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위에 접수된 사건은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전부 ‘이상 없다’고 덮은 사건입니다. 그런 기관을 못믿어서 위원회가 생겼습니다. 핑퐁처럼 거기로 다시 보낼 수는 없지요. 허원근 일병 사건을 계기로 국방부에서 의문사한 장병들에 대해서 자체 조사를 한다해도 유족들이 신뢰하지 않습니다.”
―1974년 민청학련의 배후조직으로 검거됐던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들이 전기고문 물고문을 받아 작성한 진술조서를 바탕으로 사형판결이 확정됐다고 의문사위가 발표했습니다. 사건이 조작됐다고 볼 만한 증거가 있습니까.
“관심을 가진 사람은 다 아는 내용입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얼마 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주로 다룬 ‘사법살인’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거기에 아주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국제법률가협회는 인혁당 피고인을 처형한 1975년 4월9일을 사법제도가 생긴 이래 가장 참혹한 암흑의 날이라고 공포했습니다. 고문 등 가혹행위에 의한 자백을 증거로 재판이 진행됐고 재판조서도 변조됐습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가 간행한 자료집을 보면 끔찍합니다. 이번에 제5회 인권상을 받은 미국 연합감리교 선교사 조지 오글 목사는 1974년 10월 목요기도회에서 ‘인혁당과 민청학련 사건은 고문으로 조작됐다’고 발언했다가 그해 12월 추방됐습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됐던 김지하 시인은 광고탄압을 받고 있던 동아일보에 1975년 2월 ‘고행…1974’라는 수기를 3회에 나누어 연재했다. 김지하 시인은 인혁당 피고인 하재완과 통방(通房)으로 나눈 대화를 통해 인혁당 관련자들이 받은 고문의 실상을 폭로했다.
―인혁당 그거 진짜입니까.
“물론 가짜입니더.”
―그런데 왜 거기 갇혀 계슈.
“고문 때문이지러.”
―고문을 많이 당했습니까.
“말 마이소! 창자가 다 빠져나와버리고 부서져버리고 엉망진창입니더.”
김지하는 경북대학생 이강철씨가 “나는 인혁당의 ‘인’자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그것을 잘 아는 것으로 시인하지 않는다고 검사 입회하에 전기고문을 수차례나 받았다”고 법정에서 또렷하게 진술했다고 썼다. 김시인은 ‘고행…1974’를 쓰는 바람에 형집행정지가 취소돼 다시 교도소로 들어갔다.
유신헌법이 남긴 그늘

한상범 위원장이 이끄는 의문사위는 허원근 일병사건을 타살로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한위원장과 대담하는 황호택 논설위원(왼쪽).
“반공 매카시즘 정권이 국민에게 겁을 주는 효과적인 방법이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을 이용한 빨갱이몰이입니다. 참여연대 박원순 변호사가 쓴 ‘국가보안법 연구’라는 세 권의 책은 심산상을 받은 훌륭한 저술입니다. 독재정권 시대에 국가보안법 사건의 상당수가 정권안보를 위한 조작이었습니다.
자유당 정권이 조봉암씨를 공산주의자라고 몰아 죽이잖습니까. 조봉암씨 주장 자체는 빨갱이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독일 프랑스에 있는 이른바 민주사회주의 정당입니다. 과거 우리 풍토에서는 그런 정도도 빨강에 가까운 분홍의 좌파로 몰렸지요.
대학사회에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나 자칭 좌파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들 참 순진하고 비현실적이라고 봤습니다. 자유민주주의라도 제대로 해야지 벌써 좌파로 건너 뜁니까.
인혁당 사건 관련자 중에 유신을 노골적으로 반대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은 대개 성향이 천진난만하다고 할까, 순진하다고 할까 하는 지식인들이거든요. 혁명가도 아니었습니다. 매카시즘적 눈으로 보면 좌파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설익은 프로그레시브(진보적)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근본적으로 군사정권은 극우 이념을 바탕으로 한 파시즘 정권입니다. 위기가 있을 때마다 진짜 공산당이 아닌 좌익 용공 또는 간첩사건을 조작해 돌파합니다. 동베를린 간첩단사건도 그런 측면이 있었습니다.
중앙정보부에서 민청학련이 좌익 혁명세력이라는 자료를 배포했다가 나중에 다시 걷어갔어요. 민청학련을 박살내려는 시나리오에 따라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엮었습니다.”
한위원장은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대표적인 조작사건으로 인혁당과 민족일보 사건을 들었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은 5·16 쿠데타가 발생한 지 5개월 만에 31세의 나이로 사형을 당했다. 간첩 이영근으로부터 조총련계 자금을 받아 신문을 만들면서 북한괴뢰 집단이 주장하는 평화통일을 선전했다는 것이 혁명재판소의 사형판결 이유였다. 그러나 간첩이라던 이영근은 1990년 한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받았다.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들의 사상이 ‘설익은 진보’였다고 할지라도 구체적으로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킬 목적으로 혁명투쟁 조직을 만들었다는 증거가 없으면 처벌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럼요. 헌법 이론으로 따져보면 공산주의에 기운 생각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생각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해야 처벌 요건에 해당됩니다.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은 의문사위가 인혁당 사건 전체를 다룬 것은 아닙니다. 인혁당에 관련돼 도피중이던 친구가 찾아와 도와달라고 해서 밥도 먹이고 재워주었다가 범인은닉죄로 구속된 장석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이상하게 죽었어요. 옥중에서 그냥 앓다가 죽은 게 아니라 위급한 병이 생겨 민간 병원으로 옮기는 중에 죽은 거예요. 그동안에 죽을 만큼 때렸는지 어땠는지 알 도리가 없죠.”
그는 유신헌법이 히틀러의 수권법보다 더 나쁜 법이었다고 비판했다.
“히틀러의 수권법은 국회를 존속시키면서 국회의 권능을 대행했는데 유신헌법은 국회를 해산하고 비상국무회의에서 헌법개정하고 모든 법령을 다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만들어진 법령이 다수 남아 있어요.
비상계엄령을 선포해 영장 없이 구금하고 단심으로 군사재판에 회부할 수도 있었습니다. 정당과 사회단체를 해산하고 대학은 휴교시키고 신문은 검열하고 야당 국회의원을 영장 없이 붙잡아 보안부대에서 몽둥이로 두들겨 팼습니다. 이것이 유신입니다.”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유족들이 재심을 통해 사자(死者)의 명예를 회복하고 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국가배상법의 시효가 10년이어서 국가배상법으로는 구제받을 수 없습니다. 재심을 통해 형사보상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한국과 일본의 재심 요건이 세계에서 제일 까다롭습니다. 구정권에서 조작된 사건 중에 정권이 바뀌고 나서 결백이 입증된 것은 아마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뿐일 겁니다. 재심 요건을 충족시키기가 어려워요.”
사법부가 명실공히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한 나라에서는 인혁당 재건위 같은 사건이 생길 수 없다. 유신 이전까지는 사법부가 어느 정도 독립을 유지했지만 유신 이후에는 권력에 완전히 예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