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호

“생사람 잡는 장기 기증 남이 한다면 말립니다”

어느 뇌사자 가족이 겪은 ‘분노의 7일’

  • 정호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demian@donga.com

    입력2004-09-07 13: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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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물다섯 생때같은 젊은이가 사고를 당해 소생불능 상태에 빠졌다. 가족은 슬픔을 억누르고 장기 기증 의사를 밝혔다. 바로 그날부터 가족들의 고통이 시작됐다. 장기 기증자 가족이 “제발 장기를 기증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현실, 장기 기증자를 한없이 지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현실 앞에서 가족들은 할말을 잃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지난 4월16일, 공주대학교 특수교육학과에 재학중이던 김한별(25)씨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 담벼락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다. 친구들은 쓰러진 김씨가 술에 취해 잠든 것으로 알고 자취방으로 데려가 눕혔다. 다음날 아침,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김씨는 공주 근처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고 상태가 심각해 대전 을지대학병원으로 다시 이송됐다.

    뇌출혈이었다. 뇌 속엔 이미 상당한 양의 피가 차 있었다. 골 절제술과 혈종제거술을 받았지만 급격하게 소생불능 상태로 접어들었다.

    인천이 고향인 김씨는 장애아들을 돌보는 데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공주까지 가서 특수교육학을 공부하던 건강한 젊은이였다.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지만, 언제까지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김씨가 사회봉사에 헌신하고자 했던 뜻을 살리기 위해 가족회의 끝에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아직도 숨을 쉬고 있는 사람을 너무 쉽게 떠나보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지만, “이런 상태의 환자는 뇌사로 진행될 뿐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판단에 따라 마음을 다잡았다.

    ‘뇌사’란 말 그대로 뇌의 기능이 정지한 것. 이때 뇌기능은 단계적으로 상태가 나빠지기 때문에 뇌는 의학적으로 죽었지만 기계를 사용해 신체의 호흡은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물론 기계의 작동을 멈추면 호흡도 멈춘다.

    이에 비해 ‘혼수상태’는 일시적인 뇌기능 장애로 신체활동을 잠시 멈춘 단계며, 식물인간 상태란 대뇌는 정지했지만 호흡을 담당하는 간뇌가 살아있어 스스로 호흡이 가능한 단계다. 따라서 이런 상태에서는 뇌사로 진행될 수도 있고 깨어날 수도 있다.



    김씨의 경우 뇌 전체에 심각한 장애가 있었고 사고 직후 신속한 치료를 받지 못해 회복시기를 놓쳤다. 그래서 뇌가 심각하게 손상되어 회복가능성이 거의 전무한 소생불능판정을 받은 것이다. 소생불능 상태에서 뇌사에 이르는 데는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일주일 이상이 걸린다. 따라서 뇌사자 장기기증의 성공여부는 뇌사판정 전후에 관련 전문가들의 판단과 의료진의 대응에 달려 있다.

    장기, 주고 싶어도 못 준다?

    김씨의 매형이 가족 대표로 나섰다. 직계가족은 이런 상황에서 평상심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 코노스(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 KONOS·Korean Network for Organ Sharing)에 전화를 걸어 필요한 절차와 준비사항을 챙기기 시작했다.

    뇌사자는 심장이 멈춘 상태가 아니므로 ‘객관적 죽음’의 상태가 아니다. 그래서 뇌사자의 장기를 기증하려면 전문가의 판단이 개입돼야 하며, 의사결정을 본인이 아닌 가족이 대신하므로 행정적인 절차도 매우 까다롭다. 우선 뇌사자 직계가족 2명의 동의가 없으면 장기이식은 불가능하다. 가족을 잃은 마당에 신원확인을 위해 호적등본을 떼러 들락거려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김씨의 매형은 소생불능판정이 나기 전에 신속하게 서류를 준비해 주치의에게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서류만 갖췄다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주치의는 이렇게 답했다.

