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호

도난당한 핵탄두, 맨해튼 강타한다

뉴욕타임스 ‘핵의 악몽’ 시나리오

  • 번역·정리이흥환 < 미 KISON연구원 > hhlee0317@yahoo.co.kr

    입력2004-09-07 13: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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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전 FBI는, 방사능을 유출하는 이른바 ‘더러운 폭탄’으로 미국 수도 워싱턴을 테러공격하려 한 혐의가 있는 호세 파디야를 검거했다. 이 발표가 나오기 일주일 전, ‘뉴욕타임스’ 5월26일자 특집판(매거진)은 핵 테러 시나리오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의 발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핵의 악몽: 테러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동의하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언제가 되었든 핵 테러공격은 일어난다는 것이다. 핵 테러가 있을 것이냐 없을 것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터지냐가 문제다. 테러전문가들은 이미 잠을 잊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이자 특집판 기자인 빌 켈러(Bill Keller)가 쓴 ‘핵의 악몽’ 기사를 요약했다.
    핵테러에 대해 많이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나리오 한 가지쯤 제시할 수 있다. 잔인하긴 하지만 이론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시나리오다.

    미 과학자연맹(FAS) 연구원인 마이클 레비는, 미국 내에서 제조된 핵폭발 장치를 실은 트럭 한 대가 뉴욕 맨해튼으로 통하는 한 터널을 통과하던 중 핵폭탄을 터뜨렸을 때의 장면을 상상해본다.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이룬 빌딩 숲 곳곳엔 핵폭풍으로 구멍이 뚫리고, 순식간에 수천명의 사람이 바비큐가 돼버린다. 비록 핵폭탄이 지하에서 터지긴 했지만 뉴욕 시민 수천명이 방사능에 노출돼 죽어나가고, 건물에서 쏟아져나온 콘크리트 가루와 먼지, 강물이 방사능을 묻힌 채 기포가 되어 하늘로 치솟았다가 ‘죽음의 재’가 되어 한없이 쏟아져 내린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일어난 후 사고현장의 방사능 제거작업에 참여했던 러시아의 핵물리학자 블라디미르 시칼로프는 고농축 방사능인 세슘-137을 살포장치에 담아 퍼뜨리는 공격 시나리오에 대해 언급했다. 모스크바에 있는 그의 집 부엌에서, 핵 테러 가능성을 주제로 인터뷰하던 중에 나온 말이다. 그가 말한 세슘-137의 공격 목표는 다름아닌 디즈니랜드다.

    이 경우 인명 살상 숫자는 훨씬 줄어들겠지만, 일정량의 세슘으로(시칼로프는 얼마나 되는 양인지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찻잔을 들어보였다) 디즈니랜드의 매직 킹덤이 오염되면 결국 공원이 폐쇄되고, 무고한 미국 시민들은 공포에 떨게 될 것이다.

    시칼로프는 대다수 사람들이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해 터무니없이 충격받는다고 생각하는, 핵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테러리스트가 디즈니랜드를 공격한 후 비록 자기가 먹을 음식과 음료수를 따로 포장하고 입었던 옷을 없애버리긴 하겠지만, 개인적으론 즐거운 마음으로 디즈니랜드에 놀러가고 싶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원자력에너지부(MINATOM) 관리였던 또 한 사람의 러시아인 드미트리 보리소프는 자살 공격 조종사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한다(자살 공격 조종사 시나리오는 이런 종류의 상상에 자주 등장한다). 그의 시나리오는 소련 국영항공사 소속 제트기인 에어로플롯이 쿠차토프연구소를 급강하 폭격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소는 모스크바 부근의 한 고급 주택가에 있는 원자력 연구센터로, 보리소프와 인터뷰를 하기 바로 전날 취재를 갔던 곳이다.

    이 연구소엔 갖가지 크기의 원자로 26개와 거대한 방사능 물질 집적소가 있다. 이곳을 자살 제트기가 폭격할 경우 시체를 담는 비닐자루 숫자보다 재산 피해가 훨씬 더 크겠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체르노빌에 맞먹는 피해를 발생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시나리오들은 실제론 소름 끼치도록 무시무시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식으로 희석시킨 것일 수도 있고, 핵 비확산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겐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집안으로 끌어들인 바보같은 짓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몇 주에 걸쳐 미국과 러시아의 전문가들에게 들어본 바에 따르면, 이런 가공할 창작물 같은 이야기들은 사람들을 낙담시키기에 충분했다.

