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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숨은 인권운동가 5

‘아동학대 근절 위한 가족모임’ 대표 송영옥씨

“성추행 당한 어린이의 절망을 아시나요”

  • 황일도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hamora@donga.com

‘아동학대 근절 위한 가족모임’ 대표 송영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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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표는 “성폭력 피해를 당한 아이들에게는 반드시 징후가 있다”고 말한다. 부모들이 미처 알아채지 못할 뿐이지, 분명히 평소와는 다른 행동양식을 보이기 마련이라는 것. 특히 유치원이나 놀이방 등에서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한 아이들의 경우, 이를 바로 간파하지 못한 부모는 두고두고 씻을 수 없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돼요. 저만해도 아이와 함께 병원에서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어요. ‘성폭행 당했다, 안 당했다’를 두고 계속 입씨름만 했으니까요. 열 살도 안된 어린 딸이 남자를 밝혀 남자화장실에 숨어 들어가거나, 아니면 아예 아빠를 거부하는 걸 보면서도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가정은 흔치 않죠. 부부 사이도 마찬가집니다. 우선 부부관계를 갖기 힘들어지고, 특히 엄마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가 많아 시댁 식구들과 사이가 벌어지기 쉽죠.”

송대표 역시 사건 진행과정에서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이전부터 사업체를 운영하며 ‘여장부’ 소리를 듣던 그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삶의 모습은 완전히 변했다. 농담 삼아 한마디를 던지며 껄껄 웃어 보이는 그의 얼굴 뒤로 언뜻 그늘이 엇갈린다.

“남들이 그래요, 내가 전형적인 미국식 케이스라고. 내가 빨리 재혼에 성공해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야 흘륭한 극복 사례가 되는 건데 말이에요.”

사건 이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대개 폐쇄병동에 격리 수용된다. 그러나 성인 정신질환자나 알코올·약물 중독자들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병동은 아이들에게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를 준다. 상태가 비교적 나쁘지 않은 경우라 해도 엄청난 돈이 치료비로 들어간다. 정신질환 상담의 경우 단기간에 치료효과가 나타나기 어려워 비용이 만만치 않다.



“피해자 가족들이 치료를 꺼리게 될까 걱정이 되지만, 현실이 그래요. 제가 처음에 받은 6000만원 배상 판결은 아이 치료하는 데 드는 3000만~5000만원의 비용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간혹 재판에 나가보면 가해자 변호인들이 피해 어린이 부모들을 ‘이 기회에 한몫 잡으려는 사람들’ 취급하는 경우가 있어요. 한마디로 기가 막히죠.

법원도 이런 현실을 몰라요. 그러니 배상 액수가 터무니없이 적은 거예요. 이 역시 저희가 주목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충분히 조사해서 객관적인 데이터를 만들었다가 판사에게 제시할 계획이에요. 할 일이 많아요. 바쁠 수밖에 없죠.”

강간사건이 발생한 경우 초기에 대응하는 시스템은 예전에 비하면 상당부분 개선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난해에는 성폭력피해상담과 의료지원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성폭력위기센터’가 문을 열었고, 경찰병원 등에 ‘성폭력 의료 지원센터’가 설치됐다. 한편 지난 5월 여성부는 성폭력 피해에 대한 증거 수집을 도와줄 ‘성폭력 응급키트’를 개발해 전국의 성폭력 피해자 전담의료기관, 보건소 등에 보급했다.

그러나 상당수 병원들은 아직도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진료를 반기지 않는다. 지난해만 해도 서울의 대학병원 2곳과 경기도의 종합병원 2곳이 진료를 거부해 가족들이 고소하는 일까지 있었다. ‘의사들의 책임 방기’라는 송대표의 질타가 매섭다.

“귀찮다는 겁니다. 경찰이나 검찰에 참고인으로 불려다녀야 하니까요. 그 사람들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대여섯 시간 왔다 가봐야 지급되는 건 교통비 1만원이 전부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인력이 필요한 겁니다. 최소한 대형 종합병원에는 이 일을 맡아줄 의사가 있어야 해요.”

“엄마는 아동 성폭력 하러 다녀요”

더 큰 문제는 단순한 긴급대응이 아닌 장기 심리치료. 특히 아동 성폭력의 경우에는 전문적으로 아이들을 돌봐줄 의료인력이 많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대한민국의 소아과 전문의 3400여 명 가운데 소아정신과 담당은 100명을 넘지 않는다고 송대표는 말한다. 그나마 성폭력 피해 어린이들을 전문적으로 보살필 만한 역량을 갖춘 곳은 극히 드물다.

지방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서울 안에서도 거리가 먼 곳에 있는 가족들은 일주일에 두세 번씩 생계를 포기하며 병원을 찾아야 한다. 성폭력 피해 어린이의 상당수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중하층 가정 자녀들임을 감안하면 가족들이 부담하는 경제적 비용은 치료비에 그치지 않는다.

피해 어린이에 대한 심리치료는 단순히 권장사항으로 그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질 손상이나 성기 이상 등의 신체적 피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심리적 후유증이나 성적 후유증이라는 것이다. 내일청소년상담소가 올해 4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성적 후유증을 앓는 피해 어린이의 33%가 자위행위를 하고, 40% 가까운 어린이들이 성에 대한 공포나 불안증세를 보인다. 죄의식이나 악몽, 우울증 등의 심리적 후유증은 물론 자살을 시도하거나 정신분열을 일으키는 극단적인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던 송대표의 딸 꽃님이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는 꼬박 7개월이 걸렸다. 아빠와 북한산에 오른 딸아이는 문득 말을 꺼냈다.

“죄송해요. 엄마가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는데, 이제 다 나은 것 같아요.”

며칠이 지나 병원에 가는 길에 아이는 꽃집에 들러 꽃 한 송이를 샀다. 공작실에 앉아 혼자 조물락거리던 아이는 초콜릿과 꽃을 포장해 들고 나타났다. 비뚤비뚤한 글씨로 써내려간 카드 위에는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제 저 안 와도 될 것 같아요”라고 쓰여 있었다. 그날 송대표는 담당의사를 부여잡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요즘에는 어떻게 지내냐고요? 아주 잘 있어요. 벌써 초등학교 3학년인 걸요. 공부도 전교 1등 해요. 하루는 아이가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그랬대요. ‘우리 엄마는요 사업해서 돈 벌어 갖고 아동 성폭력하러 다 쓰고 돌아다녀요.’ 그 얘길 전해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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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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