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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점기획|6·13 후폭풍

충청권 독식해 ‘거함’ 띄운다

  • 박주호 < 국민일보 정치부 기자 > jhpark@kmib.co.kr

충청권 독식해 ‘거함’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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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계개편 운운하는데 우리가 안하는 것이지 못하는 게 아니다.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한나라당의 역할이 커질 것이다.” 한나라당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방선거 승리에 자신감이 넘쳐난다. 그 한편으로 몸조심을 당부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한나라당 사람들의 설레는 요즘을 살펴보았다.
”너무 좋아하지 마”

6·13 지방선거 투표가 막 끝난 13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중앙당사 10층 대강당. 개표상황실이 설치된 이 곳에서는 방송3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이겼다”는 함성이 터졌다. 당직자와 사무처 직원들은 곳곳에서 “부패정권을 확실히 심판했다” “믿어도 되느냐, 정말 이긴 거냐”며 흥분했다. 하지만 이회창(李會昌) 대통령 후보는 웃지 않았다. 대신 뒷자리에 앉아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는 박원홍 홍보위원장에게 그렇게 한마디 툭 던진 것이다.

이후보는 앞서 오전 7시30분쯤 종로구 효자동 옥인제일교회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부인 한인옥(韓仁玉) 여사와 함께 투표했다.

“좋은 꿈 꿨습니까.”

“내가 왜 꿈을 꾸나, 후보들이 꿔야지.”



이후보는 기자들의 질문을 가볍게 넘겨받았다. 투표 후 청진동 해장국집으로 옮겨 기자들과 아침을 했다. 표정은 무척 밝았다. 당 부설 여의도연구소와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를 보고받아 이후보는 선거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확실했다.

“압승하는 것 아닙니까.”

“아이고, 지금 그런 말 하지 맙시다.”

“서울도 이기죠?”

“뚜껑을 열어봐야지. 그런데 참 이명박, 이재오 그 두 사람은 선거를 즐기면서 합디다. 나는 피곤해 죽겠는데 그저 신이 나서 돌아다니더라고요.”

이후보는 말머리를 돌렸다. 한 기자가 “한나라당이 선거승리에 도취해 앞으로 실수를 자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던데요”라고 물었다. 옆에 있던 이종구 공보특보가 “벌써 ‘오만한 제1당’이라는 기사부터 써놓고 묻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자, 이후보는 “그러면 내가 입을 열면 안되겠네”라고 해 폭소가 터져 나왔다.

13일 밤 10시30분쯤 상황실에 다시 나타난 이후보는 개표방송에서 이명박 서울시장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된다는 보도가 나오자 처음으로 박수를 쳤다. 선거결과에 대한 이후보의 일성은 “두렵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였다. 선거에서 이긴 정당의 지도자나 대변인이 이같은 말을 하는 것은 관례적인 일이지만, 이후보의 말에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승자의 조바심과 초조감

한 측근은 이후보의 이같은 행동에 대해 “복선(伏線)을 깔고 있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했다. 이 측근은 “선거를 1주일쯤 앞두고 압승은 예상됐다. 그때부터 이른바 역풍론(逆風論)이 대두됐다. 이후보는 누구보다도 그 점에 신경을 썼다.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나 말은 결코 자만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자 동시에 당직자와 당원들에게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보는 14일 오전 선거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선거결과에 대해 보다 정제된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 그는 “민심을 헤아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으면 언제든 매서운 심판과 질책을 받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또 “선거결과를 보면 정말 두렵고, 무엇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후보는 여직원들이 축하 꽃다발을 전달하자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받았다. 그리고는 “승리 축하는 어제로 끝났다”며 당선자 축하연을 취소시켰다.