    “저희 병원에선 뇌사판정만 할 수 있지, 장기적출수술은 불가능합니다. 코노스와 상의해서 수술이 가능한 근처 병원으로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코노스는 장기의 ‘공정한 배분’을 원칙으로 한다. 1990년대 한때 장기이식수술이 특정 대형병원에 몰려 그 절차가 투명하게 관리되지 않자 전국을 3권역으로 나눠 코노스가 당직병원 순번 대로 뇌사자의 수술을 맡기도록 한 것이다. 이는 의료계의 균형있는 발전과 장기이식 대기자를 통합 관리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에 따라 서울과 경기지역을 제 1권역, 충청남·북도와 전라남·북도를 2권역, 강원도와 경상남·북도를 3권역으로 나눴고, 장기적출 의료기관(HOPO·Hospital-based Organ Procurement Organization)으로 지정된 일정 기준 이상의 병원에서만 장기적출수술을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김씨가 누워 있는 병원은 대전이고 고향은 인천이었다. 그런데 코노스는 순번에 따라 전북 익산의 원광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라고 통보했다. 가족들은 “연고도 없는 곳에 가서 수술을 받는 게 말이 되냐”고 항의하며 “차라리 인천으로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코노스는 “인천지역에는 준비된 병원이 없다”고 했다. 인천지역 병원에 순번이 돌아오려면 멀었기 때문이다.

    HOPO로는 1권역에 13개, 2권역에 4개, 3권역에 5개 등 모두 22개의 종합병원이 선정돼 있다. 대전·충청지역에서는 충남대학병원이 HOPO로 지정돼 있었으나 지난해 의약분업관련 파업 때 이 병원이 제기능을 못했다는 이유로 지정병원에서 제외됐다. 그래서 대전·충청지역에는 장기적출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이 한 곳도 없었다.

    병원 처지에선 이런 조치가 아쉬울 게 없다. 장기적출수술은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다. 그 병원 환자에게 줄 장기를 적출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코노스에서 순번을 정해주는 대로 수술만 할 뿐이기 때문. 게다가 여러 명의 의사가 뇌사자 옆을 떠나지 않고 모니터링해야 하는 등 병원으로선 한마디로 수지 맞지 않는 장사인 것이다.

    가족들은 하는 수 없이 소생불능 상태인 김씨를 익산으로 옮기기로 했다. 그런데 또다른 문제가 생겼다. 장기기증 절차를 주도할 주체가 불명확해진 것이다. 을지대병원은 “뇌사로 진행된다는 확신이 서야 환자를 보낼 수 있다”고 했다. 환자를 보내주지 않으니 원광대병원은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코노스 관계자는 현장에 없고 서울에서 전화와 문서로만 의견을 듣고 있으니 일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가족들은 애가 탔다. 병원측에 애원을 하다시피했다. “어차피 장기를 내주기로 했으니 빨리 원광대병원으로 보내달라”고. 주객이 전도돼 병원측이 가족에게 장기를 기증하라고 설득한 게 아니라 가족이 의료진을 붙잡고 “제발 장기를 기증하게 해달라”고 매달린 것이다.

    미국에서는 한 해에 5000건 정도의 뇌사자 장기기증이 이뤄진다. 중앙에는 코노스가 본따온 ‘유노스(UNOS·United Network for Organ Sharing)’가 있고, 각 지역에는 뇌사자만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OPO(Organ Procurement Organization)가 있다. 이들은 뇌사로 진행될 환자가 발생하면 즉각 출동해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이동, 수술 등의 일정을 총괄해 책임진다.

    이와 대조적으로 코노스는 현장에 가지 않고 조직검사 결과에 따라 대상자를 선정하고 통보하는 중개기능만 담당한다. 그런데도 코노스의 허락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일선 의료기관의 결정은 더딜 수밖에 없다.

