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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쟁

소농사회론 vs 내재적 발전론

조선 후기사회 어떻게 볼 것인가

  • 이영훈 <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shamora@donga.com 최윤오 <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 학술연구 교수 >

소농사회론 vs 내재적 발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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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이래 역사학계에서는 자본주의맹아론이란 학설이 주류의 자리를 차지해 왔다. 18∼19세기 조선사회에서도 그냥 두었으면 언젠가 자본주의로 발전하게 될 여러가지 싹들이 농업, 공업, 상업에서 발생하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농업에서 발생한 싹에 대해 좀더 부연하면 농민들이 자본가적 부농과 노동자적 빈농으로 분해되고 있었음을 가장 중요한 논거로 제시한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싹들은 19세기에 들어서 사회·정치의 구조를 근대적으로 개혁하려는 힘으로까지 성장했다.

민란과 동학농민혁명이 밑으로부터 제기된 근대적 개혁의 요구라면, 그에 대응하여 지배계급이 부세賦稅수취제도와 관련하여 취한 개량주의적 정책은 위로부터의 근대적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같은 위아래로부터의 자주적 개혁은 일제의 침략에 의해 좌절되었으며, 이후 조선의 근대화는 일제에 의해 비정상적인 형태로 왜곡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상이 이른바 맹아론의 주요 내용인데, 지금 필자와 논쟁하고 있는 최윤오 교수의 입장도 ‘대체로’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년간 필자는 이러한 맹아론에 대해 일관되게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가장 중요한 실증적 논거는 자본주의적 공업의 초기형태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기형태라 함은 상인들이 농민들의 가내공업을 대상으로 도구와 원료를 임대하고 공산품을 제작하게 한 다음, 일정한 가공임료를 지불하고서 제품을 회수하는 관계를 말한다. 이를 보통 선대(先貸)제라고 하는데, 서유럽의 역사를 보면 이러한 선대제 형태를 한참 경과하다가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본격적인 자본주의적 형태로서 공장제 생산이 성립했다. 그런데 18∼19세기 조선 농촌사회를 아무리 훑어보아도 선대제나 그와 유사한 공업형태가 상인들에 의해 조직된 적이 없었다. 이처럼 맹아론은 가장 중요한 핵이 실증되지도 않은 채 널리 주장되었던 셈이다.

농촌사회가 자본가적 부농과 노동자적 빈농으로 분해되고 있었다는 주장도 실증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를 보통 양극분해설이라고 하는데, 최초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성립시킨 영국의 농업에서 그러한 양극분해가 전형적으로 전개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양극분해가 증명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범위의 경지에서 적어도 2∼3세대의 장기간에 걸쳐 농민들의 경작규모의 차이가 위아래로 확대되고 있음이 밝혀져야 한다. 그렇지만 당초 양극분해설을 주장한 연구자가 제시한 증거를 보면, 어느 특정 연도에 한하는 정태적인 자료 뿐이다. 원래 그러한 자료에서 동태적인 양극분해설은 주장할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필자는 동태적인 시계열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하였으며, 19세기말까지의 것으로서 대략 30여 사례를 모을 수 있었다. 분석 결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농민들의 경작규모가 양극으로 분해되기는커녕, 위아래가 수렴하는 평균화 경향에 있었다. 이어 20세기전반 식민지기의 농촌사회를 보니 역시 그러하였고, 나아가서는 1950년대까지도 그러했다.

돌이켜보면, 맹아론은 농업의 발전방향을 규정한 생태적 조건의 차이를 무시하고 서유럽의 한전농업과 아시아의 수전농업이 동일한 방향과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는 단순한 전제에 입각하였다. 그렇지만 거기서는 경지면적을 확대하는 것이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유력한 수단이지만, 여기서는 더 작은 경지면적에 면밀하고 반복적인 제초노동을 행하는 것이 생산성을 높이는 첩경이었다. 명청시대의 중국이나 근세 일본의 농업 발전을 보아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위와 같이 농민들의 경작규모가 하향 평준화했던 것이다. 소농계층은 해체되고 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전하고 있었다. 한국의 농업에서 서유럽처럼 경지면적의 확대가 생산성의 상승을 동반하기 시작하는 것은 제초제가 보급되어 고된 김매기 노동으로부터 농민들이 해방되기 시작한 극히 최근의 일이다.



이같은 맹아론에 대한 비판은 필자만이 한 게 아니다. 국내외의 많은 연구자들이 맹아론의 실증적 근거에 회의를 표명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에커트 교수는 한국의 민족주의적 역사학자들이 부질없이 오렌지밭에서 사과를 찾고 있다고까지 신랄하게 꼬집었다. 이들 비판이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당초 제기된 맹아론 그대로는 더 이상 곤란함이 어느 정도 명확해진 것만은 사실이며, 그에 관한 학계 일반의 공감도 어느 정도 성립해 있다고 봄이 필자의 관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교수가 당초 제기한 그대로의 맹아론이 완고하게 계승되고 있음은 결국 최교수와 필자의 입장 차이가 역사적 사실인식의 수준을 넘어 전술한 바와 같은 역사관의 근본적 차이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에 적이 생각이 미치는 것이다.

