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은 음악으로 치자면 왈츠가 아닌 힙합에 가깝다. 격하지만 냉정하게, 그러면서도 즐겁게 읽는 맛이 난다.
한국의 독자들은 추리소설을 호러소설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도 이 정도는 너무 오래된 고정관념이어서 그러려니 하지만, 순문학과 비교해가며 이런저런 평가를 내리는 데는 더러 말문이 막힌다. 처음부터 그것이 가능한 비교였나 하는 의문 때문이다.
추리소설은 장르소설이고 대중문학이다. 대중문학과 극을 이루는 순문학은 엄연히 다른 역할과 기능을 담당한다. ‘미스터리 소설의 스승’으로 불리는 영국의 키팅(Henry Reymond Fitzwa lter Keating)은 ‘추리소설 작법’ 서문에서 이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미스터리 소설이란 흥밋거리로서의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면서 쓴 소설이고, 그 주제가 어떤 것이든 범죄의 모습을 띠고 있다. 즉 미스터리 소설은 작가 아닌 독자를 우선으로 삼는 소설이다. 순소설은 작가가 표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있다고 믿거나 느끼는 그런 것에 대해 쓴다.
그러나 미스터리 작가는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느끼면서도 그런 것을 쓰기보다는 독자의 흥미를 끌어들이는 일에 더욱 전념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국내 대다수 추리작가들의 주장도 키팅과 다르지 않다. 아다시피 추리소설은 장기적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어쩌면 ‘엔터테인먼트’라는 추리소설 본래 기능의 약화가 침체를 가속화시켰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추리소설이 설 자리는 점점 협소해지고 있다. 한국에서 추리소설은 최근 몇 년간 국내외 작품을 불문하고 해마다 겨우 서너 작품만 출간됐을 뿐이다. 그나마 외국 추리소설에 비해 한국의 추리소설은 양적으로 훨씬 적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올해 벽두부터 이변이 일어났다. 느닷없이 추리소설이 출판계의 히트상품으로, 화두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것도 고전 추리소설의 주인공이랄 수 있는 홈스와 뤼팽이 ‘부활’해 독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홈스와 뤼팽의 시리즈는 여러 출판사에서 경쟁적으로 출간되고 있는데, 그중 한국 독자들이 가장 매력적으로 받아들이는 작품은 ‘바스커빌 가문의 개’와 ‘기암성’이다.
▶ 바스커빌 가문의 개 / 아서 코난 도일 지음 / 백영미 옮김 / 황금가지
‘한밤중에 황야로 나가지 말라’는 얘기가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영국의 유서 깊은 가문 바스커빌가(家). 그곳의 가장 찰스 바스커빌 경(卿)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유산 상속인으로 지목된 헨리 바스커빌 경은 가문의 영지로 돌아가야 하는지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진다. 갈등을 거듭하던 그는 결국 홈스에게 자문을 구하기에 이른다. 헨리 경은 왓슨 박사와 동행하여 영지로 돌아간다.
소설의 전개는 런던에 있는 홈스에게 보내는 왓슨의 편지로 이어지는 형식을 취한다. 편지는 법정싸움을 좋아하는 이상한 이웃 노인, 미녀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스테플턴 박사, 흉악한 탈옥수, 황량한 벌판과 늪지, 한밤중에 울려퍼지는 묘한 울음소리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되는 바스커빌가의 사람들, 그만큼 그들의 두려움은 점점 더 커져간다.
역량의 한계를 느낀 왓슨 박사는 홈스가 영지로 오기를 간곡히 청한다. 그러나 홈스는 런던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홈스의 역할을 왓슨이 대신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이 작품은 편지에 담긴 이야기들로 하여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킨다. 독자들은 왓슨의 편지를 읽음으로써 함께 추리를 해나갈 수 있고, 마치 자기 자신이 홈스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바로 이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랄 수 있다.
세계 최고의 명탐정 셜록 홈스는 ‘주홍색 연구’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이후로 그는 코난 도일의 모든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실제로 홈스는 저자 자신을 무척 많이 닮아있다. 젊은 시절 권투를 했다는 것, 코카인을 즐겼다는 것, 이런저런 실용적 지식에 해박하고 화학실험에 매달렸다는 것, 편집증적 증세를 보였다는 것 따위. 그러나 무엇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건, 경찰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을 거침없이 해결해버리는 그만의 뛰어난 수사력과 추리력이다.
자신감에 넘치는 그는 겸손하기보다는 늘 자신을 드러내고자 한다. 사람들은 그를 존경의 시선으로 우러러본다. 홈스는 당연하다는 듯 그들의 시선을 받아들인다. 괴테나 프랑스 속담을 막힘없이 인용할 줄 아는 영국신사, 그가 바로 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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