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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욱·박수룡의 화필기행

한강 두물머리

둘이 하나가 되는 화려한 의식

한강 두물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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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북쪽에서 남서로 흘러내리는 북한강과 강원도 남쪽에서 북서로 달려오던 남한강이 느닷없이 하나의 강으로 합쳐지는 모습은 참으로 장엄하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전혀 다른 골짜기를 흐르던 두 개의 강이 각각 용문산과 중미산 계곡을 빠져나오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두물머리로 모여든다.

남·북 두 강은 하나가 되며 합치기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쪽빛을 발한다. 듬직한 너비와 깊이를 함께 갖추고 생명을 나눠주며 가꾸는 젖줄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두물머리 느티나무 제단에 놓인 촛불들은 바로 그렇게 둘이 하나가 되는 화려한 의식을 꼭 이루어내고 말겠다는 염원을 담아 타오르지 않았겠는가.

유장한 강에서 배우는 애민정신

합수한 한강이 서울 쪽으로 흐르며 처음으로 물굽이를 마주치는 곳이 남양주시 능내리다. 운길산 자락이 강 복판으로 뻗으며 하남과 광주의 틈새를 비집고 앉은 듯한 형세를 취한 여기서 조선 후기의 대학자 다산 정약용이 나고 죽었다. ‘목민심서’를 포함, 500여 권의 책을 써 실학 체계를 완성한 다산은 전라도 강진 유배 18년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다시 18년을 지낸 후 세상을 떴다.



“지식인이란 시대의 환부가 어디며, 치료를 위해 어떤 처방을 해야 하는지 항상 깨어 살펴야 한다”며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개혁을 부르짖은 다산의 철학은 두 강이 합쳐 새롭고 더 큰 강을 이루는 한강의 흐름과 빼박은 듯 닮았다. 그가 태어나서 묻힌 능내리 마재는 양평 두물머리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곳. 두물머리에서보다 오히려 더 확연히 남한강 북한강의 물줄기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하나로도 완벽한 강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거늘 둘이 합쳐 흐름을 바꾸고 깊이와 너비를 더하는 한강을 바라보며 어린 다산은 ‘그처럼 살리라’고 다짐하지 않았을까. 때론 거칠 것 없이 무섭게 몰아치고 또 때론 한없이 인자하게 보듬는 큰물의 성벽처럼 그는 부패 관리에겐 날 선 개혁의 칼을 들이대고 백성과는 고락을 함께하는 애민정신을 가다듬었을 것이다.

다산의 생애 또한 묘하게도 한강이 합수하는 그곳 지형과 닮았다. 그는 일흔다섯의 생애 중 절반은 18세기, 나머지 절반은 19세기를 살았다. 벼슬살이 18년, 유배생활 18년에 말년 18년은 한강변의 고향에서 보냈다. 그가 살던 시기는 조선왕조의 몰락 100년 전으로 나라 안에선 봉건정치의 폐단이 드러나고 새로운 시대를 맞으려는 새 기운이 싹트던 때였다. 강이 합치듯 역사적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1794년 경기도 암행어사로 명을 받은 다산은 부패한 지방관리의 무릎을 꿇리는가 하면 가난한 농가의 마당에 앉아 백성의 고통을 덜어줄 방법을 늘 고민했다 한다. 그때 지은 시, ‘폐단과 어지러움 뿌리째 못 뽑으면/ 공황이 다시 온들 어찌 바로잡으랴’는 구절이나 ‘다른 벼슬은 다 구해도 목민의 벼슬은 구하는 것이 아니다’는 경구에서 끊임없이 세상과 백성을 걱정한 다산 사상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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