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호

운동하고 또 운동하라 철인은 만들어진다

트라이애슬론 도전하는 ‘철혈(鐵血) 노년’의 체험 제언

  • 김진수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04-09-07 15: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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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히 ‘철인 3종경기’로도 불리는 트라이애슬론(triathlon)은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운동경기’로 악명 높다. 수영, 사이클, 마라톤을 순간의 휴식도 없이 해냄으로써 인간 한계를 시험받는 이 극한의 스포츠에 실버세대 5명이 과감히 도전장을 던졌다. 보통 젊은이들을 훨씬 능가하는 체력을 자랑하는 이들 ‘철인’의 건강관리 비법을 알아보았다.
    ‘철인’들을 말하기 전에 먼저 트라이애슬론이란 종목을 잠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일반에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 복합경기는 간단히 말해 개인 참가자가 수영, 사이클, 마라톤을 순차적으로 하는 스포츠. 1974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고, 거리에 따라 스프린트코스, 올림픽코스, 장거리코스로 나뉜다.

    장거리코스 중 최장거리는 수영 3.8㎞, 사이클 180㎞, 마라톤 42.195㎞로 이뤄진 226㎞를 쉼없이 주파하는 킹코스. 말이 226km이지 서울-추풍령 간 거리와 맞먹는다. 이를 17시간내에 완주한 사람에겐 ‘철인(鐵人·Ironman)’이란 칭호가 붙지만, 제한시간을 넘기면 실격이다. 트라이애슬론이 곧잘 ‘철인 3종경기’로도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경기’란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전국트라이애슬론연합회 고영우(63) 회장은 “철인 3종경기라고 하면 킹코스만을 지칭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라고 강조한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올림픽코스라고도 불리는 로열코스는 수영 1.5㎞, 사이클 40㎞, 달리기 10㎞ 등 총 51.5km를 통상 3시간30분내 완주하도록 한 단축코스다.

    일본을 경유해 1987년 한국에 트라이애슬론이 도입될 당시 이 로열코스가 킹코스보다 먼저 소개됐는데, 이때 트라이애슬론보다 철인 3종경기란 명칭이 선호되면서 두 명칭이 혼용됐다. 때문에 킹코스와 로열코스를 둘다 뭉뚱그려 철인 3종경기로 부르는 ‘용어상 인플레이션’이 생겨났고, 이런 현상은 한국의 트라이애슬론 대중화를 어렵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고회장의 귀띔이다. 철인이란 호칭에 ‘거품’이 있어서도 안되지만, 그 호칭 자체가 트라이애슬론 입문의 문턱을 높이는 ‘진입장벽’이 돼서도 안된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어느 코스를 택하든 완주자의 체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만은 자명한 사실. 더욱이 더할 나위없이 강한 심폐기능과 초지구력을 요구하는 종목이다. 게다가 트라이애슬론 대회는 수온을 감안하는 탓에 유독 체력소모가 많은 6∼8월에 집중돼 있다.



    자연히 트라이애슬론의 ‘트’자도 모르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철인들은 ‘이역(異域)의 존재’나 다름없는 의문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철인들은 혹 자신만의 건강비법을 꼭꼭 감춰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 특별한 방법은 대체 어떻게 터득한 걸까.

    철인들의 저녁식사

    철인들에게도 ‘금강산은 식후경’이다. 6월10일 저녁 서울 신당동의 한 한식집. 고영우 회장을 비롯, 6월16일 강원도 원주에서 열리는 제4회 강원도지사배 코리아트라이애슬론대회 참가를 앞둔 김홍규(75)·윤휘웅(65)·김의홍(63)·남도희(62)씨 등 철인 5명이 단합대회를 가졌다. 마침 2002 한·일 월드컵 한국-미국전이 끝난 직후여서 식당내엔 온통 이야기꽃이 만개했다. 철인들의 화제 역시 축구.

    화제의 중심은 물론 승패를 가르지 못한 1대1의 스코어. 그럼에도 대화 내내 체력문제를 거론하는 점에서 철인들다운 면모가 내비쳤다고나 할까.

