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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신앙촌 재개발사건의 전모

돈과 권력, 소송과 로비가 어우러진 난장판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부천 신앙촌 재개발사건의 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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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할머님이 신앙촌에 사셨군요?”

“예.”

“시온종단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모릅니다.”

“그러면 시온종단의 박윤명이라는 종단대표도 모르시고요?”



“모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정보에 의하면 이 종단이 서석재씨나 증인을 통해서 1992년 대선 당시 나사본에 수십, 수백억원의 대선자금을 지원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모르신다는 말씀이지요?”

“예, 모릅니다.”

“만일 그렇다면 큰일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기성교단의 고매한 장로님과 장로님의 아들들이 이런 종단에서 돈을 받았다는 것은 큰 문제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슬아슬한 질문과 대답이 오갔지만 이날 청문회를 계기로 사람들은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신앙촌을 새삼 기억에 떠올리게 됐다. 초기 정착 이후 40여년 세월이 흐르면서 신앙촌에는 무허가 주택들이 밀집해 들어서기 시작했고, 5000여 명의 영세주민들이 거주하면서 슬럼화의 길을 걷기 시작해 재개발이 시급한 지역으로 거론돼 왔다. 1990년대 들어 주민들의 재개발 요구는 집단행동 양상을 띠기 시작했는데 주민들의 단체도 주민협의회(90년), 통합주민회의(92년), 주민회의(94년) 등으로 바뀌거나 분화되면서 요구사항도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두 개의 시행사 등장

마침내 1995년부터 신앙촌 재개발 사업이 시작됐다.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면서 주민들 사이의 갈등도 본격화된다. 1996년에는 토지 소유권 문제로 종단과 주민회의 간에 다툼이 격해지더니 마침내 민사소송이 제기되는 등 종단과 주민들 간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법률상 범박동에 대한 토지소유권은 종단 산하 시온학원 앞으로 돼 있지만, 종단에 전재산을 헌금하고 신앙촌에 들어와 수십 년간 살아온 신도들은 사실상 이 땅의 소유권이 자신들에게 있다며 소유권 이전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처럼 주민과 종단이 대립하면서 재개발공사를 맡을 시행사도 둘로 나뉘게 됐다. 종단측은 기양건설이라는 회사를 시행사로 선정했고 주민회의측은 세경진흥이라는 회사를 시행사로 선정하는 등 한 사업단지 안에 두 개의 시행사가 들어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대립해 다투던 두 회사의 갈등은 일단 외환위기가 해결해줬다. 1997년 신앙촌 재개발 공사 시공사였던 극동건설이 자금난에 빠져 부도가 났다. 그러자 극동건설이 지급보증한 어음으로 사업을 진행 중이던 기양건설, 세경진흥 등 시행사들도 잇따라 부도가 났고 신앙촌 재개발 사업 역시 중단되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1999년 12월16일 그동안 세경진흥이 발행한 어음채무 450억원 상당을 기양건설의 후신인 기양건설산업(이후 기양)이 인수하여 어음에 대한 지급보증을 섰던 극동건설의 보증채무를 면책해주는 조건으로 세경진흥은 재개발 시행권을 기양 측에 넘겨주게 된다.

오랜 갈등 끝에 부천 신앙촌 재개발사업의 단독 시행사가 된 기양은 극동건설을 대신할 새로운 시공사를 찾아 각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2000년 4월 현대건설이 새로운 시공사로 선정돼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건설과 시공계약을 맺을 당시 기양의 대표이사는 김병량 회장(47)이었고 이교식(47)씨는 상무 직함으로 현대건설과 기양의 업무 연결을 맡았다. 훗날 원수지간으로 갈라서 법정다툼을 벌이게 되는 김병량씨와 이교식씨가 처음 만난 것은 1990년대 초반, 대전 동학사 부근 온천을 함께 개발하면서부터다. 그후 두 사람은 1994년 남양주군에 있는 덕소신앙촌재건축 사업에도 함께 참여했으나, 자금이 부족해 별다른 성과 없이 물러나고 말았다. 그러니까 부천 신앙촌 재개발 사업은 김병량씨와 이교식씨가 함께 일을 벌인 세 번째 사업이었다.

