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호

정몽준 후보, 이인제·박근혜 공동대표?

  • 추승호 < 연합뉴스 정치부 기자 > chu@yna.co.kr

    입력2004-09-07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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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3 지방선거가 한나라당 압승, 민주당과 자민련의 참패로 막을 내리면서 주요 정당 바깥에 존재하는 이른바 ‘제3세력’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정치 9단’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총재, 박근혜(朴槿惠) 한국미래연합 대표, 이인제(李仁濟) 민주당 전 상임고문, ‘월드컵 스타’ 정몽준(鄭夢準) 의원 등 제3세력의 향후 행보를 점쳐본다.
    ”충청도가 결국 우리를 버렸다. 충청도는 결국 핫바지인가.”

    3기 지방선거 개표결과의 윤곽이 드러난 6월13일 오후 9시 자민련 마포당사 지하강당에 마련된 투개표 상황실에서 터져나온 탄식이다. 김종필 총재는 이날 오후 상황실에 있다가 방송사 출구조사 방송 직전 상황실을 빠져나와, 정상천(鄭相千) 중앙선거대책위원장과 함께 5층 총재실에서 방송을 지켜봤다. 패배를 예감한 김총재가 사진기자들에게 초라한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짜낸 꾀였다.

    위기의 JP

    김총재는 지방선거전 중반 이후부터 충청도민을 ‘형제 자매’로 바꿔 부르고 ‘충청도 핫바지론’을 재등장시키는 등 충청권을 사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자신의 정치적 토대인 충청권 장악력에 상당한 타격을 입고 말았다. 1961년 5·16 쿠데타에 참여, ‘정권의 2인자’로 정치에 입문한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40여 년 정치역정에서 그는 여러차례 위기를 겪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216억원을 축재한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낙인 찍혀 미국에서 유랑한 적도 있었고, 1990년 3당 합당 후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측근들과의 권력투쟁에 밀려 민자당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정치력의 근원인 ‘충청도 장악력’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것이 무너져 내리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삼손의 ‘머리카락’이 잘려 나간 셈이라고나 할까. 2000년 4·13 총선 참패에 연이은 ‘스트레이트’를 맞은 셈인데다, 76세의 고령이라는 점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4·13 총선 때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겠다”고 했고, 이번 지방선거 때는 “나보고 늙었다고 하는데 정신적으로는 청년이나 다름없다. 두고봐라. 나는 쉽게 죽지 않는다”고 공언했으나 선거 결과는 그런 말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제 김총재는 자신을 겨냥한 책임론과 소속의원의 연쇄 탈당 대책을 고심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민주당처럼 자민련에서도 쇄신요구가 고개를 들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 당내에서는 쇠잔한 김총재에 대한 회의론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의원은 지방선거 직전 사석에서 “지방선거에서 지면 김총재의 2선 후퇴를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노골적으로 김총재에 반기를 들었다. 그동안 탈당설이 꾸준히 나돌던 L의원은 “민심이 확인된 만큼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며 “조만간 의원들과 모임을 갖고 당의 진로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당내 쇄신요구를 소화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게 자민련의 고민거리다. 김총재가 당장 2선으로 물러나도 당을 대표하고 대선에 나설 만한 인물을 찾기 어렵다. 정계개편만이 ‘살 길’인 상황에서 김총재 이외에는 정계개편에 대응할 만한 마땅한 카리스마도 없는 실정이다. ‘포스트 JP’를 내세우고 있는 심대평(沈大平) 충남지사가 있지만 현직인 만큼 당 총재를 맡기에는 적절치 않다.

    4자연대 뒤 2선 후퇴

    결국 자민련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김총재로 하여금 그동안 내걸었던 이인제 박근혜 정몽준 의원을 연결하는 ‘4자 연대’를 적극 추진하도록 하고, 이것이 성사될 경우 김총재가 2선으로 후퇴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김총재는 그간 누차 “내각제와 범보수 연대를 대신 실현시킬 만한 인물이 있다면 밀어줄 수 있다”고 밝혀왔던 만큼 연대 성사 후 2선후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당 일각에서는 월드컵으로 급부상한 정몽준 의원을 대선후보로 내세우고 박근혜 의원과 이인제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는 형식의 신당 창당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하지만 4자연대가 쉽지만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우선 대상자 모두 대선출마를 꿈꾸고 있어, 후보 단일화와 계파별 지분 등 이해관계를 조정해 한데 묶어내는 일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작업은 연장자이자 대선출마 욕심이 없는 김총재가 맡아야 할 텐데, 그의 위상이 추락한 상황에서 조정역할을 과연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것.

