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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미의 달콤쌉쌀한 스위스 <마지막 회>

임자 없인 못 사는 사람들

‘커플 천국 싱글 지옥’

  • 글·사진 신성미|在스위스 교민 ssm0321@hanmail.net

임자 없인 못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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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위스인들은 모든 면에서 고집스러울 정도로 안전 제일주의를 강조한다. 결혼도 마찬가지. 이들은 함께 살아보지도 않고 결혼하는 것을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혼 전 동거는 상대방과 잘 맞는지 테스트해볼 가장 실용적인 방법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혼율이 높은 이 나라에서 커플이 살아가는 법.
처음 스위스에 살러 왔을 때 나는 핑크빛 색안경을 끼고 있었다. 애틋하게 장거리 연애를 하던 스위스인 남자친구(지금의 남편)와 미래를 약속하고 결혼을 준비하려고 왔으니 스위스의 산과 호수는 물론 들판에서 풀 뜯는 소들까지 모든 게 달콤해 보일 수밖에.

핑크빛 색안경을 끼고 우리 커플을 세상의 중심에 놓아도 모자랄 판이었지만, 그런 내게도 영 적응이 안 되는 문화가 스위스를 지배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우스갯소리로 듣던 ‘커플 천국 싱글 지옥’이 바로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야 이미 임자가 있으니 별 상관은 없었지만 오랜 세월 싱글로 살아온 내게 스위스의 커플 중심 문화는 참 가혹하게 느껴졌다.



소개팅, 미팅은 없다

그렇다. 정말 스위스 사회는 커플 중심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커플이란 나이 및 결혼 여부와는 상관없다. 결혼식 때 받은 축하 카드에도, 크리스마스나 생일 때 받은 카드에도, 친구들이 여행지에서 보내오는 엽서에도 모두 발신인은 커플 양쪽의 이름으로 돼 있다. 심지어 일상적으로 안부를 주고받는 문자메시지나 채팅에까지 서명처럼 커플의 이름을 나란히 적어 보낸다. 예를 들어 “성미, 잘 지내? 모처럼 날씨가 좋네. 주말에 무슨 계획이 있어? 라파엘이랑 주말 잘 보내! 슈테판 & 카린으로부터.” 이런 식이다. 결혼식 하객을 초대할 때도 파트너가 있는 하객이라면 당연히 2인1조로 초대한다.

친구들을 만날 때 여자들끼리 또는 남자들끼리 만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커플 동반으로 만난다. 한국에서 친구들을 만날 때 그들의 남자친구들까지 다 함께 만난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오히려 서로 잘 알지 못하는 남자친구들까지 모이는 것을 모두가 어색하게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막상 친구 결혼식에서 보는 친구 신랑은 낯선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스위스인들은 친구 결혼식에서 보는 친구의 배우자가 낯선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평소에도 커플들끼리 자주 만나기 때문에 처음엔 잘 모르는 사이였어도 점차 친구의 남자친구, 친구의 여자친구와도 친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이런 문화 덕분에 남편 친구들의 파트너들과도 많이 알게 됐다. 외국인인 나로서는 현지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에 좋은 기회다.

인구도 적고 초저녁만 돼도 거리가 한산한 이 심심한 나라에서 스위스인들은 어쩌면 그렇게 제 짝들을 용케 찾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소개팅이나 미팅에서 적극적으로 애인 찾기에 나서는 데 비해 스위스에는 소개팅이나 미팅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물론 당연히 싱글도 있다. 그렇다면 짝이 있는 친구들은 다들 커플로 왔는데 싱글은 혼자 앉아 있게 된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이런 식이라면 아무리 당당한 싱글이라도 조금은 짜증이 날 법하지 않은가.


싱글에겐 불공평한 사회

크리스마스 연휴가 이어지는 연말에는 많은 상점이 문을 닫고 거리는 더욱 한산해진다. 스위스인들은 크리스마스 이브나 당일에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물론 이 저녁식사에도 커플로 초대된다) 나머지 연휴에는 커플들끼리 각자 오붓한 시간을 보낸다. 싱글이라면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에서 커플들 사이에 앉아 있다가 나중에는 홀로 연말의 긴긴밤을 보내야 하는 외로운 시즌이다.

스위스인들은 여행이든 운동이든 쇼핑이든 대부분의 여가 활동을 자신의 배우자, 파트너, 여자친구나 남자친구와 함께 하기 때문에 내가 보기엔 너무 폐쇄적으로 커플끼리만 어울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을 텐데!

스위스의 커플 중심 문화는 가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스위스에 와서 참으로 인상적인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족을 최우선으로 두고 가족과 정말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고? 하지만 한국에서 사회생활이 더욱 중시되고 온 가족이 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세태와 비교하면 내 눈에는 이 철저한 가족 중심 사회가 놀랍게 느껴질 정도였다. 스위스인들은 한국인과 비교하면 많은 지인과 어울리기보다 소수의 친지들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 소수의 친지란 절친한 친구를 제외하면 대개 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다.