    결국 김씨 가족은 입원한 지 사흘 만인 4월20일 오전, 아무 연고가 없는 익산 원광대병원으로 김씨를 옮겼다. 이송하는 날 아침 가족들은 직접 퇴원수속까지 밟아야 했다. 죽어가는 가족 앞에서 슬픔을 억누르고 치료비와 입원비를 치렀다. 장기의 공정한 분배만 고려했지 환자와 가족에 대한 배려가 전혀 보이지 않는 대목이다. 장기이식 관련 병원에서는 코디네이터들이 가족을 돕지만, HOPO가 아닌 을지대병원에서는 그런 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나치게 엄격한 뇌사판정

    원광대병원으로 옮겨진 김씨는 중환자실에서 뇌사판정을 기다렸다. 뇌사판정 과정은 법에 명시된 기준과 의학적 판단, 그리고 행정적 절차가 공존하는, 철저한 공적 영역이다.

    우선 의료진이 뇌사라고 판정하기에 충분한 근거들을 조사한다. 호흡상태, 동공고정, 뇌간반사, 무호흡 등 뇌사증후가 확인된 후 그런 상태가 6시간 후에도 지속돼야 한다. 그후 뇌파촬영에 들어간다. 이때 뇌파가 나타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6시간 뒤에 재검사를 실시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뇌파가 정지한 상태인 ‘평탄뇌파’가 30분 간 지속되면 일단 법에 명시된 의학적 뇌사로 판정난다. 그뒤 뇌사판정위원회 위원 10명 중 7명 이상의 확인을 거치면 공인된 뇌사상태가 된다. 이때 비로소 장기적출이 가능하다. 특히 심장과 허파 간 등 중요 장기는 뇌사자로 부터만 제공받을 수 있기에 뇌사자의 발굴과 관리가 중요시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뇌사판정 절차가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뇌사판정위원회도 그 한 예. 이 위원회는 해당 지역의 종교인, 사회복지사, 공무원 등으로 조직돼 있는데, 평탄뇌파자가 발생하면 이들은 곧장 병원으로 소집되어 주치의로부터 설명을 듣고 뇌사가 인정된다는 데 동의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2년 반 동안 뇌사판정위는 뇌사인정을 거부한 사례가 단 한번도 없을 만큼 유명무실한 기구다.

    위원회는 의사들의 책임을 덜어주고 뇌사인정에 신중을 기하는 안전장치로 작용하지만, 7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장기이식을 지연시키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7명을 빠른 시간 안에 소집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관련법률 개정안은 최소 동의 인원수를 6명으로 줄였지만 의료계는 실효성이 없다고 반발한다.

    김씨는 1차 뇌사판정 6시간 후 받은 뇌파검사에서 다시 뇌파가 잡혔다. 그래서 6시간을 더 기다렸다. 워낙 건강했던 젊은이라 뇌파가 끈질기게 살아 있었던 것. 6시간마다 검사한다면 하루 네 번을 할 수 있어 뇌사판정이 빨리 나오리라 기대했지만, 뇌파검사는 오전 9시와 오후 3시, 하루 두 번씩만 실시됐다. 병원 관계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뇌파검사를 준비하는 데만 1시간, 검사를 하는 데도 1∼2시간이 걸립니다. 이런 과정을 하루 네 번씩 반복할 수는 없습니다.”

    가족은 “밤에 뇌파가 멈춰 뇌사해버리면 장기기증이 실패할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안타깝지만 그럴 수도 있습니다.”

    법이 정한 ‘평탄뇌파 30분’ 조항은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이라는 게 의학계의 중론이다. 뇌파의 존재가 뇌사를 인정하는 객관적인 조건이라지만 이를 절대적인 조건으로 삼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다. 전문의료인들은 무호흡, 동공고정 등 다양한 징후를 바탕으로 사망판정을 내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장기이식을 염두에 둔 세계적인 추세라고 한다. 이에 비해 국내법은 생명 존중 윤리를 지키겠다며 뇌사 기준을 엄격하게 정해놓고 있다.

