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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낫’과 ‘망치’ 버리고 제국의 부활 꿈꾼다

‘시장국가’로 거듭나는 러시아

  • 김기현 < 동아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 kimkihy@donga.com

‘낫’과 ‘망치’ 버리고 제국의 부활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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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국가로 인정받으면 뭐가 달라질까? 가장 큰 차이는 미국과 통상분쟁이 일어났을 경우 비시장국가는 더 큰 불이익을 당한다는 점이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예를 들어 미국으로 수출되는 생산품이 미국의 반(反)덤핑 적용을 받아 제재를 당할 경우 미국이 덤핑이나 관세 마진을 고려할 때 시장경제지위가 없으면 시장경제 지위가 있는 다른 나라의 가격과 비용을 기초로 마진을 정한다.

러시아는 그동안 미국이 러시아의 시장경제 지위 인정을 미루는 바람에 특히 금속, 핵연료, 비료, 티타늄 산업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연간 15억달러의 손실을 입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러시아가 시장경제 지위를 얻음으로써 러시아의 수출품이 미국에서 반덤핑 제소로 인하여 받는 불이익이 줄어들게 된 것이다.

게르만 그레프 러시아 경제통상부 장관은 러시아에 시장경제 지위가 부여돼 일부 러시아산 제품에 부과되던 반덤핑관세를 피할 수 있게 됐다며 기대를 나타냈다. 러시아는 이제서야 미국의 다른 주요 교역 상대국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상징성’이다. 영국 에섹스대(University of Essex) 김병연(金炳椽·경제학)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경제국가의 지위가 갖는 상징적 효과”라고 말한다. 국제사회로부터 러시아가 정상적인 시장경제국가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올해는 러시아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포기하고 시장경제로 가는 개혁을 시작한 지 10년이 된다. 1992년 1월부터 러시아는 가격자유화와 무역자유화 국영기업 사유화 등을 시작, 시장경제로 가는 험난한 장정에 올랐다. 그동안 러시아 국민들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난생 처음 경험하는 경쟁, 실업, 늘어난 부정부패, 사회주의식 사회복지 붕괴, 빈부격차 등을 경험했다. 10여 년 동안 국민총생산(GDP)과 산업생산이 줄어들었고 화폐개혁과 외환위기로 인한 채무지불연기(모라토리엄) 사태를 맞기도 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10년 만에 비로소 경제체제 변화를 위한 러시아의 노력이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왜 러시아는 미국으로부터 비시장국가 취급을 받아왔을까?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미국이 보기에 러시아 경제가 아직 완전한 시장경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올해 3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관련 청문회에서 러시아 측은 “이미 러시아 GDP의 86%를 민간기업이 창출하고 있으며 통화 태환성도 안정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측은 (특히 미국 재계에서는) “러시아의 부정부패와 독특한 사법제도는 공정한 경쟁의 규칙을 부인하는 국가들의 전형”이라고 반박했다.

러시아의 전신인 구 소련은 과거 냉전시대 미국으로부터 비시장국가가 아니라 아예 반(反)시장국가 취급을 당했다. 구 소련이 붕괴한 후에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구 소련 국가들은 여전히 ‘비시장국가’로 남아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냉전이 끝났지만 경제관계에는 사실상 냉전시대와 달라진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러시아 등은 오래 전부터 미국과 EU에 구 소련과의 차별성을 들며 시장국 지위 부여를 요청해왔다. 그러나 미국은 올해 3월에서야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에 독립국가연합(CIS) 국가 중 최초로 시장경제국 지위를 부여했다.

위대한 러시아 재건의 꿈

러시아가 시장경제로 가는 개혁의 길이 어려웠듯이 세계경제에 통합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는 여태껏 세계무역기구(WTO)에도 가입하지 못했다. 중국이 먼저 WTO 회원국이 되자 러시아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그런데 미국과 EU로부터 시장경제국으로 인정받았으니 WTO 가입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마이크 무어 WTO 사무총장은 EU의 결정이 있자마자 “내년 중순 러시아의 WTO 가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러시아의 WTO 가입이 실현되기까지는 여전히 많은 장애가 남아 있다. 그러나 그동안 세계 경제체제의 변방에 머물러 있던 러시아가 이제 세계경제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만은 확실하다.

푸틴 대통령은 크렘린궁과 워싱턴의 백악관을 잇는 전화를 통해 “우리는 러시아를 시장경제국가로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축하합니다”라는 부시 대통령의 말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표정한 그지만 아마도 마음속으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외쳤을지 모른다.

집권 초부터 꾸준히 추진해온 친(親)서방 실용주의 노선이 드디어 열매를 맺었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이 꿈꾸고 있는 ‘위대한 러시아 재건’의 첫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2000년 5월 푸틴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 서방은 긴장했다. 1999년 12월 갑작스럽게 사임한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뒤를 잇기 전까지 서방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정체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지만 악명 높은 소련 비밀경찰인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의 이 조그만 사내가 전세계를 다시 냉전시대의 동서 대결구도로 몰아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우려 때문이었다.

경제적으로는 어렵다지만 여전히 막강한 핵전력을 가진 군사대국 러시아 아닌가? 더구나 푸틴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지방정부의 권력을 중앙정부로 흡수하고 반대 언론을 탄압하는 등 권력집중화를 추진하면서 이러한 서방의 의구심은 더욱 커졌다. 다시 러시아에 독재정권이 등장해 서방을 위협하는 것은 아닐까?

지난해 미국에서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러시아와 미국 등 서방진영의 관계는 더욱 아슬아슬해졌다. 더구나 ‘힘에 의존한 외교’를 내건 강성의 부시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50여 명의 미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을 ‘스파이’라며 집단 추방했다.

러시아는 똑같은 수의 미국 외교관을 맞추방했다. 미국은 1972년 구 소련과 맺은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사일방어(MD)체제를 단독으로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세계는 이제 다시 신냉전시대로 돌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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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 동아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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