특히 가정의 중심은 자녀가 아니라 부부다. 아이들 키우기에 바빠도 가끔은 혹은 정기적으로 어떻게든 부부만의 시간을 내어 외식을 하거나 여행을 가는 부부가 많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가까운 가족, 친지들이 며칠간 아이들을 대신 돌봐주는 경우도 흔하다. 육아도 중요하지만 부부간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고 그것이 또 아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

이렇게 사회가 커플 중심, 부부 중심으로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스위스는 여느 서양 국가들처럼 만만치 않은 이혼율을 보인다. 스위스연방통계청(BFS)에 따르면 2015년 스위스에서 1만6960쌍이 이혼했는데, 이는 인구 1000명당 2쌍이 이혼한 꼴이다. 한국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한국에선 인구 1000명당 2.1쌍이 이혼해 스위스와 비슷한 이혼율을 보였다. BFS는 기존의 통계 추세대로라면 결혼한 5쌍 중 2쌍이 향후 이혼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동거인도 ‘평생의 반려자’라 불러

스위스의 이혼율이 낮지 않은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부부의 파트너십에 큰 가치를 두기 때문으로 보인다. 갖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부부 사이가 좋아지지 않을 경우 자식 때문에 참고 살기보다 과감히 이혼을 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혼 후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 다시 사랑을 하고 여생을 함께 보내는 것이 자신의 행복이라고 여긴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이혼하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 재혼하거나 동거하면서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재혼하지 않고 동거만 할 경우에 ‘평생의 반려자(Lebenspartner)’라고 부르며, 사회적으로는 배우자와 동일하게 간주한다. 이혼했다고 해서, 이혼 후 새로운 파트너와 동거한다고 해서 이들을 편견을 갖고 바라보지도 않는다.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이런 시간적 순서로 이어지는 커플의 ‘역사’에 대한 고정관념이 스위스에선 덜하다. 틀을 깨는 다양한 유형의 커플들을 보면서 나의 시야도 점점 넓어지는 것 같다.

스위스와 한국의 커플을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진 차이가 바로 동거 문화다. 스위스에선 연애 때부터 동거를 시작해 몇 년간 함께 살아본 뒤 결혼하는 게 일반적이다. 반대로 동거를 하지도 않고 결혼과 동시에 함께 살기 시작하는 커플은 매우 드물다. 모든 면에서 고집스러울 정도로 안전 제일주의를 강조하는 스위스인들은 함께 살아보지도 않고 결혼하는 것을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혼 전 동거는 상대방과 잘 맞는지를 테스트해볼 가장 실용적인 방법인 것이다.

동거를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부모에게 숨기는 일은 없다. 스위스 남녀들은 당당하게 동거하고 공식적인 커플로 인정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일찍부터 자신의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가족에게 소개하고 가족 모임에도 늘 동반한다. 결혼을 약속하고 나서야 부모에게 공식적으로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소개하는 경우가 많은 한국과 대조적이다.


결혼과 출산은 별개

한번은 친구 카트린과 아드리안 커플의 결혼식에 가서 약간의 문화 충격을 받았다. 카트린의 여동생인 10대 후반의 비비안과 남동생인 20대 초반의 마리오도 각자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를 데려왔다. 물론 이들도 카트린으로부터 커플 단위로 결혼식 초대를 받은 것이다. 가족 단체사진 촬영이 시작되자 포토그래퍼는 남매 커플 세 쌍이 동시에 각기 키스할 것을 주문했고, 이들은 한 치의 수줍음 없이 온 가족과 친지들이 보는 앞에서 키스했다.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키스를 해서 놀란 게 아니다. 아직 10대 후반, 20대 초반이면 지금의 애인들과 꼭 결혼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데 언니, 누나의 결혼식 앨범에 지금의 애인들과 함께 공식적인 역사를 남긴다는 게 참으로 신선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헤어질지도 모를 위험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현재의 사랑에 충실한 게 스위스인들의 사랑 방식인 것이다.

출산을 먼저 한 뒤 결혼하거나, 결혼에 대한 기약이 없더라도 동거 커플끼리 아이를 낳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친구인 미하엘과 멜라니 커플도 그렇다. 스위스인 미하엘과 독일인 멜라니는 아직 결혼 계획은 없지만 함께 아이를 갖기로 약속하고 올해 초 건강한 딸 루이사를 낳았다. 미하엘은 스위스 관청에 공식적으로 루이사의 아버지임을 신고했다. 이들은 결혼만 안 했을 뿐 양가 부모들은 이들을 사위, 며느리로 대하고, 앞으로 이들이 결혼을 하든 안 하든 평생 루이사와 함께 한 가족으로 살 것이라고 믿는다.