    하지만 생김새로만 보면, 이들은 여느 노인들과 다를 바 없다. 지극히 평범해서다. ‘철인들의 식사’ 또한 일반인들의 그것과 하등 다를 게 없었다. 메뉴는 생갈비에 냉면. 단합을 위한 자리인 만큼 소주도 두어 병 곁들였지만, ‘파이팅’을 외치며 건배한 잔을 빼곤 하나같이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것이 굳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었다.

    국내에선 해마다 7∼8차례 트라이애슬론 대회가 열린다. 동호인은 1500여명. 이 가운데 킹코스 완주자는 500명 미만이고, 로열코스 완주자는 1000여 명쯤 된다.

    전국에 산재한 트라이애슬론 지역클럽은 45개. 5명의 철인 중 남도희씨만 빼곤 모두 40여 명의 회원을 둔 서울중앙클럽 소속이다. 남씨는 서울강동고덕클럽 소속. 같은 클럽 회원들끼리는 한 달에 한 번 월례회에서 얼굴을 맞댄다. 그러나 운동은 대개 혼자서 한다.

    원주대회에 600여 명이 참가한 것을 보면 국내 트라이애슬론 인구도 적지는 않다고 할 수 있지만, 노령인구가 많은 일본이나 호주, 미국, 영국, 캐나다 등 트라이애슬론 강국과 달리 60대 이상 동호인은 15명 가량에 불과하다. 현재로선 김홍규씨가 최고령이다. 80대 이상 동호인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여기서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보자. 건강은 ‘인생의 효율’과 직결된다. 철인들의 체력은 과연 타고난 것일까. 아무래도 미심쩍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반인들이 하나만 해도 벅찰 운동을 세 가지씩이나, 그것도 20~30대도 아닌 60~70대가 너끈히 해내는 이 예사롭지 않은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더욱이 국내 트라이애슬론 동호인의 평균연령대는 40대에 그치는 형편이다.

    “건강비법? 그런 게 어딨어?” 이날의 좌장격인 김홍규씨는 “턱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고영우 회장 역시 “철인을 철인으로만 보는 고정관념이 오히려 일반인들의 ‘철인 등극’을 더 어렵게 한다”며 “매스컴이 트라이애슬론에 대한 신비감을 조장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꼬집었다.

    그렇다 해도 철인들의 트라이애슬론 입문 사연을 엿보면 아쉬운 대로 비법의 ‘깃털’ 정도나마 더듬어볼 순 있을 터. 나이보다 젊게 살고 싶은 바람이 누구엔들 없을까. 그러나 신체의 젊음을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쉽잖은 일. 4시간동안 꼬박 철인들의 입을 지켜봤다.

    트라이애슬론을 통해 누구보다도 새로운 인생을 맛본 사람은 남도희씨. 그와 트라이애슬론과의 만남엔 극적인 면이 있다.

    시화공단에서 ‘화전사’란 전자업체를 경영하던 그에게 ‘불청객’이 찾아온 것은 1997년 3월. 위암이었다. 수술로 위의 절반을 잘라냈다. 마음이 편치 않아진 그는 35년간 운영해온 업체를 임대하고, 일을 손에서 놓았다. 대신 수술받은 지 18일 만에 수영대회에 출전했다. 평소 꾸준히 수영을 해온 남씨에겐 무엇보다 좀이 쑤시는 게 고역이었다. 결과는 핀수영 부문 우승. 녹슬지 않은 수영실력에 고무된 그는 내친김에 트라이애슬론에 도전장을 냈다.

    “체력 한번 제대로 점검해보고 싶었어요. 수영은 워낙 잘하니 싫증났고….” 남씨는 40~50대에 수영 마스터즈대회의 국내기록 대부분을 경신했을 정도로 ‘수영의 달인.’ ‘타잔’이란 별명까지 붙을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도 트라이애슬론은 난공불락이었다. 우선 마라톤과 사이클에 자신이 없었다. 1986년 태국여행에서 축구를 하다 오른쪽 다리 인대를 다친 후유증으로 제대로 달릴 수 없었기 때문. 그래도 뛰는 거리를 매일 두 배씩 늘리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한 끝에 결국 로열코스를 완주했다.