벗어나야할 ‘민족주의‘ 굴레

맹아론의 대안으로서 새로운 역사상을 건설적으로 모색하기 위해서는, 새 포도주는 새 포대에 담아야 하듯이, 새로운 사고틀로서 새로운 역사관이 필요하다. 몇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 가운데 첫째는, 역사는 반드시 일국사적으로만 발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 일국사적인 폐쇄된 공간에서는 역사가 정체하기 쉽고 나아가 실패하기 마련이다. 오늘날의 북한이 더 없이 좋은 실례가 아닌가. 역사는 개방적인 국제환경에서 다양한 문화와 사상의 조류가 자유롭게 넘나드는 가운데, 외래 문물과 전통의 접합으로서 발전할 뿐이다. 그런 취지로 필자는 역사의 발전이란 생물학적으로 이종교배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한국사도 크게 보면 몇 차례 국제환경이 개방적이거나 외부로부터 강한 충격이 가해진 시기에 큰 발전을 이루었다. 지난 20세기 전반 일제와 미군정의 지배에 있었던 시기도 그러한 관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를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둘째, 역사는 성공과 실패가 되풀이되는 드라마라는 점이다. 실패의 쓰라린 고통은 성공을 위한 귀중한 교훈을 선물하며, 성공의 달콤함은 인간들을 교만하게 만들어 실패로 이어지는 선택을 유도한다. 필자가 보기에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까지의 조선왕조는 번영과 성공의 역사였다. 그렇지만 19세기의 조선왕조는 너무 관념적이고 폐쇄적인 이데올로기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 실패의 역사를 일본인들이 지적했다고 해서 자존심이 상하거나 그렇지 않다고 강변할 필요가 조금도 없다. 긴 역사에서 35년에 불과한 짧디짧은 기간의 식민지 경험에 너무 강박되어 역사가의 자유로운 의식과 사고가 제약당할 필요는 없다. 오늘날 한국자본주의의 번영과 민주주의의 성숙을 두고 세상의 어느 역사학자가 이 민족이 천성적으로 열등한 민족이라는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겠는가.

셋째, 앞서 한 이야기의 반복이지만, 목적론적이고 도덕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부터 해방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과 역사의 발전은 한 가지 근본 요인에 의한다는 근본주의적 사고방식과는 보통 밀접한 연관성을 보인다. 역사의 발전 동력은 흔히 생각하듯이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다. 정치도, 이데올로기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무엇보다 전술한 대로 개방적인 국제환경이 중요하며, 그와 관련해서 그것을 선택하는 정치적 리더십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렇게 역사는 다양한 층위의 다양한 요인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발전한다. 요컨대 근본주의 대신에 다원주의를, 도덕주의 대신에 기능주의를 새로운 역사관의 틀로 권장하고 싶다. 필자가 보기에 최교수는 너무 근본주의적이다. 예컨대 최교수는 해방후 남북분단의 비극까지도 맹아론이란 틀의 사정권에 넣어 설명코자 한다. 그렇지만 역사학에서 그러한 만능이론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넷째, 한국만큼 인종적으로 동질적인 나라를 찾기 힘들다. 참으로 넘기 힘든 장벽이겠지만 민족주의의 굴레를 벗어나야 한다. 역사 발전에 필수적인 개방적 국제환경과 다원적이며 기능주의적인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로부터 자유로울 때 비로소 확보할 수 있는 역사의 혜택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의 골품 신분제가 싫어 당나라로 건너간 사람이 있다. 오늘날도 대한민국이 싫으면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민갈 수 있는 법이며, 그런 사람을 욕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민족이란 것 자체는 근대 국민국가가 그의 국민을 통합하기 위해 기획한 정치적 상징일 뿐이다. 15∼19세기 조선왕조의 온 백성들이 하나의 민족으로 통합되어 있었다는 생각만큼 비역사적인 유치한 발상도 없다. 오늘날 한국의 지식인들이 추구해야 할 기본과제는 이 땅에 사는 주민들 상호간에 자유롭고 공정한 시민공동체를 건설하는 일이다. 민족통일을 현대 역사학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필자는 도저히 찬성할 수 없다. 민족통일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북한의 마성적인 수령체제가 해체된 다음, 이 땅의 주민들이 정치적으로 취할 수 있는 여러 선택의 하나일 뿐이다. 진정한 통일에 요구되는 이러한 선후관계에 혼란이 발생한다면, 그로 인한 역사의 실패와 희생은 이루다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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