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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 스타 열전 ③

“노래의 생명은 테크닉이 아니라 순수”

스탠더드 팝의 전설 패티김

  • 글: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www.izm.co.kr

“노래의 생명은 테크닉이 아니라 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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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0~70년대 대중음악의 주류는 단연 트로트였다.
  • 그러나 이것만로는 부족했던 대중의 ‘고급취미’를 만족시킨 것이 바로 패티김이 구사한 스탠더드 팝이었다. 이 시기 한국 대중음악이 특정장르 일색을 넘어 최소한의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꾸준히 자신의 스타일을 견지했던 패티김의 공이 상당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노래의 생명은 테크닉이 아니라  순수”
국내 가요사를 장식한 무수한 스타가 있지만, 그중 노래에 관한 한 패티김은 ‘최고의 여가수’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데 조금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빠른 템포의 노래든, 조용한 발라드든 능란하게 부르는 탁월한 가창력은 물론이고, 외모와 신체적 조건 또한 다른 여가수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뛰어나기 때문이다. 우리 나이로 어느덧 예순다섯 살이라는 고령에도 ‘오디오 겸 비디오형 가수’라는 그를 향한 유서 깊은 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가요계 노장들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단독공연의 흥행을 자신할 수 있는 가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패티김은 예나 지금이나 공연만 했다 하면 객석이 꽉꽉 들어찬다. ‘할머니’나 다름없는 그가 지금도 흥행 보증수표 인기가수라는 점은 경이로운 일이다. 대부분의 가수가 10년 정도의 전성기를 보낸 뒤 이름값으로 버티는데 반해 그의 콘서트는 어쩌다 날짜가 신세대 스타 공연과 맞물려도 전혀 패퇴의 기색이 없다. 그에겐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가요시장의, 아니 삶의 순리마저 통하지 않는다.

1959년 트로트와 신민요가 전부이던 시절에 서구의 냄새가 짙은 스탠더드 음악으로 데뷔와 동시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가요계에 우뚝 선 지 40년. 그 오랜 세월 그는 한결같이 트로트와는 다른 감성의 노래를 불렀지만 히트 레퍼토리는 줄을 이었다. 팬들은 패티김을 통해 ‘고급스런 가요’에 대한 갈망을 해소했다.

외국 여가수의 노래라고 착각하게 한 팝송 ‘사랑의 맹세(Till)’든, 씩씩한 ‘서울의 찬가’든, 시린 가슴을 달래준 ‘초우’나 ‘이별’이든 그가 남긴 모든 히트곡은 격이 달랐다. 그는 1960~70년대 당시 대중음악으로는 드문 품위와 격조의 음악을 통해 우리 가요의 외연(外延)을 확장하는 동시에 수준 향상에 기여했다. ‘거물 가수’ ‘대형 가수’ ‘글래머 가수’ ‘서구형 가수’ 등등의 부러움 섞인 표현은 그만이 누릴 수 있는 특전이었다.

‘상류층 가수’의 도도함



때문에 그의 팬 층은 폭이 넓으면서도 딴 가수들과는 뚜렷한 차이점이 있었다. 한창 때 ‘국회의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꼽혔던 사실이 말해주듯, 팬에는 유난히도 정·재계 유력 인사가 많았다. 트로트가 서민을 기반으로 한 반면, 그의 노래는 사회 고위층 인사들을 독점한 것이다. 일례로 고 박정희 대통령과 김종필 자민련 총재도 소문난 그의 팬이었다. 그래서 언젠가 “유명한 사람을 보려면 패티김 공연장에 가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대중가수에게 드문 품격은 그를 상류층 인사들이 좋아하는 가수로 만든 밑거름이었지만, 한편으로 그 때문에 일반 대중과는 약간의 거리감도 존재했다. 그토록 대중의 사랑을 받고있는 가수인데도 친근하고 편한 이미지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고고하고 도도해 보인다.

그런 선입견 때문인지 인터뷰를 앞두고 부담이 컸다. 그의 공연 매니지먼트를 맡고있는 기획사 관계자는 “예상과 달리 편하게 얘기를 끌어가는 분”이라고 안심시켰지만 걱정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약속 장소인 남산의 한 커피숍에 나타난 패티김은 놀랍게도 전성기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얼마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진 추석공연의 피로가 가시지 않은 듯 조금은 피곤해 보였지만 여전히 매혹적인 분위기와 스타일이었다. 자리에 앉으면서 그는 공손하게 “양해하실 줄 알고 조금 늦었습니다”라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영원한 프로답게 인터뷰 내용을 충분히 예상한 듯 그의 답변은 성실하고 충실했다. 필자의 걱정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 어떤 때는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응답했으며, 때로는 격앙된 어조로 때로는 여유로운 미소로 시종일관 인터뷰를 주도해갔다. 그의 언변은 ‘폭포수와 호수’를 연상시키는 그의 노래와 흡사했다. 더러 정확한 묘사를 위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애타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그렇다고 흐름이 끊기지는 않았다.

-지난 추석공연은 어땠습니까. 성황리에 마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이틀 동안 무대에 섰는데 아무래도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세월의 벽을 느끼지는 않았는지요?

“공연은 아주 좋았어요. 이틀간 네 차례 공연을 했는데 빈 객석이 눈에 띄지는 않았습니다(옆자리의 기획사 관계자는 유료입장객 비율이 90%였다고 귀띔했다). 제 공연을 찾아주시는 팬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합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공연은 힘들어요. 무엇보다 노래는 호흡을 끌어가는 게 중요한데, 나이가 들면 그게 어렵습니다. 제가 지금도 매일 1000m 수영을 빠지지 않고 하는 것도 호흡을 위해서죠. 공연은 이틀이 딱 적당한 것 같습니다. 하루는 적고 사흘은 벅차거든요.”

-수영 얘기가 나와서 그렇습니다만 패티김씨는 공연을 앞두고 준비가 아주 유별난 것으로 유명합니다. 배불리 먹지 않는 것은 물론 철두철미하고 세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하십니까.

“공연 때뿐 아니라 평소에도 내가 만들어놓은 규칙에 봉사한다는 자세로 삽니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 반드시 양치질하고, 손발톱 다듬고, 매니큐어도 새로 바릅니다. (손을 들어 보이며) 오늘 인터뷰를 위해서도 이렇게 매니큐어를 새로 바른 걸요. 여가수는 몸가짐이 생명이니까요.

1999년 데뷔 40주년 공연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무심코 ‘평소에 신던 신발은 무대에서 신지 않는다. 흙을 밟았던 신발을 신고 무대로 올라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기자들이 그 말에서 어떤 의미를 찾았는지 여기저기 신문에 크게 났던 기억이 납니다. 무대가 어떤 곳입니까? 그냥 노래하는 데가 아니라 ‘신성한 장소’입니다. 오늘날 저를 만들어준 곳인데 건성으로 임할 수는 없지요. 저만 유별난 것이 아니라 모든 가수가 그럴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철저한 준비가 중요하다는 말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까다로운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는 말이다. 사실 패티김에게는 ‘도도하고 깐깐한’ 이미지가 있다. 함부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매사 조심하고 경계하는 듯해서 수더분하고 친근한 맛은 없다. 솔직히 말하면 자존심이 세고 콧대가 높아 보인다.

그는 그런 면모가 어머니의 교육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라고 하면서, 엄격함으로 오랜 세월을 보내다 보니 자신의 실제와 대중들의 인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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