, 그 물은 평화의 댐을 월류(越流)할 가능성이 높다. 1986년부터 1988년 사이 평화의 댐을 만들 때 전두환(全斗煥) 정부는, 빨리 완공하기 위해 주로 큰 돌덩어리를 쌓았다. 때문에 평화의 댐은 사력댐 중에서도 ‘석괴(石塊)댐’으로 분류된다. 석괴댐은 월류에 특히 허약하다.

    월류한 물은 댐 정상부의 돌을 끌고 밑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댐 정상부가 무너져내린다. 동시에 하단부에서도 붕괴현상이 일어난다. 평화의 댐 높이는 80m다. 80m를 낙하한 물은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바위나 흙은 위에서 누르는 압력에는 잘 견디지만, 옆에서 당기는 힘에는 맥을 추지 못한다.

    홍수가 지기 전, 강가에 사람 힘으로는 도저히 들 수 없는 큰 바위를 갖다 놔 보자. 그리고 큰물이 쓸고 지나간 다음에 보면, 하류 쪽으로 휩쓸려 내려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근처 땅속에 박혀 있던 큰돌도 빠져나와 하류 쪽에 처박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불어난 물이 바위를 횡(橫)으로 밀고 당겼기 때문에 일어났다. 물은 이렇게 횡으로 잡아끄는 힘이 강한데, 특히 높은 데서 떨어진 물은 당기는 힘이 강하다.

    평화의 댐을 넘어 80m를 낙하한 물은 ‘물귀신’ 같은 힘으로 댐 하단부를 구성한 석괴를 끌고 나간다. 이를 ‘세굴(洗掘)’ 현상이라고 한다. 정상부의 훼손과 하단부의 세굴현상이 장시간 계속되면, 석괴들 간의 균형이 깨져 댐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평화의 댐 보강공사는 물이 월류하더라도 댐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월류한 물이 정상부에 있는 돌을 끌고 나가지 못하도록 댐 정상부를 70㎝ 두께의 콘크리트로 덮어씌웠다. 80m를 낙하한 물이 하단부를 세굴해도 댐 전체는 무너지지 않도록 추가로 돌을 쌓아 하단부를 보강했다. 그리고 화천댐을 최저 수위로 낮춰 평화의 댐을 넘어 흘러오는 물을 막아내도록 했다.

    평화의 댐 보강공사는 매우 황급히 추진되었다. 건설교통부는 160억원으로 추산되는 보강공사비는 추후에 기획예산처와 협의해 마련하기로 하고 우선 공사부터 발주했다. 이렇게 공사를 서두르고 있음에도 남한 정부는 금강산댐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있다.

    여수로와 방류구의 차이

    북한은 어떤 의도로 금강산댐을 만들었는가. 과연 안전하게 만들었는가.

    금강산댐은 흙과 자갈 등을 쏟아부어서 만든 전형적인 사력(砂礫)댐이다. 남한에도 사력댐이 있는데 소양강댐이 대표적이다. 금강산댐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소양강댐에 비교하며 살펴보기로 한다. 지금 금강산댐 총저수용량은 9.1억t 정도인데, 북한은 이 댐을 증축해 26.2억t으로 늘릴 계획이다. 소양강댐의 저수용량은 29억t이므로, 금강산댐과 소양강댐은 여러가지 면에서 비교해볼 만하다.

    사진 1 하류 쪽에서 본 소양강댐 에서처럼 하류 쪽에서 본 소양강댐에는 정상 우측부에 4개의 수문이 설치돼 있다. 이 수문들은 댐 상단부에 설치돼 있으므로, 만수위에 육박할 때만 비로소 물을 방류한다. 홍수 때 가둬놓을 수 없어 남는 물은‘여수(餘水)’라고 하고, 여수를 흘려보내는 수로를 ‘여수로(餘水路·spill way)’라고 부른다. 댐 정상부에 있는 수문의 정확한 명칭은 여수로다.