    어떤 한 과학자는 자살 테러 비행기가 방사능 살포 무기로 활용될 수도 있다고 했고, 또다른 사람들은 비행기 납치범들이 핵연구소 실험실을 들이받아 현장에서 실제 핵폭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이론을 펼치기도 했다. 사무실이 빼곡히 들어찬 고층건물의 환기통을 통해 플루토늄을 어떻게 퍼뜨릴 수 있는지 방법을 가르쳐준 전문가도 있었다.

    ‘만일’이 아니라 ‘언제냐’가 문제다

    핵 테러 위협은 현실적으로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그 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실제로 대규모 파괴력을 지닌 핵폭발이 일어나는 것이다.

    뉴욕이나 워싱턴 한복판에 핵폭발로 거대한 구멍이 생기고 방사능의 연무가 도시를 뒤덮는다고 생각해보라. 이는 핵무기고의 핵탄두가 암시장을 통해 흘러나왔을 때 가능한 일이다. 핵무기 암거래를 하는 브로커가 엄연히 활동중인 파키스탄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야말로 핵무기 암거래의 최적지라 할 수 있다. 혹은 미국 내에서 만들어진 폭파장치가 동원될 수도 있다. 핵무기 제조 실험실에서 만든 것보다는 폭발력이 떨어지겠지만 얼마든지 대학살용이 될 수 있다.

    두번째 경우는 방사능 공격이다. 방사능 물질을 넣은 ‘더러운 폭탄(dirty bomb)’을 공공장소에서 폭발시켜 오염을 유발하는 것으로, 폭발과 함께 방사능을 공기중이나 물에 퍼뜨리거나 아니면 직접 핵시설을 파괴해 방사능을 유출시키는 것이다. 이런 음모는 핵분열에 비하면 어린 아이들의 장난처럼 간단한 것이며, 직접적인 핵폭발에 비하면 두려움이 훨씬 덜한 것이긴 하다.

    그래도 사람들이 대피하는 등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고, 암 발병률이 점차 증가하며, 방사능 제거 작업에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이다. 또한 주변지역 전체를 영구 폐쇄해야 할지도 모른다. 알 카에다 조직은 자신들이 이 ‘더러운 폭탄’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확인된 바 없지만,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9·11 테러사건은 이론적으로 가능한 일을 현실로 보여줬다. 9·11 테러는 우리(미국)를 미워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인물들이 실제로 가공할 방법으로그 미움을 표현한 사건이다. 더욱이 그들은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우리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고, 우리의 악몽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지난 2월 부시 행정부의 국토안보국장 탐 리지는 ‘뉴욕타임스’에 찾아와 기자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는 비행기 납치에서부터 탄저균 우편물 발송, 천연두, 농약 살포 비행기를 이용한 세균 살포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우려할 만한 테러 가운데 가장 걱정스러운 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 질문에 탐 리지는 기도하는 것처럼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끼고 있다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대며 이렇게 말했다. “핵이지요.”

    이 글은 핵 테러의 공포와 그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얼마나 두려워해야 하며, 정확히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름끼치는 논리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만난 러시아 핵전문가들은 모두 토머스 코크란과 친분있는 사람들이었다. 코크란은 워싱턴에 있는 환경보호 및 군축문제 연구소인 자연자원방어위원회(NRDC)에서 핵문제 책임자로 일하는 핵전문가다.

    그는 1989년 구 소련의 글라스노스트가 한창일 때 소련을 설득해 소련의 가장 비밀스러운 핵탄두 저장고를 몇몇 미국 과학자와 의회 의원, 기자들에게 공개하도록 만든 사람이다. 우리는 당시 흑해 인근의 핵 미사일 기지를 방문했다. 소련이 처음으로 무기용 플루토늄을 생산한 비밀도시인 그곳에서 우리는 소련 과학자, 공학자들과 어울려 보드카를 마셨다.

