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호

“비싸서 안 사면 빌려준다”고객 감동 이끈 발상의 전환

  • 글: 박용선 웅진코웨이개발 대표이사

    입력2003-03-24 18: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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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환위기, 그리고 끝 모를 불황. 모두가 머리를 싸맸다. 그때 기막힌 아이디어가 튀어나왔다.
    • “정수기가 비싸서 안 산다면 빌려주면 어떨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후 정수기 렌털 사업은 업계의 주류 마케팅으로 자리잡았다. 문제를 뒤집어보면 해결책이 보이고, 해결책은 바로 문제 안에 있는 것이다.
    “비싸서 안 사면 빌려준다”고객 감동 이끈 발상의 전환

    직원들과 마라톤을 완주하고 단결을 다지는 박용선 사장(앞줄 가운데 앉은 이)

    지금은 누구 한 사람의 힘만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며, 또 그래서도 안 되는 시대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1970∼80년대처럼 ‘영웅’과 같은 CEO에 의존하는 시대가 아니다. CEO와 모든 식구(웅진에서는 사원들을 ‘식구’라고 부른다), 그리고 고객이 하나가 되어 기업을 이끌어간다.

    1998년 필자가 CEO로 취임한 이후 5년간 웅진코웨이개발의 매출액은 800%가 넘는 성장을 기록했다. 이런 성과는 모든 식구들이 함께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소중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고객의 힘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늘 식구들과 고객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

    CEO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정확한 판단과 용기, 그리고 실천일 것이다. CEO는 궁사와 같다. 그는 어느 방향으로든 화살을 날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지만, 누구도 이 화살을 대신 쏘아주지 않는다. 화살을 쏜 후의 모든 결과는 전적으로 궁사의 몫이다.

    판단은 CEO에게 권리이자 의무다. 최종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리기도 하지만, 최적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의무기도 하다. 판단을 내린 이후에는 스스로에게 힘을 실어줄 ‘파도’를 만들어야 한다. 인간관계는 꿈을 실현시키는 가장 가치 있는 자산 가운데 하나다. 용기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자석과도 같다. 판단이 서고 용기 백배했다면 주저 없이 실천해야 한다. 나폴레옹은 “민첩하고 기운차게 행동하라. ‘그렇지만’ ‘만약’ ‘글쎄’ 같은 말들을 앞세우지 말라. 그것이 승리의 제1조건이다”고 했다.

    어린 시절, 1남 5녀의 귀남(貴男) 집안에서 자란 내 주변에는 언제나 관심과 사랑이 넘쳤다. 그런 내게 판단, 용기, 실천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심어준 것은 다름아닌 운동이었다. 코흘리개 때 매형에게 이끌려 접하게 된 태권도는 내 성격을 활기차고 외향적으로 바꿔놓았다. 또한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야구는 민첩한 판단력과 대담한 용기, 그리고 강한 승부욕을 요하는 운동이다. 그때 야구를 하면서 밴 근성이 지금 와서 CEO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맑고, 밝고, 붉게

    ‘평사원에서 CEO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

    요즘 내가 자주 듣는 과분한 평가다. 그래서인지 그 ‘비결’을 물어오는 사람이 많다. 그럴 때마다 ‘열정’이라는 한 단어를 답으로 내놓는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 문학가 발자크는 “참다운 열정이란 아름다운 꽃과 같다. 그것이 피어난 땅이 메마른 곳일수록 한층 더 아름다운 것이다”고 했다. 나는 지금까지 열정 하나로 직장생활에 최선을 다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내 인생철학이자 경영철학은 ‘맑고, 밝고, 그리고 붉게’다. 누구든 거짓없이 대하고,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정열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내가 CEO의 임무라고 강조하는 판단, 용기, 실천과도 무관하지 않다.

    무릇 CEO는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밝은 사고로 용기를 불어넣으며, 정열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성경에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사랑이 제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는 ‘맑고, 밝고, 그리고 붉게’ 중에서 ‘붉게’를 으뜸으로 꼽는다. 주위를 둘러보면 자기 일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노력해 뛰어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런 이들을 흔히 ‘프로페셔널’이라고 일컬으며, 그들처럼 되고 싶어하는 욕심을 갖고 있다. 여지껏 그런 프로페셔널치고 열정적이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열정적인 사람을 좋아한다. 열정적인 사람에게서는 항상 에너지가 넘치고, 그런 에너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전이(轉移)된다. 무기력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나까지 자신감이 없어지고 비관적으로 변한다. 반면 열정적인 사람 곁에 있으면 용기와 자신감이 샘솟는다. 나 또한 늘 열정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그런 에너지를 주변 식구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그래서 “당신과 함께 있으면 즐겁고 힘이 솟는다”는 말을 듣고 싶다.

