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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에세이

동네축구 이야기

  • 글: 고원정

동네축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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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보 선수’보다 더 행세를 하는 것은 바로 ‘도 선수’다. 제주도를 대표해서 전국대회에 출전한 경력이 있는 선수를 말한다. 이번 팀에는 ‘도 선수’가 몇 명에 ‘관보 선수’가 몇 명이다…. 이것만으로 전력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팀이 모양새를 갖추면 마을의 이장이나 청년회 간부들은 가가호호를 순방하기 시작한다. 유니폼도 사고 선수들 밥도 해먹이고 하려면 경비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 생계가 곤란한 집이 아니면 반드시 성의 표시를 해야만 한다. 현금이 있는 사람은 현금을 내고, 아니면 쌀 한 됫박을 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 경비를 기반으로 선수들은 합숙훈련에 돌입한다. 초등학교 교실을 한 칸 빌려서 책걸상을 한쪽으로 치워놓고 숙소로 쓰는 것이다. 경비가 넉넉할 때에는 식당에서 밥을 대어먹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음식 솜씨 좋은 아줌마들이 번갈아가며 식사 당번을 맡는다. 운동장 한구석에 솥을 걸어놓고 해먹는 그 밥이야말로 별미요 진미가 아닐 수 없다.

마을 처녀들에게 축구선수는 선망의 대상

한창 나이의 청년들을 모아놓았으니 말썽이 생기지 않을 리 없다. 밤늦게까지 술타령을 하다가 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동네처녀들과 어설픈 풋사랑에 빠지는 선수들도 있다. 그 처녀들에게도 축구선수들은 선망의 대상이었으니 한 대회가 끝나고 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한두 건의 스캔들이 생겨나게 마련이었다. 축구 때문에 부부가 된 경우도 결코 드물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도 팀의 임원진은 유니폼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한푼 두푼 추렴한 돈으로 충당해야 하니 제대로 된 유니폼을 맞춰 입기 어려웠다. 결국 하의는 수영팬티에 상의는 러닝셔츠를 유니폼 대신 입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거기다 매직으로 팀 이름과 백넘버를 적어 넣는다.

이렇게 급조된 유니폼은 한 경기를 치르고 나면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어 번호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재질이 러닝셔츠이니만큼 얼른 빨아서 말리면 다음 경기에는 이상 없이 입고 나갈 수 있다. 영 곤란할 경우에는 새 셔츠를 하나 사오면 된다.

그러면 축구화는? 이 점만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당시 시골축구대회는 아예 축구화 착용을 금지하는 게 보통이었다. 모두 축구화를 갖추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두 명만이 축구화를 신고 나서면 다른 선수들이 다치기 쉽다는 게 명분이었다.

결국 하얀 운동화를 갖춰 신은 정도에 그치게 된다. 이 정도면 출전준비가 끝난 셈이다. 객지에 나가 있는 ‘도 선수’들도 속속 귀향하고 ‘관보 선수’도 도착해서 사기를 북돋운다. 출전 전야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돼지를 한 마리 잡게 돼 있다. 거금을 쾌척하는 독지가가 없으면 울며 겨자 먹기로 마을 이장이 부담을 해야만 한다.

판정에 불만이면 운동장에 드러눕기도

그렇게 잡은 돼지로 선수들은 물론 마을 사람들이 포식을 하고 나면 대회 당일이 된다. 선수단에는 박카스며 과일, 달걀 등이 들어와 쌓이고 온 마을 사람들이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대회장을 향해 떠난다.

이틀에 걸쳐 열리는 8·15기념 외도축구대회의 참가팀은 대개 15∼16개 팀이다. 그러니만큼 90분 경기를 할 수가 없어서 전·후반 50분, 혹은 60분씩 진행하는 게 보통이다. 결승까지 올라가려면 4경기를 해야 하는데 운이 없으면 하루에 3경기를 벌이는 경우도 있다.

이 도 축구대회의 우승후보는 늘 홈팀인 외도동과 우리 하귀리로 압축되곤 했다. 두 팀이 결승에서 만나는 것이 최상의 흥행카드지만 때로 8강전이나 4강전에서 만나 숙명의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두 팀간의 맞대결에서 이기는 팀이 사실상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었으니 늘 불꽃튀는 접전이 벌어지게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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