    댐은 여수로를 통해서만 물을 빼내는 것이 아니다. 댐에는 발전이나 용수 공급 등을 위해 사시사철 물을 빼내는 ‘방류구(放流口)’가 있다. 소양강댐에도 발전을 위해 물을 빼내는 방류구가 있다. 여수로는 홍수 때만 쓰이기 때문에 댐 상단부에 있으나, 방류구는 항시 물을 빼내야 하므로 댐 중간 높이쯤에 위치한다.

    그렇다면 금강산댐에도 여수로와 방류구가 있어야 한다. 금강산댐은 가둔 물을 태백산맥을 뚫은 길이 45㎞의 장대한 터널(방류구)을 통해 동해 쪽으로 떨어뜨리는 유역변경발전을 한다. 동해 쪽에는 역류한 물을 받아 전기를 생산하는 안변청년발전소가 있다. 금강산댐의 발전용 방류구는 동해 쪽으로 나있는 것이다. 그런데 금강산댐에는 인공위성 사진 ⑧번쯤에 또 하나의 방류구가 설치돼 있다(금강산댐 화보 참조).

    ⑧번 방류구 밑에는 북한강으로 이어진 지천이 있다. 따라서 ⑧번 방류구로 나온 물은 이 지천을 따라 금강산댐 하류에 있는 북한강 본류로 들어간다. 지난 1월과 6월 평화의 댐으로 내려온 물 중 일부는 ⑧번 지역에 있는 방류구에서 유출되었다.

    그러나 방류구로 뽑아낼 수 있는 물은 그리 많지 않다. 화천댐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화천댐의 발전용 방류구는 초당 185t을 방류한다. 반면 수문(여수로)은 초당 7828t을 방류한다. 금강산댐 일대에 집중호우가 쏟아질 경우 금강산댐에 있는 두 개의 방류구로는 밀려드는 물을 도저히 처리할 수가 없다.

    금강산댐에서는 ⑧번 외에도 ⑤번과 ⑥번 ⑦번 부위에서 물이 유출되었다. ⑤번과 ⑥번 ⑦번에서의 방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수상쩍다. 댐을 건설할 때는 먼저 강바닥의 토사를 제거한 후 암반을 찾아내 그 위에 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물줄기를 막아 다른 데로 돌려놓아야 하는데, 그것을 ‘가(假)물막이’ 공사라고 한다. 가물막이로 막은 물은 가(假)배수로를 통해 하류로 내려보낸다. 가배수로는 대개 가물막이를 한 곳에서 가까운 산속에 터널 형태로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 댐 전문가들은 북한이 ③번에서 ⑦번 부위 쪽으로 가배수로 터널을 뚫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남한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가배수로를 콘크리트로 완전히 메운 후 담수를 시작한다. 여수로를 설치하고 가배수로를 막은 뒤 담수를 하는 것은 교과서적인 댐 건설 방법이다. 그런데 금강산댐에서는 가배수로 출구로 추정되는 ⑦번 부위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전문가들은 “북한측이 댐을 완성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담수를 하다보니, 유사시 물을 빼내기 위해 가배수로를 완전히 틀어막지 않고 편법으로 가수배로에 수문을 설치한 것 같다. 그러나 수문이 완전치 않아 ⑦번 부위에서 상시적으로 물이 새어나왔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러한 추정이 맞다면 북한측은 매우 위험한 공법을 시행한 것이 된다.

    금강산댐은 ⑦번뿐만 아니라 ⑥번과 ⑤번 부위에서도 물이 새나간 흔적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⑥번 부위에도 가배수로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임시 방류구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⑤번은 ⑥번이나 ⑦번과 달리 콘크리트로 만든 구조물인데, 이곳에서 물이 흘러나온 것은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하류쪽의 댐바닥에는 대개 여수로에서 떨어진 물이 댐을 세굴하지 않도록 하는 시설을 만드는데, ⑤번은 그러한 목적으로 만든 구조물이 아닌 것이다.