    1996년은 내 인생에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만든 해다. 나는 1981년 헤임인터내셔널에 입사해 근무하던 중 1992년 웅진출판의 경리실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1994년 웅진미디어 관리이사로 한번 더 옮겼다. 1996년에는 그룹 종합감사실장으로 부임했다. 1996년을 잊을 수 없는 한 해로 꼽는 이유는, 열정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넓은 안목을 키웠기 때문이다. 그룹 전체의 상황을 살피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동안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폭넓은 인간관계도 구축할 수 있었다.

    1997년 10월 웅진코웨이에 대해 감사를 실시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1997년 하반기에는 금융위기로 인해 국내 산업 전반에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실시한 고객 만족도 조사에서 웅진코웨이는 25%라는 낮은 평가를 받았다. 감사실장으로서 경영 개선안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했다. 1997년 11월 윤석금(尹錫金) 현 웅진그룹 회장을 비롯한 식구 모두는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을 찾기 위해 매일같이 밤을 새우며 강행군을 거듭했다.

    “정수기가 비싸서 안 사니 빌려주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그 과정에서 나왔다. 엄청난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지금은 업계의 주류(主流) 마케팅으로 자리잡은 렌털 시스템이다. 합리적인 소비 문화에 목말라했던 고객들은 이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옛말처럼, 사실 뒤집어보면 너무도 간단한 해결책이 있었던 것이다. 해결책은 바로 문제 안에 있는 것이다.

    대(對) 고객 서비스도 혁신이 필요했다. 기존의 정수기 관리 주부사원 개념을 새롭게 재구축했다. 그것이 바로 웅진코웨이개발을 부동의 업계 1위로 올려놓은 ‘코디(Coway-lady)’다. ‘코디’라는 네이밍은 전직원 공모를 통해 뽑은 것이다. 이로써 웅진은 외환위기라는 힘겨운 고비에서 비단 웅진뿐 아니라 업계 전체에 희망을 주는 혁신적인 돌파구를 마련한 셈이다.

    “사업성은 미래 가치로 판단하라”

    1998년 웅진코웨이개발 대표이사로 취임한 나는 이러한 바탕 위에 코디 업무 규정, 운영 시스템, 유니폼, 제도 등을 마련하고 실천해나갔다. 고객과 직접 대면하는 코디들에겐 친절과 전문성이 생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절 전문강사를 채용했고,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CS교육부를 신설하고 친절아카데미, 기술아카데미 등의 강좌를 마련했다. 1997년 25%에 그쳤던 고객 만족도는 그런 노력에 힘입어 1998년 하반기 조사에서는 50%를 넘어섰다. 현재 웅진코웨이개발의 고객만족도는 85%를 상회, 국내 업체 중 3년 연속으로 고객 만족도 1위 기업으로 선정됐다.

    모든 직장인의 꿈이라는 CEO의 중책을 맡았을 때 나는 41세였다. 현재 웅진그룹에는 그룹을 대표하는 4개의 계열사가 있다. 웅진코웨이개발을 비롯해 웅진코웨이, 웅진닷컴, 웅진식품인데, 이들 모두를 40대의 젊은 CEO들이 이끌어가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룹 내에서 전례가 없던 파격 인사였다.

    대표이사가 되기 전 종합감사실장으로 일했기에 만만치 않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실제로 CEO가 되고 보니 어려움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렌털 사업을 본격적으로 론칭하기 위한 도입 작업부터 진통을 겪었다. 실무진에서는 “손익분기점에 이르는 데만도 2년 이상이 걸릴 만큼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반발심 같은 것도 있었다. 특히 하급 직원들에게는 조직과 직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때 내가 보여줘야 했던 것이 바로 용기였다. 실무진에게 렌털 사업의 가능성을 설득하는 데 애를 많이 썼다. 이 사업을 통해 더 많은 고객이 좋은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자신감과 믿음을 갖고 사업성을 현재 가치가 아닌 미래 가치의 잣대로 판단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렇듯 많은 사람을 설득하려면 많은 만남을 가져야 했다. 그래서 늘 집무실 문을 열어놓고 누구든지 할 말이 있으면 들어와 하도록 했다. 틈만 나면 여러 부서를 돌며 부서원들의 이름과 얼굴을 외우고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호프데이’라는 날을 정해 직원들의 개인사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서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려고도 했다.

