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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숨은 인권 운동가 ⑧

“사형제를 ‘사형’시키는 게 복음정신”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장 이영우 신부

  • 글: 정호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demian@donga.com

“사형제를 ‘사형’시키는 게 복음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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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의 일과는 단순하다. 그들은 미결수 신분이라 모든 작업과 행사에서 제외된다. 30분 정도 밖에서 운동을 하는 것 외엔 하루의 대부분을 감방에서 보낸다. 자해를 염려해 독방은 주어지지 않고 다른 미결수들과 함께 생활한다. 미결수들은 대부분 잡범. 이들에게 ‘흉악범’인 사형수들은 가까이 가기도 두려운 존재다. TV 시청과 독서가 유일한 소일거리며, 사람을 만나는 기회는 가끔씩 찾아오는 면회와 종교집회가 전부다.

사형수들은 대개 세상을 저주하면서 감방생활을 시작한다.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증오로 견딜 수 없이 괴로워하며 복수를 꿈꾸기도 한다.

이신부에게 위의 편지를 보낸 사람은 8년 전 잔인하게 사람을 죽인 조직폭력배 J모씨. 그도 수형생활 초기에는 살기 등등한 낯빛으로 원망과 증오의 나날을 보냈지만, 요즘은 쾌활한 태도로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법정최고형을 받아 ‘최고수’라 불리는 사형수들은 그 명칭부터 죽음의 냄새를 풍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은 사상범이 사형선고를 받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이들은 대부분 살인범이다. 더구나 언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지 모를 운명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사형수들이 하나같이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감옥이라는 공간에 묶여 있지만 그들 역시 일상을 살아가는 생활인이다. 작은 일에 울고 웃고 감동하고, 후배가 들어오면 따뜻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그래서 문 앞에 붙어 있는 빨간딱지만 아니라면 사형수를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이들을 변화시키는 데는 종교의 힘이 크다.

“처음엔 누구랄 것 없이 사회에 대한 적의로 가득하지만, 그들을 진심으로 대하면 이내 마음을 엽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죠. 사형수나 우리나 똑같이 죄많은 인간이니까요.”

사형선고를 받을 만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대개 가정생활부터 평탄하지 못하다. 그들은 사람의 진심어린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절망 속에서 세상을 증오하며 살아왔다. 구치소에 갓 들어온 사형수는 대개 살기를 번뜩인다. 하지만 차츰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얼마 남지 않은 삶이나마 애써 부여잡으려 애쓰기 마련이다. 사형수 가운데 자살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만 봐도 그런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성정이 달라진 사형수가 한둘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어요. 그들의 생명을 앗아간다고 해서 바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국가는 이들에게 기어이 목숨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이신부는 사형수 문제에도 우선 종교적으로 접근한다.

“누가 뭐래도 생명만큼 소중한 게 없습니다. 종교의 기반을 이루는 것은 바로 그 생명입니다. 그러니 생명을 저버리는 것은 종교의 도리가 아니죠.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존중해준 사람이 있었다면 자신의 인생까지 포기해가며 남의 삶을 망치려 하진 않았을 겁니다.”

종신형이 더 무거운 벌

“사형제를 ‘사형’시키는 게 복음정신”

명동 천주교회관 3층 사회 교정사목위원회에서 직원과 대화를 나누는 이영우 신부

사형제 폐지에 가장 큰 걸림돌은 ‘여론’이라는 실체 없는 허상이다. 국회 법사위가 지난해 6월 사형제 폐지 특별법 소위원회만 구성하고 심의조차 하지 않고 있는 명분도 “국민들이 아직 사형제 폐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신부는 “여론도 좋지만, 어떤 관점의 여론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일반인들은 무기형을 불신하는 것 같아요.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도 10년 정도만 살면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출소한 흉악범이 다시 사회를 어지럽히지 않을까 걱정하지요. 물론 흉악범과 함께 살고 싶지 않은 게 국민정서겠죠. 그렇다면 우선 종신형제를 도입하고 20년 이상 수감자에게만 감형을 거론하는 법체계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사형제를 폐지하면 법체계가 무너진다고 오해하는 것도 종신형제에 대한 홍보가 덜 됐기 때문이라고 봐요.”

프랑스도 여론을 따라 사형제를 없앤 것은 아니다. 여론은 오히려 사형제 존속에 손을 들어줬지만, 미테랑 전 대통령은 신념에 따라 사형제를 폐지했다. 그후 결과는 그것이 옳은 결정이었다는 국민의 찬사가 이어졌다.

강력범죄에 대한 예방책으로 가장 먼저 사형제가 거론된다. 사형제가 없다면 ‘사람을 죽여도 살인자는 살아남는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신부의 견해는 다르다.

“사형제가 범죄억제 효과를 낸다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가정입니다. 그런데도 맹신에 가까울 만큼 자주 거론돼요. 100여 개 국가에서 사형제를 없앴는데, 과연 강력 범죄가 증가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범죄예방 효과는 ‘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잡혀서 죄값을 받는다’는 사회적 조건입니다. 이건 범죄수사의 수준을 어떻게 높이냐에 달려 있어요.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범죄를 저지르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완전범죄를 꿈꾸며 사람을 해치기까지 하죠. 흉악범을 사형시킨다고 범죄가 줄어들진 않아요. 사형제가 범죄를 억제한다면 아예 공개처형을 하는 게 낫겠죠.”

인륜을 저버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에게 종신형은 죄값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시각에 대해서도 이신부는 펄쩍 뛴다. “죽을 때까지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오히려 사형보다 더 잔인한 형벌일 수 있다”는 것.

이신부는 사형제도가 있기 때문에 범죄자가 회개를 하고, 종신형제를 도입할 경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주장도 일축했다.

“사형수들은 죽음에 임박했기 때문에 죄를 뉘우치는 게 아닙니다. 자신을 진정으로 인간 대접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뉘우치는 겁니다. 비용 얘기도 그래요. 종신형제보다 사형제가 더 고비용일 수 있습니다. 미결수인 사형수들은 일은 안 하면서 몇 년씩 놀고먹습니다. 하지만 종신형을 사는 죄수는 평생 일을 해야 합니다. 물론, 비용문제가 사형제 폐지론의 본질은 아니지만….”

이신부와 얘기는 나누는데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교정사목위원회를 방문했다. 올 초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신부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이다. 이신부는 예비신부들에게 교정사목이 당면한 과제를 설명했다.

“죄인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을 느끼게 하지만 누군가가 꼭 돌봐야 할 우리의 형제입니다. 우리 위원회는 구치소 세 곳과 교도소 두 곳, 소년원과 분류심사원에서 사목활동을 합니다. 재소자 교화사업, 출소자 재활사업, 교도행정과 재소자 인권개선, 민영교도소 추진, 사형제도 폐지 등이 우리 임무입니다.”

사회사목은 농촌, 도시 빈민, 노동자, 알코올 중독자 등을 돌본다. 주일에 일반 교인들을 챙기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특수사목’이라 통칭한다.

이신부도 신부가 된 후 서울 변두리 지역을 돌며 7년을 보내다 선배 신부의 인도로 교정사목의 길에 들어섰다. 신학대학 시절 밀알노동사목연구회에서 농촌 봉사활동과 도시 빈민 체험을 한 것이 특수사목으로 진로를 바꾼 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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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호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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