재미동포 사업가의 등장

부천 신앙촌 시행사가 된 기양이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당장 할 일은 세경진흥과 기양의 전신인 기양건설이 발행한 부도어음 589억여 원 상당을 회수하는 일이었다. 589억여 원의 어음 채무금은, 세경진흥으로부터 사업권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세경이 발행했다가 부도가 난 어음 450억여 원어치와, 기양건설산업의 전신 기양건설이 발행했다 부도가 난 어음 138억여 원을 합한 금액.

기양은, 사업시행을 위해 세경이 이미 매수한 신앙촌 내 토지를 물려받아 아파트를 건설하기 위해 세경이 발행하고 극동건설이 지급보증을 섰던 약속어음 450억원을 책임지고 회수하기로 약정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도어음 회수라는 중대한 문제를 두고 김병량 회장과 이교식씨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또 다른 사건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재미동포 언론인으로 알려진 연훈(50)씨였다.

연씨는 부천 신앙촌 개발사업에 참여하기 전에 상도동 재개발사업의 시행사를 운영하면서, 상도동 공사의 시공사이기도 했던 극동건설 관계자를 통해 김병량씨를 소개받았다. 연씨는 기양이 부도어음 회수라는 골칫거리를 안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이 이를 해결해 보겠다고 나섰고 이렇게 해서 기양과 인연을 맺게 된다.

연씨 주도로 기양은 BHIC라는 별도 법인을 설립한다. 자본금 5000만원의 이 회사는 기양이 주금을 가장납입하는 방식으로 설립됐는데 목적은 세경과 기양건설이 발행한 부도어음만을 회수하는 것이었다. 명목상의 대표이사는 이교식씨가 맡았다.

현대건설과 시공계약을 맺은 2000년 4월부터 신한종금이 보유한 마지막 세경발행 어음을 회수한 2001년 5월까지, 연씨는 BHIC 명의로 세경과 기양건설이 발행한 액면금액 589억여 원의 부도어음을 액면금액보다 현저하게 할인된 가격에 사들이게 된다. 세경과 기양의 부도어음을 갖고 있는 서울투자신탁운용과 동서팩토링, 동화파이낸스, 신한종금으로부터 총 148억여 원을 지급한 뒤 부도어음을 전부 회수했는데 이는 액면금액의 25%밖에 안되는 낮은 가격이었다.

이렇게 인수한 부도어음을 BHIC가 기양에 되팔 때는 액면가격의 60%인 381억여원으로 거래한 것으로 돼 있는데, 이 금액은 기양과 BHIC사이에 작성된 계약서에 나와 있는 수치일 뿐 실제 두 회사 사이에 자금이 오간 것은 아니다. 기양이 BHIC에 381억원을 지급하고 부도어음을 회수한 것이 아니라 서류상 이 가격에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꾸며졌다는 것이다. 이같은 방법을 계획하고 지휘한 사람은 연훈씨였다.

이처럼 부도어음을 싼값에 되사 부도업체가 보유하고 있던 사업권을 따내는 방식은 연훈씨의 독창적 작품이었다. 지난해 11월 검찰조사 당시 연씨는 “유령회사를 통해 우회적으로 부도어음을 회수하는 방법을 어떻게 알게 됐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나름대로 연구하여 알아낸 방법”이라고 답했다.

부도어음의 회수에 필요한 돈은 현대건설이 관리하고 있는 분양금에서 지급됐다. 현대건설은 기양과 시공계약을 하면서 총 300억원을 기양에 지급하는 대신, 기양은 이 돈으로 전 시행사의 부도어음 589억여원을 회수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에 따라 기양은 금융기관별로 부도어음의 회수가 성사될 때마다 현대건설로부터 자금지원을 요청했고 부도어음 회수작업이 진행된 2000~2001년에 실제 270억원의 돈이 현대건설에서 기양으로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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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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