    김씨 가족은 평탄뇌파 판정을 기다리며 나흘을 흘려보내야 했다. 병원 복도에서 무작정 대기하는 고통을 참다 못해 병원측에 가족이 기거할 수 있는 방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원광대병원은 특실을 내주고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도 제공하는 등 최대한 편의를 봐줬다. 하지만 김씨 가족처럼 객지에서 장기기증 절차를 밟는 이들을 고려한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대부분 병원 근처 여관에서 머물며 환자가 사망하기만 기다린다는 게 한 코디네이터의 귀띔이다.

    며칠을 뜬눈으로 지샌 가족들은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졌지만, 장례문제도 고민해야 했다. 장기적출수술을 받은 뇌사자의 시신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되게 마련이다. 장기와 뼈를 다 빼낸 몸을 상상해보라. 때문에 가족들은 대부분 시신을 화장하고 납골한다. 김씨 가족들은 아무 연고도 없는 익산에서 장례절차를 준비했다.

    일단 익산에서 화장을 하고 대전이나 인천의 시립납골당으로 갈 생각으로 익산 시립화장장에 연락했다. 그런데 “시립화장장은 이곳 납골당에 안치할 시신만 화장할 수 있다”는 황당한 대답을 들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인천시에 문의했지만 인천에는 납골당이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희망으로 대전에 연락했다. 대전납골당측의 대답은 지친 가족들을 또한번 맥빠지게 했다.

    “대전납골당은 대전시민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김씨의 주소지는 인천으로 돼 있다. 결국 가족들은 경기도 벽제화장장으로 가야만 했다. 김씨의 시신을 앞세우고 친지와 친구들을 이끌고 상경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벽제납골당 역시 그곳에서 화장한 유골만 납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코노스는 지난해 장기기증자를 위한 납골당을 만들 계획을 세웠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4월20∼21일 주말 동안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가족에게 누군가가 김씨의 주소지를 대전으로 옮기면 되지 않겠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런데 환자가 사망하면 주소지 이전이 불가능하므로 부랴부랴 행정기관에 연락을 했다. 하지만 주말이라 행정망이 꺼져 있어 주소지를 옮길 수가 없었다. 결국 월요일인 22일에야 대전으로 이전할 수 있었다.

    이 무렵 가족들의 심경은 어땠을까. 가족을 대표했던 김씨의 매형은 “사랑하는 한별이가 빨리 죽기를 간절히 기도했다”고 털어놨다. 장기기증을 결심하고 나면 환자 가족의 관심은 얼마나 많은 장기를 건강한 상태에서 이식할 수 있느냐에 모아진다. 어이없이 가족을 잃은 이들에겐 그나마 기증된 장기의 숫자가 위안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환자는 소생할 가능성이 없는데도 ‘뇌파’ 때문에 가족 전체가 꼼짝도 못하게 된다. 언제 뇌사판정이 있을지 모르니 생업에 복귀할 수도 없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 그런 속도 모르고 사람들은 한마디씩 툭 던지고 사라진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라. 기적은 일어날 수도 있다.”

    “제발 빨리 죽어다오”

    사실 이 말처럼 뇌사자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없다. 뇌사에는 기적이 있을 수 없다. 가족들은 장기기증을 결심하는 순간 환자의 소생은 포기한다. 가족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이렇듯 역설적인 자신들의 마음가짐이며 이런 식으로 자신들을 몰아가는 상황 그 자체다.

    22일. 다시금 1차 뇌사판정이 나왔다. 6시간 후에 평탄뇌파가 나오면 진짜 뇌사로 인정돼 상황이 끝난다. 가족들이 겨우 몸을 추스리고 있는데 코노스에서 연락이 왔다.