    위성사진 판독 전문가들은 이 댐이 군사분계선에 가까이 있고 건설 주체가 인민군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⑤번에 유사시 댐을 인위적으로 터뜨릴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놓았을 수도 있다고 추정한다.

    현재 높이의 금강산댐은, 최고 12억t의 물을 담을 수 있다. 월류할 정도로 많은 물이 흘러들 때 댐 최하단부인 ⑤번 지역을 폭파시키면, 이 물은 삽시간에 평화의 댐으로 몰려간다. 이렇게 되면 저수용량이 5.9억t인 평화의 댐은 월류와 세굴로 인해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탱크로 다지기 공사

    사진 2 대동강 하류의 서해갑문 평화의 댐에서 수용하지 못한 물은 다른 지천에서 몰려든 물과 합세해 춘천을 침수시키고, 화천에서 팔당까지의 콘크리트댐을 차례로 월류해 수도권 일대를 물바다로 만들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금강산댐은 북한이 개발해온 핵처럼 위험한 존재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금강산댐에 대한 안전도 검사와 함께 ⑤번 부위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을 거부해 미국과 마찰을 빚었듯, 금강산댐에 대한 조사는 장차 남북한 사이에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방류구로는 홍수 때 밀려드는 물을 다 처리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여수로가 있어야 한다. 여수로가 없으면 물이 월류하고, 월류한 물은 앞서 설명한 대로 자갈과 돌을 끌고 내려가 사력댐을 무너뜨릴 수 있다. 소양강댐에는 여수로가 있지만 금강산댐에는 여수로가 없다. 여수로가 없다는 점은 금강산댐이 갖고 있는 최대의 미스터리다. 남한에도 여수로가 없는 사력댐이 하나 있다. 바로 평화의 댐이다. 평화의 댐은 금강산댐이 붕괴했을 때를 대비한 ‘대응댐’이라 사시사철 비워놓기 때문에 여수로를 만들지 않았다.

    북한은 2000년 10월20일 금강산댐 2단계 공사를 마친 후 바로 담수에 들어갔다. 이때 금강산댐의 높이는 88m였다. 북한은 담수와 함께 금강산댐을 높이는 공사에 들어가 2001년 9월말쯤에는 105m까지 높여놓았다. 댐 증축과 담수는 병행하지 않는 게 상식인데, 북한은 두 가지를 동시에 시행한 것이다.

    금강산댐 공사를 벌인 것은 ‘김성삼부대’로 불리는 조선인민군의 최정예 공병대였다. 이 부대는 군단급으로 병력은 3만2000여 명이고 당시 부대장은 안피득 중장(한국군 소장에 해당)이었다. 안피득 중장은 상장(한국군 중장)으로 진급해 지금은 인민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을 맡고 있다.

    김성삼부대는 남포직할시 영남리 대동강 하류에 있는 ‘서해갑문’을 건설한 부대로도 유명하다. 서해갑문과 금강산댐은 북한에서는 조선인민군 공병대가 건설한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김성삼부대는 초고속으로 금강산댐의 높이를 올렸다. 사력댐을 쌓을 때는 흙과 자갈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남한에서는 롤러로 다지기공사를 한다. 그런데 김성삼부대는 탱크를 동원해 다지기공사를 했다. 탱크는 롤러만큼 중량이 무겁지만, 궤도 사이의 흙은 다지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김성삼부대는 탱크로 설렁설렁 흙을 다지고 새 흙을 쏟아부어 댐을 높이는 속도전에 주력했다.

    이렇게 댐을 쌓아 올리는 와중에 이들은 인공위성 사진 ⑨번 지점에 여수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곳은 금강산댐에서 400m 정도 떨어진 산꼭대기인데, 이곳의 높이는 110m(해발 305m)로 105m (해발 300m)까지 올라온 금강산댐보다 높다.

