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여간 온 나라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2002월드컵. 붉은 물결 출렁이던 광화문 거리의 장관은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의 인상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은자의 나라’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정열적인 동양의 자존심, 코리아’로의 변신. 필자처럼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의미심장한 변화다. 붉은악마로 대변되는 코리아 열풍은 우리가 말하는 패션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불과 십수년 전, 88서울올림픽 당시와 비교해보면 패션업계를 강타한 문화충격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올림픽 유니폼 디자인 중 각국 국기 도안을 이용한 것이 있었다. 이에 대해 당시 관련 공무원들이 보인 반응은 ‘국기 모독죄’(그런 죄목이 실제로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운운하는 극도로 부정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에는 어땠는가. 전국의 붉은악마들이 연출해낸 거리 패션은 우리 자신은 물론 외국인들조차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세계적 패션 이벤트였다.
남성용 패션 명품을 소개한다면서 월드컵 얘기를 꺼내는 건 무엇보다 대표팀 감독 거스 히딩크 때문이다. 그가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패션 센스까지도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게 됐다. 그의 패션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명품족 히딩크’ ‘노블리안 히딩크’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여기서 말하는 ‘명품’이란 어떤 것을 의미할까. 그냥 비싼 외제 패션용품이면 다 명품일까. 또 명품과 명품이 아닌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히딩크는 명품족인가
우선 팬티도 아르마니 상표만 입는다는 히딩크는 정말 명품족일까. 나는, 히딩크는 통념적 의미의 명품족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그가 네덜란드인이기 때문이다. 네델란드는 우리가 더치페이라 부르는 더치트리트(Dutch Treat)의 발상지다. 그만큼 검소하고 실용적이며 비즈니스적 사고에 충실한 국민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풍토에서 나고 자라 스포츠계 인사로 활동한 히딩크가 ‘내추럴 본 명품족’이 아닐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가 명품족으로 ‘오해’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가 명품족이란 수식어를 달고 다니게 된 것은 비싼 옷만 입거나 자기만의 뛰어난 패션감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용모가 화려해서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를 잘 아는 이들은, 히딩크를 명품족으로 둔갑시킨 건 그의 여자친구, 엘리자베스라고 말한다. 아프리카 출신의 역사학도 엘리자베스를 만나면서 히딩크가 생활의 멋과 여유를 알게 됐다는 것이다. 적어도 4년 전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던 히딩크는 운동복 차림을 즐기는 평범한 스포츠인이었다. 그런 그를 엘리자베스는 불과 2년여 만에 삶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신사로 바꿔놓았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스포츠 지도자들이 MBA과정을 이수하며 ‘필드의 경영자’라는 지도자상을 구현해왔는데 그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이미지 컨트롤이다. 경영기법 도입에 적극적인 스포츠 지도자들은 경기장에서 유니폼 대신 절제된 정장을 즐겨 입는다. 그 배경에는 스포츠도 비즈니스라는 개념이 깔려 있다.
히딩크가 월드컵 기간 내내 짙은 감색에 그레이 톤 버튼다운셔츠와 미니모티브 장식의 넥타이를 착용한 것은, 그것이 극도로 절제된 지도자의 이미지와 최고 리더로서의 경영마인드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차림이기 때문이다.
“가방이 아닙니다, 욕망입니다”
명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표준화된 척도는 없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명품에 대한 기준을 물으면 그야말로 다양한 답변이 나온다. ‘비싼 물건’이라는 원초적 대답부터, ‘구하기 힘든 것’‘유명한 상표’ ‘오래된 상표’ 같은 공통 분모적 요소와 함께, ‘가짜가 만들어지는 상품’이라거나 ‘중고가 거래되는 상품’ 같은 더욱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답변도 있다.
필자가 판단하기에 명품이라 분류되는 상품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로 보인다. 이전까지만 해도 패션 명품은 특수계층을 위한 수공예품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자연히 희소가치가 있고 구매 과정이 특이하며 경제력만으로는 소유하기 어렵다는 측면에 더 큰 비중이 두어졌다. 그런데 1954년, 패션사에서 오래도록 기억할 만한 사건이 터진다.
그해 만들어진 제임스 스튜어트와 그레이스 켈리 주연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작품 ‘이창(Rear Window)’. 이 영화에는 유명한 쇼핑 신이 나온다. ‘에르메스’의 영원한 명품 ‘켈리백(Kelly Bag)’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레이스 켈리가 상점 점원에게 작은 핸드백을 들어 보이며 가격을 묻는다. 종업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8000달러(1954년임을 기억하자)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어떻게 핸드백 하나가 8000달러냐”고 되묻자 종업원은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이건 가방이 아닙니다, 욕망입니다”라고. 이어 1956년, 모나코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가 같은 가방으로 임신한 배를 가리는 사진이 라이프지 표지를 장식하면서 그 핸드백에는 켈리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켈리백과 영화에서 그레이스 켈리의 우아한 목을 장식하고 있던 스카프. 여기에 명품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단어가 등장한다. 바로 ‘욕망’이다.
서구 귀족사회가 몰락하고 난 뒤 형성된 새 질서, 즉 근대적 자본주의 시민사회에서 명품의 가치 확립은 이렇게 시작됐다. 경제적 성취를 달성한 자들의 기존 질서에 대한 동경과 욕망의 해소. 이런 배경 아래 본격적인 명품의 탄생이 이어진다. 아니 태어난 것은 그 훨씬 이전이지만 비로소 새로운 문화 코드로 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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