    “사건 신고는 하셨나요? 경찰에 사건이 접수돼야 장기적출수술을 할 수 있을 텐데요.”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얘긴가. 하지만 절차가 그렇다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가까운 경찰서에 사건신고를 했다. 경찰관이 병원으로 찾아왔지만 경찰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1주일 전에 익산이 아니라 공주에서 일어난 사고가 아닌가. 환자의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 어처구니없게도 가족들은 경찰에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했다.

    경찰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변사자의 경우 신고가 접수돼야 장례를 치를 수 있지만, 뇌사자 신고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신고가 접수된 이상 경찰로선 다시금 사건을 되짚어 갈 수밖에 없었다. 몇 시간의 조사 끝에 경찰은 “검찰의 승인을 얻어서 수술하라”는, 당연한 답변을 보내왔다. 원래 이 절차는 병원의 코디네이터가 담당한다. 군산지검의 검사와 팩스를 주고받으며 장기기증 승인을 받는 것이다. 김씨 가족은 또 쓸데없는 일에 내몰려 시간과 정력을 허비했다. 코노스나 코디네이터에게 다양한 사례에 적용할 수 있는 명확한 매뉴얼이 없었다는 얘기다.

    이튿날(4월23일) 오후 4시. 전북 익산의 원광대병원 중환자실은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외과며 신경과 의사들이 잰걸음으로 오갔다. 김한별씨의 두 번째 뇌파검사 결과가 나오는 시간이다. 외과팀은 사후 장기적출에 대비하여 스탠바이에 들어갔다. ‘평탄뇌파’였다. 모두가 기다리던 평탄뇌파가 30분 동안 지속됐다. 이로써 김씨는 마침내 ‘공식적으로’ 뇌사상태에 들어갔다.

    “저희 신경팀은 환자가 뇌사상태에 접어들었음을 인정합니다. 환자 가족들은 잠시만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곧 뇌사판정위원회가 열려 법적인 사망선고가 있을 겁니다.”

    가족들은 ‘사망’이란 말에 마른침을 삼켰다. 생때같은 피붙이를 떠나보내는 슬픔에 목이 메어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가 소생불능 상태에 있던 지난 일주일간 참으로 당혹스럽고 황망한 하루하루를 보냈기 때문이다.

    사망선고가 내려지자 장기기증·이식을 관리하는 전문간호사(코디네이터)들의 손길이 바빠졌다. 수술준비를 돕는 것은 물론, 국립장기기증센터에 상황을 통보하고, 뇌사판정위원회도 소집해야 했다.

    곧 위원들이 모여들었다. 담당의사는 서둘러 설명을 마치고 위원들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뇌사자의 신체기능은 급격히 나빠지기 때문에 장기의 상태도 분초를 다툰다. 장기적출팀은 곧장 수술에 들어갔다. 간, 두 개의 신장, 췌장의 췌도, 심장판막, 팔다리 뼈 등 모두 9개의 장기가 적출되어 일부는 곧장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고 나머지는 냉장상태로 보관됐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가족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선생님 심장은요? 심장은 이식하지 않나요?”

    “‘코노스’로부터 아직 심장 수혜자를 찾지 못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심장이식이 필요한 환자가 없다니요? 저희는 무엇보다 한별이의 심장이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다시 뛰는 것을 보기 위해 장기기증을 한 건데요.”

    “글쎄요…. 어쨌든 코노스에서 연락이 없었습니다. 아마 수혜자를 찾았다 해도 곧 해가 질 테니 이식할 수가 없을 겁니다. 헬기가 뜰 수 없으니까요.”

    “또 코노스가 문젭니까. 코노스는 도대체 뭘 하는 곳입니까!”

    그래도 9개나 되는 장기와 조직을 기증한 것은 최근 이뤄진 뇌사자 장기기증 사례 중에서 가장 기록적인 수치였다. 심장이식은 못했지만 심장판막은 기증할 수 있었다.

    가족들은 장례를 연고가 없는 익산에서 치르느라 막막해 했지만, 다행히 원광대병원은 종교단체에서 운영해 큰 어려움은 겪지 않았다. 규정에 따라 코노스로부터 200만원을 장제비조로 지원받았다. 추가로 200만원을 더 지원받았는데 장기 수혜자로부터 모은 기금이라 했다.

