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윤기는 흥 많은 사람이다. 눈물 많은 사나이다. 다시 태어나면 무용수가 되고 싶다 하고, 가수로도 한번 살아보고 싶다 한다. 조용필의 ‘사나이 결심’을 부를 땐 왠지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북채로 얻어맞고 하늘을 보니 나처럼 울고 있는 듯한 낮달…’, 이렇게 넘어가는 한국계 엔카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를 듣다가는 아내를 안고 그만 펑펑 울어버렸다 한다. 단언컨대 그는 가수도 무용수도 될 수 있었다. 직접 보고 들은 그의 춤, 그의 노래에는 문득 가슴 한켠 무너뜨리는 아픈 정조가 묵은 장(醬)처럼 질큼하니 녹아 있었다.
허나 가까운 이들에게 이윤기는 다만, 홍시 같은 사람, 군고구마 같은 사람이다. 세상에 다 드러내놓기 못내 아까운 사람. 다락에 숨겨놓고 개 짖는 겨울밤 남몰래 꺼내 먹던 그 홍시처럼, 아궁이 깊이 스리슬쩍 묻어뒀다 누이 자고 아우 젖 빠는 시간 호호 불어 먹던 그 고구마처럼. 많은 말과 글로 그는 이미 세상과 친하지만, 세상은 그를 아직 잘 모른다. 그래서 그와 술 한잔 하러 간다. 여우비 내리는 가을 초입이다.
5000권의 책에 둘러싸인 老戰士
지난 봄 새로 이사한 그의 집은 과천 현대미술관 근처 뒷골마을에 있다. 고만고만한 전원주택들이 단정히 늘어선 고즈넉한 동네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데 한 집 대문 앞에 웬 아저씨가 담배 물고 앉아 이 쪽을 본다. 이윤기다.
1970년대에 지어졌다지만 뼈대만 남기고 다 발라내 정성으로 매만진 덕에 집은 꼭 새 것처럼 윤기가 난다. 나무 계단 밟고 올라서면 담황색 벽돌로 마감한 본채가 눈에 들어온다. 현관 앞 빈자리에는 작은 바비큐 그릴과 목공 작업대 하나가 놓여 있다. 아담한 정원에서는 백구 두 마리가 컹컹 짖는다. 썩 잘 생긴 녀석들이다.
그는 지금 몹시 지친 상태다. 유럽여행에서 돌아온 지 채 이틀도 되지 않았다. 몇몇 매체에 줄 원고 때문에 새벽 2시30분부터 내처 아홉 시간을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었다. 그런데 움직임엔 활력이 있다. 당당한 풍채도 그대로다.
아닌 게 아니라 예순이 멀지 않은 그는 아직도 청년의 골격을 갖고 있다. 177㎝의 키도 줄지 않았고 어깨, 척추, 두 다리의 선 또한 곧고 유연하다.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더 근사한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처럼 코르덴 셔츠에 멜빵, 작업복 바지 차림이다.
새 집을 둘러본다. 동양화가인 안주인의 감각이 돋보인다. 과한 것이 없다. 똑같은 것도 없다. 사방으로 트여 있다. 자유롭고 자연스럽다. 또한 이윤기의 늑골만큼이나 고집 세고 튼실해 뵌다.
그의 옛 집이 떠오른다. 1년 전 가을, 그는 과천의 한 서민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문 열고 들어서며 내심 놀랐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은 꽤나 어지러웠다. 낡은 소파 위아래에는 벗어놓은 옷가지며 읽다 만 책, 수제(手製) 엽서, 술안주였음이 분명한 땅콩 접시까지가 두서없이 널려 있었다.
물건마다 자리가 정해져 있지 않은 건 멋진 일이었다. 금세 내 집처럼 편안해졌다. 다리 풀고 앉아 땅콩부터 주워 먹었다. 3000원어치 사과 한 봉지를 달랑 쥔 손이 어느새 부끄럽지 않았다. 집은 사는 이를 닮는다던가. 글쓰는 남편과 그림 그리는 아내가 친구처럼 어울려 사는 집은 참으로 ‘그 집’다웠다.
서재를 구경한다. 책 둘 곳이 필요해 이사했달 만큼 중요한 그 공간은 넓고 밝고 기능적이다. 무엇보다 삼면 벽을 둘러 천장까지 맞닿은 수제 책장이 감탄을 자아낸다. 두께 30㎜의 집송목으로 크기가 다른 박스 100여 개를 만들어 켜켜이 쌓아올렸다. 5000여 권의 책, 그 가운데 늙은 전사(戰士)처럼 건조한 몸체로 우뚝 선 이윤기가 왕후장상 부럽지 않아 뵌다.
“책장 참 근사하네요.”
“이게 다 경험에서 나온 거요. 좋은 책장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어요. 첫째, 무거운 양장본도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해야 하고, 둘째, 혼자 손으로도 조립 가능해야 하고, 셋째, 구조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어야 하고. 그걸 충족시키려다 보니 지금 같은 모양새가 됐어요.”
경북 사투리가 언뜻언뜻 끼여드는 느릿한 말투. 누군가 “이윤기는 글보다 말이 더 맛깔스럽다” 했던가. 그렇기야 하랴마는, 울림 큰 목소리에 실려 송창(誦唱) 가락 마냥 흘러가는 그 솜씨는 구수하면서도 아귀가 딱딱 맞는다. 입말글, 그러니까 구어체 글쓰기를 누구보다 높이 사는 그가 아닌가.
술술 잘 넘어간다 해서 편한 단어 아무 거나 불러다 대강 눙치고 들어가는 식은 또 전혀 아니다. 무엇보다 그는 나이 어린 사람도 깍듯이 존대한다. 스스로 “10년은 알고 지내야 비로소 말끝이 내려간다” 할 정도다. 사람 사귐의 무거움을 알고, 피붙이간에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음을 알고, 이름 없는 나무 앞에서도 종종 숙연해지는 그는 영락없는 반가(班家) 자손이요 갈 데 없는 촌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