    남씨가 수영을 배우게 된 사연 또한 다소 엉뚱하다. 그는 서울 반포아파트에 살던 32세때 척추를 다쳤다. 아파트 현관문이 고장나 문이 열리지 않자 그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발코니에서 섬유 원단을 풀어 이를 잡고 3층에서 내려가다 떨어져 사고를 당한 것. 고교시절 배구선수로 활동할 만큼 체력에 자신 있었던 그는 실의에 빠졌고, 사고 이후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이 수영이란 사실을 곧 깨닫고 수영에 입문했다.

    요즘 남씨는 영락없이 50대 초반으로 보인다. 과거의 ‘타잔 시대’엔 못미치지만, 지금도 176cm, 75kg의 당당한 체격이다. 매일 2~3시간씩 운동하고 나면 체중이 1.5kg씩 빠졌다가 식사를 하면 다시 그만큼 늘어날 뿐이다.

    위암과 운동 사이엔 이렇다 할 상관관계가 없다지만, 남씨는 운동이 암 치료에 일정부분 기여했을 것이라 믿는다. 그는 이미 암이 완치돼 의학적 기준에서 통상 수술환자들을 대상으로 따지는 ‘5년 생존율’의 체크대상에서도 벗어났다. 그는 오는 8월25일 속초에서 열리는 2002 코리아 아이언맨대회에서 킹코스에 첫 도전할 계획이다.

    남씨가 보약을 먹은 적은 단 한번. 위암수술을 받고 난 뒤 떨어진 기력을 되찾으려 난생 처음 복용한 것이 전부다. ‘철인의 길’을 가는 그가 믿는 것은 오로지 지속적인 운동뿐. 그는 매일 운동량을 일지에 기록한다.

    남씨가 ‘신체 개혁’을 도모하려 운동을 시작했다면, 김홍규씨는 건강을 타고난 경우다. 자동차매매업체 ㈜신진자동차의 회장인 김씨는 그야말로 ‘평생 현역.’ 돋보기가 필요없는 시력에다 체력까지 받쳐주니 은퇴할 이유가 없다.

    165cm, 62kg의 작은 체구. 그러나 김씨는 어릴 때부터 운동에 일가견이 있었다. 함남 단천 출신인 그는 6·25때 부산으로 옮겨와 32세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당시 그를 매료시킨 운동은 권투. 그는 미군부대 클럽을 출입하며 그곳에서 일주일에 두 번 미군들과 권투시합을 가졌다. 관중들이 들어차 클럽의 매상이 오르면 김씨는 제법 거금을 만질 수 있었다.

    그후 서울로 옮겨와 건자재업과 버스운송업에 뛰어든 그는 운동종목을 갑자기 축구로 바꿨다.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사고 뉴스를 접하고 믿을 건 몸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즐기던 술·담배를 완전히 끊고 조기축구회에 가입해 축구에만 전념했다. 그의 조기축구 경력은 30년이 넘는다.

    “평생 아파본 적이 없어. 깡패들과 싸우다 손가락 한번 부러뜨린 것 외엔. 젊을 때나 지금이나 체중도 그대로고, 수십년 금주했더니 이젠 술맛도 모르겠어.”

    그런 김씨가 트라이애슬론을 시작한 나이가 66세. 나이를 초월하는 그의 체력을 눈여겨본 이덕규씨가 트라이애슬론 입문을 권유했다. 이씨는 당시 트라이애슬론 세계대회 우승자였다. 그후 김씨는 1997년 필리핀대회를 시작으로 국내외에서 열리는 대회마다 빠짐없이 참가해 마침내 로열코스를 완주했다.

    “내가 완주하고 나서도 20∼30대 참가자들이 200∼300여 명씩 줄줄이 뒤따라 들어와.” 김씨는 대회때마다 다른 참가자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는다.

    김씨에게 독특한 습관 한 가지가 있다면 아침식사. 그는 30여 년 전부터 매일 아침 참기름을 섞은 날계란 2개와 콩 등 7가지 잡곡으로 만든 미싯가루를 밥대신 먹는다. 점심때는 외식, 저녁엔 밥을 먹되 과일을 빠뜨리지 않는다. 또 홍삼 달인 물을 매일 두 컵씩 마신다.