    코크란의 워싱턴 사무실 컴퓨터엔 미국이 만든 러시아 군사지도가 담겨 있다. 이 지도엔 고해상도의 위성사진이 들어 있어 미사일 발사 기지에서부터 잠수함 기지에 이르기까지, 마우스만 움직이면 러시아 전역의 모든 군사시설을 손금 들여다보듯 자세히 볼 수 있다. 테러리스트가 이 기지 중 한 곳에서 핵탄두를 어떻게 훔쳐낼 수 있을 것인지 궁리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코크란은 축구장 크기의 한 지점을 확대해 보이며 그곳이 핵무기 벙커라고 알려주었다. 더 확대하자 이글루 모양의 건물 6개가 나타났다. 러시아 서부 주코프카라고 불리는 지점이었다.

    “벙커들이 이중으로 담장에 둘러싸인 게 보일 것이다. 담장 밖에 막사가 있고, 경비병들의 사격 연습장이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제12주경비대일 것이다. 여기서 누군가 밖으로 나가거나 무기가 반출됐다는 흔적은 없었다.” 코크란의 설명이다.

    핵 테러는 핵무기를 훔쳐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여기저기 핵무기가 널려 있는데 왜 굳이 만들려 하겠는가. 게다가 무기를 만드는 것보다 훔쳐내는 것이 훨씬 더 극적이다. 1961년 이언 플레밍이 ‘선더볼’을 출간한 이후 도난당한 핵무기는 소설의 주요 소재로 등장했다. ‘선더볼’에선 나토 소속의 추락한 비행기에서 원자탄 2개를 도난당한다. 톰 클랜시의 소설을 영화화한 ‘The Sum of All Fears’는 신나치주의자가 이스라엘의 핵을 손에 넣는다는 내용이다.

    현재 핵을 보유중인 국가는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8개국이다. 핵무기 전문가이며 ‘과학 및 국제 안보연구소(ISIS)’ 소장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는 이 국가들 가운데 특히 파키스탄의 거의 모든 핵 프로그램은 서구 전문가들의 통제를 피하기 위해 암거래 및 산업 스파이를 통해 구축된 것이라 지적한다.

    핵 비확산 규칙을 깨뜨리는 것은 이미 뿌리 깊은 관습이 돼 있다. 파키스탄에서 불만을 품은 개인들(이들이 탈레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이 핵물질과 그 제조기술, 심지어 핵탄두를 빼돌리기 위해 불법적인 통로를 찾으려든다면 그 길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취약한 핵탄두 관리

    그러나 가장 공포스러운 곳은 바로 러시아다. 러시아가 현재 관리중인 핵 탄두 수는 약 1만5000개나 된다. 전세계의 핵탄두 수가 2만5000개임에 견주어 실로 엄청난 양이다. 이 정도 양이라면 최대 100만 명을 죽일 수 있는 500kt(킬로톤·TNT1000t에 해당하는 폭파력)의 파괴력을 지닌 것이고, 적게는 맨해튼을 아주 쑥밭으로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한 1kt 분량의 지뢰나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회계 상태는 엉성하고 군부는 불만투성이인 데다, 암거래 상인들은 뻔뻔하기 짝이 없다. 이런 환경에서 테러리스트들이 자생하는 나라가 러시아다.

    이런 우려는 괜한 것이 아니다. 우려를 자아낼 만한 일화가 있다.

    러시아 해군 외부의 모든 핵무기를 관할하는 부대인 제12주경비대 대장 이고르 발린킨 장군은 지난 1년 동안 러시아 핵무기 저장시설을 넘보던 두 테러리스트 그룹을 검거했다고 최근 밝혔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얼마만큼의 신빙성이 있는지 확인하기는 힘들다. 올해초 러시아에서 핵전문가들을 만났을 때 그들 대부분은 이를 믿지 않았다. 보안 담당 군인들은 자신들의 무용담을 극적으로 보이게 만들고, 예산을 더 타내기 위해 그런 사건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러시아와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러시아의 핵탄두 관리가 취약한 사실에 대해 그리 놀라지 않는 기색이다. 러시아도 그 무기들을 신중하게 보관·관리하고 있으며 아주 조심스럽게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핵탄두 분실 사례가 아직 확인된 바 없는 것은 사실이다.

    부시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감축하기로 합의한 4000개의 핵탄두를 포함한 전략 핵탄두들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지역에서 관리하고 있다. 주변에 견고한 방어벽이 설치돼 있고 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으며, 그 위치도 알려져 있지 않다. 또 이곳을 지키는 병사들은 다른 기지의 병사들에 비해 많은 급료를 받으며, 더 엄격한 조사를 받는다.