    김씨의 시신은 대전으로 옮겨져 화장된 후 납골당에 안치됐다. 김씨의 친구 100여 명이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했다. 가족들은 장례절차가 마무리되고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김씨를 두 번 죽인 것같은 미안함이 슬픔을 더욱 크게 했다. 9개의 장기와 조직을 기증했다지만, 가족들은 누구에게 갔는지도 모르고 이식수술이 성공적이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장기는 원광대병원에서 보관되다가 코노스가 지정한 병원으로 이송됐다. 원광대병원은 뇌사판정과 수술을 담당했을 뿐 김씨로부터 적출한 장기를 단 하나도 쓸 수 없었다.

    김한별씨의 사례를 살펴보면 코노스란 도대체 어떤 조직인지 궁금해진다. 코노스는 ‘장기 공여망’ 또는 ‘장기이식 정보망’으로 볼 수 있다. 서울 을지로 국립의료원에 자리한 코노스는 인터넷 전산망을 통해 전국의 장기이식 등록기관으로부터 장기기증자와 장기이식 대기자에 대한 자료를 넘겨받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관리한다. 이를 바탕으로 기증자와 대기자를 연결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코노스의 기능과 한계

    하지만 코노스는 정규직원 14명과 계약직 13명이 근무하는 단촐한 조직이다. 1년 예산도 9억원에 불과하다. 전산처리 비용과 홍보비를 빼고 나면 인건비 대기에도 벅찬 현실이다. 미국의 유노스는 민간기관으로 OPO와 함께 민첩하게 움직인다. 이에 비해 코노스는 보건복지부의 일개 산하기관일 따름이다. 전문인력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직원들은 대개 간호사 출신이고 계약직이 전체 인원의 절반에 가까워 전문성을 축적할 여지도 적다. 때문의 조직을 혁신하고 안정성을 강화하는 게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여러 시민단체를 통해 장기기증 의사를 밝히는 사람들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유명인사들이 사후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서약하는 것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장기를 기증받기 원하는 이식 대기자들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이 늘고 있다. 지금도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장기이식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참담하다. 1999년에 장기를 기증한 뇌사자는 162명이었지만, 코노스가 장기이식관리를 독점한 2000년에는 64명으로 급감했고, 지난해엔 52명으로 줄었다. 올해는 6월 중순 현재 15명에 불과해 연말까지 가도 30명선에 그칠 전망이다.

    뇌사자의 장기기증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졌던 1999년에는 162명의 뇌사자 중 40%인 69명의 장기를 이식하는 수술이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의료원에서 이뤄졌다. 대기자도 병원에서 직접 관리했다. 그러자 장기이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두 병원으로 몰려들었다. 때문에 두 병원은 자체적으로 뇌사자를 발굴하려고 애썼다. 그 결과 뇌사자 장기기증 건수가 급증했다.

