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호

반딧불 쏟아져내리는 청정 고장의 ‘유리알 행정’

  • 양영훈 < 여행작가 > travelmaker@hanmir.com http://www.travelwriters.co.kr

    입력2004-09-07 13: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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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주군 자치행정의 양대 축은 주민복지 증진과 생태환경 보전.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복지정책을 도입했고, 천혜의 자연조건을 지켜내기 위해 발품과 예산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무주의 하늘과 땅과 물과 인간은 자연스레 아름다운 조화를 엮어낸다.
    전라북도 동북부의 산간지방은 흔히 ‘무진장’이라 불린다. 무주, 진안, 장수군의 머리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오지(奧地)의 대명사인 함경남도의 ‘삼수갑산(三水甲山)’에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이 지역도 백두대간의 주맥과 소백산맥의 연봉(連峰)이 종횡으로 우뚝해서 전라북도의 지붕 구실을 한다. 특히 무주군은 무진장에서도 높은 산이 가장 많고 산세가 험준하다. 해발 1614m의 덕유산(향적봉)을 비롯해 두문산(1051m), 무룡산(1491m), 남덕유산(1507m), 적상산(1029m), 깃대봉(1055m), 백운산(1010m), 시루봉(1105m) 등 해발 1000m가 넘는 고봉들이 즐비하게 솟아 있다.

    산지가 많다보니 사람살이에 필요한 경지(耕地)는 얼마 되지 않는다. 현재 무주군 전체 면적에서 경지는 13%에 불과하다. 반면에 산림 면적은 83%에 이른다. 그런데도 농경지를 기반으로 삼는 1차산업의 비중이 52%나 된다. 나머지 48% 중 3차산업의 비중은 46%이고, 2차산업은 2%밖에 안된다. 이처럼 농업인구가 많은데도 농사지을 땅은 턱없이 부족한 게 무주군의 현실이다.

    그러니 인구도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198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당시 무주군 인구는 5만6000여 명이었다. 당시에도 전라북도에서 인구가 가장 적고 인구밀도(93명)도 가장 낮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나마도 큰 폭으로 감소해 3만300여 명에 불과하다.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다. 너나없이 먹고살 길을 찾아서 대전으로, 전주로, 서울로 떠나갔다. 이처럼 극심한 이농현상을 불러온 또 하나의 요인은 열악했던 교통사정이다.

    아름다운 도로, 열린 군청

    무주군은 충남 금산군과 충북 영동군, 경북 김천시와 경남 거창군, 전북 진안군과 장수군 등과 경계를 맞댄 접경지역이다. 역사적으로는 신라·백제의 문화와 역사가 공존하며, 지리적으로는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한마디로 동서화합의 중심지이자 내륙교통의 요충지인 셈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교통의 사각지대였다. 이웃 금산군이나 영동군에 가려 해도 몇 개나 되는 고갯길을 넘어야 했다. 금산은 지삼치와 서낭당고개, 영동은 압재나 도마령, 김천은 대덕치나 부항령을 넘어가야 당도할 수 있었다. 이렇듯 고개가 많은 무주 땅에서는 국도조차 대부분 구절양장(九折羊腸)이거니와 도로의 확·포장공사도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딜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거를 아는 외지인들에게 오늘날 무주군의 변화는 놀랍고도 새롭다. 가장 괄목할 만한 변화는 도로사정이다. 2000년 말에 대전-통영 고속도로의 대전-무주 구간이 개통된 뒤로는 무주 가는 길이 한결 수월해졌다. 그동안 서울에서 무주군 최대의 관광지인 구천동으로 가려면 2시간30분을 달려 경부고속도로 영동IC까지 내려간 다음, 다시 19번 국도와 37번 국도를 번갈아 타고 1시간쯤 더 달려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서울 톨게이트에서 2시간10분만 달리면 무주IC에 이르고, 여기에서 20여 분만 더 들어가면 구천동이다. 약 1시간이나 단축된 것이다.