    인민군은 금강산댐을 121.5m로 높였을 때를 염두에 두고 여수로 건설을 시작한 것이다. 이 여수로는 하천공학적인 면에서 볼 때 아주 잘못된 지역에 건설되었다. 인공위성 사진을 보면 ⑨번에서 떨어진 물은 크게 방향을 틀어 아래에 있는 북한강 지류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홍수 때 여수로로 빠져나가는 물은 북한강 본류가 홍수 때 토해내는 물의 양과 비슷하다. 이 물은 북한강 본류를 가득 채우고 도도히 하류로 흘러간다. 이 물은 북한강 본류만 감당할 수 있지 지류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는 양이다. 그런데 인민군은 이렇게 많은 물이 북한강 지류로 떨어지도록 여수로를 건설한 것이다.

    여수로를 통해 떨어지는 물의 압력은 엄청난데, 지형 여건상 이 물은 역(逆) 기역자로 방향이 크게 틀어져야 지천으로 흘러들 수 있다. 여수로에서 떨어지는 물의 방향을 트는 것이 가능할까. 또 지천은 이 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많은 물이 한꺼번에 흘러내리면 지천 일대는 물바다가 될 수밖에 없다.

    인민군은 왜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곳에 여수로를 건설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먼저 북한의 조급성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즉 댐을 완성함과 동시에 여수로를 완공하려다보니 댐과 여수로를 분리해서 지어야 했고, 여수로 건설지를 찾다보니 지형상 ⑨번밖에는 마땅한 곳이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둘째로는 북한강 하류지역에 대한 북한의 무책임성이 거론된다. 금강산댐에서 평화의 댐까지의 거리는 38㎞에 불과하다. 따라서 금강산댐 물을 지천으로 방류하면, 일부 북한지역이 침수 피해를 입지만 더 큰 피해는 남한이 입게 된다. 자기네가 입는 피해가 적으니 북한은 엉뚱한 곳에 여수로를 짓는 야릇한 수를 선택했을 것이다.

    지난해 9월 인민군 공병대는 돌연 금강산댐 공사현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105m까지만 댐을 쌓은 상태에서 사라져버렸으니, 110m 높이에 건설되던 여수로는 물을 내려보낼 수 없는 ‘공중(空中) 여수로’가 되고 만 것이다.

    남한에는 위성사진이나 첩보 등을 통해 북한 내부 사정을 추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들은 첩보수집 능력이 누설되는 것을 막고, 남북 화해정책을 추구하는 김대중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금강산댐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신동아’는 이들로부터 익명을 전제로 북한 내부 사정에 관한 고급 정보를 다량 입수했다.

    이들에 따르면 김성삼부대는 긴급히 서해갑문 보강공사에 투입되었다고 한다. 서해갑문은 금강산댐 2단계 공사가 완공되기 전까지 인민군이 건설한 사업 중에서 최고로 꼽혀왔다. 도대체 서해갑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금강산댐 공사를 하던 부대가 긴급히 옮겨갔을까.

    대동강 하류는 인천 앞바다만큼이나 간만의 차이가 커, 썰물 때는 배를 접안할 수 없다. 1980년대 초반 북한은 60억 달러의 사업비와 1개 군단 규모의 공병부대를 투입해 썰물 때도 5만t급의 배를 남포항에 접안할 수 있도록 서해갑문 건설을 시도했다.

    서해갑문 축조는 난공사였다. 이곳은 밀물과 썰물 때의 유속이 초속 11m로 매우 빨랐고, 최고 수심은 무려 30m에 이르렀다. 북한 공병대는 두 차례나 완공 시기를 연기한 끝에 1986년 6월24일 공사를 마무리했다. 이 갑문 위로는 4차선 도로와 철도가 설치돼 있다. 갑문을 닫으면 그 위로 자동차와 기차가 지나는 것이다. 이러한 다목적성이 오히려 문제를 야기했다.