    하지만 폐해도 작지 않았다. 대형 민간병원이 장기이식에 대한 전권을 쥐게 되자 대기자 순서의 공정성에 의혹이 제기됐다. 또한 대형 병원이 장기를 무기로 지방 병원들을 줄세우는 현상도 생겨났던 것.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공정한 배분’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권역별 순번제 적출원칙과 전국 대기자 통합관리를 강행했다. 이 업무를 맡은 코노스의 감시·감독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이른바 유명 병원은 장기이식에 필요한 좋은 시설과 인력을 갖췄으면서도 장기이식수술을 제대로 못하게 되어 과거에 구축한 인프라가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HOPO로 지정된 병원도 1년에 두 번 정도 찾아올까 말까 한 기회를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끼게 됐다. 뇌사자가 발생해도 적출한 장기를 자기 병원에서 쓸 수 없으니 번거로운 행정절차를 감수하면서 뇌사자를 자진 신고할 병원은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김한별씨의 경우처럼 가족이 먼저 기증의사를 밝혀도 병원측은 단지 코노스가 이를 주도한다는 것만 알릴 뿐 자세한 절차나 대처방법을 알려주지 못한다. 장기기증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는 간호사들도 대부분 전문지식을 갖추지 못했거나 병원에서 다른 직무를 겸하고 있어 가족들에게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뇌사자의 발굴과 기증, 이식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법과 제도로만 관리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장기 기증에는 유족의 심경변화 등 다양한 돌발변수가 작용하는 인간적인 영역이있다. 김한별씨의 경우도 그가 생전에 장기기증 의사를 밝힌 것은 아니지만, 막상 뇌사에 이르자 가족들이 평소의 소신과 상식에 따라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그런데도 코노스가 장기기증 및 이식과 관련된 모든 책임을 떠안고는 그 무게를 주체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장기기증과 관련된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뇌사자 장기기증이 실시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뇌사판정 절차에서부터 장기매매를 둘러싼 논쟁, 장기기증자와 수혜자의 신원을 밝히는 문제 등에서 아직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다.

    이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뇌사자는 최대 9명에게 새로운 생명을 전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장기이식은 생명공학의 발달로 장기를 배양하는 것이 가능해지지 않는 한 의술이 택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우리나라에서 뇌사자 장기기증이 가장 활발했던 1998∼99년도 미국의 사례와 비교하면 현저한 격차를 보인다. 우리보다 인구가 5배 정도 많은 미국의 신장기증 건수는 우리보다 30배 이상 많다(표 참조). 뇌사자 1명이 기증한 장기의 개수도 우리는 최근 몇 년간 평균 3개에 그친 반면 미국은 5개가 넘는다. 또한 신고된 뇌사자가 모두 김한별씨 같이 기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코노스의 통계에 따르면 뇌사자의 장기 기증 의사가 접수되어도 이식성공에 이르는 비율은 50% 미만이다. 이러한 수치를 근거로 일각에서는 ‘장기이식법’을 ‘장기이식금지법’이라 비아냥 거린다.

    보건복지부와 코노스도 할말은 있다. 관련법을 개정하려면 국회와 법제처, 보건복지부 간의 의견이 일치해야 하는데 그 조율이 쉽지 않다는 것. 문제점을 파악해 개선책을 내놔도 관련 부처간 의견조율과정에서 보수적인 기류에 부딪쳐 좌절되곤 한다는 것이다.

    코노스 신상숙 장기수급팀장은 “코노스는 단지 집행기관에 불과하다. ‘작은정부’라는 구호는 우리같이 힘없는 기관에만 적용된다. 노하우도 쌓이지 않는다”며, “그래도 주어진 현실에서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한다.

    권한을 쥔 코노스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그동안 장기기증운동을 펼쳐온 종교계와 시민단체들도 많은 상처를 입었다. 살아있는 사람으로부터 이식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장기인 신장 외에는 모든 장기기증 절차를 코노스와 상의해야 했기 때문에 일이 효율적으로 진행되기 어려웠다. 시민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신장과 각막기증을 연결하는 것과 홍보뿐이었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장기기증 서약자는 늘고 있지만, 우리는 코노스에 장기기증자를 연결하는 일밖에 할 수 없다. 서약한 사람 중에 누가 실제로 장기를 기증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벌이는 장기기증 서약운동이 결과적으로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뇌사 가족의 장기를 기증한 한 유족은 답답한 듯 이렇게 털어놨다.

    “좋은 뜻에서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지만 이식수술이 끝날 때까지 고통과 상처는 너무도 컸다.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은 나빠질 것이다. 이로 인해 장기를 이식받으면 살 수 있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생명을 나누는 고귀한 일이 왜 이다지도 어렵기만 한지 국회와 복지부, 의사들과 시민단체는 그 원인을 하루빨리 파악해 개선해주기를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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