    대전-통영 고속도로 무주IC에서 승용차로 약 5분 거리인 무주읍내에 들어서면 색다른 거리 풍경이 눈길을 끈다. 우선 흔한 아스팔트가 아닌 네모진 작은 돌로 포장된 읍내 중심도로가 이채롭다. 길 중간에는 화사하게 꽃망울을 터뜨린 야생화 화분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고, 양쪽에는 느티나무와 왕복나무 등의 가로수가 시원스레 늘어서 있다. 그냥 바라보는 것도 좋고, 잠시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게끔 단장된 도로다. 무주군 관계자의 말로는 일반 아스팔트 도로에 비해 시공비가 1.5배 가량 더 든다고 한다. 하지만 돌 벽돌은 뜯어낸 뒤에도 고스란히 재활용이 가능하고 사람들에게 정서적 친밀감을 준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비싼 것만은 아닌 듯싶다.

    울타리나 담장이 없이 개방돼 있는 무주군청 청사도 인상적이다. 돌 벽돌이 촘촘히 깔린 청사 앞마당에는 작은 분수와 한반도 모양의 연못, 그리고 ‘반딧불축제’를 기리는 시비(詩碑)와 돌 의자가 놓여 있어 공원 같은 느낌을 준다. 앞마당 한쪽에는 장난감 말을 설치해 어린이들이 제집 마당에서처럼 즐겁게 놀다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잔디가 깔린 청사 뒷마당도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놀이터이자 운동장이다.

    청사 내부의 사무실 공간은 은행창구처럼 낮은 칸막이만 둘러진 채로 확 트여 있다. 어디서나 공무원들의 업무 광경을 들여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용무가 있는 주민들은 담당 공무원을 쉽게 찾아가 만날 수 있는 구조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무주군청에서는 기존의 폐쇄적이고 고압적인 행정관서의 면모를 찾아보기 어렵다.

    무주군청의 열린 행정사례는 또 있다. 무주군은 관급공사의 입찰비리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전국에서 군 단위의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전자입찰제’를 도입했다. 군청에서 홈페이지를 통해 입찰공고를 하면 업체는 입찰에 필요한 서류를 다운받아 작성한 후 인터넷으로 접수시키면 된다. 입찰결과는 입찰일시, 예정가격, 입찰업체, 복수예비가, 입찰등록업체와 입찰금액 등으로 세분되어 군청 홈페이지에 공고된다.

    또한 지난 3월부터 무주군은 관급공사를 입찰할 때마다 참가업체당 1000만원씩 받아오던 입찰수수료를 없앴다. 대부분의 관공서가 여전히 징수하고 있는 입찰수수료는 관급공사 입찰에 참여하는 군소업체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고, 세수(稅收)가 부족한 자치단체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수입원이다. 그런 현실을 감안하면 무주군은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무주군청만큼이나 크게 달라진 게 또 있다. 바로 무주장터다. ‘반딧불장터’로 명명된 무주장터는 여느 재래시장과는 판이한 모습의 현대식 장터와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다닥다닥 붙어있던 낡은 상설점포들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오일장(1·6일)마다 들어서는 노점들을 위한 공간과 널찍한 원형광장을 조성했다.

    아울러 장터 전체의 길바닥에는 붉은 벽돌을 깔고 곳곳에 깔끔한 천막과 의자를 설치해 장이 서지 않는 날에는 인근 주민들이 만남과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장터 한쪽에는 청결하게 관리되는 화장실과 아담한 어린이 놀이터, 그리고 무주군 전통수공예품 상설 전시판매장도 마련돼 있다. 그러다보니 전통적인 장터의 어수선하면서도 소박한 정취를 느낄 수 없어 오히려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굳이 장날이 아니더라도 장터 안의 순댓국집에서 푸짐한 토종순대를 맛보거나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가기에도 좋을 성싶은 공간이다.