    서해갑문이 평안남도(남포직할시)와 황해남도를 잇는 중요한 교통로가 되다 보니, 아무리 많은 배가 몰려들어도 정기적으로 갑문을 닫아 철도와 자동차를 통행시켜야 했다. 배의 출입과는 무관하게 갑문을 여닫다보니 남포항의 체선(滯船)이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서해갑문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대동강 쪽으로부터 홍수 때마다 내려온 토사가 쌓이면서, 이 갑문은 바다 쪽으로 밀어내는 힘을 받기 시작한 것. 반대로 바다 쪽에서는 파도와 조류가 서해갑문의 하부를 파헤치는 세굴(洗掘)현상이 일어났다. 때문에 갑문은 바다 쪽으로 약간 기울어져버렸다.

    북한은 서해갑문을 완공함으로써 20만 정보의 새 땅을 확보했다. 이 땅에 남포공단을 짓고 농경지도 만들었다. 그런데 서해갑문이 무너진다면 경제의 펀더멘털이 허약한 북한은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금강산댐 붕괴는 주로 남한에 피해를 주지만, 서해갑문의 붕괴는 북한 수도권에 큰 피해를 준다. 이런 사정 때문에 김성삼부대는 금강산댐 공사를 중단하고 황급히 서해갑문 보강공사에 투입된 것이다. 하지만 김성삼부대는 서해갑문 보강공사가 미국 첩보위성에 노출될까봐 야간에만 공사를 하고 있다.

    다시 금강산댐 이야기로 돌아가자. 인민군이 금강산댐 건설을 서둔 것은 이 사업이 김일성(金日成)의 유훈 사업이며 북한의 심각한 전력난을 해소하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로동신문’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는데 2000년 10월21일자 ‘로동신문’은 ‘혁명적 군인정신이 낳은 자랑스러운 창조물인 안변청년발전소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인민군대에 주신 마지막 유훈 교시를 관철하고,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의 돌파구를 전력문제로부터 풀어 나가려는… 자력갱생의 대 기념비다’라고 보도하고 있다.

    조선인민군이 금강산댐 2단계 공사를 완공한 후 댐을 높이는 공사를 하면서 동시에 담수를 시도한 것은 20만㎾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안변청년발전소를 조기에 가동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인민군은 안전을 무시하고 충성심만으로 공사를 벌였는데, 서해갑문에 문제가 생겨 그곳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들이 떠난 후 금강산댐의 높이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지만 수위는 하루하루 높아져 2001년 말쯤에는 만수위(100m쯤)에 육박하게 되었다.

    그런던 2002년 초 어느 날, 우려하던 사고가 일어났다. 사력댐은 흙과 자갈을 쌓아올려 만든 인공 산이다. 따라서 균형이 깨지면 산사태가 나듯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인공위성 사진에서 ①과 ②로 표시된 금강산댐 정상부의 두 지역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특히 ①번 부위는 폭 20m, 깊이 15m 정도로 크게 무너져 내렸다. 15m 깊이로 무너져 내렸다면 이곳으로는 일시적으로 금강산댐 물이 월류했을 가능성도 있다. 인공위성 사진 ①번 부위를 확대해 보면 물이 담긴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또 댐체 중간인 ④번 부위가 크게 함몰되었다. ④번 부위가 함몰한 이유는 쉽게 추정되지 않는다. ④번 아래의 금강산댐 표면은 깨끗하나 그 위쪽은 거칠다. 이는 ④번 아래쪽은 돌로 마감공사를 했고 윗부분은 아직 마감공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사력댐을 쌓을 때에는 댐 표면을 깨끗이 마감하며 높이를 올리는 게 정석이다. 그 이유는 댐을 안전하게 쌓기 위해서인데, 이렇게 쌓는 것을 ‘점고식(漸高式)’ 공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조선인민군은 댐의 높이를 올려놓은 후 뒤늦게 마감공사를 했다. 이러한 사실은 ④번 부위까지는 표면이 깨끗하나 그 위로는 흙이 그대로 드러나는 등 마감공사가 돼 있지 않은 데서 알 수 있다.

