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호

북한 정치문화 변해야 남북대화 진전된다

  • 글: 송종환명지대 초빙교수·전 미국 공사

    입력2002-11-04 1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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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정치문화 변해야 남북대화 진전된다

    지난 9월14일 열린 제7차 남북장관협회회담에서 남측대표 정세현 통일부장관과 북측대표 김영성 내각책임참사 등 양측대표단이 악수를 하며 회담을 마무리 하고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직후 ‘신동아’(2000년 8월호)는 한국 내 오피니언 리더 100명을 인터뷰했다. 그 결과 응답자 98명 중 79명(80. 6%)이 ‘김정일이 북한의 변화를 위해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답변한 반면 17명(18%)만이 북한의 변화에 대해 비관적으로 답변했다. 1년여 전부터 각종 학술 세미나나 전문 학술지에서 북한의 변화에 비관적 의견을 개진하는 학자는 소수로 전락했다.

    북한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회담이 중단되고, 서해에서 우리 해군이 선제공격을 당한 직후인 올해 7월 북한의 변화 여부에 대해 다시 인터뷰를 했다면 2000년 6월 이후 북한 변화론을 주장하면서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던 학자들은 과연 어떠한 의견을 제시했을지 궁금하다.

    한동안 조용하던 그들은, 지난 7월1일 북한이 임금과 물가 조정을 핵심으로 하는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시행한 데 이어 9월12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신의주특별행정구 기본법’을 채택하고 네덜란드 국적의 화교인 양빈(楊斌)을 초대 행정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북한이 시장개혁을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해석하면서 그동안 북한은 변화하려고 하였지만 남한의 냉전 보수주의자와 부시(George W. Bush) 미 대통령이 이를 가로막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남북대화에 임하는 북한의 협상행태가 바뀌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금년 한 해 동안 필자가 직접 인터뷰한 한국측 협상 대표 중 현직 대표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직 대표들은 북한의 협상행태는 한국의 협상행태와는 분명히 구별되며,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공감을 표시했다. 197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의 남북한 당국간 대화에서 북한 협상 대표들은 타협과 양보를 기피하는 전사적(戰士的) 협상을 하는 공통적 특징을 보였다. 협상 대표들은 충직한 혁명전사로서 회담장 밖에서 전달되어 온 훈령에 따라 움직였고 때로는 전격적으로 입장을 바꿔 남한측과 합의하기도 했다. 또 그들은 협상과 선전을 철저히 병행했다.

    이러한 북한의 협상행태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 요인은 북한의 정치문화다. 문화는 개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그 개인이 속한 사회의 특성으로 가정·학교·직장에서의 교육, 종교, 군 복무 등을 통해 습득된다. 그중에서도 정치문화의 개념은 한 사회의 전통이나 정치적, 사회적 제도에 내포된 정신, 시민들의 감정이나 집단적 사고, 지도자들의 스타일이나 행동양식 등을 통해 규정된다.



    북한 협상 대표들은 전사적 협상가

    즉 정치문화는 ‘한 사회 구성원들의 정치적 정향(定向) 또는 성향에 의해 형성되는 정치적 행동 패턴’이며 ‘사회 구성원들의 정치적 자세, 가치, 감정, 기술 등의 총화’ 또는 ‘정치적 전통과 관행, 민족성과 국민성, 개인성품과 정치의식 등이 어우러져 형성된 사회 전체의 총체적 정치정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각 사회의 문화적 특성이 개인주의적이냐, 집단주의적이냐에 따라 각국의 협상스타일이 다르게 나타난다.

    미국과 같은 개인주의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 개성의 개발, 자아표현, 개인의 성취와 창의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긴다. 단체나 사회보다 개인의 의견과 이익을 우선하며 직접적이고 단도직입적(getting down to business)인 대화자세를 선호한다.

    반면 북한과 같은 집단주의적 사회에서는 단체나 공동체의 복지와 협동노력이 개인활동에 지침이 되고 개인의 희망이나 욕망을 종속시킨다. 개인보다 가족에 대한 명예와 사회에 대한 충성이 중요시되고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최고다. 이러한 상하관계는 사회와 정치 등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결과적으로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사회는 계급체제를 자연 질서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