    반딧불장터 외에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무주군이 지역주민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마련한 시설과 제도는 한둘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무료순환버스’. 이 버스는 ‘손바닥만한’ 무주읍내 중심가와 외곽을 쉼없이 돌면서 자가용 없는 주민이나 택시비가 아까운 노인들, 그리고 관내 지리에 익숙지 않은 외지관광객들의 다리가 돼준다. 또한 대형버스를 개조한 ‘형설지공 이동도서관’은 날마다 무주군의 면소재지와 마을들을 순회하면서 각종 단행본과 잡지를 주민들에게 무료로 빌려준다.

    무주읍내의 한풍루 옆에 건립된 예체문화관(藝體文化館)은 주민복지에 대한 무주군의 관심과 투자가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면적 1812평의 이 문화관은 136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지난해 완공했는데, 그 규모와 시설이 웬만한 대도시의 복합문화관 못지 않다. 문화관 내부에는 수영장, 헬스장, 에어로빅실, 소극장, 형설지공 군립도서관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섰다. 특히 수영장은 25m 길이의 레인 4개와 어린이용 풀, 사우나실 등을 골고루 갖춰 무주군민들뿐 아니라 이웃한 금산, 영동, 장수군 지역 주민들에게도 인기가 높다고 한다.

    다양한 농외 소득원 육성

    무주군의 복지정책은 ‘삶의 질 향상’과 ‘생산적 복지’를 지향한다.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의 결과물로는 앞서 언급한 무료순환버스, 형설지공 이동도서관, 예체문화관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생산적 복지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한마을 한가정 한상품 만들기 운동’을 첫손에 꼽을 만하다.

    이 운동은 무주군의 모든 마을과 가구, 주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농외(農外) 소득원을 발굴·육성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나아가서는 주민들의 소득증대를 돕기 위한 사업이다. 노령인구의 비율이 나날이 증가하는 우리 농촌 실정을 감안할 때 이 운동의 가장 큰 수혜자는 노인들일 수밖에 없다. 일로부터 소외된 노인들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마련해주고, 농한기면 하릴없이 소일하던 사람들에게 다양한 소득원을 창출해준다. 일과 돈이 생기는 이 운동을 통해 노인들의 복지문제까지도 어느 정도 해결하게 되는 것이다.

    이 운동의 일환으로 무주군 전체에서 생산되는 상품은 청국장, 된장, 사과고추장, 쌀조청, 장아찌 등의 전통식품에서 짚, 덩굴, 나무, 털실, 싸리 등을 소재로 한 전통수공예품까지 약 70여 개 품목에 이른다. 3300여 가구가 참여하는 이 운동을 위해 지난해 무주군은 42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용기와 포장재를 지원했다. 주민들이 생산한 상품은 반딧불장터 직매장을 통해 무주군의 대표적인 지역특산물로 판매되며, 판매수수료를 떼지 않고 수익금 전액을 생산자에게 입금시켜준다고 한다.

    주민복지 증진과 함께 무주군 자치행정의 양대 축을 이루는 것은 생태환경 보전이다. 무주군은 산림면적이 넓고, 2차산업의 비중이 극히 낮아 자연의 오염·훼손 정도가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그래서 높고 깊은 백두대간 자락의 심산유곡에서 흘러내리는 금강 상류의 물길에는 쉬리, 피라미, 갈겨니, 다슬기 등 1, 2급수가 아니면 살 수 없는 민물고기가 흔하다. 오늘날 무주군이 반딧불이의 고장으로 유명해진 것도 비교적 잘 보전된 생태환경 덕택이다.

    무주군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반딧불이 서식지가 있다. 1982년에 무주군 설천면 청량리 남대천 일대의 반딧불이와 그 먹이(다슬기) 서식지가 천연기념물 제322호로 지정된 것.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지는 벌써 20년이나 지났지만, 그동안 주민이나 외지인 모두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인 1997년부터 해마다 반딧불축제가 열리면서 반딧불이는 청정 환경의 척도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무주군은 이 축제를 통해 ‘하늘(대기), 땅(토양), 물(수질)이 조화로워야 살아갈 수 있는 반딧불이의 고장’이라는 지역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즉 반딧불이가 살 만큼 자연이 깨끗하다는 인상을 외지인들에게 확실하게 심어준 것이다.