    “이미 금강산댐엔 越流가 있었다”

    표면 정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물을 만수위에 가깝게 채우면 흙이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있다. 이런 댐은 물이 월류하면 더욱 쉽게 붕괴한다. 공교롭게도 함몰한 ④번 부위는 무너진 ①번 부위 바로 아래쪽이다. 따라서 ①번으로 월류한 물이 떨어지자 마감공사를 하지 않아 지반이 약한 ④번 부위가 세굴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세 군데가 무너지고 꺼졌으니 금강산댐 운영자들은 얼마나 놀랐을 것인가. 이런 이유로 지난 1월18일부터 2월4일까지 18일 동안 북한은 긴급히 금강산댐의 물을 방류한 것으로 추정된다.

    댐이 붕괴할 정도로 물이 늘어났으면 여수로로 물을 방류해야 한다. 그러나 금강산댐에는 건설하다 중단한 ‘공중(空中)’ 여수로는 있어도 진짜 여수로는 없다. 따라서 금강산댐 방류에는 가능한 모든 수단이 동원되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⑧번 방류구가 동원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⑤번과 ⑥번 ⑦번 부위로도 긴급히 물을 흘려보냈을 것이다.

    금강산댐은 18일간의 긴급 방류로 수위가 100m쯤에서 75m쯤으로 낮아졌다. 수위가 100m일 때 이 댐에는 9억t 가량의 물이 차 있었으나, 방류가 끝난 후에는 5.9억t으로 줄어들었다. 금강산댐은 75m 이하로는 수위를 낮추지 못하는데 이는 이 댐의 방류구가 75m 지점쯤에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금강산댐 물을 긴급방류하게 된 원인은 엉성한 설계와 부실 시공, 그리고 성급한 담수로 댐 일부가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금강산댐과 평화의 댐 인근에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한여름에 집중호우가 자주 내린다. 1999년 여름 이 일대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5.9억t을 담을 수 있는 평화의 댐이 만수위에 육박했었다. 현재 금강산댐은 수위를 75m까지 낮췄다고 하지만 1999년과 같은 큰비가 내리면 금방 3.1억t 이상의 물이 유입될 수 있다. 3.1억t 이상의 물이 들어오면 금강산댐은 만수위에 도달해, 지난 1월 댐 일부가 함몰된 것처럼 월류와 세굴로 인해 무너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을 수 있다.

    금강산댐의 부실공사 흔적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의 소양강댐 사진을 다시 살펴보자. 소양강댐 표면에는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큰길이 Z자 모양으로 나 있다. 큰길을 냈다는 것은 댐의 기울기가 아주 완만하고 댐이 두껍게 쌓여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공위성 사진을 통해 본 금강산댐은 기울기가 매우 급하다. 댐의 두께가 얇다는 증거다. 2000년 10월 조선인민군이 1년4개월 만에 2단계 공사를 완료할 수 있었던 것은 탱크로 설렁설렁 다져가며 댐을 얇게 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력난 해소를 위해 성급히 담수를 시도했다가 댐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과연 남한 정부는 금강산댐 부실공사를 몰랐었냐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CIA가 북한에 관해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대북 정보에 관해서는 남한의 국가정보원(원장 신건)이 세계 제일이다. 1997년 국정원은 위성사진을 전문적으로 수집·분석하기 위해 W씨를 단장으로 한 위성사업단을 창설해, 방대한 양의 북한 위성사진을 수집·분석하는 작업을 했다.

    위성사업단은 여러 경로를 통해 위성사진을 수집하는데, 가장 중요한 공급처는 한미연합사다. 한미연합사는 KH-12 등 미국 첩보위성이 찍은 위성사진을 국정원에 제공한다. 첩보위성이 찍은 위성사진의 해상도는 무려 15㎝여서 농구공 크기의 물체까지도 판독할 수 있다.

