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계 뉴스에 따르면 방송 3사가 방영하는 드라마 가운데 단막극이나 사극을 뺀 21편 중 19편이 삼각 관계를 다루고 있다. 정상적인 부부관계나 정상적인 사랑으로는 시청률을 높일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방송가에 형성돼 있는 형편이다. 삼각관계의 패턴도 바뀌어 과거에는 ‘미워도 다시 한번’처럼 한 남자와 두 여자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이 주였지만 요즘은 한 여자와 두 남자 문제로 바뀌었다. 남편과 애인 사이에서 방황하는 주부의 이야기를 얼마나 실감나게 그려내느냐에 드라마의 시청률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전원일기는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집권 이후 불륜 퇴폐 드라마를 정화한다는 바람이 불면서 MBC가 대안으로 내놓은 작품이다. 시청률에 얽매이지 않고 공해 없는 농촌 드라마로 잔잔한 감동을 전달하겠다는 기획의도였다. 1980년 10월21일 차범석 극본, 이연헌 연출로 첫 방송 ‘박수칠 때 떠나라’를 내보낸 후 그 동안 작가가 14번, 연출자가 13번 바뀌었다. 대표적인 작가는 김정수씨로 12년 간 집필하면서 ‘전원일기’ 전성시대를 만들었다.
중년에 아버지 역을 맡았던 최불암씨는 이제 환갑을 넘어섰고 어머니 역을 맡은 김혜자씨도 극중 부부로 최씨와 22년 동안 해로했다.
22년간 해로한 극중 부부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전원일기를 보는 왕 애청자입니다. 저의 고향이 농촌이라서 전원일기를 보면 항상 따뜻해지곤 했는데 그런 마음의 고향이 사라져버리면 정말 허탈할 것 같습니다.’
‘고향을 보는 듯 그렇게 봐왔습니다. 종영 소식을 접하니 허전하고 섭섭해집니다. 원래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아 다른 연속극은 아는 게 없고 전원일기만 보거든요.’
최근 MBC 홈페이지 ‘전원일기’ 시청자 의견에는 종영 소식을 접한 시청자들의 아쉬움이 하루 100여건 씩 올라오고 있다. MBC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전원일기’는 제작진이나 출연자들 사이에서 내년 초 종영을 기정사실화한 분위기이다. 최불암 김혜자씨를 포함한 출연진 대부분의 의견은 첫회 제목처럼 ‘박수칠 때 떠나자’라고 한다.
전원일기 22년의 주역 최불암 김혜자씨가 절정을 달리는 인기인이다보니 공동 인터뷰 시간을 잡기가 무척 어려웠다. 스스로를 ‘집 귀신’이라고 칭하는 김혜자씨보다 최불암씨가 시간을 내기 더 힘들었다. 최씨가 장소와 시간을 여러 차례 변경한 끝에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1층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장소에 김혜자씨가 먼저 나타났다. 종업원에게 ‘인터뷰 녹음을 하려는데 음악을 꺼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하자 김씨는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돼요”라고 말렸다. 그러나 여 종업원은 인기 연예인의 등장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맞으며 음악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추어주었다. 최씨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빠듯한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곧바로 질문에 들어갔다.
―‘전원일기’의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라는 평가가 있더군요. ‘전원일기’의 어머니 상에 갇혀 연기자로서 자질을 폭넓게 발휘하지 못했다고 할까요.
김혜자 : “옳은 말이라고 생각해요. ‘전원일기’ 외에 작품을 할 때는 굉장히 신중하게 골라야 했습니다. ‘전원일기’의 어머니 상이 다른 작품에 중복되면 안되니까요.”
―다른 작가들이 서운할지 모르지만 김정수씨가 10년 동안 집필할 때가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차범석 극본으로 출발했지요.
김 : “차범석씨는 얼마 쓰지 않으셨어요. 김정수씨가 쓸 때가 전성기였죠. 김정수씨가 ‘전원일기’를 제일 잘 표현한 작가라고 할 수 있어요. 김정수씨는 똑같은 인물, 똑같은 배경으로 10년 가량 쓰다보니 지쳤는지 거의 도망치다시피 이 프로를 떠났어요. 그 때는 지금의 어떤 드라마보다 인기가 있었습니다. ‘전원일기’를 안 보면 그 다음날 대화가 안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전원일기’에서 뭘 먹는 장면이 나오면 이튿날 시장에서 그 식품이 동이 난다고 할 정도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