    김총재를 따라 신당에 참여할 의원들이 얼마나 될지도 4자 연대의 성패를 결정짓는 관건이다. 이번 지방선거 패배로 자민련 의원들의 집단 탈당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에서 4자 연대의 나머지 구성원들이 김총재를 배제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자민련 의원 중 일부는 이미 지방선거 전부터 “내 지역구에 내가 만든 지방선거 후보가 있는 만큼 지방선거 때까지는 선거운동에 전념하고 선거 후에 정계개편 과정을 봐가며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자민련 L의원은 선거 직후 “4자 연대는 동상이몽에 불과하며 나는 아직도 한나라당과의 연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해 탈당 가능성을 시사했다. J의원은 “국회의원들은 12월 대선보다는 내후년 17대 총선에 관심이 있다”며 “서둘러 거취를 결정할 필요는 없다. 민주당의 변화 등 정계개편 상황을 지켜보며 차분히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의원들은 절차를 제대로 밟고 명분을 축적한 뒤 적절한 시점을 골라 탈당해야 ‘철새 정치인’이란 욕을 덜 먹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나라당도 민주당 박용호(朴容琥)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힘 안들이고 원내 과반수(재적 의원 263명 중 소속의원 132명)를 확보했고 지방선거 대승 후 ‘낮은 자세’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굳이 자민련 인사 영입을 시도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당장 자민련 의원들의 탈당이 벌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와 관련, 정가에서는 ‘미니 총선’으로 불리는 8·8 재보선이 자민련 의원의 탈당 결행시기가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거취를 선택해봤자 ‘남의 집 살이’ 신세를 벗어나기 어려운 만큼 김총재를 끝까지 따라가자는 목소리도 당내에서 나오고 있다. ‘정치 9단’ 김총재가 동물적인 감각으로 결국 ‘될 곳을 찾아 갈 것’이라는 얘기다.

    김총재는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에 대해 독설을 퍼부으면서도 사석에서는 가끔 그 속내를 짐작케 하는 발언을 한다. “이회창은 너무 속이 좁다” “우리와 같이 일을 하고 그 결과도 나누면 좋을 것을, 혼자 다 가지려 한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요만큼도 없다”는 말들이 그것이다. 가정에 가정을 더한 시나리오이기는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이 김총재에게 명예롭게 정계를 은퇴할 수 있는 명분을 주고 자민련을 흡수하는 ‘대타협’이 대선 직전 이뤄질 수 있다는 소문도 있다.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타격을 입었다. 10명의 후보를 냈지만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만들지 못했기 때문. 그러나 창당 한 달도 안돼 지방선거를 치른 만큼 이를 근거로 박대표의 정치력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특히 대선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박대표와 정몽준 의원이 모두 대선후보 3자대결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10% 이상인 점도 눈여겨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당장은 지방선거 패배가 박대표에게 다른 정치세력과의 연대를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다.

    박대표는 한국미래연합 창당을 준비하면서 이미 “정치적 이념을 함께 하는 분이라면 누구에게든 문을 열어두고 있다”며 연대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지난 2월말 한나라당 탈당 당시 “기존 정치인들과는 접촉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한 데서 방향을 전환한 것. 이런 방향전환은 ‘기성 정치에 때 묻지 않은 개혁 정치’를 표방하던 박대표가 창당 작업을 하면서 ‘세’없는 정치의 한계를 실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박대표가 연대 조건으로 거론한 정치적 이념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개혁’으로 요약된다. 미래연합은 정강정책에서 당권·대권 분리와 집단지도체제 도입, 대통령 중임제와 정·부통령제 도입, 의원총회 권한 확대, 상향식 공천제, 당 재정 투명화, 국민참여경선제를 통한 대선후보 선출, 중앙당 기능 축소 등을 밝혔다.

    이런 이념적 조건에 부합하는 1차 파트너는 이인제·정몽준 의원이란 게 정계의 분석. 김종필 총재의 경우 보수성에서는 궤를 같이하지만 ‘개혁’이라는 조건에는 맞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대표가 친인척인 김총재에게 살갑게 대하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문제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박대표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신당을 창당하게 된 만큼 누구든 자유롭게 만날 것”이라고 밝혀 어느 정도 여지는 남겨놓고 있다. 또 박대표가 “한 정치세력으로부터 대통령은 외교와 국방을 맡고 총리는 내각을 책임지는 방안을 제안 받았다. 우리에게 맞는 권력구조를 모색한다는 차원에서 깊이 생각해볼 것”이라며 내각제 요소를 가미한 책임총리제에 관심을 보인 것도 김총재와의 연대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근거다.