    “트라이애슬론을 하다보면 비슷한 연령끼리 정보를 교환하며 어울리게 되는데 아쉽게도 70대는 거의 없어. 별수 없이 나 같은 ‘경로당’이 60대와 어울리려면 고기도 사주며 스폰서로 나서야지. 안 그러면 ‘애들’이 안 놀아줘.”

    농담 한마디에도 여유가 묻어나는 김씨의 목표는 80대가 돼서라도 그 연령대의 트라이애슬론 신기록을 내는 것이다. 그도 남씨처럼 8월25일 킹코스에 도전한다. 김씨는 단합대회 하루전인 6월9일에도 서울-대전 간 거리에 맞먹는 150km의 사이클 훈련을 마쳤다.

    김의홍씨의 트라이애슬론 경력은 3년밖에 안된다. 그러나 그는 이미 킹코스를 완주했다. 입문전 만 해도 그는 트라이애슬론이 뭔지도 몰랐다. 수영도 트라이애슬론을 하기 위해 배웠다.

    60세때인 지난 1999년 우연히 TV에서 트라이애슬론 경기장면을 보고 막연히 멋있다고 느끼던 차에 김씨는 때마침 하와이대회 완주자인 임석환씨의 입문 권유를 받았다. 그에게서 사이클을 빌려 중랑천변에서 훈련을 시작한 김씨는 불과 3개월 만에 첫 참가한 로열코스 경기에서 2등으로 입상했다.

    “겉보기엔 무척 힘들 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니 그렇게 고통스럽진 않았어요. 오히려 반복훈련을 거듭하는 동안 차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죠.”

    김씨의 이런 빠른 운동성과는 15년을 계속해온 달리기에 힘입은 바 컸다. 집 인근 망우리 공원묘지 순환도로를 취미삼아 매일 5km씩 달렸던 것. 그에겐 아들이 셋이지만 아직까지 아버지의 체력을 능가하지 못한다.

    사실 김씨는 학창시절 건강이 과히 좋은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버스 손잡이를 잡고 있다가 급브레이크의 충격으로 어깨뼈가 빠질 정도였다. 자연히 운동에 신경을 쏟기 시작했고, 평행봉을 주로 했다.

    “결혼 후엔 건강식품 판매업을 하는 아내 덕분에 개소주도 많이 먹었어요. 힘이 나니까 등산도 하고 달리기도 하게 된 거죠. 스스로도 몰랐던 숨겨진 운동감각까지 발견하게 됐고요.”

    김씨의 다음 목표는 100km 거리의 울트라마라톤을 주파하는 것이다. 트라이애슬론과는 다른 울트라마라톤의 또다른 극치감을 맛보기 위해서다.

    부산 출신인 윤휘웅씨는 등산으로 체력을 다졌다. 그는 지난 2월 서울로 이사하기 전까지 36년간 제주도에 살면서 개인사업을 했다. 어릴 적부터 유니폼(도복)을 좋아한 그는 고교 졸업후 당수를 배웠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등산에 빠졌다. 한라산 어리목의 ‘어승생 산장’ 관리인이 될 정도였다.

    등산 가이드를 해가며 한라산 정상을 밟은 것만도 1000회 이상. 94년 처음으로 설악산 국제산악마라톤대회에 제주도 대표로 나가 특유의 빠른 걸음으로 달리는 사람들보다 더 빨리 결승선에 들어와 재미를 붙인 그는 산악마라톤 16회 출전의 경험을 살려 트라이애슬론에 입문했다. 61세때인 1997년 5월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으니, 당시 그는 시쳇말로 ‘맥주병’이었다.

    “25m 평영조차 힘에 겨울 정도였어요. 그래서 수영을 유독 열심히 해서 1997년 8월 로열코스 경기에 참가해 격포 앞바다 1.5km를 평영만으로 헤엄쳤는데 맨꼴찌였습니다. 46분 걸렸죠. 이 악물고 사이클과 마라톤으로 분발했지만, 결국 제한시간 3시간30분 내에 들진 못했습니다.”