    1998년까지 미국의 전략무기를 담당했고, 에너지부의 핵 반테러 프로그램 책임자로 일했던 4성 장군 출신의 유진 하비거는 1996∼97년 러시아 핵무기 시설 몇 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러시아의 핵 벙커에 직접 들어가 현장을 조사해본 유일한 미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러시아가 핵 관리 면에서 기술보다 인적 요소에 더 의존하긴 하지만 전반적인 보안 수준이 미국에 버금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장한 테러리스트 특공대가 핵 벙커에 침입한다는 것은 다분히 영화 같은 이야기다. 오히려 내부 소행의 가능성을 거론하는 게 더 그럴 듯하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군복무에 염증을 내고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한 일단의 장교들이, 또는 그저 단순히 돈에 눈먼 장교들이 핵탄두를 테러리스트에게 넘길 수 있다는 것은 러시아군을 관찰해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봄직한 시나리오다(병원에서 잡은 인질들을 무자비하게 대해 악명이 높았던 체첸의 군부 지도자 샤밀 바샤예프는 핵 탄두 창고에서 핵무기를 살 기회가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자포자기하다시피 한 러시아군 내부의 이런 일화는 얼마든지 있다. 소름 끼치는 일이다. 러시아 언론에는 19세의 한 수병이 아쿨라급 핵잠수함에서 난동을 부려 승무원 8명을 죽이고 잠수함과 원자로를 폭파하겠다고 위협했다든지, 핵무기 실험기지에 근무하는 5명의 병사가 경비병을 살해하고 인질을 잡은 후 비행기 납치를 기도했다든지, 탈취한 공격용 헬리콥터 5대에 무기를 가득 실은 장교들이 이 무기를 북한에 팔아넘기려 했다는 등의 기사가 해마다 실리고 있다.

    그러나 만약 어떤 테러리스트가 손에 핵탄두를 넣었다 하더라도 그 무기를 어떻게 설치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남는다. 미국이 만든 핵탄두는 인가자가 아닌 사람들이 쉽게 폭발시킬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다중 잠금장치(PAL)와 암호, 자체 분해장치가 돼 있다. 하비거 장군은 러시아의 전략 핵무기를 점검해본 결과 보안 수준이 미국과 맞먹을 정도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핵무기 속의 내용물을 가지려면 무기를 해체해야 한다”면서 “핵탄두를 손에 넣은 후 폭발시키지 않고 그 안에 있는 플루토늄이나 고농축 우라늄을 추출해내는 시나리오가 더 그럴 듯하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훔쳐낸 핵탄두를 폭발시키기보다는 연료만 빼내 완전히 다른 무기로 만드는 게 더 쉽다는 것이다.

    하비거 장군은 물리학자도 아니고 무기 디자이너도 아니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또 러시아가 하비거 장군에게 중요한 정보를 잘못 가르쳐주었을 만한 확실한 이유도 없다. 이 점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난공불락이라 확신하던 암호화된 컴퓨터시스템에 해커가 얼마나 자주 침입하고 있는가. 알 카에다 조직은 얼마나 많은 컴퓨터 해커를 거느리고 있을까.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도무지 해답이 나오질 않는다.

    전술 핵무기는 ‘사각지대’

    러시아의 무기 보안 수준을 평가하는 데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이 바로 어뢰와 수중 폭뢰, 유탄, 지뢰 같은 소규모 단거리용 무기인 전술용 핵탄두다. 워낙 숫자가 많고 크기가 작아 훔쳐내기에 적격인데도 이 무기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거의 없다. 장거리용 무기와 달리 그 어떤 공식 협정으로도 규제하지 않고 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부시 전 대통령(현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아버지)은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비공식적이나마 이 전술용 핵무기 문제를 토의했고, 옐친 대통령과는 수천개의 전술용 핵을 파괴시키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비축분에 대한 재고조사나 외부 감시, 검증 등 절차가 합의문엔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나를 믿으라’는 식의 협상이었다. 9·11 테러를 겪고 난 지금 그런 합의는 고작 우리의 안전에 수많은 블랙홀을 만드는 것일 뿐이란 사실이 분명해졌다.