    이인제·박근혜 접근중

    박대표는 정몽준 의원과도 아직 정치적 접촉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5일 속리산 법주사에서 열린 회향대법회에 참석, 정의원과 나란히 앉아 담소를 나눈 것이 전부다. 반면 박대표와 이인제 의원은 이미 연대 논의를 진행중이라고 봐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박대표는 “이인제 전 상임고문과는 맞는 것이 꽤 있는 것 같다”며 “그분과 구체적으로 얘기한 것은 없지만 언론을 통해 그분의 정책 같은 것을 들어 보면 그렇다”고 말해, 연대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 두 사람은 5월28일 여의도 63빌딩에서 회동,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지방선거를 한해에 모두 치르기 위해 조속히 개헌을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회동 후 두 사람은 “거의 매년 선거를 치르는 것은 국력낭비이며 이로 인한 국론분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면서 “4년에 한번씩 모든 선거를 동시에 치르는 것이 국가경영에 효율적일 것이라는 데 견해를 같이했다”고 밝혔다.

    박대표는 “우리나라 경제와 사회분야, 정치 권력구조 문제 등에 대해 새로운 정치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고, 특히 남북문제와 통일관 등에 대해 생각이 같은 부분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의원도 “앞으로 자주 만나 정치발전을 위해 힘을 모으고 같이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의원은 김종필 총재와 ‘동향’이란 것을 매개로 친밀감을 표시하고 있어 박대표와 이의원 간의 접근이 박대표와 김종필 총재 간의 연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이인제 민주당 전 상임고문은 한달 새 ‘유력 대선주자’에서 ‘평당원’으로 신분이 바뀐 비운의 주인공이다. 2월초만 해도 민주당 대선후보 자리는 그에게 ‘떼어 논 당상’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몰아닥친 ‘노풍(盧風)’은 그의 무게 있고 심지 있는 이미지를 구겨버렸다.

    경선 직전 노무현 후보의 네거티브 전략을 비판하던 이의원은 노풍이 불어닥치자 자신도 네거티브 전략을 선택함으로써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었다. 1997년 15대 대선 때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 불복한 전력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4월17일 경선포기 선언 후 대외활동을 완전히 중단한 이의원이 정치 행보의 첫 수단으로 삼은 것은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의 골프회동. 지방선거 때 충청권 사수라는 절박한 목표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김총재는 동향 출신인 이의원의 불행에서 ‘기회’를 감지했다. 김총재는 이의원의 서울대 법대 선배이자 ‘소피아 고시원’ 동창인 김학원 총무의 중재로 이의원과 5월3일 골프 라운딩을 함께 했다. 이의원은 그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지방선거에서) 김총재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돕겠다”고 공언했고 이는 ‘IJP연대’의 시발이 됐다.

    IJP연대의 고리는 바로 ‘충청권 차기맹주’다. 이의원이 김총재 측에 가담하는 대신 김총재는 ‘포스트JP’ 자리를 그에 준다는 시나리오다. 영호남이 제각기 머릿수로 밀어붙이며 집권의 유리한 기반을 마련하는 상황에서, 충청권도 단결해야만 나름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다는 인식의 공유도 한몫 했다.

    하지만 이의원 측 일각에선 “김 총재와 자민련의 구각을 덮어쓸 경우 오히려 대권에서 영영 멀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면 “노무현과 한화갑(韓和甲)의 민주당에서는 더 이상 이의원의 역할이 없는 만큼 충청권 맹주로서 정치적 위상을 유지하다 정치권 변동을 틈타 재기의 기회를 봐야 한다”는 의견도 맞서고 있다.

    이의원은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뿐 아니라 자민련도 지원함으로써 ‘IJP연대’ 카드를 놓지 않았다. 이의원의 향후 행보는 민주당 상황, 특히 그가 이끌던 충청권 의원들의 움직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IJP연대든 뭐든 정치적 연대에는 그를 따르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의원의 경선 낙마와 지방선거 참패로 요동치는 민주당내 충청권은 오히려 이의원에게 연대의 여건을 성숙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충청권 의원들은 현재 탈당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며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민주당 충청권의 매파인 송석찬(宋錫贊) 의원은 “이번 선거는 민주당 간판을 내리라는 경고다. 지난 국민경선에 나왔던 사람들은 이미 당원과 국민의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 제 3세력을 중심으로 국민적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며 “만약 후보와 지도부가 자리에 연연한다면 월드컵 직후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송의원은 지방선거 전에도 민주당의 충청 경기 의원들이 탈당, 자민련과 합쳐 ‘중부권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움직임은 ‘이인제 공백’으로 민주당 충청권이 사실상 궤멸했다는 데 기인한다. 2004년 17대 총선이 개인적 최대 관심사인 의원들에게 “이대로 가다가는 낙선이 불보듯 뻔하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진 것이다. 이의원 측은 그러나 정치적 연대를 성사시킨다고 하더라도 이의원이 이번 대선에서 후보로 나서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제3 후보군’의 한 명으로 거론되는 정몽준 의원은 국민의 염원인 사상 첫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뤄내고 2002 한·일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대선 가도에 한 발짝 다가섰다는 관측이다. 정의원은 대선후보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동안 “월드컵이 끝나면 대선에 직접 출마할지, 아니면 누구를 지원할지 등을 자유롭게 얘기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정몽준 영향력 JP 보다 클 것”