    북한의 협상전략과 행태에 영향을 끼치며 북한 주민 및 사회 전체가 의식하고 있는 정치문화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지배한다. 가정, 학교, 직장, 사회단체에서의 교육과 매스미디어를 통해 정치성향, 태도 및 행동유형 등이 지속적으로 학습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적대적 대남관과 공산화 통일전략 ▲혁명적 협상관 ▲‘수령’과 주체사상이 지배하는 독특한 정치체제 ▲군인식 사고와 행동을 하게 하는 군사체제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북한의 대남관이다. 북한은 ‘공화국 북반부’만이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는 유일합법 정부라고 주장한다. 남반부는 ‘혁명’의 대상, 즉 미 제국주의자로부터 해방시키고, 남한의 노동자·농민들이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해 ‘인민민주주의정권’을 수립해야 하는 해방과 혁명의 대상이라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대남관은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혁명’으로 남한에 공산정권을 수립한 후 이 정권이 북한 정부와 합작해 공산화 통일을 완성해야 한다는 공산화 통일전략에 기초가 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 정부가 공산정권이 아니라 하더라도 북한의 ‘민족자주’ 통일정책에 동조하거나 지지할 경우 남한 당국과 대화를 통해 한반도를 평화적으로 통일할 수 있다는 상층통일전선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상층통일전선전술 차원에서 보면, 북한측이 타도와 전복의 대상인 남한 당국의 정상과 회담을 하고 ‘6·15 남북공동선언’의 제1항과 제2항에 합의한 후 이를 이행할 것을 남한측에 계속 요구하면서 주한 미군철수와 과도적 형태의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북한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 또는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의 한 형태’로 간주하는 공산국가들의 혁명적 협상관을 견지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서방권 국가들이 협상을 분쟁의 평화적 해결수단으로 간주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서방권의 협상관은 상대방과 타협하는 것이 상대방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것보다 유익하다는 생각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나 공산국가들의 혁명적 협상관은, 협상의 목표는 승리이며 완전한 승리를 하지 못하는 것은 패배로 간주한다. 이러한 혁명적 협상관에 따라 북한의 현대말 사전은 ‘양보; 자기의 권리나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남에게 넘기거나 내주고 물러서는 것’이라 정의하고 ‘계급투쟁에서 양보란 항복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셋째, 수령유일지배체계에서 발전한 혁명적 수령관과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다. 혁명적 수령관은 인민 대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지위를 차지하고 제 몫을 다하려면 반드시 수령의 지도가 있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은 최고 뇌수인 수령이 주는 정치적 생명을 매개로 어버이수령, 어머니당, 인민대중이 혈연적 관계를 맺어 수령-뇌수, 당-중추, 인민-지체(肢體)가 된다는 것이다. 뇌의 지시가 중추신경을 통해 전달됨에 따라 팔다리가 움직이는 것처럼 북한 주민은 수령이 당을 통해 지시하는 것을 무조건 이행하는 객체가 되고 회담장에 나온 북한의 협상 대표들은 오로지 중앙통제에 의해 작동하는 기계부품이 되고 말았다.

    넷째는 군인식으로 고착된 북한 주민들의 사고와 행동이다.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군인(1999년 12월31일 현재 총인구 2200여 만명 중 정규군 117만명, 14세부터 60세까지의 예비병력 748만명 등 총계 955만명) 신분이며, 북한이 추구하는 4대 군사노선(‘전인민의 무장화’ ‘전국토의 요새화’ ‘전군의 간부화’ ‘전군의 현대화’)과 김정일의 선군영도체제, 강성대국 건설, 국방위원장 중심의 권력체제, 유아기 때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사상교양사업과 군사교육, 군대식 일상생활 등은 북한 주민 모두를 군사체제에 젖게 했다.

    변치 않는 북한의 4단계 협상행태

    이와 같은 정치문화 속에 양성되고 중앙의 훈령을 받아 기계처럼 움직이는 북한의 협상 대표들이 남한측 협상 대표들과 대화를 할 때 타협하고 흥정하는 상인적 협상보다는 마치 전쟁을 하는 듯한 전사적 협상을 하고 좀처럼 타협이나 양보를 하지 않으려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1971년 이후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온 지난 30년간의 남북대화에서 북한은 개막단계, 중간단계, 합의단계, 합의사항 이행을 위한 협의단계 순으로 진행되는 각 단계에 일정한 협상 패턴을 보여왔다.

    북한측은 개막단계에는 민족통일을 위해 남북대화가 갖는 의의와 동포애를 유난히 강조했다. 만찬과 참관 행사 등으로 남한 대표단을 환대해 잔치 분위기를 한껏 조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북한측이 남북대화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술책이다. 회담장소와 일시 등에 대해 선제의(先提議)를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북한측은 또 목적 달성에 유리한 의제와 ‘일반원칙’ 합의를 유도하기 위해 북한에 가족이 있는 남한 대표들을 회유하는 방법도 썼다. 특히 개막단계에 해당되는 시기에 평양에서 남북한 당국간 회담이 진행되면 북한측 최고지도자가 한국대표단을 접견해 회담에 직접 관심을 표명함으로써 주도권 싸움에 유리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시간적으로 비교적 긴 중간단계에서는 남한측의 주장, 목표, 유연성 정도를 알아보기 위하여 다양한 책략을 동원했다. 그들은 공식적인 접촉보다는 비밀접촉을, 공개회의보다는 비공개회의를 요구했다. 또 부분 합의를 위해 대화를 해나가다 갑자기 일괄타결을 주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남한 대표에게 압력을 가할 목적으로 선결론을 반복 주장하고 요구사항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며 협상속도를 조절하는 등 지연전술을 썼다. 심지어 회담 상대방을 비난하며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회담장 밖에서는 신문, 방송을 이용한 심리전도 병행했다.