    민간기업체에서 운영하는 상업위성 사진은 일반 기업에서도 구입할 수 있으므로 국정원도 자유롭게 구할 수 있다. 상업위성 사진의 해상도는 1m 내외로 리어카 정도의 물체까지 식별해낸다. 이렇게 많은 위성사진을 구입하는 위성사업단이 금강산댐의 문제를 몰랐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국정원은 침묵했다.

    정부는 서울대 법대 이상면 교수가 ‘신동아’ 2002년 5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올해 1월의 긴급 방류 등을 근거로 금강산댐 붕괴 가능성을 본격 제기하고, KBS-TV가 미국 이코노스 위성이 금강산댐을 찍은 위성사진을 공개할 때까지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자 정부는 비로소 건교부에 황급히 평화의 댐 보강 공사를 시작케 했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금강산댐이 터졌을 때 우리에게 대책이 있는가’란 문제다.

    1986년 평화의 댐 건설공사에 착수하기 전 이 댐이 들어설 지역은 화천댐으로 인해 생긴 파로호의 푸른 물속에 잠겨 있었다. 물속에서부터 댐을 지어 올릴 수는 없는 일. 따라서 파로호의 물을 빼내야 하는데, 화천댐의 여수로 수문은 너무 높은 곳에 있어 수문을 다 개방해도 평화의 댐 건설 예정지는 물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화천댐에 구멍 뚫은 까닭

    사진 3 고심 끝에 정부는 평화의 댐 건설 후보지와 해발고도가 같은 화천댐체(體)에 구멍을 뚫어 파로호 물을 빼내기로 했다( 참조). 담수를 하고 있는 댐체에 구멍을 뚫는 것은, 댐을 붕괴시킬지도 모르는 매우 위험한 시도다. 그러나 화천댐을 관리하는 한국수력원자력(주)은 안전하게 다섯 개의 구멍을 뚫는데 성공했다.

    평화의 댐 건설주체는 한국수자원공사다. 화천댐체에 뚫은 구멍으로 파로호의 물이 쑥 빠져나가 수자원공사는 평화의 댐을 축조할 수 있었다. 이로써 파로호의 담수량은 크게 줄어들었지만 유사시 화천댐은 6.5억t의 물을 더 담을 수 있는 여력을 갖게 되었다.

    평화의 댐 저수용량 5.9억t에 화천댐의 추가 저수용량 6.5억t을 더하면 12.4억t이 된다. 이는 금강산댐이 터졌을 경우 최대로 방류할 수 있는 12억t보다 많으므로 금강산댐 붕괴에 대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계산은 평화의 댐이 터지지 않고 5.9억t을 수용해줄 때만 가능한 이야기다.

    평화의 댐 하단부에는 초당 5000여t의 물을 빼낼 수 있는 터널 4개가 있다. 이 터널이 평화의 댐에서는 ‘하저(河底) 여수로’의 역할을 한다. 평화의 댐이 무너지느냐 무너지지 않느냐는 4개 구멍으로 뽑아내는 물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결정된다. 무너진 금강산댐에서 나온 물이 빨리 내려오면 4개 구멍은 이를 소화하지 못해, 평화의 댐은 빠르게 차 올라 월류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천천히 내려온다면 평화의 댐은 거뜬히 물을 소화할 수가 있다.

    평화의 댐을 월류한 물은 이 댐의 하단부를 세굴한다. 이러한 경우엔 지난 6월말 완료한 보강공사가 얼마나 단단한지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보강공사가 허술하면 터지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남한은 엄청난 홍수피해를 막을 수 있다. 평화의 댐이 터진다면 화천댐만으로는 물을 감당할 수 없다. 화천·춘천·가평을 비롯 북한강변에 형성된 도시와 서울의 저지대는 물바다가 될 수밖에 없다.