    실격당한 것이 되레 윤씨를 자극했다. 결국 그는 226㎞의 킹코스까지 완주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 6월10일 제주 중문단지에서 열린 대회에서였다. 그로부터 꼭 1년 뒤 열린 이날의 ‘철인들의 단합대회’가 그로선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다.

    윤씨도 아파본 기억이 거의 없다. 초등학교 시절이던 1947년 장티푸스에 걸려 6개월간 앓은 게 전부다. 잔병치레도 안했다. 오죽하면 유일하게 맞아본 주사가 예방접종 주사였을까.

    그는 식성대로 맵고 짠 음식도 즐긴다. 제주도에서 살 때는 낮에 운동을 하고도 거의 매일 저녁 소주 한 병씩을 비운 애주가였다. 그런 그도 요즘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아무래도 운동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트라이애슬론 동호인들은 반(半) 의학박사, 반 체육학 박사, 반 영양학 박사가 될 수밖에 없어요. 오로지 운동이 생활의 중심이니까.”

    고영우 회장은 5명의 철인 가운데서도 ‘철인1호’로 불릴 만하다. 그의 트라이애슬론 경력은 올해로 12년. 5명 중 가장 오래 됐다. 올해 2월 창립한 전국트라이애슬론연합회 초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서울 신당2동에서 산부인과를 개업하고 있는 의학박사. 연합회 사무실도 그의 병원 한켠에 있다.

    고회장은 젊을 때부터 작심하고 운동한 케이스. 서울대 의대 재학시절 태권도를 한 그는 군의관으로 입대하고도 태권도 교관 생활을 했을 정도였다. 현재 공인3단이다.

    1975년 개업한 이후 몇 년간 골프를 하기도 했지만, 별 재미를 못 느껴 헬스로 전환했다. 그러다 1991년 지인(知人)들의 권유로 트라이애슬론에 발을 들여놓았다. 첫 참가한 대회에서 고회장은 50대 참가자 중 2등을 했다. 이후 킹코스까지 완주한 그는 결국 트라이애슬론 보급에 나서게 됐다.

    “스포츠에 열중하면 생활이 일과 운동으로만 단순화됩니다. 이것이 장기화되면 또다른 자극이 필요한데, 이때 새로운 운동에 도전하는 거죠.”

    고회장은 1995년 마라톤도 시작해 지금까지 풀코스만 37번 뛰었고, 지난해엔 100km 울트라마라톤까지 완주했다. ‘평생 풀코스 100번 완주’를 목표로 한 동호회 ‘100회 마라톤클럽’을 만들기도 했다. 고회장의 풀코스 기록은 3시간24분.

    그는 매일 새벽 3시30분에 일어난다. 새벽 4시부터 오전 8시까지 운동하고 병원으로 출근한다. 예전엔 운동 직후 한 시간씩 수면을 취했지만, 요즘은 자지 않아도 가뿐하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트라이애슬론은 선수와 동호인의 구분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유일한 종목입니다. 완주자들은 동호인인 동시에 모두 대한트라이애슬론경기연맹에 등록된 선수들이죠.”

    여러가지 운동을 마스터한 고회장이지만, 정작 자신은 사이클에 약점이 있다고 여긴다. 6월9일 그는 205km의 사이클 훈련을 했다. 안장에 앉아있던 시간만 7시간. 그의 이날 훈련을 몰래 엿본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남도희씨다. 병원 일과 운동을 쉴새없이 해대는 고회장의 비법이 과연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인’ 남씨는 ‘철인1호’ 고회장의 비법을 결코 찾지 못했다.

    ‘나이가 멎어버린’ 5명의 철인에게 숨은 비법 따위는 없다는 게 이쯤에서 분명해졌다. 5명 모두 체질이 다르긴 하지만, 특별히 꺼리는 음식도 없었다. 경기 전후 먹는 보양식도 따로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명백한 공통점은 이들 모두 젊은 시절부터 자신에게 딱 맞는 한 가지 이상의 운동을 택해 수십년간 꾸준히 해왔다는 것. 운동이 생활의 일부로 일찌감치 뿌리내린 것이다. 노년에도 불구하고 20~30대를 능가하는 운동능력을 갖게 된 건 그 노력의 결과란 것을 이들 스스로 부정하지 않는다.