    러시아가 갖고 있다는 핵탄두 1만5000개 중에는 폭격기·미사일·잠수함용 외에 일반적으로 8000개의 전술 핵도 포함된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전술 핵 숫자를 적게는 4000개에서 많게는 3만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그러나 러시아가 보유한 전술 핵무기의 정확한 숫자를 우리는 모르고 있으며, 러시아는 그런 숫자를 기록에서 삭제하는 데 유명하기 때문에 러시아 스스로 과연 정확한 숫자를 알고 있는지조차도 우리는 모른다.

    민간 핵 비확산단체인 러·미 핵 안보 자문위원회(RANSAC)의 책임자 케네스 루온고는 “러시아인들은 단 한 개의 핵무기도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말할 것”이라며 “정확히 말하면 그들도 잃어버린 핵무기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른다. 미국은 핵무기 숫자를 계산할 때 한 개라도 빼놓고 싶지 않겠지만 말이다”라고 한다.

    그러면 러시아의 이 핵무기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일부는 주코프카 같은 콘크리트 벙커에 저장돼 있고, 일부는 이미 배치됐으며, 또 일부는 각종 공식·비공식 군축협정에 따라 해체되는 중이다. 그럼에도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는 우리도 모른다.

    이 전술 핵과 관련해 또 하나 염려스러운 것은 사용 방지 장치가 그다지 정교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전술 핵무기들은 전쟁터에서 사용되도록 고안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러시아 양국은 지금도 전술 핵무기 비축분을 상대방 방문자에게 공개하기를 꺼린다. 1998년까지 러시아 원자력에너지부의 책임을 맡았었고 핵 비확산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조롱하기로 유명했던 빅토르 미하일로프는 러시아의 핵무기를 보호하려는 미국의 프로그램은 여전히 비밀정보 수집 작업의 일환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미국은 러시아 핵무기 보호를 위해 자신들이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상호주의에 따른 정보 공개를 망설이고 있다.

    러시아 핵무기 보안을 위한 넌-루가 프로그램의 전 상원의원 샘 넌은 이렇게 말한다. “러시아가 더 투명해지길 과연 우리가 원하고 있는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나는 이걸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투명성이라고 부른다. 그 다음에는 우리 자신도 더 많이 공개해야 한다. 결국 요점은 러시아나 우리나 심리적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과 관련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그때까지 단 한번도 폭발실험을 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리틀 보이’라 불렸던 그 원자탄은 고농축 우라늄을 다른 우라늄에 투사시켜 폭발시키는 아주 초보적인 총기 장치나 마찬가지다. 원리가 너무 간단했기 때문에 아무도 폭탄이 작동하지 않으리라고 의심하지 않았고, 결국 첫번째 실험이 일본 하늘 위에서 이뤄진 것이다.

    핵 테러 연구가들의 공통된 지적은 핵폭탄을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쉬우며, 폭탄을 훔치는 것보다 더 쉬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핵 테러 방지의 요점은 바로 이것이다.

    이 문제를 집중 연구하고 있는 백악관의 한 관리는 어떤 종류가 되었든 핵 폭발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즉석에서 핵 장치를 만들기 위한 핵분열 물질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면 핵폭발이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특히 그 물질이 금속 형태의 고농축 우라늄일 경우 핵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내가 정말 우려하는 점이다”라고 말한다.

    핵폭발 장치를 만들려면 전문지식과 일부 장비, 운반수단이 필요하다. 핵 폭탄을 운반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처럼 간단하다. 전문가들은 이른바 ‘코넥스(conex) 폭탄’을 주시한다. 코넥스 폭탄이란 수출용 컨테이너에 핵폭탄을 장치한 것이다.

    미국에는 시간마다 2000개의 컨테이너가 들어온다. 트럭·기차·선박을 통해 미 전역의 300개가 넘는 항구 어디에든 이 컨테이너가 부려진다. 이 가운데 2%도 안되는 컨테이너만이 검사를 위해 개봉되며, 대다수 컨테이너는 엑스레이 검사장치조차 통과하지 않는다.

    한때 미국 핵무기고 관리의 총책임자이기도 했던 하비거 장군은 “어떻게 이걸 막을 수 있겠느냐? 막을 도리가 없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LA 같은 곳의 컨테이너를 생각해보라. 이건 ‘만약’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냐’의 문제다”라고 말한다.