BFS에 따르면 2015년 스위스에서는 신생아 1만9800명이 혼외로 태어났다. 이는 아기 네다섯 명 중 한 명 꼴이다. 결혼하지 않은 커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도 사회적 인식이나 제도적인 면에서 모두 차별받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노인들의 구애 광고

또 스위스에서는 혼인 10건 중 4건 가까이가 국제결혼일 정도로 유독 국제결혼이 많다. 인구 800만 명 가운데 무려 4분의 1이 외국인이니 스위스 안에서 외국인 배우자를 만날 가능성도 높지만, 한편으론 굳이 이 작은 땅덩이 안에서 짝을 찾기보단 세계 각지에서 여행 중에, 유학 중에 짝을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 우리 남편의 4형제 가운데 셋이 결혼을 했는데 남편은 한국인인 나와, 동생 둘은 각각 독일인, 스위스인과 결혼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니 중년이나 노인이라고 해서 사랑을 포기할 순 없다. 싱글이든, 이혼을 했거나 사별을 했든 중년과 노년의 스위스인들은 여생을 함께 보낼 반려자를 적극적으로 찾는다. 앞서 말했듯 커플 중심 사회인 스위스에서 반려자 없이 홀로 여생을 보낸다는 건 매우 가혹한 일이다.

이들은 동호회 활동을 하거나 다양한 모임에 참가해 새로운 인연을 찾는다. 지역신문에 자신을 소개하고 이상형을 밝혀놓은 구애 광고란이 따로 있을 정도다. 구애 광고란에 밝힌 나이는 50대에서 70대 정도다. 노인요양소에서 반려자를 찾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매주 일요일에 발행되는 스위스 신문 ‘존탁스차이퉁’에서 최근 흥미로운 특집기사를 읽었다. 만 65세 이상 노인들 가운데 최근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서 반려자를 구하는 사람이 많다는 내용이었다. 스위스 젊은이들이 주변에서 애인을 찾기 어려울 때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를 이용하는 경우는 흔하다. 그런데 이제 젊은이들뿐 아니라 노인들까지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의 주 고객층으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아예 노인 전용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도 생겼다. 요즘에는 노년층도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에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데다 이혼과 사별 등으로 혼자된 노인들도 늘어난 수명으로 홀로 보낼 여생이 길어졌다.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 시각에서 보면 큰 시장이 열린 셈이다.

다양한 유형의 커플에 관대한 스위스 사회에서는 동성 커플에 대한 인식도 관대한 편이다. 스위스는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나라로 알려졌는데, 엄밀히 말하면 동성결혼이 아니라 ‘동성 파트너십(Eingetragene Partnerschaft)’이 합법화된 것이다. 2007년 발효된 이 제도는 이성 커플이 관청에서 혼인신고를 하듯이 동성 커플도 공식적으로 관청에 파트너십을 신청하는 것으로, 동성 간 파트너십을 혼인관계와 비슷하게 법적으로 보장한다. 세금 체계도 혼인한 커플과 같고 배우자가 사망할 경우 상속권을 갖는 등 일반적인 법적 권리는 혼인관계와 같다. 다만 동성 커플이 아이를 입양하거나 인공수정을 통해 임신을 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이는 지금도 논쟁이 되고 있는 사안이다.


딸의 동성 파트너도 며느리

BFS의 통계에 따르면 2010년 한해 동성 커플 720쌍이 동성 파트너십을 신청했다. 이 제도가 처음 시행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동성 파트너십을 신청한 커플은 4527쌍인데 이 가운데 대다수인 3178쌍이 남성커플이었다.

스위스에서 동성 커플에 대해 비교적 열린 시각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게 될 때가 있다. 가끔 신문이나 방송에서 국제결혼 커플들이나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를 통해 만난 커플들 같은 다양한 커플의 사연을 소개하는데, 그럴 때 이성 커플뿐 아니라 동성 커플도 자연스럽게 함께 소개한다는 점이다.

내 주위에도 여성끼리 동성 파트너십을 신청한 커플이 있다. 늘 둘이서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니는 타냐와 클라우디아는 3년 전 가족과 친지를 초대해 보덴 호수의 선상에서 멋진 결혼식을 올렸다. 스위스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교회 결혼식이 아닐 뿐이지 결혼식을 올리고 공식적으로 부부임을 인정받은 건 동등하다. 그들의 부모도 딸의 파트너를 ‘며느리’라고 부른다.

스위스의 부모들도 자신의 자녀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땐 당연히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타냐의 어머니는 무턱대고 반대하는 대신 “내 딸이 행복한 게 최우선”이라며 딸의 동성애를 받아들이고 이들 커플의 앞날을 축복해주었다고 한다.

이 작고 고요한 나라 스위스에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늘 사랑을 찾고 사랑을 한다(이 조용한 나라 스위스에서 사랑마저 없었다면 아마 스위스인들은 지루함에 질식해버렸을 것이다). 사랑의 형식은 아무 상관이 없다. 그저 둘이 행복하면 그만이고 주변 사람들은 그들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 달콤한 커플들의 사랑을 지켜보는 건 내게도 행복이다.




신성미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와 동아일보 경제부·문화부, 동아 비즈니스리뷰 기자로 일했다. 2015년부터 스위스인 남편과 스위스 장크트갈렌(St.Gallen) 근교에 살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스위스 사회, 문화에 대해 블로그(bl- og.naver.com/sociolog icus)에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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