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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 취재

만루 위기 맞은 ‘구원투수’ 정운찬

서울대 개혁 실험 성공할까

  • 글: 김현미 khmzip@donga.com

만루 위기 맞은 ‘구원투수’ 정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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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서울대 개혁론으로 상을 차린 이 토론회가 기탄 없는 대화 속에 열기를 띨 수 있었던 데는 정운찬 서울대 총장에 대한 기대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난 5월 이기준 총장이 사외이사 겸직 논란과 판공비 과다 지출 등 도덕성 시비에 휘말려 중도하차하자 교내 젊은 개혁파 교수들 사이에서 대안으로 떠오른 인물이 정운찬(56) 당시 사회대 학장이었다.

예년에 비해 치열한 선거전을 치른 이번 서울대 총장선거에서 5명으로 압축된 후보들은 일제히 ‘서울대 위기론’을 외쳤다. 그 가운데 최연소이며 개혁적 성향이 뚜렷한 정운찬 총장이 55%의 지지를 얻어 제23대 서울대 총장에 임명됐다.

서울대 구성원들이 정총장에게 거는 기대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평소 온화한 성품과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이해관계에 따라 사분 오열된 대학 공동체를 봉합하고 민주적 절차에 따라 합의를 도출해 달라는 것과, 정부의 재벌 및 경제정책을 끊임없이 비판해온 칼날을 세워 교육인적자원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서울대 구조조정을 견제해 달라는 것이다.

정총장의 첫 업무는 서울대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권위주의 벗기기였다. 취임식을 앞두고 200여평 규모의 총장 공관으로 이주하는 대신 자신의 40평 아파트에 계속 거주할 의사를 밝혀 화제를 모았다. 권위주의의 상징인 총장공관을 허물어 주택 없는 교수들을 위해 임대 아파트를 짓겠다는 게 그의 선거 공약이기도 했다.

취임 두 달여 만에 가진 서울대 직원 소양교육에서도 비서실의 높은 칸막이를 예로 들며 관료주의와 행정편의주의를 질책했고, 친절과 봉사의 원칙을 강조했다. 이기준 전 총장 시절 총장실 점거농성을 벌여 무기정학 처분을 받은 학생회 간부 3명에 대한 징계를 해제한 것이나 여교수 채용비율을 높이겠다는 소신 역시 사회적 요구와 흐름을 제대로 짚었다는 평이다.



금년도 서울대 국정감사 때도 정총장은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을 유연하게 방어했다. 국회 교육위 소속 한 의원은 “2년 전 국감 때 서울대 교수 충원에서 동종교배 현상이 지적되자 이기준 전 총장은 ‘다른 대학에서 교수를 뽑고 싶어도 서울대학 출신이 더 나은 데 어떡하겠느냐’며 뻣뻣한 자세로 일관해 눈총을 받은 반면, 정총장은 차근차근 해명해서 무난히 넘겼다”며 행정경험이 적다는 우려가 기우였음을 확인해 주었다.

너무 일찍 보여준 카드 ‘지역할당제’

그러나 너무 일찍 터뜨린 ‘지역할당제’가 정총장의 발목을 잡았다. 파문의 진원지는 총장 취임식이 열리기 전인 7월22일 MBC 인터뷰였다. 기자로부터 ‘서울대 대학입시를 개선할 생각이 없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정총장이 너무 솔직하게 소신을 밝혔던 것.

“서울대 입시제도를 다양화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를 인구비례해서 쿼터를 주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5000명을 뽑으면 2000명에 대해서는 쿼터를 정해서 다시 1000명은 내신, 1000명은 수능으로 뽑는 식의 다양성을 추구하겠다”(‘박영선의 인터뷰 사람향기’ 중에서).

정총장의 지역할당제 발언이 어느 날 불쑥 나온 것은 아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어렵게 공부한 자신의 체험론과 최근 서울대가 강남 8학군의 대학이 되어 간다는 우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력·학벌주의의 병폐 등이 이처럼 획기적인 조치를 강구하게 했다.

그러나 발상은 참신했어도 발표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는 게 교육계의 중론이다. 정총장은 지역할당제에 대해 “여러 교수와 의논해야 할 문제” “개인적인 생각” “형평의 원칙을 많이 따지는 우리 사회에서 상당한 반발이 있을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이 인터뷰가 나간 후 신중하지 못했다는 지적과 함께 역차별론과 같은 비판이 쏟아졌다.

그가 언급한 지역할당제는 미국의 ‘적극적 차별금지 조치(Affirmative Action)’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1960년대 미국은 ‘다양한 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저소득층이나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을 예방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고용과 대학입시에 ‘할당제’ 개념을 도입했다. 최근 서울대 신입생의 반 이상이 화이트칼라 계층 자녀이며 대도시 출신이 4분의 3이 넘는 등 지역과 계층의 불균형이 뚜렷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인구비례에 의한 지역할당제’는 꽤 설득력 있고 매력적인 제도임이 틀림없었다.

정총장은 8월13일 출입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좀더 분명하게 지역할당제 방안과 도입 시기를 밝혔다. “미국 하버드대도 사우스다코타주 같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의 학생들을 쿼터제로 뽑고 있다. 임기(2006년)내 각 군(郡)별로 일정 수의 학생들을 선발하는 ‘지역할당제’를 도입하고 전국의 각 군에서 1~2명씩 의무적으로 선발한다 해도 전체 인원은 200~300여명에 불과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처음 신입생 2000명을 쿼터로 뽑겠다고 했던 것과 비교하면 많이 후퇴한 내용이지만 이 제도를 소신대로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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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현미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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