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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부자될 욕심에 눈이 멀었댔지요”

조선족 체류자 안정순씨

  • 글: 이계홍 언론인·용인대 겸임교수 khlee1947@hanmail.net

“부자될 욕심에 눈이 멀었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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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서 한국에 나오게 됐는지 말씀해주세요. 안정순씨 역시 불법체류자죠?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시오.”

-‘본의 아니게’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빚을 받으러 왔는데 상대방이 이리저리 도망만 다니니 그 사람 쫓아다니다 불법체류가 된 거야요.”

고향에서는 손꼽히는 부자로 살던 안정순씨가 하루 아침에 찬바람을 맞게 된 사연은 대략 이렇다.



“남편하고 저는 1993년 겨울 창춘에서 무역업을 한다는 한국인 송씨를 우연히 알게 됐어요. 중국 땅을 밟은 송씨는 영화 촬영사업을 한다면서 비디오로 이곳저곳을 찍어 한국에 상품으로 판다는 말을 했어요. 그런 그가 어느날 우리에게 ‘한국에서 사업을 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어오더라고요. 아는 것도 많고 세상 돌아가는 풍정(물정)도 꿰고 있는 사람인 듯해서 우리 부부는 매일 그에게 매달리다시피 하며 중국 사업을 도와줬댔지요.”

1990년대 초반 조선족 동포들에게 한국은 ‘천국’의 동의어나 진배없었다는 게 안씨의 설명이다. 안씨 부부에게 송씨는 ‘천국으로 가는 연줄’ 같았다는 것. 송씨는 “한국에 중국 본토식 식당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면서 개업 수속을 맡아주겠다고 자청했다. 개업자금은 중국 돈으로 약 100만위안(한화 1억5000만원). 한국에 나간 뒤 송씨는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서울 송파구에 식당을 차릴 가게를 확보해 가계약을 맺었다는 연락이었다.

“그런데 1994년 7월에 때마침 창춘시 정부에서 주최한 무역교류 상담회가 서울에서 열렸어요. 향(饗 : 우리의 면과 군의 중간 단위) 정부 령도(지도자)들과 남편이 대표로 한국으로 가게 됐지요. 그때 송씨는 우리 대표들을 잘 인도하고, 특히 남편에게 각별한 신뢰를 보냈어요. 자기 집도 데리고 가고 전라도 무주에 있는 별장과 땅을 보여주면서 ‘나를 믿고 같이 식당을 해보자’고 거듭 확언을 했댔시오.”

식당을 운영하려면 자신들만으로는 어렵다는 생각에 종업원으로 일할 다른 조선족들의 초청장 수속도 요청했다. 송씨는 쉽게 응했다. 사업이 구체적으로 확대되면서 안씨 부부뿐 아니라 향 정부도 참여하기로 했다. 안씨 부부가 30만위원, 향 정부가 70만위안을 투자한다는 조건이었다.

“1995년 1월에 송씨가 다시 중국에 왔어요. 이때 향 정부에서 40만위안을 송씨에게 내주었습니다. 60만위안은 종업원 7명의 초청장을 보내주면 내주기로 약정했습니다.”

서울로 돌아간 송씨는 몇 달이 지나도 초청장을 보내오지 않았다. 대신 그해 7월 연락도 없이 중국에 들어와 “하얼빈에서 가스관을 수입하려는데 도움이 필요하다”며 남편에게 동행을 청했다. 가스관공장측은 계약서를 쓰면서 예약금 6만위안을 요구했다. 송씨는 미처 자금을 준비하지 못했다며 안씨 부부에게 ‘나중에 두 배로 갚는다’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가스관 수입이 늦어지면 그나마 40만위안도 돌려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반협박에 남편은 급전을 얻어 예약금을 대신 내줬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가스관 수입을 마치고 돌아간 송씨에게서는 더 이상 전화가 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도리 없이 남편이 한국으로 건너왔지만 어렵사리 만난 송씨는 양복 몇 벌이 들어있는 보따리만 던져주고는 사라져버렸다.

빚 독촉에 쫓겨 떠난 고향

그해 가을 서울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기 위해 안씨 부부에게 투자했던 사람들이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자 사정은 걷잡을 수 없었다. 돈을 돌려달라고 거칠게 말하는 사람들이 두려워 사정을 잘 모르는 이웃 마을에서 돈을 빌려와 갚았지만 이자는 계속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시간이 지나자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가세해 집 마당에 몰려와 날이면 날마다 고함을 질러댔다.

안씨 부부는 상의 끝에 서류상의 채무자인 부인 안씨가 몰래 집에서 도망친 것처럼 꾸미기로 했다. 그 길로 안씨는 랴오닝성 다롄시로 갔다. “부부가 짜고 사기를 친다”며 분노한 채권자들은 남편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초등학교 5학년인 막내딸이 놀라서 정신이 이상해졌어요. 아무나 보고 막 욕을 해대고, 눈이 뒤집히는 거예요. 학교에서도 외면당하고, 으름장을 놓는 빚쟁이들한테 놀라고, 결국은 학교도 다니지 못하게 되었지요.”

가끔 집으로 전화를 걸면 막내딸은 “엄마 언제 오느냐”며 울부짖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참혹한 마음에 술과 담배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버티던 그녀는 우연히 한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민박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연히 만난 한국사람이 송씨 거처를 알려줬어요. 내 손으로라도 송씨를 잡아 돈을 받아내겠다고 마음먹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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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계홍 언론인·용인대 겸임교수 khlee19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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