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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리포트

농민 “실패한 재난대처” VS 당국 “성공한 방역대책”

‘구제역과의 전쟁’ 치르는 안성시 일죽면을 가다

  • 황일도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hamora@donga.com

농민 “실패한 재난대처” VS 당국 “성공한 방역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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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농장 주인 유모씨는 인천에서 사업을 하느라 농장을 위탁 경영해왔다. 이 때문에 방역활동이 다소 부실했고, 농장관리도 소홀했다고 한다. 더욱이 농장 직원들은 구제역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적어 구제역이 상당히 퍼진 후에야 신고를 했다. 농장주는 구속됐고, 구제역 발생농가 반경 500m 이내 지역에 대해 선별적인 살처분 권고가 내려졌다. 발생농가를 중심으로 3km 이내는 위험지역으로, 10km 이내는 경계지역으로 선포됐다.

지난 6·13 선거에서 안성시장에 당선된 이동희 시장이 취임식을 마치자 마자 통제본부로 달려와 진두지휘를 하고 있었다.

“시에서 할 수 있는 행정지원은 모두 쏟아부었습니다. 예비비도 총동원하고 있습니다. 시예산에 한계가 있지만 수매는 농민들이 원하면 다 해주고 있어요. 더 이상 병이 확산되지 않도록 전 공무원이 나서서 방역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통제본부가 해야 할 일은 간단치가 않다. 구제역 방역과 관련된 일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이다. 신고가 접수되면 검역관이 출동해 진단을 내리고, 방역반과 공무원들이 사후처리를 한다. 농림부 총괄 아래 각 행정기관이 이를 지원하며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진단을 책임진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최대한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신고 후 24시간 안에 결정적 조치가 완료돼야 한다.

공무원들은 24시간 3교대로 초소 근무를 계속한다. 경찰들은 방역 및 차량통제 현장에 투입되고, 군인들은 살처분 명령이 떨어진 농가의 돼지들을 도살해 매립하는 일을 맡고 있다. 소방서 직원들은 방제약에 사용하는 물을 지원하고, 시청과 면사무소 직원들은 방제약 공급, 식사 등의 행정지원에 매달린다. 한마디로 농협과 축협도 축산농민들에 대한 지원과 관리에 소홀할 수 없다. 마을 전체가 들썩거리고 있었다.



일죽면 주민의 대다수는 농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양돈축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논농사만 지어서는 큰돈을 만져보기 어려운 형편이라 많은 농민들이 농협과 축협에서 돈을 빌려 양돈사업에 뛰어들었다. 모돈(母豚)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국내 굴지의 다비농장도 이곳에 있다. 이 일죽면에 구제역이 직격탄을 날렸다. 16개 구제역 발생 농가 중 다섯 농가가 일죽면에 있고, 여섯 농가는 일죽과 이웃한 마을에 있다.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도살된 돼지의 절반 가까이가 일죽면에서 기르던 돼지다.

월드컵에 가린 구제역

구제역 여파로 거리는 눈에 띄게 한산했다. 방역작업을 철저히 해서 구제역을 몰아내자는 구호들이 곳곳에 붙어 있을 뿐이다. 상인들은 구제역이라는 말만 꺼내도 진저리를 쳤다.

한국농업경영인 안성시연합회 안정열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빨리 진정돼야지, 정말 죽겠소. 두 달째 불안에 떨다보니 이젠 정말 포기하기 일보 직전이오. 보상도 제대로 안해 주면서 방역책임을 농가에 떠넘기고 구제역 확산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모두 우리한테 돌려대니 정말 미치겠어요.”

일죽에서 돼지를 키우고 있다는 한 농민은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농림부의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고 봅니다. 언론도 월드컵 때문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요. 보상원칙에도 문제가 있어요. 시가대로 보상한다는데, 축산업은 제조업과 사정이 다릅니다. 그냥 돈으로 사준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요. 키우던 돼지를 다 내놓으면 최소한 1년은 공쳐야 하는데 누가 ‘내 돼지 죽여주시오’ 하고 나서겠습니까. 축사에 돼지가 없으면 축사는 썩기 마련입니다. 돈이 안 들어오니 직원들도 다 내보내야죠.

더구나 이 작은 지역공동체가 구제역 원인 논란으로 갈갈이 찢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농민더러 방역을 하라더니 이제 와선 ‘농민들이 밖으로 나다니면서 구제역을 퍼뜨린다’고 비난합니다. 그래서 아예 사람 만날 생각은 않고 꼭 필요한 물건을 살 때나 집 밖으로 나옵니다. 농민들 처지를 배려해야 합니다. 자기가 기르던 가축을 생매장하는 심정을 누가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2000년 봄의 구제역 파동은 전국민적 관심사였다. 영국에서 광우병 소동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기 때문이다.

광우병은 소에게서만 발병하고 병의 원인이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구제역은 그렇지가 못하다. 전염 가능성이 다양하게 열려있기 때문이다. 구제역은 사람의 옷이나 차량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면 공기로도 전파된다.

마지막 구제역 발생지인 신흥리로 들어가는 88번 국도변 초소에는 방역팀이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사흘 동안 여관에서 눈을 붙였다는 조현호 검역관은 “6월23일 이후에는 구제역이 추가로 발생하지 않아 다행이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고 했다. 말이 ‘초소’지, 작은 텐트 하나 쳐놓은 게 고작이다. 조검역관은 푹푹 찌는 날씨에 몸 전체를 가리는 검역복장을 한 채 땀을 비오듯 흘렸다.

농장에는 차들이 많이 드나든다. 인공수정, 사료와 기자재 공급, 신문배달을 위해서도 차가 드나들어야 한다. 구제역은 타이어 틈새에 낀 미량의 가축 대변으로도 전파될 수 있어 ‘완벽한 방역’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차량을 통제하던 한 의경은 이렇게 토로했다.

“공무원들은 잠도 제대로 못자고 방역에 나서고 있는데, 자기 차에다 방제약 뿌린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심지어는 방역을 피해 가려고 일부러 좁은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제역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데 대한 공감대가 부족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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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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