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걱정에 싸여있는 필자 앞에 예의 손수 지었다는 그 개량한복을 입고 나타난 송창식은 “이거 말 잘해야 되겠는데”라고 운을 뗐다. 그의 얼굴에 팬들에게 너무도 친숙한 하회탈 같은 히죽웃음이 떠오르자 인터뷰 자리의 긴장감은 말끔히 사라졌다. 음악 얘기를 많이 하고 싶다는 청에 유난히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요즘 송창식은 1990년대 포크가수의 부활 아지트가 된 미사리 소재 ‘록시’라는 이름의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하며 관객들과 만난다. ‘송창식이 노래 부르는 곳’이란 간판이 말해주듯 카페가 지어질 때부터 실내장식, 무대, 조명 장비에 자신이 관여했다고 귀띔한다. 주위가 어스름해지는 저녁무렵 이 카페의 옥상에 마련된 출연 가수들의 대기실에마주앉자, 그의 표정은 ‘모든 질문에 답할 준비가 돼있다’는 듯 넉넉하고 여유에 넘쳤다. 미처 질문을 던질 새도 없이 그가 먼저 자신의 인생역정, 음악에 대한 접근법과 시각, 남에게는 별종이라 할 라이프스타일 등을 주섬주섬 꺼내 들려주기 시작했다.
-조금 바빠 보입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매년 열 차례 정도의 공연을 합니다. 그 공연 개런티로도 충분히 음악하고 생활할 수 있으니까요. 더 이상 할 필요도 없고 기(氣)와 관련된 운동 때문에도 더 하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올해는 추석 전후에만 11회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왜 일이 갑자기 몰리는지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월드컵 효과를 보는 것 같습니다(웃음).”
그의 답변에 놀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그는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은 당연히 그가 나이가 들어 활동을 중단한 것이겠거니 생각하며 대부분 세월과 함께 그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은둔’ 아니면 ‘칩거’가 그의 이미지로 굳어진 진 것 역시 이 때문이었다.
더러 동료 가수들과 함께 공연과 음반활동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평범한 대중 입장에서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쉽지 않았고, 그가 동참한 앨범에 손이 가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가 지속적인 활동을 해오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가 이렇듯 둔감하다는 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우리 가요계가 현실을 좇느라 지나간 과거에 너무 인색한 때문이 아닌가 싶어 안타까웠다.
“한번도 내 앨범에 만족 못했다”
왜 그가 1987년 ‘참새의 하루’를 끝으로 독집 앨범을 내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 신세대 가수에게 몰려있는 음반 회사들이 상업적으로 한물간 그를 외면한다는 소문을 접한 적이 있다. 그의 침묵은 대한민국 가요시장에 대한 환멸 때문일까.
-이런저런 작품에 참여하긴 했지만 독집 음반으로만 따지면 무려 15년간 공백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 음반이 음악가의 중요한 호흡무대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아직도 송창식의 앨범을 찾는 사람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선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게다가 많은 곡을 써놓았다는 말도 들은 바 있습니다. 일각의 얘기처럼 음반회사에서 앨범 출반을 주저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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