    ‘청정지역’이라는 대외적 이미지는 관광객을 증가시켰을 뿐 아니라 지역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크게 높이는 효과도 가져왔다. 무주군에서 생산되는 농특산물에는 ‘반딧불’이라는 상표가 붙는다. ‘반딧불 사과’ ‘반딧불 배’ ‘반딧불 토마토’ ‘반딧불 고추’ ‘유황청둥오리 반딧불 쌀’ ‘반딧불 벌꿀’ 하는 식이다. 반딧불 상표가 붙은 무주군의 농특산물은 대도시의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값을 받는다고 한다. 특히 해발 250∼500m 사이의 산간 고랭지에서 생산된 무주 반딧불 사과는 당도와 과육, 향기가 뛰어나 7년째 ‘전국 최고의 사과’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반딧불 포도도 2000년 전국 으뜸농산물 품평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반딧불축제는 자연훼손과 환경파괴를 수반하지 않고 지역 이미지를 강화하면서 지역 활성화를 꾀하는, 생산적인 지역개발 축제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연륜이 그리 길지 않은데도 대단히 성공적인 축제로 자리잡아 지난해부터는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정하는 ‘문화관광축제’가 됐다. 축제를 통해 직접적으로 얻는 경제적 이익도 적지 않다. 2000년의 4회 축제 때는 5일 간의 축제기간 동안 30여 만명의 외지 관광객들이 51억9000만원을 쓰고 간 것으로 집계됐다.

    천혜의 생태자원을 가지고 지역 이미지를 제고하거나 이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은 그런 생태자원을 영원히 지켜나가는 일이다. 무주군의 경우도 만약 반딧불이가 사라지면 반딧불축제뿐 아니라 청정지역이라는 이미지도 잃게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무주군이 쏟아붓는 노력과 비용은 적지 않다.

    먼저, 큰 수해를 입은 남대천을 복구하면서 자연환경과 최대한 가깝도록 공사를 마무리했다. 자연정화능력이 없는 콘크리트를 걷어낸 자리에는 자연석을 놓고, 물가에는 갯버들, 물미나리 등 자정능력이 있는 수생식물을 심었다.

    또한 생활하수가 곧장 남대천으로 흘러드는 것을 막기 위해 고수부지 한쪽에 하수 전용수로를 따로 설치했다. 이곳을 따라 흐르는 하수는 남대천 하류의 하수종말처리장에서 다시 맑은 물로 정화되어 금강으로 흘러든다. 하수종말처리장을 세우는 데만도 무주군 1년 예산의 15%가 넘는 168억원이 들어갔다고 한다.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애초부터 오염을 막는 일이다. 그래서 무주군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적게 쓰거나 아예 쓰지 않는 환경농법을 적극 장려한다. 환경농법을 도입하는 농민들에게는 유효미생물을 지원하거나 축산 분뇨를 재활용해 만든 유기질비료를 공급하기도 한다. 우렁이농법이나 오리농법으로 벼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도 일정 정도의 재정적 지원을 해준다. 그밖에도 무주군은 4년마다 되풀이되는 순환수렵장 지정을 거부해 무주군 전체를 도내 유일의 수렵 금지구역으로 만들었다.

    무주군의 이같은 환경보전 노력은 대외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환경부가 제정한 환경대상에서 환경운동부문 대상을 받았다. 이에 대해 무주군민들은 “민관(民官)이 하나 되어 이루어낸 성과”라며 자축했다.

    자연과 인간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무주 땅 곳곳을 둘러보노라면 이 땅 어디서나 여름밤을 밝히는 반딧불을 보고 싶다는, 그래서 반딧불이를 유리병에 담아 동화책을 읽던 어린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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