    원자탄의 기본적인 제조법은 이미 반세기 전에 알려진 것이다. 미국 핵무기를 설계한 바 있는 시어도어 테일러는 최근 자신이 살고 있는 뉴욕 양로원에 비치된 세계대백과사전에서 ‘원자탄’ 항목을 찾아본 적이 있다. 그는 조금만 사려 깊은 독자라면 얼마든지 핵폭탄 제조에 필요한 기초지식을 얻을 수 있으리란 걸 알게 됐다.

    결론은 핵폭탄에 관한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엔의 이라크 핵사찰 요원으로 일했던 데이비드 올브라이트는 사담 후세인이 1990년 핵 무기를 만들려다 실패한 사례를 예로 들며 핵폭탄 제조의 어려움을 지적한다.

    이라크는 폭탄을 만들기엔 부족한 양이었지만 연구용 원자로 연료에서 고농축 우라늄을 추출했다. 하지만 금속 주조를 담당한 매니저가 너무 두려운 나머지 작업 도중 그만 물질을 흘리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많은 양의 우라늄이 못쓰게 됐고, 폭탄 제조에 필요한 양을 확보하지 못했다.

    올브라이트는 “훌륭한 관리자와 조직적인 사람들이 한 요소가 되어 협동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테러리스트들이 이렇게 조직적으로 작업한다면 핵무기를 만드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실수는 뒤따르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일부 핵전문가들은 핵폭탄 제조를 너무 전문적인 것으로만 생각해 ‘내 손으로 만드는 폭탄(do-it-yourself bomb)’의 제조 가능성을 낮추어보는 경향이 있다.

    “창고나 차고 같은 곳에서 간단한 작업도구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10∼15명의 사람만 있으면 된다. 모두 박사급이 아니어도 되며 기술자와 공학자 몇 명만 있으면 된다. 총기형 폭탄은 테러리스트 조직의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올브라이트의 말이다.

    코크란은 이른바 주문형 핵폭탄이 가장 걱정스럽다고 말한다. 테러리스트들이 핵무기 제조용 우라늄을 훔친 후 이라크, 이란, 리비아 같은 곳으로 가져가 과학자나 공학자들에게 기초적인 폭탄 제조를 주문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제 남는 문제는 핵분열 물질이다. 핵폭발에 필요한 고농축 우라늄의 양은 대략 50kg(110파운드) 정도다. 코크란은 빈 코카콜라 깡통에 담아놓은 15파운드 분량의 사용하지 않은 우라늄을 보여주었다. 이 깡통 8개의 양이면 폭탄 한 개를 만들 수 있다.

    최초의 완벽한 핵테러는 1995년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체첸 반군 테러다. 체첸 반군은 이 테러를 일으키기 수개월 전에 점령한 병원에서 세슘이 든 깡통을 노획했고, 이 세슘탄으로 주말에 모스크바의 한 벼룩시장을 공격한 후 언론도 불러들였다. 아무도 다친 사람은 없었다. 당국자들은 사건을 신중히 처리했고, 잠깐 동요가 있었으나 곧 진정됐다.

    이 사건은 러시아에서 만난 핵전문가들이 핵테러에 대해 이야기하며 빠뜨리지 않고 꼭 거론하는 사례다. 핵폭발이나 버섯구름을 발생시키지 않고도 테러리스트들이 방사능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더러운 폭탄’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미국의 핵 폭탄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미국 과학자들은 독일이 디데이에 상륙하는 미군들에게 방사능 물질을 사용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맨해튼 프로젝트 전기작가인 로버트 노리스와 레슬리 그로우브 장군은 미국이 이 방사능 공격 위협을 심각히 생각했기 때문에 디데이 참전 병사들에게 방사능 측정기인 가이거를 장비의 하나로 지급했다고 말한다.

    9·11 테러 이후 러시아 관리들은 저급 핵물질 보호를 포함한 미국의 핵 물질 보호 프로그램을 확대시키기 위한 로비에 열을 올리고 있고, 부시 행정부는 이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이미 책정해놓았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테러리스트들의 이 방사능 공격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 ‘더러운 폭탄’에 사용되는 것은 코발트-60이다. 코발트-60은 방사선 치료기를 사용하는 병원이나 세균 세척용 식료품 제조기를 쓰는 곳이면 어디서나 구할 수 있다.