    “20대에 운동 한 가지는 꼭 익혀두어야 해. 그 운동을 30대까지 하다가 트라이애슬론에 구미가 당기면 그때 종목을 바꾸면 돼. 특히 수영이나 마라톤을 자신감을 가질 정도로 마스터해두면 금상첨화지.”(윤휘웅)

    운동을 시작한 목표가 분명했고, 금주·금연 등으로 철두철미하게 자기관리를 해온 점도 ‘비법 아닌 비법’이다. 이들에겐 비만이 찾아올 여지조차 없었다. 때문에 이들은 “철인의 필요조건은 뱃살부터 빼는 것”이라 입을 모은다. “의지만 강하면 그 어떤 장벽의 극복도 가능하다”며 한술 더 뜬다.

    실제 트라이애슬론 동호인층이 두터운 일본의 경우, 한국과 달리 장애인들도 경기에 참가한다. 한쪽 다리를 잃은 장애인도 있다. 수영할 땐 의족을 벗고, 사이클과 마라톤을 할 때는 의족을 착용하는 것. 그래도 신체에 아무 지장없는 일반 참가자들을 능가하는 기록을 내는 ‘철인 중 철인’까지 등장한다.

    트라이애슬론엔 ‘중독성’이 있다는 게 철인들의 공통된 견해다. 일단 한번이라도 완주하면 성취감과 자신감을 느끼게 되고, 그것이 재훈련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더 늘어난 목표의 달성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철인들의 주된 관심은 오직 트라이애슬론과 자신의 운동기록에 관한 것들이다.

    “(트라이애슬론) 하다 중단하는 사람도 더러 있긴 하지. 부상이나 질병, 결혼이나 직장문제 때문에…. 하지만 제대로 한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질 못해.”(윤휘웅)

    “한번 완주해서 성취감을 맛보고 그만두는 사람도 물론 봤어. 하지만 대개는 경기를 마친 후 다음 대회를 기다리며 훈련에 집착하지. 1분이라도 더 기록을 단축해야지 하는 욕심이 생기는 거야.”(남도희)

    “재산이나 지식은 축적할 수 있지만, 운동효과는 축적이 안돼. 사흘만 운동 안하면 근육에 입력된 ‘감(感)’이 사라져. 자연히 매일 2~3시간씩 운동에 매달릴 수밖에 없지.”(고영우)

    그러나 트라이애슬론이 워낙 격한 운동이다보니 참가자들에겐 종종 한계상황도 찾아온다. “나도 한번 겪었어. 로열코스 경기엔 드문데, 완전히 탈진했지. 경기 도중 갑자기 의식이 몽롱해지며 죽음의 공포가 느껴지는 거야. 탈진을 피하려면 갈증이나 배고픔을 느끼기 전에 미리 물과 음식을 섭취해둬야 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았지.”(남도희)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경구와 일맥상통하는 말인 셈이다.

    어쨌든 일단 이런 상황들을 극복하고 나면 그때부터 물리적 나이의 장벽은 깨진다. 철인들의 고민(?)도 실상 이 장벽이 깨지면서부터 시작된다. 고영우 회장과 윤휘웅씨는 “운동할 땐 못 느끼는데 거울 보면 늙었다는 게 실감난다”고 털어놓았다. 신체적 젊음이 정신적 젊음으로 이어지고 얼굴과 몸, 얼굴과 마음이 불협화음(?)을 빚는 데서 오는 행복한 고민이랄까.

    연령과 젊음이 반드시 반비례하지는 않음을 입증하는 사례는 ‘토종 철인’외에도 많다. 90세때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 활강스키 레이스대회에서 전장 12㎞ 코스를 완주한 고바야시 히데미(94), 수십차례 세계기록과 일본기록을 경신한 현역 여자수영 선수 하무로 미치코(82), 지난해 국제트라이애슬론대회에 최고령자로 참가해 8시간45분의 기록을 세우며 세번째 완주에 성공한 전직 경찰관 사토 쓰카사(74) 등 ‘노인대국’ 일본에만 해도 인간한계에 거침없이 도전하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이들이 적잖다. GNP 1만달러 시대엔 마라톤 붐이, 2만달러 시대가 도래하면 트라이애슬론 붐이 생겨난다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든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면 ‘철인 등극’이 가능한 걸까.