    그 결과 렌털 사업은 초기의 난관을 이겨내면서 서서히 붐을 이루기 시작했고, 본 궤도에 오른 후에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렌털 사업 도입 첫 해인 1998년에는 890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는데, 지난해에는 매출이 7400억원으로 늘어나 800%가 넘는 성장을 기록했다. 렌털 회원 수 또한 1998년 4만명이던 것이 2002년에는 170만명을 돌파해 40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매월 평균 10만명의 신규 렌털 회원이 등록해 현재는 렌털 회원 200만명, 멤버십 회원 3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처음엔 이 사업에 반신반의했던 동종 업체들이 앞다퉈 렌털과 코디를 벤치마킹했다. 렌털 마케팅을 통해 10% 안팎에 머물던 국내 정수기 보급률을 3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이제 웅진코웨이개발이라고 하면 대뜸 ‘코디입니다’ 하는 광고 멘트를 떠올릴 정도로 코디는 우리 회사의 대명사가 됐다. 나는 지난해까지 100회가 넘게 실시된 신입 코디 입문교육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그만큼 코디에 대해 애착이 크다. 1998년 당시 80명의 요원으로 시작했던 코디는 어느덧 8200여 명을 헤아리게 되어 새로운 직업군으로 자리잡았다. 1999년에는 그 독특함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노동부로부터 ‘신지식인’으로 선정됐고, 올해 3월에는 역시 노동부로부터 남녀 고용평등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또한 이들이 일궈낸 성과를 통해 사회에 대한 기업의 의무도 성실하게 수행, 지난 3월3일 제37회 납세자의 날에 산업포장을 받기도 했다.

    코디가 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매우 단순한 서비스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고객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해결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수기는 필터 교환 등 사후 관리가 생명이다. 하지만 고객이 직접 필터 교환주기를 체크하거나 교체하기란 여간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을 제조업체가 나서서 해준다니 고객들로서는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코디를 30∼40대 여성으로만 구성한 것은 정수기의 주 사용 고객인 주부들에게 편하게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이 전략은 적중했다. 남편은 직장으로, 자녀들은 학교로 보낸 후 혼자 집에 남아 친근한 대화상대가 없는 주부들에게 코디는 육아와 교육, 건강 문제 등 다양한 분야의 상담자 역할을 하며 자연스럽게 ‘정(情) 마케팅’을 펴나간 것이다.

    회사는 코디들을 더욱 친절하면서도 전문적인 인력으로 양성하기 위해 철저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6단계의 서비스 교육과 5단계의 기술교육을 통해 확실한 서비스 요원으로 거듭나게 했다. 이들의 ‘깐깐한 서비스’가 새로운 브랜드의 신뢰도를 높이고 신규 구매는 물론, 계열 제품의 구매까지 유도하고 있다. ‘서비스=세일즈’라는 내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돈 주고 못 사는 인간관계

    눈웃음을 짓는 눈매 때문일까. 나는 동안(童顔)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기분 나쁘지 않은 말이다.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인지는 모르나, 유머감각도 꽤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영국의 작가 G. K. 체이스톤은 “천사가 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을 아주 가볍게 만들기 때문이다”고 했다. 내가 그런 인상과 유머감각을 지닌 것은 참으로 행운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는 인간적인 CEO이길 원한다. 그래서 직원들과 마라톤도 함께하고, 매월 축구회에서 같이 땀을 흘린다. 시합이 끝나면 직원들과 어울려 막걸리도 마시고 목욕도 한다. 나는 그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반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돈 가지고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인데, 그것이 바로 인간관계다.”



    언론매체와 종종 인터뷰를 할 때면 “CEO로서 가장 큰 보람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명쾌하게 답한다. “쾌적한 환경을 통해 고객들에게 건강과 행복을 제공하고, 많은 여성에게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준 것”이라고. 이것이 내게는 가장 보람차고 뿌듯한 일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는 기회를 가진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나는 어느 선배가 들려준 다음과 같은 말씀을 자주 떠올린다.

    “내가 불편하더라도 이를 통해 상대방이 편해지면 그것은 반드시 해야 하고, 반대로 내가 편해지고 이를 통해 상대방이 불편해진다면 그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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