승자의 조바심과 초조감. 이후보는 왜 이렇게까지 몸을 낮추는 것일까. 이후보 측근들이 말하는 역풍론은 과연 무엇일까. 이후보의 낮은 자세는 지나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최병렬 의원은 “자만하지 않는다는 것은 좋은데, 당선자 축하연까지 취소할 이유가 있나”라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이후보 진영은 앞으로 전개될 정국의 변화를 심상찮게 바라보고 있다. 이병기 공보특보는 “우리의 목표는 대선이지 지방선거가 아니다. 정치캘린더로 대선까지 6개월이면 보통 때의 3년과 같다”고 말했다.

이후보는 일단 민주당이 요동치고 자민련이 붕괴하면서 신당창당, 제3세력 급부상 등 정계의 지각변동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는 듯하다. 정계의 새판짜기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예측하기 힘들지만 그 과정에서 한나라당에 역풍이 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는 게 이후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보 진영은 “역풍론의 조짐은 곳곳에서 드러난다”고 말하고 있다. 이후보 진영이 자체 분석한 역풍론의 배경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상당히 객관적이고 냉정한 분석이었다.

첫째,국민들의 견제심리 발동이다. 이번 선거결과는 역대 선거에서 볼 수 없었던 일당의 완전독주였다. 시 도지사 16명 가운데 11명, 시 군 구청장 232명 가운데 140명, 시 도의원 682명(비례대표 73명 포함) 가운데 393명을 한나라당이 휩쓸었다. 선거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광역단체장 비례대표 정당명부제 투표에서는 무려 52.2%를 얻었다. 민주당은 29.1%에 불과했다.

김진재 최고위원은 “우리 국민들은 항상 힘이 한 쪽으로 쏠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역대 선거를 보면 그렇다.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가 당선됐지만 곧바로 88년 총선에서 사상 최대의 여소야대가 됐고, 90년 3당 합당이 되자 92년 총선에서 또다시 야당에게 표를 몰아줬다. 92년 대선에서 김영삼이 이겼지만 95년 지방선거와 96년 총선에서는 여당이 졌다”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은 “지방선거 압승과 원내 과반 돌파는 절대 우리 당에 유리하지 않다. 대선에서는 국민들의 견제심리가 발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둘째, 호남과 진보세력 및 젊은층의 역결집이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48.9%로 사상 최저. 여론조사기관 관계자와 각 후보들은 20대와 30대 젊은층의 투표 포기 현상이 뚜렷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수도권에서 호남출신의 결집도도 현저히 떨어졌다.

결국 이번 선거 압승의 원인을 투표율만 가지고 따져보면, 민주당 지지도가 높은 젊은층의 투표 포기와 호남표의 결속력 저하가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과연 대선에서도 호남출신과 진보세력, 젊은층의 투표율이 지금처럼 낮을까. 전망은 한나라당에 상당히 불리하다. 호남출신과 진보세력의 투표율은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20대와 30대 젊은층의 투표율을 가지고 대선을 전망해볼 수밖에 없다. 역대 선거 투표율을 살펴보면, 지방선거와 총선이 대선에 비해 훨씬 낮다. 95년 6·27 지방선거 68.4%, 96년 4·11 총선 63.9%, 98년 6·4 지방선거 52.7%, 2000년 4·13 총선 57.2%였다. 반면 92년 대선은 81.9%, 97년 대선은 80.7%나 됐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젊은층의 투표율이다. 98년 지방선거 연령대별 투표율은 20~25세 39.9%, 25~29세 34.2%, 30~34세 45.1%, 35~39세 56.5%로 나타났다. 2000년 총선도 20~25세 37.8%, 25~29세 30.5%, 30~34세 40.3%, 35~39세 51.8%로 98년 지방선거와 비슷하다. 두 선거 모두 40대 이상은 70% 내외의 투표율을 보였다.

그런데 대선은 달랐다. 97년 대선에서 20~24세는 66.4%, 25~29세는 69.9%로 상당히 높았다.30~34세는 80.4%, 35~39세는 84.9%로 30대의 투표참가율은 40대 이상에 못지 않았다. 홍준표 의원은 “대선에서는 젊은층이 대거 투표한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불리하다”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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