    “별다른 신체질환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60대 이상 노인들의 킹코스 도전엔 반대하고 싶다.” 고영우 회장이 의사로서 밝히는 개인적 견해다. ‘철인의 길’엔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경기 도중 사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난 4월 일본에서 킹코스 경기에 참가한 2명이 수영을 하다 사망했고, 1995년 대만대회에서도 역시 2명이 수영 도중 숨졌다. 경기때 사이클의 최대속력이 시속 50∼60km에 이르므로 가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트라이애슬론이 수영-사이클-마라톤의 순서대로 구성된 이유도 마라톤을 먼저 할 경우 심장에 부담을 줄 것을 우려해서다.

    그러나 고회장은 “청년기부터 꾸준한 운동으로 일정 체중을 유지하며 신체를 단련해온 사람, 특히 스스로 건강하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라면 로열코스의 경우 비교적 어렵지 않게 완주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트라이애슬론은 마라톤보다 지루하지 않은데다 수영을 할 줄 안다면 적절히 페이스를 조절해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철인이 되느냐 마느냐의 관건은 개인의 의지에 달린 셈이다.

    일각에선 트라이애슬론을 두고 ‘인류 최후의 스포츠’란 표현을 쓴다. 하나의 복합경기를 이루는 세 가지 운동이 각각 달리 근육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사이클은 단기간에 폭발적인 에너지를 쏟는 데 쓰이는 근육인 속근을 주로 이용한다. 반면 달리기는 오랜 시간 장기적으로 에너지를 뿜는 데 쓰이는 근육인 지근을 쓴다. 수영은 전신운동이다. 이 세 가지 운동은 모두 유산소운동으로 지구력과 관련이 깊다. 게다가 장비를 쓰는 사이클만 빼면 맨몸 그대로 할 수 있고, 경기장을 일부러 만들 필요도 없으니 자연친화적이기까지 하다.” 철인들의 트라이애슬론 예찬론이다.

    철인들에겐 트라이애슬론 경기가 TV로 중계되지 않는 것이 불만이다. 트라이애슬론 저변 확대를 위해 국제트라이애슬론연맹(ITU)이 대회 개최국에 중계가 가능한 경기장소를 잡으라고 독려하지만, 비인기종목이다보니 좀체 스폰서가 나서지 않는다. 하기야 몇시간씩 중계방송을 보고 있을 지구력을 가진 시청자가 많을 성 싶지는 않다.

    “이러니 노인네들이 조금 별나다 싶은 운동을 하면 언론이 자꾸만 비법 어쩌구 저쩌구 하며 들먹이는 거야. 트라이애슬론은 결코 ‘베일속의 운동’이 아닌데….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스포츠가 최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잖아. 땀과 근육은 가만 놔두고 건강비법을 찾는 것부터가 비정상적이지.”

    취재가 길어지자 잠시 꾸벅 졸던 고회장은 몇 마디 따가운 지적을 늘어놓고는 “인터뷰 응하는 게 킹코스 완주보다 배는 힘들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비가 많이 내려서 내일 사이클 훈련은 어려울 것 같은데….” 귀가길에 나선 ‘철인’들이 작별인사삼아 던진 한마디도 행여 다음날 운동을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었다.

    “언제까지 트라이애슬론을 계속할 것인가”란 우문(愚問)에 대해 철인들의 현답(賢答)은 한결같았다. “아무도 모른다.” 대회에 나갈 수 없는 날이 ‘운동권에서 사라질 날’이란 얘기다.

    소비만 하면서 조용히 은거하는 ‘구노인’의 시대는 가고, 마침내 ‘울트라 노인’들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걸까. 6월16일 ‘울트라 노인’들은 대회 전적을 알려왔다. 원주대회는 로열코스 경기로만 이뤄졌다. 5명 모두 가뿐히 완주했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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