    그러다 남한측이 더 이상 양보하지 않을 듯 강경하게 나가고 이 정도 선에서 합의를 하더라도 북한에 이익이 된다는 결론을 내리면 신속히 합의에 응했다. 그 ‘공’은 그대로 북한 최고지도자의 차지가 됐다. 남북한 협상 대표단간 의견대립으로 쉽게 합의가 되지 않던 것이 ‘수령’의 결단으로 타결되는 양 마무리된 것이다. ‘7·4 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남북공동선언’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일반적으로 국가간 합의를 한 후에는 이를 구체적으로 이행하는 문제를 협의하고 실제 이행하는 단계가 진행된다. 그러나 남북한간에는 여타 국가간 협상과는 달리 사실상 이행단계가 없었다. 즉 합의사항의 구체적 이행문제를 토의하는 단계에 들어가면 북한측은 예정된 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남한 내부의 각종 상황을 들어 서울에서 회담하기를 거부하면서 북측 지역에서 회담을 개최할 것을 고집했다. 또한 북한측은 합의사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남측에 이를 이행하라고 요구하고 남측이 이를 수락하지 않을 경우 남측 대표에 대하여 폭언을 하거나 모욕을 주며, 종국에는 일방적으로 대화를 중단시켰다.

    북한측은 남북이 ‘6·15 남북공동선언’의 기본 정신인 ‘민족자주’의 정신대로 사고하고 행동해 나간다면 조국통일문제 해결에 결정적 국면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남측에 이를 이행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측이 강조하고 있는 ‘민족자주’는, 1920년대에 레닌(V. I. Lenin)이 중국, 인도 등 동방의 후진국가 및 식민지를 해방시켜 소련과 동맹을 맺게 하려는 의도로 제시한 반제국주의 통일전선전술의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혁명’의 논리를 한반도에 그대로 적용한 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측이 말하는 ‘민족자주’는 한반도 문제의 남북한 당사자 해결과 민족의 공동번영을 의미하지 않고 상대방 지역을 해방하고 체제를 바꾸고자 하는 대남 전략의 핵심이다.

    북한측이 이와 같은 대남 전략의 기조에서 북한식 ‘민족자주’를 고집하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한반도의 공산화 통일과 일방적 실리를 얻기 위하여 의사협상(擬似協商 : pseudo-negotiation)을 계속하면서 기존 협상행태를 반복한다면 남북대화는 의미가 없다. 197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경험해온 바와 같이 회담 개막기의 흥분, 열광, 기대와 이행되지 않는 남북한간의 합의문서만 생산하고 민족간의 불신을 깊게 할 소지가 크다.

    한반도의 공산화 통일은 북한 정권의 존재 이유다. ‘수령’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북한의 정치문화는 외부 환경에 따라 내부 체제를 적응 변화시키기보다는 ‘수령’을 보위하기 위한 내부 체제의 명령에 따라 자기식의 변화만 고집할 거라고 본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북한 체제와 정권이 계속되고 ‘북한식의 변화’가 지속되는 한 북한의 협상행태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면 남북한간에는 협상이 불가능하고 할 필요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협상은 협상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합의를 하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협상 의제뿐만 아니라 여타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부수효과로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획득할 수도 있다. 위기와 긴장감도 그만큼 줄어든다.

    남북대화의 세 가지 원칙

    실제로 남북한이 평화를 정착하고 화해와 협력을 통해 통일을 이루려면 남북대화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이런 논리에서 남북대화에 임하는 한국측이 견지하여야 할 몇 가지 방향과 자세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한국은 북한에 비해 절대 우세한 입장에 놓여 있다. 지구상에 공산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는 이제 극소수다. 나날이 새로워지는 국제환경 속에서 북한은 한참 동떨어져 있다. 남북한간 경제력 격차도 무척 크다. 그러니 한국측은 북한과의 대화 성사 자체에 집착하거나 대화의 성과에 조급해 하지 말고, 북한의 대남 전략과 협상행태 등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식의 바탕 위에 분명한 협상목표를 수립해야 한다.

    현실진단이 잘못되면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없다. 한국측은 북한측의 의도와 기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지나치게 희망적인 해석을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이런 바탕 위에서 한국측이 지향해야 할 협상목표는 헌법 전문(前文)과 제4조에 규정돼 있는 자유민주, 평화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실현하는 자유사회 건설이어야 할 것이다.