    1974년 핵 도난의 위험성에 대해 쓴 책에서 시어도어 테일러와 메이슨 윌리치는 테러리스트가 100g(골무 하나에 들어갈 수 있는 양)의 플루토늄을 손에 넣을 경우 일어날 수 있는 가상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테러리스트가 100g의 플루토늄을 연무로 만들어 사무실 환풍기를 통해 퍼뜨릴 경우 초고층 빌딩의 전체 층에 퍼질 수 있다. 그러나 플루토늄이 건물 밖으로 퍼져나갈 경우엔 효과가 떨어진다. 가벼운 바람에도 흩어져버리기 때문이다.

    미국 과학자연맹은 최근 의회 증언에서 미국 내에서 제조된 각종 ‘더러운 폭탄’이 뉴욕이나 워싱턴에서 터졌을 경우의 결과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어른 발 길이 정도의 연필에 코발트를 담아 10파운드의 TNT로 뉴욕 유니온 스퀘어에서 미풍이 부는 날 터뜨리면 방사능이 주변 3개 주에까지 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맨해튼의 대부분 지역은 체르노빌 핵발전소 주변처럼 영구 폐쇄지역이 될 정도로 오염될 수 있다. 맨해튼 주민들은 방사능으로 인한 암에 걸려 10명 중 최소 1명이 사망한다.

    프린스턴대학의 물리학자 프랑크 폰 히펠 박사는 이 증언 자료를 검토한 후 사태가 이보다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 지역에 있던 사람이 앞으로 암에 걸려 사망할 확률은 20%를 넘어선다. 사망률이 20.1%로 늘어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도시를 아주 버릴 것인가? 글쎄,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사실 방사능에 대한 공포는 대부분 비합리적인 것이다. 만약 방사능 폭탄이 노리는 진짜 효과가 도시 외곽으로 빠지는 다리를 대피 주민들로 막히게 하고, 병원은 사람들로 넘쳐나며, 시민들이 일상생활로 복귀하길 거부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 효과는 기대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체르노빌 방사능 유출 사건에 따른 실제 피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 103개의 원자력발전소와 국립 무기연구소의 경비원들은 8년에 한번씩 레이저 표식 총으로 무장한 연방정부 요원의 공격을 받는다. 모의 습격훈련이다.

    이 모의 공격팀은 3명 이하의 특공요원으로 조직돼 있고, 공격에 동원되는 차량은 4륜구동 지프이며, 연구소나 발전소 내부에 단 1명의 공모자만 공격에 활용할 수 있다. 물론 이 공격팀의 공격은 사전에 통보된다. 핵발전소야말로 방사능 물질을 퍼뜨릴 수 있는 ‘최적의 지옥’이라 할 수 있다. 핵발전소의 방사능 물질은 냉각기로 통제된다. 이 냉각기가 테러리스트의 통제하에 들어갈 경우 원자로를 통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드리마일 아일랜드 발전소 사고의 경우 냉각기 가동이 중단됐고, 원자로 모형이 녹아내리면서 어마어마한 양의 방사능이 방출됐다. 그러나 방어벽 건물의 두터운 장벽이 방사능 유출을 막았고 사망자는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냉각기와 방어벽을 모두 공격하는 유일한 방법은 테러리스트가 대형 제트비행기를 몰고 요새 같은 핵발전소로 날아드는 것이다. 몇몇 전문가들은 제트엔진이 방어벽을 폭발시키기에 적합하며, 비행기 충돌로 냉각시스템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경우 발전소 인근 주민들이 대피하기도 전에 방사성 동위원소가 화산처럼 공중으로 치솟아 이에 노출된 사람들이 모두 오염된다. 주변 수마일 떨어진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평생 약물치료를 받아야 하며 암 발병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이런 공격은 뉴욕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하는 것처럼 쉽지는 않다. 원자로는 규모가 작아 목표물로 삼기 어렵다. 쉽게 눈에 띄는 냉각탑 근처의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발전소에 침투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수마일을 둘러싸고 지키는 경비대도 기동력있게 움직인다.

    하지만 9·11 테러는 방어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일부 의회 의원들은 핵발전소에 지대공 미사일을 설치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대다수 핵전문가들은 이 방안이 오히려 더 큰 재앙의 불행을 가져오리라고 본다.

    메릴랜드대 스티브 페터 교수는 “핵발전소에 누군가가 비행기를 몰고 돌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비행기 납치범들이 조종실로 못 들어가게 막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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