    이제 월드컵이 치러진 이상 정의원은 안개 속 행보를 끝내고 조만간 정치적 구상의 방향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정의원은 6월5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한 지역민 축구대회와 ‘정몽준을 생각하는 우리들’이라는 모임에서 “16강 진출에 연연하지 말고 사나이답게 확실히 대권도전 선언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런 얘기를 종종 듣고 있다”며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그러나 “출마할지 여부는 여러분들과 상의해 결정하겠다”며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이어 그는 “올초 KBS 월드컵 성공 신년음악회에서 대통령께서 자리에 앉자마자 ‘좋은 꿈 꾸었냐’고 물어왔다. 나는 16강 진출의 꿈을 꾸었냐는 말씀으로 이해했으나 주변 사람들은 ‘더 큰일을 할 꿈을 꾸었냐’는 뜻으로 물어본 것이라고 얘기해, 다시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월드컵을 매개로 한 정의원의 정치적 잠재력은 5월28일 한나라당 최병렬 의원의 발언에서 잘 나타난다. 최의원은 “우리나라가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하면 정의원의 입지가 달라질 것이고, 8강에 오를 땐 폭발력이 있을 것”이라며 “그가 대선출마를 선언할 경우 예기치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정의원은 이미 창당준비까지 완료한 상태로 안다”며 “정의원은 자민련 김종필 총재나 민주당 이인제, 미래연합 박근혜 대표보다 영향력이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의원의 말대로 정의원은 지난해 신당 창당에 상당한 의욕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원 캠프에선 신당 창당을 위한 구체적 시나리오를 마련하는 등 창당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독자 창당 못잖게 지방선거 후 정치권 지각변동을 염두에 둔 ‘연대’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경우 이른바 ‘IJP 연대세력’이 유력한 파트너로 부각된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 민주당 이인제 전 상임고문,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도 정의원과의 제휴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특히 ‘박근혜-정몽준 조합’은 정치권에서 가장 유력하게 내다보는 제3후보 시나리오로 꼽힌다.

    최근 민주당 일각에서도 정 의원에게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주로 민주당 비주류 및 중부권 의원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 목소리는, 노무현 후보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용퇴한다는 전제하에 월드컵 16강 진출을 달성한 정의원과 미래연합 박대표 등을 망라하는 정계개편을 이뤄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특히 부산지역 일부 지구당 위원장들은 6월4일 모임에서 “노후보 대신 정몽준 의원을 영입해야 한다”는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원은 이미 대선 행보에 나설 수 있도록 사전정지 작업을 곳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노무현 후보를 만들어낸 ‘노사모’와 유사한 성격의 인터넷 팬클럽 ‘MJ 러브’가 본격적인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 ‘MJ’는 정몽준 의원의 영문 이니셜. ‘MJ 러브’는 정의원을 지지하는 10여 개 인터넷 팬클럽을 통합, 단일 사이버 세력화를 도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의원이 최근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정치 경제 통일 외교 안보 등 전 분야를 망라하는 ‘정책보좌 인턴’을 모집하는 것도 이목을 끌고 있다. 5월20일부터 시작한 모집에 20대 후반~30대 초반 전문가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정의원은 월드컵 뒤 간담회 등을 통해 이들로부터 정책 자문을 받을 예정이다.

    아울러 정의원은 후원회(회장 이홍구 전총리) 조직 확대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내 광화문에 후원회 사무실을 열어 회원 모집에 적극 나섰다. 정의원 진영의 한 관계자는 “월드컵 열풍이 불면서 후원회 가입 원서를 100장씩 무더기로 받아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월드컵 시즌이 마무리되면서 바야흐로 제3세력들의 몸과 마음도 바빠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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