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이면 조기축구를 하는 청년들이 공 차는 소리에 잠이 깨고, 저녁이면 주위가 어둑어둑해서 공이 보이지 않을 무렵까지 시합이 이어지곤 한다. 아무리 바쁜 농번기라 해도 잠시 짬을 내어 ‘한 게임’을 벌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동네사람들이다.
그러니만큼 실력도 대단해서 하귀리는 제주시의 외도동, 화북동과 함께 제주 전역에서 열리는 각종 마을 대항 축구대회의 3강으로 꼽히곤 했다(솔직히 말해서 그 3강 중에서는 하귀리가 가장 승률이 낮은 편이었다).
그런 마을 대항 축구대회 중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것이 바로 외도동에서 열리는 ‘8·15기념 축구대회’다. 제주시와 애월읍 팀들이 주로 참가하는 이 대회는 지금도 열리고 있는데 이미 그 연륜이 50회를 넘어섰다(요즈음도 지나가다 보면 그 주경기장이던 외도초등학교에는 어린이용 골문과 성인용 골문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우리 하귀리로서도 가장 비중을 높게 치는 대회가 바로 그 ‘외도 축구대회’다. 라이벌인 외도동의 홈에서 열리는 대회이니 더욱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8월초가 되면 벌써 마을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우선 하귀리 대표팀에 선발되려면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 수준이 수준인지라 고교나 대학에서 당당히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도 떨어지기 일쑤다. 자연히 연습경기가 치열해진다.
초등학교 한구석에 있는 늙은 팽나무 그늘에는 마을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사람들이 모여 경기를 유심히 살펴본다. 골키퍼는 누가 낫고, 수비는 아무개가 역시 출중하고 공격수로는 또 누가 적당하다…. 의견이 엇갈리는 사람들끼리 목소리를 높이다 못해 멱살을 잡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지곤 한다. 며칠 동안의 설왕설래를 거쳐 결국 선수 명단이 확정된다. 대부분 20대의 혈기왕성한 청년들이지만 개중에는 마흔이 가까운 노장이나 새파란 중학생이 끼여들어서 화제가 되기도 한다.
고향을 떠나 객지생활을 하는 선수들에게는 즉시 귀향하라는 급보가 날아간다.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대회 당일만이라도 합류하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이런 선수들이야말로 초일류급인 셈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는 것이 군에 입대한 선수들의 경우다. 이들을 위해서 동네의 유지급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읍장(당시는 면장)을 만나서 소속부대로 이른바 ‘관보’를 치게 하는 것이다. 부모 중 누군가가 위독하다든지,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든지 하는 허위 전보가 군부대로 날아간다. 물론 불법이지만 워낙 동네사람들의 요구가 강력하니 읍장으로서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군복무중인 선수는 이렇게 조작된 관보를 받고 1주일쯤의 휴가를 얻어 귀향하게 된다. 이들이야말로 진짜 실력파들이다. 이른바 ‘관보 선수’들이다. 사정을 잘 모르는 타지 사람들도 ‘관보 선수’라는 말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