    평화의 댐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금강산댐으로 인한 불안을 떨쳐버리려면 하루빨리 인민군 공병대가 돌아와 금강산댐을 보수하거나, 평화의 댐을 45m쯤 더 높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 두 개의 공사는 올 여름에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2002년 여름 금강산댐 안전 문제는 전적으로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이 바라는 세 가지 요행이 있다. 첫째는 아인슈타인의 법칙이다. 상대성 원리를 발견한 아인슈타인 박사의 아들이 발견한 이 법칙은 사력댐에만 적용된다. 이 이론은 사력댐이 붕괴할 경우 댐을 구성하고 있던 흙과 자갈은 완전히 떠내려가지 않고 댐 높이의 100배쯤 되는 거리의 하류에 다시 쌓임으로써, 자연적인 제방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댐 안에 있던 물은 몽땅 흘러나가지 못하고 일부는 이 자연제방 안에 갇히게 된다.

    둘째는 금강산댐과 평화의 댐 사이를 흐르는 북한강 줄기가 구불구불한 사행천(蛇行川)이란 점이다. 사행천은 금강산댐 붕괴로 쏟아져 내리는 물의 에너지를 대폭 감소시킨다. 또 시간을 끌며 물이 흘러 평화의 댐이 받는 충격을 최소화한다.

    셋째는 평화의 댐을 통과한 물이 파로호 최상류가 아니라 정중앙으로 들어온다는 점이다. 지형 조건상 파로호 중앙으로 들어온 물의 60% 정도는 파로호 상류로 올라갔다가 수시간 후 되돌아 내려온다. 이로 인해 파로호 최상류에 있는 양구 일대는 물바다가 되겠지만 대도시가 많은 화천댐 하류지역은 피해를 덜 입게 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언제까지 이런 요행에 기댈 거냐고 반문한다. 이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대안은 평화의 댐을 45m 높게 증축하는 것이다. 이 정도로 증축하면 금강산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감당할 수 있다.

    금강산댐이 터졌을 때 쏟아져나오는 물을 45m 더 높게 증축된 평화의 댐에 담수하면 오히려 북쪽 지역이 물바다가 된다. 전문가들은 이 경우 금강산댐 하단까지도 물에 잠길 것으로 본다. 북한의 수공(水攻) 위협은 사라지고 오히려 그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역수공’이 일어난다.

    평화의 댐을 증축하는 데는 2000억 원 정도의 사업비가 소요되는데, 이 돈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마련할 수 있다. 정부가 평화의 댐 증축비로 2000억 원을 요구하면 야당은 통과는 시켜주되 햇볕정책은 실패했다는 것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카드를 낼 공산이 크다. 남한 정부는 이러한 망신을 견딜 수 있을까. 북한이 서해갑문과 금강산댐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면, 남한은 체면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남한측이 평화의 댐 증축에 들어가면 북한은 여러가지로 금강산댐의 안전을 강조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남한은 기술자들을 북한에 보내 금강산댐 구조를 조사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강공이 오히려 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때 남한 정부는 북한측에 북한강은 남북한을 흐르는 국제하천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북한강에 대한 공동 수리권을 주장해야 한다.

    무더위 식혀줄 납량물

    북한이 전력난 때문에 금강산댐을 건설해야 한다면 증축한 평화의 댐에 담수하고 전기를 생산해 북한에 넘겨주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평화의 댐 증축은 남북 대결을 초래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협력을 유도하는 햇볕정책의 상징물이 될 수 있다.

    북한이 인위적으로 금강산댐을 폭파하는 것은 고의로 남한 사람의 인명과 재산을 파괴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북한이 전쟁을 도발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1호 미사일을 쉽사리 쏘지 못하듯 북한은 금강산댐을 쉽게 폭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금강산댐을 갖고 계속 해서 남측을 위협할 수는 있다. 남한은 북한이 또 하나의 노동미사일을 갖도록 허락할 것인가?

    월드컵이 끝나고 장마철이 시작되면 각 방송사의 기상 캐스터는 금강산댐 지역에 대한 예보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가 평화의 댐 보강공사 이외에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금강산댐은 올 여름 무더위를 식혀줄 최고의 납량물이 될지도 모른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