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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색깔 있는 문화 이야기 (5)

‘몸’의 찬미자 미켈란젤로, 신에 귀의하다

  • 박홍규 < 영남대 법대 교수 > sky3203@donga.com

‘몸’의 찬미자 미켈란젤로, 신에 귀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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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꽤 소개되고 있으나 내가 아는 한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 독자들에게 가장 널리 소개된 르네상스인은 미켈란젤로다. 나도 어린 시절부터 그의 전기를 읽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로맹 롤랑의 전기(1905), 어빙 스턴이 쓴 소설 스타일의 전기(1961)도 찾아 읽었다. 우리말로 번역된 것 외에도 많은 외국어본 전기 및 연구물을 읽었는데 역시 압권은 위의 두 책이다.

로맹 롤랑의 저작은 그가 쓴 베토벤·밀레·톨스토이·간디 등의 전기와 마찬가지로 대단히 낭만적이다. 미켈란젤로를 비극적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어빙 스턴의 소설을 근거로 제작된 영화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아는 그의 참모습은 평범하고 속물적인 인간이다. 미켈란젤로뿐 아니라 르네상스인이라 부를 수 있는 당대의 사람들이 대부분 그랬다. 나는 졸저 ‘내 친구 빈센트’에서도 종래의 비극적 천재로서의 반 고흐를 해체하기 위해 노력한 바 있다. 스턴 등이 쓴 미친 천재로서의 반 고흐 상을 해체하고자 한 것이다.

스턴이 반 고흐와 미켈란젤로를 함께 쓴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천재나 영웅을 평범한 인간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지극히 비대중적인 일이어서 인기가 없다. 대중은 영웅이나 천재, 그것도 비극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자신들과 같이 평범하고 속물적이라면 굳이 알아야 할 흥미를 느끼지 못할 테니 말이다.

알베르티나 레오나르도처럼 미켈란젤로도 겹눈의 인간이었다. 그는 조각·회화·건축은 물론 시작에도 탁월했다. 미켈란젤로는 특히 알베르티나 레오나르도와는 달리 민주주의자이자 공화주의자로서 정치에도 참여했다. 귀족이나 대지주가 아닌 시민의 아들로 태어나 공화국의 요직을 맡았고, 공화국을 상징하는 ‘다비드’상도 만들었다. 어쩔 수 없는 시대 상황에 따라 교황의 명령으로 수많은 작품을 제작했으나, 지엄한 가톨릭 본전 벽과 천장을 온통 누드로채워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여인과 함께 남자를 사랑했다.



이처럼 미켈란젤로는 예술과 삶 사이의 모든 경계를 부서뜨렸다. 그는 긴장과 역긴장, 그리고 그 종합의 변증법으로 살았다. 속물과 해탈 사이를 왔다갔다했다. 재물을 탐하고 명성을 구했으나, 그것에 끝없이 번뇌했으며, 마침내 그 모든 것을 포기했다. 알베르티나 레오나르도와 달리 미켈란젤로는 특히 종교적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신이란 곧 인간이었고, 인간의 몸이었다. 그래서 그가 만든 베드로성당까지 고스란히 인간의 몸을 닮아 있다. 추상적인 비례가 아니라 인간 자체가 서있는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말했다. 인간의 몸을 모르면 건축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고. 그 말은 건축뿐 아니라 예술 전반에 해당된다.

베드로성당은 이름 자체가 인간이다. 4세기,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가 순교한 곳에 세워진 성당이다. 베드로란 이름에는 돌이라는 뜻도 있어(따라서 우리 식으로는 ‘돌쇠’가 될까) 성당의 초석으로 여겨졌고, 그는 최초의 교황으로 추앙됐다. 교황이란 ‘가르치는 황제’라는 뜻인데, 여기엔 아마 예수를 잇는다는 뜻도 숨어있으리라.

베드로성당 옆 바티칸 미술관 1층 구석 시스티나예배당에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천장화 ‘천지창조’가 있다. 2층에는 라파엘의 ‘아테네 학당’과 ‘성체의 논의’, 이어 프라 안젤리코의 예배당이 이어진다. 그중 압권은 역시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다.

레오나르도의 ‘모나리자’ 같은 ‘작은 세계’를 보다 ‘최후의 심판’이나 ‘천지창조’를 보면, 그 규모도 놀랍지만 미켈란젤로가 그린 장대한 몸집의 인간들이 그득한 세상에 더욱 놀라게 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미켈란젤로의 거인은 미스터 유니버스류의 근육질이 아니다. 그는 모든 인간을 일정한 몸집을 갖는 해부학적 대상의 나체로 그렸다. 그의 그림에서 마른 사람이 없고, 모두 보기 좋을 정도로 살이 붙어있다. 따라서 선인이든 악인이든, 성자든 속인이든 모두 비슷한 몸집의 살아있는 인간들로 표현했다.

