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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일기

사랑, 그 지독하면서도 정상적인 혼란

  • 함인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사랑, 그 지독하면서도 정상적인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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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분명치는 않지만 책을 읽을 때면 글쓴이(들)와 대화하는 습관이 붙기 시작했다. 대화란 별 게 아니다. 그저 책 여백에 다양한 부호를 그려넣는 것이다. 의견을 같이하는 대목에선 =를, 절묘한 표현이나 탁월한 분석 앞에선 !를, 이해하기 어려운 논의나 한 번 더 생각해야 할 주장엔 ?를, 동의하기 어려운 함의를 품고 있는 경우 ≠표를 그린다. 이 습관은 의외로 책읽기의 재미를 쏠쏠히 해주는 맛이 있다. 감동과 공감의 파장이 클수록 느낌표(!)와 동의표(=)의 숫자가 늘고, 실망과 좌절이 커질 때면 물음표(?)와 부동의표(≠)가 더해지곤 하는데, 혹 한 권의 책을 두세 번 읽게 되는 경우엔 물음표와 느낌표가 서로 뒤바뀌기도 한다.

최근 순간순간 무릎을 치면서 !와 ?, =와 ≠를 열심히 그려가며 읽은 책이 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지극히 정상적인 혼란’(새물결)이 그것이다. 이 책은 ‘위험사회(The Risk Society)’의 저자로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과 그의 부인 엘리자베트 벡 게른샤임 부부의 합작품이다.

이 책의 주장인즉, 사랑이 지독하면서도 지극히 정상적인 혼란으로 화한 원인은 불안정성·불가해성을 속성으로 하는 사랑과 안정성·예측가능성을 미덕으로 하는 가족을 ‘낭만적 결혼’을 통해 하나로 결합하려 한 근대적 결혼 각본에 연유한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는 돈주머니(purse) 때문에 결혼했지만 오늘 우리는 가슴(heart) 때문에 결혼한다.” 그 결과 가족은 안락한 피란처로서의 이상을 포기하고 대신 사랑을 담보해줄 ‘제2, 제3의 선택’을 찾아 끝없이 표류하게 된 바, 현대의 ‘위험사회적’ 요소를 배가시키는 장본인이 됐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이 책을 손에 든 시점이 40대 초반이란 사실이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었다. 생각해보니, 무수히 많은 선택지 앞에서 내 마음 나도 모르는 채 표류하고 갈등했던 20대를 지나 30대로 접어들었을 땐 마음이 꽤 편안했던 것 같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든 막연한 생의 동경이었든, 어느 정도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구체적으로 일도 주어지면서 삶의 가지들이 정리된 상태가 편안히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다 40대가 되고보니 이젠 ‘포기’라는 개념조차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좋으리란 생각이 들면서 30대보다 더욱 편안한 마음이 들리라 했던 안도감도 잠시, 40대 아줌마의 특권이라는 ‘해방의 자유’는 그다지 쉽게 찾아와 주지 않았다.

사랑의 혼란은 사회적 차원의 쟁점



이유를 알 수 없는 이런 절박감에서 집어든 책이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이 말년에 쓴 소설 ‘Love’다. 소설의 첫 대목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사랑에 빠지고야 말았다. 기어이 다시…결코 원치 않았건만….” 70대 소설가의 사랑 이야기가 달콤하겠는가마는 그토록 씁쓸하고 시릴 줄이야….

이 소설은 60대 중반 여성과 30대 초반 남자의 사랑 이야기다. 30대 남자를 사랑하게 된 60대 여성은 사랑의 환희와 고뇌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한다. 갈색 머리를 바람에 흩날리며 앞으로 걸어오는 남자의 눈부시도록 환한 미소 앞에서, 주인공 여자는 저 남자를 사랑하는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그를 떠나보내는 끝마무리는 예상한 대로였고, 나의 존재를 그를 향해 던졌기에, 나를 포기할 순 있어도 그를 포기하는 건 불가능했기에, 그를 영원히 사랑할 것이기에…. 떠나보내는 이유 또한 낯설지 않았다.

사랑의 미묘한 떨림, 통제불능으로 인한 좌절, 포기할 수 없는 환상의 욕구, 이 모든 것을 소설은 무한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함축적 상징 속에 절묘하게 담아내건만, 이 주제가 사회과학자의 시각에 포착되는 순간 사랑의 아우라가 자리하던 곳엔 권력갈등이란 구조가 등장하고, 다층적 의미를 가지고 다가왔던 사랑의 의미가 역사적 맥락 속에 담기면서 건조한 사건으로 변화하고 만다.

만일 낭만적 사랑의 환상을 포기할 수 없던 20대에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지극히 정상적인 혼란’을 읽었더라면 책의 내용 상당 부분을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과 삶의 조화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님을 반추하게 된 40대의 길목에 서고보니, 이 책에서 사랑을 지독한 혼란으로 경험하는 자체가 개인 차원의 소소한 고민거리가 아니라 충분히 이유있는 사회적 차원의 쟁점임을 발견하게 되면서 오히려 많은 위로를 받았다.

역사적으로 사랑과 결혼은 별개의 길을 걸어왔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 역사적·사회적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돼 왔음을 기억하는 것은 사랑의 이율배반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로 낭만적 사랑을 전제로 한 결혼을 이상으로 삼는 우리의 시각 자체가 근대성의 산물이요, 역사적으론 이단에 해당되는데 이는 흥미로운 발견이다.

사랑과 결혼을 하나로 결합시키려는 시도는 서구에서 1700∼1800년대를 거치며 서서히 진행됐다. 오늘날 결혼의 전제조건으로 부상한 낭만적 사랑 이데올로기의 대부분은 이른바 ‘궁정사랑’으로부터 파생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궁정사랑이란 12세기경 프랑스 남부의 음유시인들을 칭하는 트루버도(troubadours)에 의해 정교히 다듬어진 사랑관계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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