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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부자될 욕심에 눈이 멀었댔지요”

조선족 체류자 안정순씨

  • 글: 이계홍 언론인·용인대 겸임교수 khlee1947@hanmail.net

“부자될 욕심에 눈이 멀었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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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의 삶은 고단하다. 나고 자란 토박이들에게도 벅찬 것이 거대도시 서울의 일상이거늘, 하물며 타향에 건너와 ‘불법체류자’의 멍에를 쓴 조선족 여인의 경우는 말해 무엇하랴. 1990년대 이후 수십만을 헤아리며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조선족 체류자들. 이들의 고된 서울살이를 들여다보았다.
“부자될 욕심에 눈이 멀었댔지요”
청계고가도로가 시작되는 서울 종로구 관철동 삼일빌딩 옆 거리. 날이 저물자 인도는 어느새 포장마차 천막들이 점령해 통행이 불편할 정도다. 영업이 시작될 무렵인 밤 9시경 필자가 찾은 한 포장마차에 10개의 탁자가 놓여있고, 한 구석에는 회사원인 듯한 손님 두 명이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포장마차 뒤켠에서는 두 여인이 바쁜 손을 놀린다. 침침한 조명 아래서도 능란하게 파전을 다듬고 있는 이가 이 달의 주인공 안정순씨(50). 필자가 안씨에게 다가가자 옆에 서서 안씨를 지켜보고 있던 주인 아주머니는 불안한 눈초리로 필자를 훑어본다. 여인 특유의 경계심일까, 험한 세상을 살며 쌓인 불신일까. 때문에 안정순씨를 따로 불러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여전히 주인 여자는 불만스런 시선으로 이쪽을 살핀다.

“포장마차가 불법이어서 (이런저런 이야기 하기가) 불편합니다. 제가 언론에 나가는 것을 주인이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라도 들춰지면 사업하기가 곤란하다는 걱정이 있겠지요.”

분명 조선족이라는 데 경상도 어감이 섞인 한국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전혀 조선족 같지가 않군요. 언제 한국에 오셨는데 그렇게 말을 잘하십니까. 혹시 경상도 쪽에서 살다 오셨습니까.



“아니라요. 제 고향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시 선봉촌은 경상도 사람들이 촌락을 이루고 삽니다. 옌볜(緣邊) 지역은 함경도 사람이 많이 살지만 창춘시는 경상도 출신이 많아서 경상도 말을 쓰지요. 서울에 나온 이후에 한국말을 잘하게 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부터 잘했어요. 다롄에서 한국 사람들을 상대로 민박집을 하면서 근래(요즘 쓰는) 한국말을 많이 익혔댔지요.”

고향을 휩쓸고 간 ‘한국 태풍’

안씨를 소개받은 것은 서울 구로동 조선족교회 최황규 목사로부터였다. 최근 조선족 체류자들의 항의시위가 잇따라 무엇이 그들을 분노케 하는지 궁금해진 필자가 마땅한 취재원을 찾는 중에, 최목사에게서 “딱한 처지의 여인이 있다”며 안씨 연락처를 건네 받았다.

한국 사람에게 속아 재산을 다 날리고, 남편과 이혼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지금은 서울 관철동 한 포장마차집에서 조리사로 일하고 있다는 중년의 조선족 여인. 직함은 그럴 듯해 조리사지만 사실 식모나 다름없다. 남편이던 오미룡씨(52)는 고향인 선봉촌에서 공산당 서기로 일한 엘리트였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살 정도로 부유한 생활을 하던 그녀가 모든 것을 잃고 바다를 건너 싸늘한 도시 한켠에 서게 된 것은 마을을 휩쓸고 간 ‘한국 태풍’ 때문이다.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먼저 그의 서울생활부터 물었다.

-서울살이에 만족하세요?

“지금처럼 돈벌이를 해서 빚을 갚았으면 좋갔시오.”

불편하지만 대략 만족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일당은 6만원 가량. 그러나 액수는 기사에 쓰지 말았으면 하는 눈치다. 오후 6시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7시나 8시 퇴근할 때까지 안주를 만드는 노동량이나 강도에 비하면 누가 봐도 비싼 일당이 아니다. 닭똥집부터 멍게에 이르기까지 모든 안주를 도맡아 만들고, 때로 주인이 나오지 않을 때는 대신 장사까지 한다는 설명을 듣고 보면 더욱 그렇다. 대신 손님들로부터 몇천원에서 최고 3만원까지 팁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안씨는 포장마차를 통해 팁 문화 같은 자본주의의 단맛을 느껴가고 있는 셈이다.

-몇천원은 그렇다 쳐도 2만~3만원씩 팁을 주는 사람들은 무슨 뜻일까요.

“제 신세를 아는 분들이지요. 사는 모양이 안 좋아보이니 동정심에 주는 것이겠지요.”

종로구 이화동에서 단칸방을 얻어 살고 있는 그는 일터인 관철동까지 걸어 나온다. 30분 이상 걸리지만 교통비를 아끼자는 ‘또순이’ 기질 탓이다. 손님들이 더러 팁을 주고 가는 것은 그의 이런 사정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 씀씀이에 놀랄 때가 있지요. 포장마차에서 10만원어치를 거뜬히 먹고 가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대단히 부자인 줄 알았는데 그중에는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결국은 빚으로 술을 사먹는 셈이지요.”

-하루 매상은 어느 정도 되나요.

“어떤 집은 100만원도 번다고 해요. 보통 60만~70만원 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가게 수입에 관해서도 섣불리 말하기가 쉽지않은 모양이다.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다 보면 불편한 게 많지요?

“대신 집세를 안 내고 장사를 하니 그런 고생을 내색해서는 안되지요. 혹간 위생에 문제가 있지 않으냐고 묻는 이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물을 마음껏 사용할 수 없으니 걱정이 없을 수는 없지만 아직 우리 안주 먹고 배탈난 사람은 없시오.”

황급히 기우라고 강변하는 안씨. 괜한 질문을 했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얘기가 우르르 쏟아져 나올 질문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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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계홍 언론인·용인대 겸임교수 khlee19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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