라파엘에서 미켈란젤로로

인간의 몸을 한 집인 성당 속에 있는 ‘인간들의 세계’. 그리고 그가 만든 무수한 인간의 조각상들. 미켈란젤로는 바로 인간의 예술가다. 그에게는 오직 인간만이 문제였다. 당연히 그들의 정신과 삶, 그러니까 종교와 사회가 문제시된다. 이 점이 그가 비교적 비종교적, 비사회적이었던 알베르티나 레오나르도와 다른 점이다.

이는 미켈란젤로가 산 시대가 알베르티나 레오나르도의 그것과는 달리 위기의 시대였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때는 바로 마키아벨리의 시대였다. 마키아벨리가 그 위기를 정치적으로 극복하려 했음에 비해 미켈란젤로는 종교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그의 이러한 고뇌는 에라스무스, 그리고 모어의 유토피아로 이어진다.

어빙 스턴 작 ‘미켈란젤로’의 우리말 역자는 예술창조에 철저했던 미켈란젤로의 생애가 “물질만능의, 갈 바 모르는 현대인들에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삶의 가치를 다시 일깨워주며, 인간이 추구해야 할 윤리관과 직업관을 새롭게 제시한다”고 했다. 이는 현대인이 자기 직업에만 충실하면 만사가 해결되고 갈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인가? 이렇게 스턴의 책마저 시오노 나나미 류의 처세술로 오해되는 우리의 천박한 지적 풍토는 처량하기 짝이 없다. 스턴이 그런 내용의 책을 쓰지 않았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한편 로맹 롤랑은 미켈란젤로를 햄릿처럼 묘사했다. 이에 대해 로로로는 자신의 평전에서, 롤랑이 미켈란젤로가 남긴 편지 한 통을 잘못 읽은 탓이라며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묘사라 폄하하고 있다. 미켈란젤로가 남긴 편지가 약 500통에 이르니 한 통 정도 잘못 읽을 수도 있겠으나, 그 하나 잘못 읽어서 인간성을 전면 오해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미켈란젤로는 많은 작품을 미완으로 남겼는데 그것은 그의 우유부단함을 증거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시비가 프랑스인과 독일인의 의식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는 없겠으나, 롤랑 식의 이야기는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 이래 자기 작품에 절대 만족 못하는 멜랑콜리한 예술가상을 이상으로 삼고 있으며 그 전형으로 미켈란젤로를 자주 언급했다는 점은 사실이다. 예컨대 들라크루아는 미켈란젤로를 직접 작품의 소재로 삼기도 했다.

낭만주의자들이 새로운 예술가상으로 미켈란젤로를 숭상한 것은 기본적으로 그의 예술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스탕달은 미켈란젤로의 시대가 다시 올 것이라고 예언했고, 제리코는 ‘최후의 심판’을 모방해 ‘메두사의 뗏목’(1819)을 그렸다. 그러나 프랑스에 이러한 경향이 등장한 것은 19세기 중반 무렵이다.

낭만주의의 ‘주적’인 아카데미즘을 뒤집은 선구자로 미켈란젤로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은 18세기 말엽, 프랑스보다 영국에서 먼저 나타났다. 블레이크나 레이놀즈 같은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러나 17~18세기 바로크·로코코 아카데미즘의 시대에 미켈란젤로는 잊혀졌거나 무시되었다. 대신 라파엘이 ‘창조의 쾌적한 아름다움’의 전형으로 추앙됐다. 반면 미켈란젤로는 균형과 조화가 결여된, 단조롭고 지나치게 해부학적인 과장에 치우친 ‘저속한 방임주의’로 매도됐다.

고전주의 미학자인 빙켈만은 미켈란젤로가 취향의 퇴화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미켈란젤로에 대한 유일한 ‘변호’는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그를 예찬한 것 정도다. 그러나 괴테 역시 만년에는 라파엘을 더 좋아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켈란젤로는 살아 생전 이미 ‘신화’였다. 바자리는 그의 ‘르네상스 예술가 평전’(1550)에서 당시 생존자로는 유일하게 미켈란젤로를 다루었고, 그런 유의 평가는 당시 이미 일반적인 것이었다. 게다가 이후 등장한 카라바지오, 카라치, 루벤스, 벨라스케스, 렘브란트, 그리고 푸생에 이르기까지 미켈란젤로는 늘 뛰어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됐다.

19세기, 미켈란젤로는 부활했으나 도덕적 비난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러스킨은 고대 그리스인이나 베니스의 르네상스 화가들이 ‘성실하고 겸허하며 자연스럽게’ 인간의 몸을 그린 데 반해, 미켈란젤로는 ‘추잡하고 불손하며 인위적으로’ 그렸다고 평했다. 나는 러스킨을 좋아하지만 이런 유의 빅토리아조 근엄주의는 질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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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 영남대 법대 교수 >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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