    둘째, 이러한 협상 목표 실현을 위해 한국측은 남북대화를 통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와 함께 남북한간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교류와 협력이 지속적으로 실시돼 서로의 안전을 확신하고 공통성을 넓혀야 할 것이다. 만일 대화를 통해 전쟁방지체제를 확보하고, 각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증대해 나갈 수만 있다면 한반도에 사는 남북한 주민 모두가 ‘우리’라는 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 상생, 공영과 통일로 가는 길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과 대만의 예에서, 경제 통신 문화 등 비정치 분야의 교류가 많아지면 정치분야 통합은 저절로 이루어지거나 촉진될 수 있다는 기능주의 이론이 최소한 체제가 다른 국가들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입증됐다. 따라서 남북한 양측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적대적 대결구도를 하루 빨리 해소해 평화를 정착하는 문제야 말로 남북대화에서 논의되어야 할 첫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셋째, 한국측은 북한이 개혁과 개방의 방향으로 가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다만 북측에 대화를 애원하면서 북한을 지원하면 국민 여론이 분열되고 반대로 현재의 우세한 입장을 배경으로 하여 북한을 압도하려 하면 북측으로부터 반발을 살 우려가 크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의연하면서도 당당한 자세로 대화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한국 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북한을 지나치게 두둔하거나 ‘상대방에게 끌려간다’ ‘지나치게 양보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지난 6월29일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젊은 장병들이 목숨을 빼앗긴 서해교전이 있었음에도 한국정부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음 날 금강산관광을 계속하도록 허용한 것은 문제다. 서해교전에 대한 북한측의 재발방지 약속, 관련자 처벌은커녕 분명한 사과가 없는데도 7월25일 북한측의 대화재개 제의에 한국정부가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응한 것도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더욱이 8월4일 남북장관급회담 실무대표 접촉, 8월12~14일 제7차 남북장관급회담, 8월27~30일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2차 회의에서 북한측의 서해도발에 대해 단 한 줄의 언급도 없이 남북은 공동발표문을 합의, 발표했다. 이처럼 대화 복원에만 의의를 부여하는 한국 정부의 협상자세는 국민적 합의를 유도할 수 없고 향후 대북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도 없다.

    앞으로 한국정부는 북한이 손짓만 하면 평양을 방문해 북한의 통일방안에 동의해준 듯 모호한 용어로 된 문서에 합의하는 일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1972년 2월28일 발표된 미·중의 ‘상해공동성명’처럼 의견이 일치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그것대로 자세히 명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한국정부는 북한측에 일단 합의한 문서를 이행하라고 단호하게 요구해야 한다.

    2000년 6월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제의했다가 “당신은 왜 아름다운 수식어로 가득찬 그러한 문서에 집착하는가”라는 김정일 위원장의 반대(출처: 2001년 6월6일자 요미우리신문)에 부딪혔다. 회담은 결국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남북한이 3년간의 협의를 통해 발효절차를 거치고, 내용상으로도 통일장전이라고 평가할 만한 ‘남북기본합의서’ 이행문제를 거론하지 못한 채 끝났다. 그렇다고 공동발표문에 안보와 평화정착 등과 관련 새로이 규정한 조항도 없었다. 이런 협상은 다시는 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 한국측은 한반도문제는 남북한 당사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면서도 주변 열강의 이해관계에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복합적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미국과의 협조를 강화하면서 북한에 끼치는 영향력이 가장 큰 중국 관계도 긴밀히 하는 등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에 대한 주변 열강의 이해를 꾸준히 넓혀 나가면서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외교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정치문화가 변하지 않는 한 북한의 협상행태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측은 ▲북한의 실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바탕 위에 분명한 협상 목표를 수립하고 ▲남북대화에서 한반도의 평화정착 문제와 남북한간 각 분야의 교류협력 문제를 합의, 추진해 국민공감대를 확산하고 ▲주변 강국들의 지지와 이해를 확보해 나가면서 ▲조급해 하지 말고 의연하고 당당한 자세로 남북대화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대화에 나선 북한의 속셈

    최근 북한은 그동안 일방적으로 중단시켰던 각종 대화의 재개에 응하고 있다. 특히 남북한간 철도와 도로 연결에 합의하고 대화 개막기에 흔히 등장하는 북한예술인파견, 이벤트성 이산가족상봉, 서울개최 남북통일축구대회와 부산아시안게임 참가 등 잔치 분위기를 다시 조성하고 있다. 9월17일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와 회담을 했다. 또 10월3일부터 5일까지 부시 대통령의 특사인 제임스 켈리(James Kelly) 미국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와 21개월 만에 회담을 갖는 등 대대적인 평화공세를 벌이고 있다.

    한국이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기에 북한측이 각종 대화 재개에 응해 온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이번만큼은 남북한간에 합의 사항들이 실천되기를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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